한성대학교 40년사
Forty years History of Hansung University한성대학교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
이사장 이종훈
총장 강신일
한성대학교 역대 이사장
초대 김의형 이사장
2대-6대 이희순 이사장
7대-8대 김의형 이사장
9대-11대 안호상 이사장
12대 서정희 이사장
13대 김옥자 이사장
14대 박영호 이사장
15대 차인석 이사장
16대 김채윤 이사장
17대 이상희 이사장
18대 손봉호 이사장
19대 장회익 이사장
20대 신용하 이사장
21대 이희순 이사장
22대 이종훈 이사장
한성대학교 역대 총장 | 학장|
초대 김의헝 학장
2대 이희순 학장
3대 김옥형 학장
4대 강병규 학장
5대 홍순태 학장
6대 신영기 학장
7대 원형갑 학장
초대 원형갑 총장
2대 이용남 총장
3대 이성근 총장
4대 한완상 총장
5대 윤경로 총장
6대 정주택 총장
7대 강신일 총장
한성대학교의 과거와 미래 | 건물
1. 1960년대 한성여중·고 전경 (現 진리관·지선관)
2. 1983년 신축 한성대학 건물(現 한성여중·고)
1. 1990년대 교사이전 후(우촌관·진리관)
2. 2007년 학교 전경(우촌관·진리관·연구관·탐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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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4년 체육관
2. 1976년 한성여자대학 정문3. 1980년 한성대학 본관·의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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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 낙산수영징(現 과학관자리)
2. 1981년 12월 29일 종합관(現 한성여중) 준공3. 1983년 지선관4. 1983년 진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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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4년 9월 5일 학생복지관(現창의관) 준공 2. 1987년 8월 25일 우촌관 준공
3. 1988년 한성대정문(체육관) 4. 1991년 대강당(現학송관)5. 1993년 과학관(중축전·現공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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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상징탑
2. 1993년 우촌관 전시실3. 1994년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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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 증축후 학생회관(現창의관) 2. 1997년 지선관
3. 1997년 진리관 4. 1999년 우촌관5. 1999년 강의동(現탐구관) 6. 2001년 한성대학교 대학로캠퍼스(現에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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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 미래관(야경)
2. 2007년 진리관3. 2007년 중축 후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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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낙산관·창의관·미래관 2. 2008년 학생회관(現 창의관)
3. 2011년 우촌학사 4. 2012년 우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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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산관대강당 2. 농경생활사 전시관(미래관)
3. 대학사료실(미래관) 4. 삼학송5. 의화정한성대학교의 과거와 미래 |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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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3년 민관식 문교부장관 내교 2. 1973년 3월 5일 제1회 입학식
3. 1977년 2월 25일 제1회 졸업식 4. 1984년 10월 3일 개교기념 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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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 5월 28일 낙산축제 2. 1985년 12월 4일 ROTC 창설
3. 1987년 8월 25일 우촌관 준공식 4. 1991년 11월 14일 전국 추계 대학 촉구 연맹전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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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11월 29일 상징탑 제막식
2. 1992년 8월 25일 이현제 전 국무총리 초청특강3. 1993년 8월 24일 24회 전국대학미전 개최
대학간상.19호97객교21£류100*l협A정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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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6월 14일 한성 회화제 2. 1994년 10월 4일 남문 낙성식
3. 1996년 5월 10일 전자정보관 개관 4. 1997년 7월 21일 대학간 상호 교류 협정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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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 3월 6일 강의동(現탐구관) 개관식
2. 1999년 10월 17일 헬무트 슈미트 영예 경영학박사 학위수여3. 2000년 5월 3일 성북벤처창업지원센터 협약식4. 2001년 5월 8일 Andreas Van Agt 명예 행정학박사 학위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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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9월 27일 도서관·교수회관 신축 및 학생회관 증축 기공식
2. 2002년 10월 14일 한완상 총장 취임식3. 2003년 10월 15일 미래관 연구관 인성관 준공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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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 10월 15일 학술정보관 개관
2. 2004년 1월 16일 명예박사 학위수여식3. 2004년 2월 27일 입학식 및 새내기 환영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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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 11월 15일 서울 패션산업발전 협력체재 구축을 위한 협정 조인식
2. 2005년 3월 21일 윤경로 총장 취임식3. 2005년 10월 1일 한성학원 창립 60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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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3월 29일 신용하 이사장 취임식
2. 2006년 12월 22일 해외봉사단 발대식3. 2007년 4월 13일 훌륭한 대학교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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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4월 20일 서울 중소패션기업 마케팅 지원사업 협약식
2. 2007년 5월 25일 낙산축제3. 2007년 8월 30일 농경생활사 전시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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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8월 30일 마약전시관 개관
2. 2007년 9월 10일 외국인학생 추석행사3. 2007년 10월 1일 개교 35주년 U.I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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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10월 1일 개교 35주년 회화전
2. 2007년 10월 1일 개교 35주년 기념식3. 2007년 10월 2일 개교 35주년 기념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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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10월 2일 개교 35주년 점등식
2. 2007년 10월 2일 대학자료실 오푼3. 2007년 12월 21일 동문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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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3월 3일 한성 학연식
2. 2008년 7월 30일 컨설팅대학원 및 R&D센터 개설 협약식3. 2008년 9월 18일 ELC 개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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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9월 18일 오세훈시장 특강 2. 2008년 10월 8일 학교주변 청소
3. 2009년 3월 27일 총장(윤경로·정주택) 이·취임식 4. 2009년 6월 9일 한국감정평가협회 협약식
1. 2009년 9월 29일 한국 취업박람회 2. 2009년 10월 8일 제5회 공학경진대회
3. 2010년 4월 28일 창업지원단 발대식 4. 2010년 5월 24일 기업은행 산학연 협약식
사랑혜요「꿇7T혹?흉제댐효렇픽갱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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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6월 4일 보훈의달 행사
2. 2010년 6월 4일 중소기업형 계약학과 협정식3. 2010년 6월 24일 제9기 해외봉사단 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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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10월 1일 경로당 지원 2. 2011년 5월 27일 낙산축제
3. 2011년 8월 9일 패션네트워크 서울센터 개원식 4. 2011년 9월 8일 우촌학사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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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12월 5일 벽화그리기 봉사 작업
2. 2011년 11월 30일 해외봉사 발대식(바누아투)3. 2012년 2월 23일 KOICA 협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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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7월 6일 성북구청 그린캠페인 MOU 2. 2012년 9월 11일 취업·창업 FESTIVAL
3. 2012년 10월 4일 40주년 기념식 4. 2012년 10월 4일 한성대학교 40주년 기념 식수발간사
우리 대학은 2012년 10월에 개교 4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의 센터 100년을 깨우다”는 주제로 기념식을 개최하고 ‘서울의 중심 (Center) 대학’ 비전을 선포하였다. 우리 대학은 학과 단위와 학교 전체 차원에서 특성화를 추진하고 산학협력 시스뱀을 강화하여 CENTER형 인재양성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CENTER형 인재라 함은 Creative(창의성), Energetic(적극성), Networking(소통능력), Trustful(신뢰성), Efficient(효율성), Ready(준비성)의 능력을 갖춘 인재를 뭇한다. 이러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고 있는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길이며, 또한 이러한 노력은 우리 대학을 한차원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우리 대학은 그동안 「한성대학교 20년사』와 『한성대학교 30년사』를 출판하여 학교의 역사를 정리해 왔다. 40주년의 역사 기술은 2012년이 조금 지난 시점인 2014년 12월 23일에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제1차 모임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제1차 모임에서 한성대학교 40년사의 집필 원칙과 방향 등을 정하고 대상기간은 30년사의 흐름을 이어 총장임기별로 2002년 9월 1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로 정하였다 이후 10차까지 편집회의를 거치면서, 기존의 30년사는 체제와 구성을 다듬고, 새로이 추가하는 40년사는 30년사의 흐름을 이어서 총장임기별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다는 집필원칙을 세웠다.
이 책은 모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부터 4편까지는 30년사의 내용에 따라 제1편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제2편 형성기(1972~1981), 제3편 성장기(1982~ 1992), 제4편 발전기(1993~2002) 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40년사는 30년사의 1편 부터 4편의 내용에 이어서 제5편을 수록하였다 제5편은 변혁기로 정하고, 각 총장을 중심으로 특성화모색기, 한완상 총장 시대 (2002. 10. 14.~2004. 12. 15'>, 학생감동교육, 윤경로 총장 시대 (2005. 3. 1.~2009. 2. 28'>, 학생성공교육, 정주택 총장 시대 (2009. 3. 1.~ 2013. 2. 28'> 로 세분하였다 한완상 총장 시대에는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를 위해 미래 정보화를 위한 학술정보관 신축, 한성대 외식창업동아리 제1호 오픈, 산학연 사업추진, 2003년 행정부분 ISO 9001 인증 획득, 2004년 대학종합평가에서 교육,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 학문분야 평가에서 기계시스템공학과 대학원 교수영역 우수대학 선정의 성과를 이루었다. 윤경로 총장 시대는 학생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질 높은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2006 교육과정 개정’, 조직 단위실적평가 처음 시행, 365일 열린 캠퍼스, 한성튜터링, 지역인재육성사업, 장학제도 개선, 글로벌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해외봉사단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2006년에는 취업률 70%를 달성하였고, 중소기업 직업훈련 컨소시엄 사엽, 벤처창업지원센터 최우수 등급학교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 제4회 ‘흘륭한 대학교상’을 수상하였다 정주택 총장 시대는 ‘학생성공교육’을 위한 기초를 세워서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국내외 인턴섭을 확대하고 장학금을 증액하였다. 다양한 국제교류를 확대하고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를 개관하였다 학술정보관은 지역사회 도서관 서비스 개방을 선도하였으며, 학생기숙시를 신축하였다.
본서를편찬하는 과정에서 자료의 수집과 집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각 부서마다사람들이 바뀌어 10년간의 업무를 꼼꼼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각 총장 시기별로 자료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다, 부서별로 연간보고서가 정리되지 않아 엽무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본서의 집필에는 『한성대학교 30년사』와 『한성학원 50년사괴를 기초로 하고 10년간 발간된 한성순보 및 한성대신문의 기사들을 활용하였다. 또한 행정부서의 적극적인 협조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 이들 자료는 후일 역사를 기술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본인은 평소 우리 학교가 기록관 및 보존기록관 시스템을 도입해서 대학의 모든 행정기록 및 비행정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40년가를 편찬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다 50년사를편찬할 즈음이면 기록관리시스템이 도입되어 활용 · 준활용 기록들은 물론이고 비활용 기록들이 잘 정리되어편집위원회가 필요로 하는자료들이 적시에 체계적으로 제공되기를 바란다. 또한 위원회도 미리 구성되어 위원들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학교의 역사를 집펼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편찬위원들은 지난해 추운 겨울부터 올해 꽃피는 5월까지 학술정보관 4층 그룹스터디실에서 10회의 모임을 가졌다 그 기간 내내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즐겁게 일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한분 한분의 이름을 새기고 모습들을 떠올린다 기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모든 분들에게 지변을 빌어 다시 한 변 깊은 사의를 표한다.2015년 5월편집진을 대표하여40년사 편집위원회 위원장 강순애『한성대학교 40년사』발간을 축하하며
우리 대학은 1973년 6개 학과, 입학정원 150명의 야간대학인 한성여자대학으로 출범하였습니다. 한성여자대학은 1978년에 한성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되어 남 · 녀공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고, 2000년에는 ‘대학종합평가 최우수 대학’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증과 · 증원을 거듭하여 2012년 2월 당시 본교 조직은 4개 단과대학, 7개 학부, 13개 학과로 입학정원 1,620명 편제정원 6,480 명의 종합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경영, 행정, 예술, 국방과학, 지식서비스&컨설팅, 부동산, 교육대학원의 7개 특수대학원으로 입학정원이 418명입니다. 개교 이래 학부졸업생은 27,369명, 박사학위자 160명, 석사학위자 3,233명, 총 30,761명입니다.2012년에 개교 4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도심 속 첨단디지털 콘텐츠 프런티어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비전 2013 ’을 수립하였고, 구성원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21세기가 요구하는 훌륭한 세계인을 육성하는 명문사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교수와 직원들은 수준 높은 강의, 선도적 연구, 충실한 학생지도, 서비스 행정 구현, 국제교류 확대, 향기로운 캠퍼스 구축을 위해 고민하고 학생들의 꿈을 이끌어내고 구현 할 수 있는 최선을 길을 찾아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故) 우촌 김의형 박사님을 비롯한 재단관계자들의 지원과 배려, 역대 총장님들의 리더십, 교수 및 직원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 동문 및 지역사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우리 대학은 각자의 위치에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여 노력하선 모든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의미에서 이변에 발간되는 『한성대학교 40년사』에서는 2002년 9월에 이루어진 『한성대학교 30년사』를 새로 정비하고 2002년 10월 이후 2013년 2월까지 10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10년의 역사는 대학특성화를 주도하여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위한 기반을 마련한 한완상 총장 시기 (2002. 10. 14. ~ 2004. 12. 15.), 학생들이 감동을 느껄 수 있는 질 높은 교육환경을 마련한 윤경로 총장 시기 (2005. 3. 1. ~ 2009. 2. 28.), ‘학생성공교육’을 위한 새 도약을 이룩한 정주택 총장 시기 (2009. 3. 1. ~ 2013. 2. 28.)l의 역사가 핵심입니다.
이 한권의 책에 우리 대학의 자랑스러운 40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우리 대학 역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기록일 뿐 아니라, 향후 우리 한성인들에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필수 자료가 될 것이며 이 자료에 담긴 기록들은 우리 대학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되는 선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끝으로 이 책자를 만드느라 고생하신 40년사 편집위원회의 모든 위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2015년 5월
강신일 총장『한성대학교 40년사』발간을 축하하며
우리 대학은 1945년 설립자 고 우촌 김의형 박사의 실사구시적인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한성학원이 출범하였고, 1973년에는 대학이 설립되어 4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에는 4개 단과대학, 7개 학부와 147R 학과에편제정원 6, 480 명, 대학원에는 일반대학원 및 7개 특수대학원에 56개 학과,편제정원 1, 672 명의 수도권 중심대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2000년 대학종합평가 최우수대학, 2007년 훌륭한 대학으로 선정되는 등 질적으로도 꾸준히 저력 있는 내실을 가하여 21세기 신정보화 시대의 미래형 대학에 걸맞게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성장하여 왔습니다.우리 대학은 1992년 『한성대학교 20년사』를 펀한한 이후에 10년을 주기로 역시를 기록해 왔습니다. 시기별로 총장들이 실시했던 정책과 중요 사업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 20년사의 내용이 30년사에 실리고 30년사는 40년사에 실리면서 기록을 통하여 역사가튼실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들이 현재의 새로운 역사의편찬 체재 안에 그대로 수록되고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100년을 향한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
40년의 역사가 5편으로 나누어 수록되었습니다. 제1편은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을 담았습니다. 우촌 김의형 박사의 창학정신과 한성여자대학의 인가, 건학이념, 한성대학의 교육목적 및 교육목표를 실었습니다 제2편은 형성기(1972~1981)로 한성여자대학의 초대학장인 김의형 박사의 치적을 먼저 실었습니다 제2대 이희순 학장시기에 한성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되어 남녀공학이 되었습니다 제3 대 김옥형 학장시기에 5개 학과의 증과가 승인되고 교직과정이 설치되었습니다 제3편은 성장기(1982~1992) 로 강병규 학장, 홍순태 학장, 신영기 학장, 원형갑 학장이 역임하였습니다 제4대 강병규 학장은 한성대학교 종합화 계획을 수립하였고, 제5 대 홍순태 학장은 학교 운영의 내실화를 기했으며 제6대 신영기 학장은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면서 학교의 공간확충에 힘썼습니다. 제4편은 발전기 (1993~2002) 로 원형갑 총장, 이용남 총장, 이성근 총장이 역임하였습니다. 제1대 원형갑 총장시기에 건학 20주년을 맞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연구하는 대학’, ‘푸른 미래의 대학’이라는 구호를 걸고 발전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김의형 박사의 10주기 추모집 『낙산의 삼학송』과 『한성대학교 20년사』및 『한성대학백서』가 발간되었습니다. 교과과정이 개편되고 대학의 환경개선 및 공간확충이 이루어졌습니다. 제2대 이용남 총장은 조화와 협력의 구조 속에 대학발전을 이룩하였고, 교육이념과 교육목표를 재정립하였고 교과과정을 개편하여 학부제를 실시하였으며 1997년에는 정원 자율화 대상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제3대 이성근 총장시기에는 대학편제의 변화로 학장제가 신설되었고, 대학원의 증과 · 증원이 있었으며, 2002년 2월 대교협평가에서 학부기준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제5편은 30년사의 1편부터 4편의 내용에 이어서 변혁기 (2002~2012)로 정하고, 각 총장을 중심으로 특성화모색기, 한완상 총장 시대 (2002. 10. 14.~2004. 12. 15.l, 학생감동교육, 윤경로 총장 시대(2005. 3. 1. ~2009. 2. 28.l, 학생성공교육, 정주택 총장 시대(2009. 3. 1.~2013. 2. 28.)로 세분하여
각 시기별 특정을 상세하게 실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권의 책에 우리 대학의 40년간의 역사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편제를 총장 취임시기의 중요한 학사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니 향후 한성인들에게 역사를 증거 할 수 있게 되고, 한성인들은 이 책을 보면서 한성인의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책지를 만드느라 고생하신 40년사편집위원회의 모든 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2015년 5월이종훈 이사장편찬원칙
1. 「한성대학교 40년사』는 우리 대학 개교 이래 40주년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본서의 수록범위는 우리 대학 설립배경과 교육이념을 밝히고 1972년 개교에서 시작하여 40주년을 맞이하는 2013년 2월 28일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2002년 9월에 이루어진 『한성대학교 30년사』를 새로 정비하고 2002년 9월 1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10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대학특성회들 주도한 한완상 총장, 학생감동교육으로 새 시대률 연 윤경로 총장, 학생성공교육을 주창한 정주택 총장 시기의 역시를 담았다2. 이 책은 모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부터 4편까지는 30년사의 내용에 따라 제1편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제2편 형성기(1972~1981), 제3편 성장기(1982~1992), 제4편 발전기(1993~2002) 의편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집필 시기 구분은 다음과 같은 근거 하에서 이루어졌다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은 제1편에서 다루었고 제2편 형성기는 1972년 개교에서부터 1981년까지로 하였는데 이때는 야간대학시대로서 본교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였으며, 제3편은 성장기로서 1982년부터 1992년까지인데 이 무렵에는 대부분의 학과가 야간에서 주간으로 변모하였으며 졸업 정원제에 의해 입학정원이 676명으로 늘어났고 남녀공학으로 변경되어 성장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종합대학교로 승격될 수 있는 여건이 구현되었다. 제4편은 발전기로서 1993부터 2002년 8월 1일까지이다. 1993년에는 본교가 개교한지 21년 만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였고 뒤이어 4개 단과대학을 두어 종합대학교 체제를 갖추었다. 2000년 2월 대학종합평가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어 발전하논 본교의 모습이 노정되기도 하였다
40년사는 30년사의 1편부터 4편의 내용에 이어서 제5편을 수록하였다 제5편은 변혁기로 정하고, 각 총장님을 중심으로 특성화모색기, 한완상 총장 시대 (2002. 10. 14~ 2004. 12. 15.), 학생감동교육, 윤경로 총장 시대 (2005. 3. 1.~2009. 2. 28.), 학생성공교육, 정주택 총장 시대 (2009. 3. 1.~2013. 2. 28.) 로 세분하였다. 한완상 총장 시대에는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를 위한 창업지원, 산학연 사업 추진, 국제교류와 학술교류, 대학평가의 성과가 있었다 캠퍼스의 환경 개선으로 미래관, 연구관, 인성관이 준공되었고, 체육관과 강당이 증축되었다 그중 미래관은 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임기 중 한완상 총장의 퇴임으로 이우관 교무처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하였다. 윤경로 총장 시대는 학생감동교육시대와 정 이사 체제 전환 시기가 되었다. 한성대학과 대학원의 중장기발전계획이 수립되었다. 학생 감동교육을 위해 365일 열린 캠퍼스, 한성튜터링, 지역인재육성산업, 2006 교육 과정개편, 2006년 공학인증제도입, 해외봉사단, 장학제도 개선 및 취업률 제고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이 시기의 성과로는 2006년의 취업률이 70%를 돌파하였고, 중소
기업 직업훈련컨소시엄사업이 선정되었으며, 벤처창업지원센터가 최우수 등급으로 선정되었다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고, 성북구 도시관리공단과 교류 협력이 협약되었고, 2+2 복수학위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학술정보관은 2006년 세계 도서관정보대회의 공식 방문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 환경개선에서는 낙산관이 준공되었고, 우촌관 로비 및 미래관 스터디라운지가 조성되었으며, 연구관과 학송관이 증축되었다. 기숙사가 확충되었고, 운동장과 탐구관 앞에 정원이 조성되었다 정주택 총장 시대는 ‘학생성공교육’을 위한 기초를 세웠다 그 성과로 교육환경개선, 취업률증가, 국내외 인턴십 대폭 확대, 취업지원 프로그램, 장학금 증가 및 등록금 인상금 환급, 세계로 뻗어 나간 해외봉사 및 학생활동Hansung Success Frontier), 학생편의시설 확충, 학생들의 주요 수상(Red dot Award 등) 및 고시반 실적, English Lounge 등의 사업이 있었다. 이 시기의 주요한 변화로는 공공인재학과와 대학원의 신설이 있었고, 우수교원을 확보하고 교수 업적 평가가 강화되었다 최우수 강의평가 대학으로 선정되었고, 진입로를 2009년에 확장하였고, 다OJ"한 국제교류가 있었으며,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가 개관되었다. 지역사회와 협력이 이루어졌고, 학술정보관의
도약이 있었다. 미래위원회가 기동되었고, 대학원 및 디자인아트 평생교육원 관련 주요사항이 있었고, ROTC가 증원되었다. 또한 여학생 기숙사(우촌학사)가 건립되었으며, 외국인 교수 전용숙소인 게스트 하우스가 신축되었다. 종합관 건립계획이 확정되었고, 외부건물(성북경찰서 사거리 인근 건물)이 매입되었다.
3. 40년사 편찬의 원칙은 자료집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우리 대학의 발전과정과 새 방향을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하여 「한성대학교 30년사」와 「한성학원 50년사」, 「한성순보」및 한성대신문 등을 참조하고 행정부서의 협조 하에 현황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였다.4. 이 책은 8인의 편집위원이 분담하여 자료를편집하거나 집필하였다. 각 위원의 분담 내용은 아래와 같다.
30년사의 수정과 보완은 강순애 교수와 전장배 부처장이 담당하였다. 특성화모색기, 한완상 총장 시대 (2002. 10. 14.~2004. 12 15.)는 박희진 교수가 집필하였고, 학생감동교육, 윤경로 총장 시대 (2005. 3. 1.~2009. 2. 28.) 는 정경희 교수와 이재석 교수가 집필하였으며, 학생성공교육, 정주택 총장 시대 (2009. 3. 1. ~2013. 2 28.)는 박준철 교수가 집필하였다 부록은 전장배 부처장과 정미영 차장이 담당하였다. 자료의 수집 및 편집은 최민이 차장과 정미영 차장이 담당하였다. 사진의 수집과 편집은 장재혁 차장이 담당하였다.5. 본 40년사는 가급적 간결한 문체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한글서술을 원칙으로 하되 고유명사는 경우에 따라 한자를 병기하여 기록하였다.6. 각 장별 서술은 편년체 기술방법을 채택하기로 하였고 그 나열순서는 이·취임에 따른 보직명단의 순서와 중요한 학사 결정사항을 아울러 기술하였다. 한편 그 다음으로 그 해 일어났던 각종 행사 및 사건들을 요약해 싣기로 하였다.
7. 화보는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도록 하기 위하여 엄선하여 수록하였다.8. 부록에 우리 대학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수록하였고, 연혁은 최근 상황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첨가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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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간사 ⅰ『한성대학교 40년사』발간을 축하하며 - 강신일 총장 ⅳ「한성대학교 40년사』발간을 축하하며 - 이종훈 이사장 ⅵ편찬원칙 ⅷ표·그림 목차 xⅵ부록 표·그림 목차 xⅷ1.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1.1 설립배경 3
1.1.1 설립자의 생애와 장학정신 31.1.2 한성학원의 설립 41.1.3 한성여자대학 인가 61.2 건학이념 61.2.1 한성학원의 교육이념 61.2.2 한성대학의 설립목적 및 교육목표 81.2.3 교표, 이미지마크, 교기, 상징물 92. 형성기
2.1 첫발을 내딛는 한성, 초대 김의형 학장 시기 17
2.1.1 제1회 입학식과 증과·증원 172.1.2 성장을 향한 움직임 182.2 제2대 이희순 학장 시기 202.2.1 이희순 학장 취임과 새로운 도약 다짐 202.2.2 남녀공학으로 제2의 탄생 202.3 제3대 김옥형 학장 시기 22
2.3.1 김옥형 학장 취임과 동창회 조직 222.3.2 학과 증과 및 직제개편 232.3.3 제3대 김옥형 학장 사임과 종합관 준공 233, 성장기
3.1 제4대 강병규 학장 시기 29
3.1.1 강병규 학장 취임과 대학의 성장 293.1.2 대학기구 정비와 학사행정 개혁 303.1.3 학문연구체제 확립과 대학이미지 구축 353.1.4 시련과 새로운 도약 373.2 제5대 홍순태 학장 시기 393.2.1 홍순태 학장 취임 및 교사 이전 393.2.2 성장을 위한 진통 403.2.3 교사 이전 및 시설 확장 423.2.4 시설 확충 및 대학원 신설 433.2.5 홍순태 학장 퇴임 443.3 신영기 학장 시기 453.3.1 제6대 신영기 학장 취임 및 과학관 준공 453.3.2 교내 연구분위기 조성 및 신영기 학장 사임 473.4 제7대 원형갑 학장 시기 503.4.1 원형갑 학장 취임 503.4.2 교수 확충 504. 발전기
4.1 종합대학교로 승격, 초대 원형갑 총장 시기 67
4.1.1 성년을 맞게 된 한성대학교 674.1.2 종합대학교 승격, 초대총장 원형갑 박사 취임 69
4.1.3 신임교수 초빙 및 강의평가제 정착 704.1.4 교육과정 개편 및 입시제도 개선 714.1.5 대학환경개선 및 공간 확보 794.1.6 대학발전과제 수행 및 학사협의회 개최 824.2 도약하는 푸른 대학, 제2대 이용남 총장 시기 864.2.1 도약을 위한 새로운 체제와 교육이념의 정립 864.2.2 교육제도의 변화 884.2.3 대학 정보화와 세계화 추진 944.2.4 대학발전을 위한 연구제도 1014.2.5 신임교수 확충과 교수 연구활동 1054.2.6 학생 복지와 학생들의 대외활동 1064.2.7 교내 환경 개선 1104.2.8 화합과 조화를 위한 노력 1134.2.9 변화를 위한 진통과 임시 이사체제 1154.3 변화하는 한성대학교, 제3대 이성근 총장 시기 118
4.3.1 이성근 총장 취임과 보직개편 1184.3.2 대학편제의 변화 1194.3.3 교육공간의 확대 1214.3.4 최우수 대학으로 거듭난 한성대학 1244.3.5 이사회 구성의 변동 1254.3.6 변화하는 한성대학 1265, 변혁기
5.1 특성화모색기, 제4대 한완상 총장 시기(2002. 10. 14.~2004. 12. 15.) 135
5.1.1 한완상 총장 취임 1355.1.2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 위한 기반 마련 1375.1.3 창의력, 상상력 교육 지원 사업 성과 1465.1.4 새로운 캠퍼스 시대 1525.1.5 논란 153
5.1.6 한완상 총장 퇴임과 이우관 총장직무 대행 1565.2 학생감동교육의 추구, 제5대 윤경로 총장 시기 (2005. 3. 1.~2009. 2. 28.) 1575.2.1 학생감동교육 시대와 정이사체제 전환 1575.2.2 학생감동교육을 위한 준비 1665.2.3 학생감동교육 시기의 성과들 1815.2.4 환경개선 1885.2.5 교지 『漢城』폐간과 동문조직 활성화 1925.3 학생성공교육, 제6대 정주택 총장 시기 (2009. 3. 1.~2013. 2. 28.) 1935.3.1 정주택 총장과 이희순 이사장 취임 1935.3.2 ‘학생성공교육’을 향한 발걸음 1985.3.3 변화하는 한성대학 2095.3.4 공간 확충 216부록
1. 학교법인 223
2. 대학 2273. 대학조직 2364. 행정부서 2645. 학과(부) 2686. 대학원 2807. 부속기관 2878. 부설연구소 2899. 대학평의원회 29310. 교원 30411. 직원 32512. 학생 33513. 재정 35114. 위원회 35415. 시설 378표·그림 목차
〈표 1> 신설 위원회 명칭과 위원명 31〈표 2> 학부명과 소속학과 및 학부장 명단 34〈표 3> 4개 부설연구소 연구원 및 설립취지 35〈표 4> 한성대 소식지 (1호 ~24호) 59〈표 5> 교앙선택과 학부별 이수학점 72〈표 6> 영역별 교양선택 교과목 73〈표 7> 신·구 교과과정 학점 수 대비표 74〈표 8> 1995학년도 신입생 선발고사 요강 77〈표 9> 1994년도 선정 과제 연구 82〈표 10> 대학 특별위원회 현황 83〈표 11> 1996학년도 본고사 출제의 기본 방향 89〈표 12> 1996학년도 본고사 과목 91
〈표 13> 1996학년도 전형요소별 반영 비율 91〈표 14> 1996학년도 종합생활기록부 반영 비율 92〈표 15> 1996학년도 종합생활기록부가 없는 자의 반영 방법 92〈표 16> 각 위원회별 연구 현황 101〈표 17> 1996학년도 대학발전과제 및 연구책임자 102〈표 18>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의 입학정원의 증원 및 폐지 137〈표 19> 2005년도 학제편제 139〈표 20>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 교수진 140〈표 21>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 교과내용 140〈표 22> 팀제제도 도입에 따른 행정부서의 개편 145〈표 23> 2003~2004 학년도 해외어학 연수단 파견 148〈표 24> 한성학원 정상화 추진 경과 159〈표 25> 대학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경과 161〈표 26> 한성대 35주년 기념 주요 행사 163〈표 27> 365일 열린 캠퍼스 운영 현황 (2005~2008) 167〈표 28> 한성튜터링 프로그램 참여자별 자격 및 역할 167
〈표 29> 한성튜터링 프로그램 운영 현황 (2006~2008) 168〈표 30> 지역인재육성사업 연도별 지원자 수 및 등록률 (2005~2008) 169〈표 31> 2006 교육과정 개편 경과 170〈표 32> ‘2006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졸업이수학점 체계 170〈표 33> ‘2006 교육과정’의 핵심 및 일반교앙 개편 지침 173〈표 34> 조직단위실적 평가 결과 (2007~2008) 174〈표 35> 공학인증제 도입 경과 175〈표 36> 해외봉사단 파견 현황 (2006~2008) 176〈표 37> 한성글로벌리더십 영어캠프 실시 현황 (2006~2008) 177〈표 38> 취업 교과목 개설 및 수강 현황 179〈표 39> 취업커뮤니티 운영 현황 179〈표 40> 한성 취업 Festival 참여 학생수 (2005~2008) 180〈표 41> 연도별 정부지원금과 참여학생 수 182〈표 42> 기숙사 확충 현황 (2005~2007) 189〈표 43> 기숙사 수용인원 현횡 (2004~2008) 190〈표 44> 2010년 1월 구성된 새로운 이사진 195
〈표 45> 365 캠퍼스 프로그램 운영 실적 (2009. 3.~2013. 2.) 200〈표 46> 창업 강좌 운영 내용 (2010. 3.~2013. 2.) 201〈표 47> 창업경진대회 운영 실적 (2010. 3.~2013. 2.) 201〈표 48> 창업동아리 운영 내용 (2010. 3.~2013. 2.) 203〈표 49> 장학금 지급현황 : 학부 206〈표 50> 장학금 지급현황 : 대학원 207〈표 51> 연도별 국제교류 예산 집행 내역 (2006~2012) 212〈표 52> 학생 기숙사 현황 (2013. 2. 기준) 217〈표 53> 외국인교수 숙소 현황 (2013. 2. 기준) 218[그림 1] 교육이념, 목적 및 목표 87[그림 2] 전자도서관 기술구성 95부록 표·그림 목차
〈부록 표 1-1> 역대 이사장 명단 225〈부록 표 1-2> 이사 현황 226〈부록 표 3-1> 역대 총(학)장 명단 238〈부록 표 3-2> 역대 보직교수 명단 241〈부록 표 3-3> 역대 교무처(과)장 명단 243〈부록 표 3-4> 역대 기획협력(기획연구처, 기획실)처장 명단 244〈부록 표 3-5> 역대 학생처장 명단 245〈부록 표 3-6> 역대 총(사)무처장 명단 247〈부록 표 3-7> 역대 입학홍보처장 명단 ·248〈부록 표 3-8> 역대 학부장·학장 명단 248〈부록 표 3-9> 역대 대학원장 명단 251〈부록 표 3-10> 역대 특수대학원장 명단 251
〈부록 표 3-11> 역대 학술정보(도서)관장 명단 255〈부록 표 3-12> 역대 전자계산소장 명단 256〈부록 표 3-13> 역대 디자인아트평생(사회)교육원장 명딘 256〈부록 표 3-14> 역대 산학협력단장 명단 257〈부록 표 3-15> 역대 출판부장 명단 258〈부록 표 3-16> 역대 언어교육원장 명단 258〈부록 표 3-17> 역대 한성프레스센터장 명단 259〈부록 표 3-18> 역대 신문사(학보사) 주간 명단 260〈부록 표 3-19> 역대 영자신문사 주간 명단 261〈부록 표 3-20> 역대 방송국 지도교수 명단 262〈부록 표 3-21> 역대 교지편집실 지도교수 명단 263〈부록 표 4-1> 행정부서 설치연표 265〈부록 표 5-1> 학과별 설치연표 270〈부록 표 5-2> 설치학과(부) 및 입학정원 272〈부록 표 5-3> 2012년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278〈부록 표 6-1> 대학원 연혁 280
〈부록 표 6-2> 대학원 학과 현황 285〈부록 표 8-1> 역대 연구소장 명단 289〈부록 표 9-1> 역대 대학평의원 위원 명단 293〈부록 표 9-2> 역대 교수협의회 임원 명단 296〈부록 표 9-3> 역대 직원노동조합 임원명단 298〈부록 표 9-4> 역대 총학생회장 명단 302〈부록 표 10-1> 연도별 교원 현황 305〈부록 표 10-2> 전임교원 임용 현황 306〈부록 표 10-3> 연도별 교원퇴직 현황 317〈부록 표 10-4> 객원교수 현황 (1991. 3.~1997.2.) 322〈부록 표 10-5> 명예교수 현황 323〈부록 표 11-1> 일반·기술직 현황 325〈부록 표 11-2) 직급별 현황 325〈부록 표 11-3> 기능직 현황 326〈부록 표 11-4> 직원 임용, 승진 및 퇴직 현황 327〈부록 표 12-1> 학과(부)별 학생정원 현황 335
〈부록 표 12-2> 졸업생 현황 338〈부록 표 12-3> 대동제 현황 341〈부록 표 12-4> 연도별 해외봉사단 파견국가 및 파견인원 349〈부록 표 13-1> 연도별 재학생 1인당 교육비 현황 351〈부록 표 13-2> 연도별 세입 중 학생등록금 비율 352〈부록 표 13-3> 연도별 세출 중 인건비 비율 353〈부록 표 14-1> 특별위원회 현황 356〈부록 표 14-2> 자체평가위원회 358〈부록 표 14-3> 대학장기발전위원회 358〈부록 표 14-4> 21세기발전위원회 359〈부록 표 14-5> 교육개혁위원회 359〈부록 표 14-6> 학생정원조정위원회 359〈부록 표 14-7> 한성경쟁력강화위원회 359〈부록 표 14-8> 교육경쟁력선도위원회 360〈부록 표 14-9> 미래위원회 360〈부록 표 14-10> 연도별 교무위원회 위원 명단 360
〈부록 표 14-11> 연도별 교원인사위원회 위원 명단 362〈부록 표 14-12> 연도별 교원업적평가위원회 위원 명단 363〈부록 표 14-13> 연도별 교원연구비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363〈부록 표 14-14> 연도별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364〈부록 표 14-15> 언도별 강의평가연구위원회 위원 명단 365〈부록 표 14-16> 연도별 규정류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365〈부록 표 14-17> 연도별 기획위원회 위원 명단 366〈부록 표 14-18> 연도별 홍보위원회 위원 명단 366〈부록 표 14-19> 연도별 예·결산 자문위원회 위원 명단 367〈부록 표 14-20> 연도별 국제교류위원회 위원 명단 368〈부록 표 14-21> 연도별 학생지도위원회 위원 명단 368〈부록 표 14-22> 연도별 장학위원회 위원 명단 369〈부록 표 14-23> 연도별 취업대책(지도)위원회 위원 명단 370〈부록 표 14-24> 언도별 직원인사위원회 위원 명단 370〈부록 표 14-25> 연도별 자금관리위원회 위원 명단 371
〈부록 표 14-26> 연도별 시설공간위원회 위원 명단 371〈부록 표 14-27> 연도별 산학협력단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372〈부록 표 14-28> 연도별 입학전형관리위원회 위원 명단 372〈부록 표 14-29> 연도별 입학공정관리대책위원회 위원 명단 373〈부록 표 14-30> 연도별 대학원위원회 위원 명단 374〈부록 표 14-31> 연도별 학술정보관(도서관)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375〈부록 표 14-32> 연도별 전산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377〈부록 표 15-1> 교지확보율 (2012. 3. 기준) 381〈부록 표 15-2> 캠퍼스 내 교지 381〈부록 표 15-3> 캠퍼스 외 교지 382〈부록 표 15-4> 교사확보율 (2012. 3. 기준) 383〈부록 표 15-5> 캠퍼스 내 건물 384〈부록 표 15-6> 캠퍼스 외 건물 385[부록 그림 2-1] 2012학년도 대학 기구도 2351.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1.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1.1 설립배경1.1.1 설립자의 생애와 창학정신1) 우촌 선생의 생애우촌(友村) 김의형(金義衡)박사는 1904년 8월 25일(음력) 충남 공주군 탄천면 견동리에서 부친 김우창(金禹昌) 선생과 자당(慈堂) 경주 이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유교 가정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동시에 수학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구한말 군인 출신이자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이은우(李殷雨) 선생이 설립한 삼흥학교(三興學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키웠다 이은우 선생은 체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였고, 이러한 인연이 훗날 우촌 선생께서 체육 분야를 전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우촌 선생은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중등교육과정을 마쳤으며, 20세가 되던 1924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길에 올라 일본체육전문대학(현 일본체육대학)에 입학하여 1927년 3월 20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천안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 공주(公州)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를 거쳐 1930년 4월 서울의 광신상업고등학교와 동덕여자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 봉직하였으며, 일제 말기인 1939년 4월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京城女子醫科專門學校)교수로 재직하며 체육 분야 전반의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체육인이자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1945년 10월 우촌 선생은 한성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장과 이사장으로 여러해 봉직하였다. 한편, 우촌 선생은 대한민국의 체육발전사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61년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직을 시작으로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이사를 거쳐 1966년 대한체육회 회장의 중책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체육회 발전의 공적이 인정되어, 1970년 12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우촌 김의형 박사는 1983년 3월 1일 돌아가실 때까지 80여년의 생애를 한국의 교육과 체육 발전을 위해 살았다 특히 40여년의 삶을 교육자이자 체육인으로 ‘한성’을 위해 바쳤다.
2) 우촌 선생의 교육정신우촌 김의형 박사는 1945년 10월 한성여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역사소명의 고취와 민족정신의 계승, 지(智) · 덕(德) · 체(體)의 조화를 한성학원의 건학정신으로 삼아 이를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우촌 선생의 교육정신은 다음 세가지로 정리할수 있다.첫째, 우촌 선생은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참된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 봄과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하여 역사소명 의식을 배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역사의 부름과 민족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그의 첫 번째 교육사상이자, 교육정신으로 삼았다.둘째, 한성학원의 창학 이념과 교육철학은 ‘한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우리 민족에 대한 투철한 민족혼을 심어주어 다시는 외세의 지배를 받는 오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에 기초하였다.
셋째, 민족의 소명의식 계발과 민족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민족교육의 토대 위에 지식과 덕성(德性), 그리고 체력을 갖춘 참 지혜의 실력 있는 지성인과 신체적으로 건강한 지도지를 양성하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 정신’을 바르게 가르치는 한편 그 위에 지·덕·체를 조화 있게 갖춘 ‘참 한국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았다.1.1.2 한성학원의 설립1) 한성학원의 설립 및 교세 확장(1) 한성학원의 설립한성학원이 낙산 기슭에 터를 잡은 것은 1945년 10월로, 한성학원의 창립은 광복과역사적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광복된 조국에서 청소년의 배움의 터전을 세우고 교육 백년대계률 실현시켜야 하겠다는 우촌 선생의 원대한 포부는 한성학원의 설립배경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 이후, 우촌 선생은 한 친지로부터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경성여자기예학교(京城女子技藝學校)를 인수할 것을 제의받게 되었다 경성여자기예학교는 대지 2,290평에 세워진 373평의 작은 교사에서 일본인 여자중학교(6년제)를 졸업한 젊은 여성들에게 혼인 전까지 바느질, 꽃꽂이, 수예, 재봉 따위를 가르쳤던 곳이었다 우촌 선생은 이 작은 학교를 여성교육의 참된 명문으로 만들 것을 다짐하였다당시 미군정 당국은 학교의 재정과 시설의 미비 등을 들어 학교법인으로서의 허가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우촌 선생은 당시 문교부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그의 포부를 피력하여 조건부 인가를 받았고, 1945년 10월 5일 재단법인 한성학원 설립과 동시에 총 학생 3백여 명의 한성고등여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946년 7월 5일 한성여자중학교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2) 교세 확장한성여자중학교 개교 후, 해방정국의 혼란과 6.25 동란, 9.28 수복, 1.4 후퇴, 그리고 수도 서울수복 등의 시대적 흔란 속에서 1951년 10월 1일, 서울 시내의 동서남북 네 곳에 잔류 중·고등학생 훈육소를 개설하여 3천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였다.
1952년 5월 31일에는 문교부 방침에 의해 6년제 한성여지중학교를 한성여자중학교와 한성여자고등학교로 분리하였고, 우촌 선생은 두 학교의 교장을 겸임하였다. 1953년 1월에는 재단법인 한성학원을 문교부로부터 인가 받았으며, 1955년 고등학교 9학급, 중학교 12학급으로, 1959년에 고등학교 18학급, 중학교 3학급으로 확장 발전시켰다.그 후 15,000평의 대지 위에 4층 철근 콘크리트인 건평 1,200평의 새 본관 건물을 신축하는 한편, 연건평 1,100 평의 4층 과학관 건물을 지었다 이어 강당, 체육관 등을 지었으며, 낙산 언덕에는 진달래와 각종 수목을 심고 의화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경관이 아름다운 캠퍼스로 기꾸었다.1.1.3 한성여자대학 인가
1) 한성여자대학 인가 발족우촌 김의형 박사는 1972년 한국여성전운영재 양성기관인 한성여자대학을 창립하였다 이 해 한성여자대학은 문교부로부터 야간 4년제 여자대학으로, 입학정원 국어국문학과 30명, 영어영문학과 30명, 비서학과 20명, 가정학과 30명, 의상학과 20명, 생활미술학과 20명 등 모두 6 개 학과의 150명으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한성여자대학 개교 후 초대학장에 취임한 김의형 박사는 1972년 12월에 발표한 개교사에서, 미래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아 지(智)·덕(德)·체(體)의 균형 잡힌 교육을 구현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이희순 이사장은 21세기 미래 사회 각 분야의 여성 지도자 양성을 우리 대학의 교육목표로 삼아, 성실하고 참된 교육 혁신을 통해 이를 실현하겠다는 내용의 축사를 발표하였다.1.2 건학이념
1.2.1 한성학원의 교육이념1) 한성학원의 교육이념한성학원은 설립 시 진리와 지션을 교육이념으로 하였다. ‘진리’는 교육기관의 궁극적인 목적인 진리탐구의 보편적 의미 외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랴 ’는 성서 구절에서의 인간이 추구하는 ‘참 자유로움’의 뭇을 더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로움을 누리기에 앞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이를 위한 사명이 교육기관에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선(至善)’이란 「대학(大學)」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서 비롯된 것으로 ‘더할 수 없는 지극한 선(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을 완성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도 지선(至善)을 목표로 할 때 가치였다는 뜻이다.‘진리는 궁극적으로 선에 이른다 ’는 건학정신은 우랴 대학의 인문, 사회, 예술, 자연학부 등 전 분야의 학문 영역에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바람직한 학문 활동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학 이념의 뭇에 따라 한성인 모두가 진리, 지선의 참 의미를 깨우쳐 생활하는 교육인이 될 때 한성학원의 교육이념은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2) 교시 (校是)초대 학장 김의형 박사는 우리 대학 교시(校是)를 진리(眞理), 지선(至善)으로 삼고, 건학이념으로 진리탐구, 인격도야, 인재양성으로 할 것을 밝혔다.첫째, 진리탐구는 상아탑의 본연의 임무요 사명이다, 진리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논리의 법칙이요, 참된 도리를 뭇한다. 진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규정되어 왔다. 새로운 시대에는 이에 부응한 새로운 지식이 요구되는 법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력의 개발이 중요하다. 또한 진리의 탐구에는 사물을 올바로 보는 시각과 탐구의 바른 자세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둘째, 인격도야로, 학문의 연마와 함께 인격수양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참된 도리를 바르게 지켜 나가는 올바른 사람으로 교육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격을 도야하는 데 있어 전제조건의 하나는 건전한 신체의 단련으로, 지식의 함양과 함께 건전한 육체 단련을 위한 이원적 교육을 강조한다.
셋째, 인재양성으로, 우리 대학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민족정신에 투철한 ‘참 한국인’을 양성하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소유한 지성인을 양성하는 일에 주력하여, 민족과 국가를 위한 인재양성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지도자를 양성, 배출하고자 한다.1.2.2 한성대학의 설립목적 및 교육목표
1) 교육이념우리 대학이 창학 이래 이어온 교육이념은 한성학원의 교육이념과 동일하게 ‘진리(眞理)와 지선(至善)’이다 진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자유로움을 누리기에 앞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 과정에 대학이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뒷받침되어 있으며, 지선은 ‘더 할 수 없는 지극한 선(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학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진리를 체득하는 것도 지션을 목표로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이다2) 교육목적우리 대학의 교육목적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본교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창조적 인재를 양성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바는 창조적인 인재의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는 교육중심대학임을 말해주고 았다.우리 대학이 육성하고자 하는 인재상은 교육이념에 담긴 대로 진리탐구를 통해 지선을 이룸으로써 사회와 대학이 함께 발전하는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할 수 있는 인재이다. 결국 사회의 일원인 대학은 카워낸 인재를 통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는 발전을 통해 새로운 인재들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대학이 교육을 통해 추구하는 사회와 대학 간의 이상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3) 교육목표우리 대학의 교육목표는 앞서 제시된 교육목적의 인재상을 구체화시킨 것으로 다음과같다- 열린 사고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세계인 육성
- 공동체 의식과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회인 육성- 다양성과 창의성을 갖춘 전문인 육성이상과 같이 기술된 교육이념, 교육목적, 교육목표는 디음과 같이 연관되어 있다
교육
1.2.3 교표, 이미지마크, 교기, 상징물
1) 교표교표는 우리 대학의 구성원임을 증명하고 구성원들 간의 일체감과 소속감을 고양시키는 상정물이다. 개교 당시 우리 대학의 교표는 가운데 대학이라는 한글에, 글씨체로 동그렇게 둘러싼 형태로 좌우로 한성이라는 교명과 영문 HANSUNG WOMEN'S COLLEGE 률 적어 놓았다 이후 1978년 남녀공학이 되면서 교표가 바뀌었다. 건국대 생활미술학과장 이명구 교수가 디자인 한 것으로 가운데 대학이라는 한지를 통그렇게 둘러싼 형태를 두 개의 원으로 하고 그 안에 영문명으로 HANSUNG UNIVERSITY 를 적어 놓고 바깥으로 부드러운 육각형의 별 모양을 그려놓았다. 그 의미는 귀형(龜形)으로꾸준한 노력을 상정하며, 꽃처럼 아름다운 학문의 전당이며, 색채는 청색과 은색으로 청색은 무한한 희망과 젊음을 상징하고, 은색은 영구불변을 표현한 것이다.
1984년 우리 대학 미술학과장 강국진 교수가 상징물 거북이 문양을 상정하는 새로운 교표를 제작하였다. 진한 밤색의 세 개 육각형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장자리와 가운데의 육각형은 상징물 거북의 모양으로 대학의 울타리와 교수를 의미하며, 가장 안쪽의 육각형은 다이아몬드를 의미하고 학생을 나타낸다. 육각형을 받치고 있는 도형은 대학의 발전과 학교, 교수, 학생을 받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진리탐구와 협동을 나타낸다 교색은 황갈색 (vandyke brown)으로 결실, 완성을 나타낸다1991년에 산업디자인학과 이상원 교수가 교표의 원래 취지와 형태는 살리되 띠로 둘러싸고 육각형을 받치고 있는 도형에 들어있던 영문명 HANSUNG UNIVERSITY를 띠안으로 옮기고 좌우로 별 모양 두 개와 한성대학교라는 한글을 새겨 넣는다.2007년 10월 개교35주년을 맞이하여 U.I. 디자인 전문회사인 인피니티에 의뢰하여 한성대학교의 새로운 교표를 제작하였다. 이 새로운 교표는 모던 & 심플한 3D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함께 역동적이면서 무한대로 열려있는 화살표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HANSUNG의이니셜 “H" 는 “미래로 향히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겠다는 한성대학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사용기간
가운데 대학이라는 한글에 글씨체로 동그렇게 둘러싼 형태로 좌우로 한성이라는 교병과 영문 HANSUNG WOMEN'S COLLEGE 를 적어 놓았다.
한성의 ‘ㅎ’자를 monogram방식으로 표현하고, ‘ㅅ’자를 사방으로 구성표현하여 시각적으로 발전을 상징하며, V자는 승리를 나타낸다. 형태는 귀형(龜形)으로 꾸준한 노력을 상징하며, 꽃처럼 아름다운 학문의 전당을 뭇한다 색채는 청색과 은색이며, 청색은 무한한 희망과 젊음을 상정, 은색은 영구불변을 표현한다
繼
세 개의 육각형 중 가장자리에 위치한 것은 거북이의 문양으로, 대학의 울타리를 상정하고, 가운데의 것은 거북이의 문양으로 교수를 상징하며, 가장 안쪽의 것은 다이아몬드를 나타내고 학생을 의미한다.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도형은 진리탐구와 협동을 나타낸다. 색채는 황갈색으로 결실과 완성을 나타낸다
육각형은 우리 대학의 상징물 거북의 모양으로 대학의 울타리와 각각 교수, 학생을 의미한다. 육각형을 받치고 있는 도형은 대학의 발전과 학교, 교수, 학생을 받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진리탐구, 진리의 보고인 책과 협동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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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G 의 이니설 “H"를 형상화하여 제작하였다. 모던하고 심플한 3D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함께 역동적이면서 무한대로 열려있는 화살표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이니셜 ‘H’는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겠다는 한성대학교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미래와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프론티어 정신과 다양한 문화, 학문을 열린 사고로 받아들이는 한성인들의 지성을 상정하고 있으며, 휴머니즘(Humanism), 정직 (Honest), 명예 (Honor) 라는 젊은 지성 위에 세계화, 정보화 사회의 최고인재 (Highest Human)를 키워낸다는 의지를 담았다 전제적으로 파란색을 주로 적용하여 젊고 지적인 이미지의 한성대학교의 모습을 전달하고 았다.
2) 이미지마크
사용기간
rtJ
대학의 이니셜인 U자를 기본으로 반복활용 하였으며 두 개의 점은 교수·학생 또는 남녀를 상징하며 마크전체의 분위기는 상호보완작용·협동을 나타내는 형으로 국제회를 향해 끊임없이 창조하려는 대학의 정신을 형상화하였다.
대학을 상정하는 학사모를 단순화한 마름모형을 바탕으로 지구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조형요소로 접목시켜 세계회를 향해 웅비하는 모습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3개의 선형은 대학의 과거, 현재, 미래의 점진적인 발전상을 시각화한 것이다.
3) 교기
교기는 우리 대학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로 총장실, 이사장실이나 회의실 등 학교를 대표하는 장소에 놓여져 품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깃발이다. 개교 당시 학교의 교기는 그 바탕을 자주색으로 하고 중앙에 교표률 그려 넣고 아래에 흰 글씨로 한성여자대학을 새겨 놓았다 1978년 교명과 교표가 바뀌면서 자주색 바탕에 교표와 한성대학을, 1984년 거북이 문양으로 교표가 바뀌면서 새로운 교표와 아래 흰색으로 한성대학교라 적어 놓았고, 가운데 진한 밤색을 백색으로 표현하고 아래 육각형을 떠받치고 있는 밤색 도형을 하늘색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1991년 교기는 같은 자주색 바탕에 원래의 진한 밤색과 도형으로 제작되어 있다 2007년 U.l.가 변경되면서 교기는 화이트 고급공단에 중앙에 지정색 자수 처리로 이미지 마크를 새겨놓고 솔부분은 은색사로 장식을 마감한다.4) 상징물
(1) 삼학송
삼학송은 우리 대학 정문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 세 그루로, 1920년부터 이곳에서 야생하던 나무이다. 삼학 송은 병자호란 때 나라를 위해 순절한 삼학사의 절개를 뭇하고 있다 즉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절개를 받들어 삼학사의 이름을 따서 삼학송이라고 칭하고 우리 대학의 상정 나무로 삼게 되었다
(2) 거북
거북은 예로부터 십장생의 하나로 일컬어져 왔으며 기린, 봉황, 용과 더불어 4대 명물로 지칭되기도 할 만큼 신령스러운 동물로 간주되어 왔다. 우리 대학은 거북이처럼 슬기롭고, 짧은 기간 내에 성장하여 유구한 발전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거북이의 지혜와 영특성은 ‘진리’와 통하고, 구전되어 오는 대로 인간을 구원해 준다는 그 성품은 ‘선(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교훈인 진리·지선과 거북이는 이러한 상징적 관계에 있다.(3) 2007년 개교35주년 엠블렘
(4) 상상력 엠블램
사鍵讓讓
(5) 2012년 개교40주년 로고
(6) 교가
한성여자대학 작사 작곡
1978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새로 제정되었다.
정연길 작사 / 이영조 작곡
2. 형성기
2. 형성기
2.1 첫발을 내딛는 한성, 초대 김의형 학장 시기2.1.1 제1회 입학식과 증과·증원1) 제1회 입학식1973년 3월 5일 한성여자대학 제 1 회 입학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초대 학장 김의형 박사는 입학 개식사에서 여성 전문 영재 육성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어 한성학원 이희순 이사장은 축사에서 급변히는 세계 정세 속에서 여성 전문 영재 교육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강조하고 앞으로 이 같은 역사적 소명을 다하는 대학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하였다.한편 1973학년도 3월 제 1 회 신입생을 맞아 교무처장 고창식, 학생처장 윤태영 교수를 각각 임명하였다2) 증과·증원과 활발한 학생활동
(1) 불문학과· 무용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증과1974년도 입학정원은 9개 학과 230명으로, 전년도인 1973년의 150명보다 80명이 증원되었다.1973년 12월 20일 학과정원조정에 의하여 불문학과 20명, 무용학과 20명, 경영학과 30명, 무역학과 30명이 각각 증과 되었고 비서학과(20명)는 폐과 되었다.(2) 각종 서클 탄생과 웅변반의 활약1974년 안보문제연구회(회장 조인자, 지도교수 연정열), R.C.Y.(회장 박옥면, 지도교수 윤태영) 불교학생회 등 세 서클이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특히 안보문제연구회는 한국반공연맹 산하 전국 대학 반공서클 회원교로 가입하였다.
1974년은 국가안보와 총력안보의 각종 궐기대회 및 행사가 여기저기에서 열렸으며 이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 각종 반공웅변대회가 개최되기도 한 시기였다 이 같은 시기에 부응하여 우리 대학도 웅변반이 조직되고 웅변활동을 통해 신설 대학인 한성여자대학을 대외에 홍보하는 데 힘쓰기도 하였다3) 학도호국단의 설치와 활동1975년 2월 직제개편에 따라 처장을 과장으로 직제를 변경하여, 교무과장에 정기수 교수, 학생과장에 연정열 교수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불문학과장에 정기수 교수, 무용학과장 대행에 김진결 교수를 임명하였다1975년도에는 우리 대학에 학도호국단이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임원으로는 대대장 조인자(국문 3), 부대대장 박옥면(영문 3), 총무부장 박순식(가정 3), 지도부장 임기옥(생활미술 3), 새마을부장 정득영(가정 3), 문예부장 문장옥(국문 3), 체육부장 주순희(의상 3)를 각각 임명하였다
1975년 7월 18일부터 1주간 학도호국단 봉사단은 윤태영 교수와 연정열 두 교수의 인솔 하에 충남 아산군 탐정면 신리 소재 옹양 양로원에서 수익 사업체인 묘목밭 경작을 도와 김매가 등의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 해 12월 5일부터 1주간 동 양로원에서 동계 봉사활동을 하였다.2.1.2 성장을 향한 움직임1) 보직개편과 학술활동(1) 보직개편1976년 6월 보직개편으로 교무과장에 이경식 교수, 학생과장 이근수 교수률 각각 임명하였다.(2) 학술활동과 한성축전
국어국문학과는 1976년 6월 이근수 교수 지도 아래 남해도 방언 민속 학술조사 활동을 펼쳐 학술조사활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한편 이 해 10월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학도호국단 주관으로 제1회 한성축전이 성대하게 개최되어 한성축전의 새로운 전통을 마련하게 되었다.2) 「한성경영학보」 발간 「한성여자대학보」 창간1976년 우리 대학 최초로, 경영학회(이 해 4월 최초로 학회를 구성, 회장 주완숙)에서 타블로이드판 신문인 「한성경영학보」를 11월 22일자로 창간하였다 동 신문은 발행인 김의형,편집인 연정열,편집장은 경영학과 3학년 정상란이 맡았다.이 해 11월 30일 문공부로부터 정기간행물 허가를 받고 격월간 대학신문인 「한성여자대학보」가 12월 10일자로 창간되었다 동 신문은 학생과에서 관장 발간키로 하고 발행인 김의형 학장,편집인 겸 주간 이근수 학생과장으로 등록을 마쳤다 「한성여자대학보」의 창간으로 「한성경영학보」는 폐간되었다3) 제1회 학위수여식 개최
1977년 2월 25일 한성여자대학 제1회 학위수여식이 개최되었다학위수여식에서 김의형 학장은 영예의 학위기를 받는 졸업생들을 축하하고,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뒷받침 해주신 학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여 사회에 나가 등불과 같은 훌륭한 일문이 되라는 내용의 격려사를 하였으며 이희순 이사장도 축사를 통해 졸업 후 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 모교인 한성여자대학을 빛내줄 것을 당부하였다.학위기를 받은 졸업생들은 국문학과 25명, 영문학과 21명, 의상학과 6명, 생활미술학과 14명, 가정학과 23명 등 모두 89명이다.2.2 제2대 이희순 학장 시기
2.2.1 이희순 학장 취임과 새로운 도약 다짐1977년 3월 1일 제2대 학장에 이희순 학장이 취임하였다. 이희순 학장은 취임사를 통해 면학분위기 조성과 대학의 제도 및 기능 확립과 개선, 학생 및 교직원의 인화와 협조를 학교 운영의 방침으로 제시하고, 학생과 교직원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였다이 해 10월 8일과 9일 양일간 제2회 한성축전이 성대하게 열렸다. 전년도 제1회 한성축전 때보다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카톨릭 학생회, 서예반 등 새 서클의 탄생과 함께 한성축전의 질적 변회를 가져왔다2.2.2 남녀공학으로 제2의 탄생1) 한성대학으로 교명 변경1978년 1월 11일 한성여자대학에서 한성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되고, 야간 여자대학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이 해 10월 15일 문교부로부터 학과 정원조정 승인을 받아 국문학과, 영문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무용학과 입학정원이 각 10명의 증원을 하였으며, 경영학과와 무역학과는 각 50명의 획기적인 증원을 하였다. 한편 가정학과 폐과로 행정학과(입학 정원 30명)가 신설 되어 입학정원이 종전 9개 학과 230명에서 9개 학과 38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1978년 2월 제2회 학위수여식에서 학위를 받은 여학사는 모두 82명이다 학과별로 보면 국문학과 24명, 영문학과 21명, 경영과 2명, 무용과 6명, 생활미술학과 15명, 의상학과 4명, 가정학과 10명이다. 이 해 3월 5일 1978학년도 입학식에서 이희순 학장과 이사장 김의형 박사는 남녀공학의 새로운 장을 함께 맞이한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하였다. 1979년 2월 24일 제3회 학위수여식에서 학위를 취득한 여학사는 국문학과 14명, 영문학과 19명, 경영학과 7명, 무용학과 6명, 의상학과 7명, 생활미술학과 11명, 가정학과12명 등 모두 76명이다
한편 이 해 2월 인사개편으로 교무과장에 정연길 교수가 임명되었다.8월에는 이희순 학장이 사임함으로써 정연길 교무과장이 학장직무대리를 맡게 되었고, 교무과장에 정하경 교수, 학생과장에 이창신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한성여자대학보」는 교명 변경과 함께 제호가 「한성대학보」로 변경되었고, 제7호부터 주간 교수가 이창신 교수로 바뀜과 동시에 편집인 이근수 교수, 주간 이창신 교수의 이름으로 학보를 발간하였다 제8호부터 연정열 교수가 주간교수에 취임하면서 종전 학생과장 주관으로 발간한 학보를 독립해서 발행인 이희순,편집인·주간 연정열의 명의로 문공부에 등록 허가를 받았다2) 학생활동1978년 신학기를 맞아 학도호국단은 남·여 공학에 따른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11월 4일 1978년도 정기 검열에서는 총검술 등 교련 사열을 보여주었다.제3회 낙산축전(제1,2회는 한성축전)은 6월 2일부터 4일까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1978년부터 우리 대학은 탁구팀 조직을 통한 새로운 스포츠 명문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탁구팀은 부장 연정열, 코치 겸 주무 이석구, 선수 김혜정, 김길자, 안회순, 김정자로 팀을 구성하고 5월 10일부터 열린 전국 종별 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 전년도 우승팀인 효성여대를 결승 상대로 하여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어 11월 문교부 장관기 쟁탈 남·여 탁구선수권대회 대학부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여 창단 첫해부터 탁구 명문교의 전통을 마련하였다.
이 해 10월 중앙학도호국단 주최 제9회 전국대학미전에서 생활미술학과 4학년 정란순 양이 동양화 부분 일부에서 특선에 입상, 우리 대학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2.3 제3 대 김옥형 학장 시기
2.3.1 김옥형 학장 취임과 동창회 조직1) 제3 대 김옥형 학장 취임1979년 3월 제3 대 학장에 김옥형 학장이 취임하였다 김옥형 학장은 취임사에서 인화와 단결을 통한 한성대학의 발전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우리 한성인은 일치단결하여 참다운 배움의 전당으로 가꾸어 나갈 사명감을 갖자고 강조했다 그리고 정연길 학장직무대리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한편 3월 신학기를 맞아 일부 보직개편으로 학생과장에 김계욱 교수, 도서관장에 정연길 교수가 임명되었다2) 5개 학과 증원 승인, 교직과정 설치이 해 9월 11일 문교부로부터 의상학괴를 비롯한 5 개 학과에 대한 증원 승인을 받았다.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무용학과, 행정학과 각 10명씩 입학정원이 늘어났으며, 1977년 10월 20일 국사학과에서 학과 명칭을 비꾼 사학과는 20명을 증원하여 총 입학정원은 9개학과 440명으로 늘어났다.
이 해 12월 문교부로부터 경영학과와 무용학과 두 학과에 교직과정 설치를 인가 받았다.한편 제4회 닥산축전이 이 해 5월 16일, 17일 양일간 성대히 열렸고, 이어 10월 14일 추계 교내 체육대회가 열렸다3) 한성대 동창회 조직, 닥구팀 강세1979년 7월 제1 회 졸업생 조인자 동문(국문학과 1977년 졸업)의 발기로 동문회가 조직되었다. 동문 상호간 친목도모와 모교 발전을 위한 터전 마련을 목적으로 조직된 동문회의 초대 동창회장에는 조인자 동문이 선임되었다한편, 탁구팀은 1979년 문교부 장관기 쟁탈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2.3.2 학과 증과 및 직제개편
1) 직제개편과 제4회 학위수여식 거행1980년 2월 제4 회 학위수여식에서는 국문학과 28명, 영문학과 21명, 경영학과 8명, 무용학과 6명, 생활미술학과 18명, 가정학과 14명, 의상학과 6명의 모두 101명의 여학사를 배출하였다.이 해 8월 직제개편으로 교무과장 및 학생과장을 교무처장 및 학생처장으로 그 명칭을 바꾸고 교무처장에 이근수 교수, 학생처장 신은숙 교수를 각각 임명하였다. 그러나 3개월 뒤 교무처장 이근수 교수가 타교로 전직함으로써 그 후임에 최명규 교수를 교무처장에 임명하였다2) 경제학과·도서관학과 증과 및 전학과 교직과정설치1980년 10월 15일 문교부로부터 경제학과와 도서관학과 두 학과의 증과 승인과 함께 졸업정원을 각 40명씩 인가 받았다졸업정원제도에 따른 140학점 실혐대학 채택으로 학과정원은 117H 학과에 졸업정원520명, 입학정원 676명이 되었다
1979학년도 경영·무역학과 두 학과에 교직과정 설치인기를 받은 데 이어, 이 해 12월 전 학과에 교직과정설치 인가를 받게 되었다.2.3.3 제3대 김옥형 학장 사임과 종합관 준공1) 제5회 학위수여식 및 보직개편1981년 3월 신학기를 맞아 보직개편이 이루어져 교무처장에 연정열 교수, 학생처장에 신은숙 교수, 사무처장에 김범주 교수를 각각 임명하고, 도서관장 김복길 교수는 유입되었다 학보사편집인겸 주간 연정열 교수가 교무처장에 입명됨으로써 공석이 된 학보사편집인과 주간에 대한 후속인사가 있었다 학생처장 신은숙 교수가 학보사편집인을 학생처장이 겸하도록 제의한 것을 김옥형 학장이 받아들여 학보사편집인 신은숙 교수, 주간 윤경로 교수 명의로 문공부에 등록인가들 받았다.
이 해 2월 25일 열린 제5회 학위수여식에서 학위를 받은 학사는 국문학과 6명, 영문학과 15명, 경영학과 18명, 무용학과 12명, 의상학과 15명, 생활미술학과 14명, 가정학과 7명 등 모두 87명이다.2) 종합관 준공1981년 12월 29일 1년간의 공사 끝에 종합관 준공식을 가졌다 이 신축교사는 지하 2층, 지상 5층 연건평 1,770평 철근 콘크리트 교사로서, 강당을 비롯해 교수연구실 및 강의실로서 사용하기로 하였다3) 대학미전 입선 및 동남아 해외연수문교부 주최 제 11 회 전국대학미전에서 생활미술학과는 동양화, 서양화, 디자인, 공예부분 등 4개 부분에서 많은 입상자를 내어, 대학 미술 관계 인시들을 놀라게 하였다.하인두 교수(서양화)와 정하경 교수(동양화)의 지도 아래 생활미술학과는 개교 이래 가장 큰 성괴를 거두었다 각 부분별 입상자는 동양화 부분 특선은 조연영, 김경해, 신순희이고, 서양화 부분 특선 정화주, 김인숙, 전경숙이며 디자인 부분 특선은 이명아, 구천회이며 공예 부분 특선은 남윤선이다.
1981년 2월 문교부 주관으로 실시한 해외 연수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행하여졌다 국어국문학과 이석주 교수의 인솔로 필리핀, 대만, 태국, 일본 등 동남아 4 개국을 순방하며 해외 견문을 넓혔다. 이 해외연수에 참가한 견학 단원은 김영호(국문 3), 김선옥(영문 3), 최예지(무용 2), 이근화(경영 2), 김진환(경영 2), 배기성(영문 2), 장통우(사2), 문경숙(생활미술 2), 정영애(무용 2) 등 9명으로 구성되었다이에 앞서 영문학과 3년 호진규 군도 한국문예협회 주최로 가진 대학생 해외연수단의 일원으로 중동 지역을 견학하고 돌아왔다.4) 김옥형 학장 사임
1981년 12월 김옥형 학장이 사정에 의해 사임함으로써 학장 직무대리에 연정열 교무처장이 임명되어 1982 학년도 입시 업무를 다루고 이듬해인 1982년 2월말 제4대 학장으로 부임해 온 강병규 학장에게 업무를 인계하였다.3. 성장기
3. 성장기
3.1 제4대 강병규 학장 시기3.1.1 강병규 학장 취임과 대학의 성장1982년 2월 19일 제4대 학장으로 강병규 박사가 취임하면서 우리 대학은 성장기를 맞게 된다. 다양한 정치적 경력을 가진 교수 출신의 강병규 학장은 취임사를 통해 향후 정보화 시대에 부응한 미래지향적 대학과 대학문화 창탈의 산실로서의 면모를 갖춘 획기적인 우리 대학의 장· 단기적인 발전계획과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의욕을 보였다.강병규 학장은 급변히는 현대사회에 부응한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다원적 사회기능과 직업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인 대학’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이 같은 대학의 사회기능적 능력을 고양하고 확충시거기 위해서 세 가지를 실천목표로 밝혔다 첫째, 새로운 대학전통의 수립과 창조 둘째, 학문연구체제의 정비 셋째, 면학의 기틀과 학풍의 진작이다
당시 우리 대학의 현실적인 열악한 조건과 환경을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하면서 일정한 수준의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제시한 발전방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의 유수한 대학으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대학상 확립으로 학생 정원의 증원 및 전문학과의 증과, 대학원 설치, 전문연구소를 운영한다.둘째, 학문연구의 생산체제를 재정비·확립하여 학문자유의 보장, 교수 우선의 학사행정 전개, 연구기금 조성 및 연구비 지급 확대, 논문집편찬 활성화, 교수의 각종 학 ·예술단체 가입을 권장한다.셋째, 대학문화의 창달에 힘써 ‘문화창조계획’을 수립하여 이들 매 학기마다 시행 및축적 교수 연구비 및 학생 장학금 확충, 올림픽 대비 교내 체육부 강화, 학생 후생시설 확충 및 해외연수·유학 기회 확대, 교사 정비와 교구·교재를 확보한다.
넷째, 특색 있는 대학으로 육성·발전시카기 위하여 전일제 수업을 통한 평생교육과 전인교육의 시행, 산학협동체제의 강화, 지역개발 공개강좌 및 문화센터 개설 등 성인대학적 특성을 활성화함으로써 대학의 사회봉사기능을 강화한다.다섯째, 국제적 교류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외국의 대학과 자매결연 추진, 교수·학생의 해외연수기회 확대, 국제적 대학 예술대회 참가 및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그는 이상에서 제시한 대학발전 방안을 실천하기 위해 재단, 대학, 동창회 3자로 ‘대학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하는 등 취임식에서 매우 의욕적인 태도와 자신에 찬 모습을 한성인들에게 심어주었다이어 대학발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이 해 2월 22일자로 전면적인 보직개편을 단행하여, 교무처장에 정하경 교수(미술학과), 학생처장에 김계욱 교수(교양학과), 사무처장에 이승록, 기획실장에 손영일 씨를 영입하였고 도서관장에 연정열 교수(경영학과)를 임명하였다.3.1.2 대학기구 정비와 학사행정 개혁
1) 한성대학종합화계획 발표강병규 학장의 취임사에서 제시되었던 대학발전협의회는 바로 구성되어 1982년 4월 2일 ‘한성대학종합화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첫째,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재단과의 지속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한다.둘째, 1983년 ROTC 설치를 위해 해당 부처와 적극 협의한다.셋째, 대학의 대외홍보를 위한 홍보지를 발간한다넷째, 교과과정 개선을 위한 교과과정 추진위원회 설치한다다섯째, 국가인력 수급상황에 따른 적정학과 증과·증원에 총력을 기울인다.여섯째, 향후 3,4년 내 획기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 사업계획을 마련한다.위의 계획안은 우리 대학의 숙원 사업들을 망라한 것으로, 당시 대학의 규모와 그간의 대학 운영의 정황 등을 감안할 때 대학 체제의 정비 및 계획적이고도 예측 기능한 대학운영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2) 위원회 신설종합화계획안은 대학 내 기구 확장과 신설 및 개편 등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주요 사업별로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심의하도록 하였는데, 1982년 4월 7일 각과 학과장을 위원으로 하는 교과과정 추진위원회를 비롯하여 각종 위원회가 결성되었다.아래와 같이 당시 전임교수 전원이 참여한 연구소설립추진위원회를 비롯하여 기획위원회, 대학요람편찬위원회, 영문요람편찬위원회, 대학문화육성심의위원회 등 5 개 위원회의 구성은 과거에 없었던 획기적인 조치였다. 새로 구성된 위원회는 대학 체제의 창조적 개혁을 목표로 하는 조사·연구기구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그 활동이 의욕적으로 진행되었다〈표 1> 신설 위원회 명칭과 위원명
3) 학사행정체제의 정비
학사행정의 개혁과 대학행정기구의 대폭적인 정비 그리고 대학운영과 관리 전반을 관장할 기구로서 기획실을 대학의 주요 부서의 하나로 신설하였다 1982년 3월 기획과와 예산관리과로 구성된 기획실(초대실장 손영일)은 우선 대학요람 및 영문요람 등을 처음으로 발간했으며, 대학조직이 갖추어야 할 제 규정을 제정·배부함으로써 각 행정부서의 체제률 재정비하였다 아울러,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1983년 10월 25일 컴퓨터실을 설치하였으며 이어 이들 발전시켜 1984년 4월 정보전산연구원(초대소장 이우범 교수)을 개원하였다 이는 이후 전자계산소(1989년 설립)로 확대 발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기구 개편 작엽은 대학행정을 정비·확대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이고도 창의적인 대학행정이 이루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교무처는 교과과정 추진위원회와 함께 합리적인 교과과정의 개발을 위한 실무작업을 지속적으로추진하는 한편,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2년 6월 7일 무용과·경영학과 학생 49명에 한해 처음으로 교생실습을 실시한 이래 1983학년도 신학기부터 전 학과에 걸쳐 교직과정을 확대 개설하고 실습대상 중·고등학교장을 초빙하여 간담회 등을 개최하여 대학홍보는 물론 학생들의 졸엽 후 사회진출의 활로를 마련해 주는 일에도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다.학생처는 이 시기 장학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책을 마련히는 한편 외부 장학금의 적극적인 유치노력을 통해 수혜의 폭을 확대하는 등 학생 복지를 위해 제반 노력과 조치를 취했다 이밖에도 전일제 수업에 따라 증원된 학생들의 졸업 후 취업 강구를 위해 1984년 2월 22일 ‘취업대책위원회(위원장 한창호 교수)’를 구성 운영하였다. 이 ‘취업대책위원회’는 이후 ‘취업상담실’로 상설기구화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학생복지 행정을 전개하였다.중앙도서관은 장서 확보 및 열람실의 확장에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이 시기 대학 내 연구기능의 산설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초석이 마련하였다. 이 해 6월 10일 ~7월 10일까지 ‘도서수집운동’을 전개하여 대학 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중앙도서관의 발전에대한 관심을 유도히는 효과와 함께 5,081 권에 달히는 도서를 수집히는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도서수집운동’에는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도 3차에 걸쳐 소장도서를 기증하였는데 도서관 측은 이 특별 기증도서를 한곳에 보관하였다가 우촌 선생께서 타계하선 후 고인의 돗을 기 라는 돗에서 1983년 4월 18일 도서관 내에 ‘우촌문고(友村文庫)’를 마련하였다.
4) 학부제 운영과 보직개편1983년 2월 18일 단행된 학사개혁 조치로서, 학부제 운영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성격이 유사한 학과들을 분류해 4 개의 학부를 두고 모든 학사행정을 학부 중심 운영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학부제 운영 방안은 당시 대학의 규모로 볼 때 매우 과감하고도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때 단행된 학부제는 인문학부, 사회학부, 예술학부, 교양학부 등 4개학부로 나누어졌으며 각 학부에 소속된 학과와 학부장의 명단은 〈표 2> 와 같다.〈표 2> 학부명과 소속학과 및 학부장 명단
학부 소속학과 초대학부장
그러나 이상과 같은 학부제 도입은 운영상의 미숙과 기구 확대에 따른 부수적인 조치들이 진행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학부제 운영은 향후 종합대학체제로의 전환에 대비한 의지를 실천에 옮겨 보았다는 점에서 다소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부제 운영방침에 따른 효율적인 학사행정을 위하여 1983년 3월 보직개편을 단행하여 교무처장에 이용남 교수(도서관학과), 학생처장에 최명규 교수(경영학과), 도서관장에 정연길 교수(국어국문학과)를 임명하였다학사 운영제도의 개편 작업 중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학과 전용 강의실제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대학 중에서는 처음 시도된 제도로서 강의실의 효과적인 활용과 학과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효율적인 시청각 교육과 풍부한 연구 자료를 갖추고 세미나식 강의 및 개인별, 그룹별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이 교육시스멈은 당시 학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이러한 교육환경의 개선은 자연히 각 학과별 연구활동을 활성화 시켰으며 그에 따른 연구성괴물로 학과마다 논문집이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1982년 국어국문학과의 『漢成語文學』, 사학과의 『漢成史學』, 경영학과의 『經營論集』, 미술학과의 『漢成美術』 등 학과논문집 창간호가 발행된 것이다.이로써 우리 대학은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고 연구히는 대학 본래의 모습과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 도약의 단계로 진입하였다.3.1.3 학문연구체제 확립과 대학이미지 구축
1) 부설연구소의 설립과 활동1982년 6월 1일 우리 대학의 제반 여건을 종합 분석한 결괴를 토대로 우리 대학의 실정에 맞추어 민족사상연구소, 사회산엽발전연구소, 한국전통문화예술연구소, 학생생활지도연구소 등 4개 연구소가 개설되었고, 연구소별 특정과 성격에 따라 이 분야 전공교수들을 전임연구원으로 위촉하였다〈표 3> 4개 부설연구소 연구원 및 설립취지
연구소영 연구원 설립취지
이상의 4개 연구소는 이 후 꾸준히 활동하면서 각종 학술세미나,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연구활동 등을 통하여 학내의 중추적 연구기능으로 성장하였다.
민족사상연구소(초대소장 정연길 교수)는 이 해 10월 27일 창립기념강연회를 개최한 이래 매년 정기적인 강연회, 학술세미나 개최 및 학술지 『民族文化』 발간 등 인문과학분야의 연구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5년 11월 1일 민족사상연구소는 연구활동의 효율화를 위하여 한국전통예술연구소와 통합, 민족문화연구소로 새롭게 발족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기구와 생활도구를 상설 전시하고 있는 농경생활사전시관을 연구소 산하에 두었다
사회산업발전연구소(초대소장 이창신 교수)는 이 해 6월 16일 창립기념사업으로 미국 스댄포드대학의 Richard. B. Fostel 교수를 초빙하여 한국일보 대강의실에서 각계 인사들과 학생,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대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전망’이라는 주제로 대규모의 성대한 강연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후 제2대 연구소장으로 취임한 정연선 교수(행정과)에 의해 연구소로서의 체제가 정비되었다 1983년 3월 31일 사회산업연구소로 개칭하는 한편 각 전문분야별로 연구책임 교수제률 도입하여 명실상부한 전문적인 연구소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한국전통예술연구소(초대소장 하인두 교수)는 이 해 11월 4일 창립기념강연회 개최 이후 연구활동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하여 민족사상연구소와 통합하여 민족문화연구소로 새롭게 발족하였다.학생생활지도연구소(초대소장 최명규 교수)는 단순한 학생지도 및 상담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정기적인 학생의식 실태조사, 학생생활관계 학술지 발간,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대학생활 및 졸업 후 사회생활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왔으며, 이후 그 명칭을 학생생활연구소로 개칭하여 보다 활발한 연구활동을 추진하였다
2) 국제교류와 대학 이미지 구축대학 발전을 위해 추진된 또 하나의 괄목할만한 일로서 국외대학과의 국제교류를 시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83년 1월 12일 국제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대만 명전대학(銘f傳大學)과 자매 결연식을 가졌다. 이 날 대만 대사 및 교육부장(문교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갖게 된 이 조인식은 외국 대학과 맺는 최초의 자매결연사업이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 대학의 위상과 지평을 국제무대로까지 펼쳐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이처럼 국제교류 추진과 학내 체제정비가 급진전됨에 따라 자연히 우리 대학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데 긴요한 대학 상징물 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기획실 주관 하에 ‘상정물 제정 사업’이 계획되었다. 강국진 교수(미술과)를 중심으로 ‘상정물제정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교직원, 학생 동창회 등 폭넓은 의견 수렴과정을 통해 1983년 9월 26일 개교 10주년을 기념하여 대학 상징물로서 ‘거북이’를 선정, 완성된 거북이 상정도안물을 발표했으며 동시에 ‘삼학송’을 우리 대학의 교목(校木)으로 선정하였다.
상징물 ‘거북이’는 꾸준한 노력과 쉽 없는 전진을 상징하며, 교목으로 선정된 ‘삼학송’은 정문 앞에 마치 수호목(守護木) 모양으로 우묵 서있어 한성 인 모두로부터 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소나무의 변치 않는 푸르름은 대학의 청년상을 상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과 같은 ‘신생대학’의 미래를 기약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었다. 이밖에도 독립된 세개의 소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대학을 형성하고 있는 학생, 교수, 재단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상징하는 의미까지 있어 그 의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이 시기 진행된 또 하나의 사엽으로 대학 발전을 위한 재정확보에도 다각적인 방안이강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83년 1월 20일 기공식을 가진 ‘한성농장종합개발공사는재단과 학교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사업이다. 충남 당진군 송산면 동곡리에 소재하고 있는 한성농장은 설립자 김의형 박사가 희사하신 것으로서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이 준공되자 총면적 145,852평의 기계영농에 의한 농작물재배 및 축산영농을 병행할 수 있는 복합영농단지를 조성함으로써 보다 유용한 법인의 수입사업체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도 1983년 10월 4일에 학생복지관(현 창의관)이 착공되어 1984년 9월 5일에 완공되었다. 지상 4층 건물에 연건평 1,350평에 달하는 학생복지관에는 학생들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과 학생회 회의실, 서클실, 학보사, 서점, 그리고 학생처 등이 자리 잡게 되었다.3.1.4 시련과 새로운 도약1)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 타계1983년 3월 1일 설립자로서 한성학원의 큰 기둥이셨던 우촌 김의형 박사께서 향년79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일평생을 교육이라는 지난하고도 고독한 외길을 걸어오신 한성인의 영원한 스승 우촌 김의형 박사, 그의 타계 소식은 전 한성인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장례는 1983년 3월 4일 한성여고 교정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2) 강병규 학장 퇴임1984년 신학기 개강과 더불어 3월 12일 사무처장에 최명규 교수(경영학과), 기획실장에 강병식 교수(사학과)를 임명하는 일부 보직개편을 통한 학사행정의 정비를 기하였다. 최명규 학생처장이 사무처장으로 자리률 옮기고, 3월 19일 학생처장에 김용석 교수(영문학과)가 임명되었다.신학기부터 전국 대학에서 거세게 일고 있던 대학자율화 바람은 우리 대학에도 영향을 끼쳐 3월 28일~29일 ‘대학발전을 위한 공청회’를 시작으로 학내의 복잡한 갈등 요소들과 함께 작용하여 급기야 교내 시위로까지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5월 25일부터 11일 간에 걸친 학내 소요는 대학구성원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한성여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상호이전을 골자로 하는 획기적인 ‘한성대학발전계획안’을 제시함으로써 일단 수습국변에 들어갔다.
1984년 7월 4일 학내소요의 여파와 그 과정에서 빚어진 학원 내의 갈등으로 인해 강병규 학장은 결국 4년간의 임기들 채우지 못한 채 사임하였다.3) 교사이전계획학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재단의 주도 하에 교사 이전 및 대학 발전계획은 큰 차질 없이 추진되었다. 한성여자중·고등학교, 한성대학 및 재단 관계자를 망라하여 구성된 교사이전추진위원회는 ‘교사이전 5개년 계획’을 구제화하여 발표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1차년도(1985) : 대학강의실(한성여고 위치) 및 화장실 증축공사대학강의실(한성여고 위치) 목재 Flooring 철거 후 Terrazzo개축종합기본계획 확정
2차년도(1986) : 한성여고 건물 대학 강의동으로 완전 개조대학강의실 및 종합관을 여중·고 건물로 개조3차년도(1987)~5차년도(1989) : 한성여중건물 철거 및 대학건물 신축공사종합운동장 확보 및 학원부지의 효율적 재활용이와 같은 계획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의욕적인 사업 추진으로 예정보다 2년을 단축한 1987년 8월 대학본관{현 우촌관)이 완공되면서 교사 이전의 대역사를 완수하고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되었다.위와 같이 제4대 강병규 학장 재임기캔1982년~1984년)은 2년 6개월의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그 기간에 대학행정의 제도 정비와 기구 확대는 물론 향후 종합대학으로서의 비전을 바라보며 과감한 학부제의 도입과 연구하는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각종 연구소 설립 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리 대학 40년 역사 가운데 성장기로서의 자리 매김을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3.2 제5대 흥순태 학장 시기
3.2.1 흥순태 학장 취임 및 교사 이전1) 제5대 홍순태 학장 취임1984년 9월 5일 신축된 학생복지관 강당(현 창의관 소강당)에서 제5 대 홍순태 학장의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대학은 학문과 진리의 탐구에 그 목적을 두며 이를 통한 창조적 연구로 인간 생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곳”으로 규정하고 “계속적이고도 신념 있는 교육의 계획과 연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학교 운영에 있어서 본 대학의 설립자인 고 김의형 박사의 위염을 받들어 안으로는 내실화에 힘쓰며 밖으로는 한국 내의 명문대학으로 부상하기 위한 충실한 성장을 기하고자 한다는그의 포부를 밝혔다.
신임 홍순태 학장의 취임과 때률 같이 하여 9월 1일자로 보직개편이 단행되어 교무처장에 윤석효 교수(사학과), 사무처장에 검길평 교수(경영학과)가 임명되었으며, 학생처장 강은석 교수(교양학과)와 기획실장 김용정 교수(무역학과)는 유임되었다.2) 학생복지관 준공학생복지관이 홍순태 학장 취임식날 준공식을 가졌다. 학생복지관의 완공으로 학생들에게 후생복지시설로서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1983년 4월초 착공 예정이었으나 허가 상 문제 등으로 늦어져 개교 11주년 기념일인 10월 5일 착공식을 갖고, 이 해 12월 15일 기공식을 거행한 학생복지관은 당초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계획하였으나 예산 부족으로 인하여 규모를 축소하여 지하 1 층 지상 4층으로 완공되었다.3) 각 위원회 통폐합 작업
각 위원회를 간소화하여 실제적인 기능을 강화시거고, 업무의 내용이 중복된 유사한 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이 11월 1일 확정되었다. 기존의 21개에서 14개 위원회로 축소 통폐합된 위원회는 인사위원회, 재무위원회, 교무위원회, 기획위원회, 학생지도위원회, 교원징계위원회, 일반직원 징계위원회, 학사개혁위원회, 도서관운영위원회, 장학위원회, 고시반지도위원회, 취업대책위원회, 체육진흥관리위원회이다.3.2.2 성장을 위한 진통1) 저 19회 학위수여식, 1985학년도 신입생 입학식1985년 2월 23일 2시 종합관 대강당에서 제9회 학위수여식이 거행되었다. 학위 수여자는 11개 학과 총 425명이며, 도서관학과와 경제학과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수석졸업은 사학과 신세준 군이 차지했다.1985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이 2월 25일 2시 대강당에서 거행되었다. 입학식 축사에서 홍순태 학장은 “대학이란 인간으로서 독창적인 학문연구률 지속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가는 곳, 사회생활에 펼요한 바탕을 마련하는 곳, 자기가치 확립 및 힘찬 정진에 대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곳으로서 질서를 중요시하며 차분히 스스로의 실력을 갈고 닦을 것”을 당부하였다.
2) 축구부 창단, 지하철역명 개명1985년 3월 20일 축구부가 창단되었다. 축구부는 학생들이 모금한 체육진흥기금 800여만 원을 바탕으로 하여 홍순태 학장을 단장으로, 감독에 김계욱 교수률, 초대 코치에는 정은식을 초빙하여 4학년 3명, 3학년 6명, 2학년 5명 및 신입생 3명 등 총 14명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지하철역명 ‘삼선교’가 ‘한성대입구(삼선교)’로 개명되었다. 이는 이 해 4월 30일 서울시장과 안호상 이사장, 홍순태 학장과의 면담 시에 확정·발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는지하철역 주변 다른 대학의 예를 들어 삼선교역도 한성대입구로 역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였고, 이를 서울시와 지하철 공사에서 수용한 것이다.
3) 성장을 위한 진통학원문제대책위원회(총학생회장 국어국문학과 3년 박형만) 주도로 이 해 5월 28일 개최된 교사 이전 및 교수 퇴진 문제에 대한 공청회 이후 시작된 학생 농성이 2주 이상 장기화됨에 따라 학사가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되자 학원정상회를 위한 조치로 교내시위와 관련 18명의 학생들이 징계를 받았다한편 정상화 조치의 한 방편으로 일부 보직개편이 이루어졌는데 교무처장에 최명규 교수(경영학과), 학생처장에 김경배 교수(교직과), 도서관장에 한창호 교수(경제학과)가 임명되었다. 이번 보직개편을 하면서 기획실을 폐지하고 기획괴들 사무처 소속으로 하는 조직 개편도 아울러 이루어졌다.3.2.3 교사 이전 및 시설 확장
1) 제10회 학위수여식, 1986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제10회 학위수여식이 1986년 2월 22일 1시 종합관 대강당에서 홍순태 학장과 많은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학위수여자는 11개 학과 총 408명으로 수석졸업자는 김철수(행정학과)이었다2월 24일 2시 종합관 대강당에서 1986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입학식에서 홍순태 학장은 “대학이란, 가치창조의 제1단계로서 자립자행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나름 대로의 자기인생 수련을 위한 독립된 학문연구의 장이다. 인생의 완숙을 목표로 볼 때 대학학문이라는 것은 기초에 불과한 것이니 행복의 토대라 할 수 있는 학문 토대를 잘 닦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당부하였다이어서 안호상 이사장은 “대학의 가장 큰 2대 목표는 인격도야와 학문연구에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의 인격도야와 학문연구도 홍익인간의 위대한 이상에 목표를 두고 백두산을 바라보며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부탁하였다.2) 학군사관후보생 (ROTC) 창설 및 보직개편
우리 대학도 서울권에 속해 있는 4년제 정규대학(여자대학 제외) 중 유일하게 ROTC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꾸준하게 노력한 끝에 1985년 12월 4일 국방부령 제281호(1975년 9월 25일) 학군무관 후보생 규칙에 근거하여 국방부 인교(1984년 11월22일) 학군사관 후보생 과정 설치 승인을 얻었다 이에 따라 1985학년에 1학년 재학 중인 교련 대상자 중 후보생을 선발하여, 1986학년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였고, ROTC 창설 및 입단식이 3월 11일 운동장에서 안호상 이사장, 홍순태 학장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본 행사는 창설경과 보고, 계급장 수여, 후보생 선서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한편 28일간에 걸친 장기적인 학내 사태를 수습하고 학원의 정상회를 기하기 위하여 1986년 8월 1일자로 대폭적인 보직개편이 단행되어, 교무처장에 한창호 교수(경제학과), 학생처장에 이우범 교수(도서관학과), 도서관장에 이용남 교수(도서관학과), 학보사주간 겸 방송실장에 황진수 교수(행정학과), 민족문화연구소장에 지배선 교수(사학과), 사회산업연구소장에 허창재 교수(경제학과), 학생생활 연구소장 겸 취업대책위원장 강석중 교수(무역학과)가 임명되었다.
3) 교사 이전 및 본관 신축 기공식교사 이전 및 본관(현 우촌관) 신축 기공식이 1986년 8월 12일 오전 10시 전 한성여자중학교 자리에서 거행되었다. 이 날 열린 기공식은 안호상 이사장, 이희순 이사, 홍순태 학장 및 처장 등 내외 귀빈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순에 따라 치러졌다 본관 신축 건물은 연면적 640162㎡’ 건축면적 1170.27㎡로 동림건축 주식회사가 설계를 맡고, 우진토건 주식회사가 시공을 맡았다. 전체 6층 규모의 ‘절근 콘크리트 라멘조’ 구조로 1987년 8월 25일 준공되었다.이에 앞서 여중·고의 방학과 동시에 대학, 중·고의 교사 이전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교사 이전으로 여고 건물(현 진리관)이 본관으로, 과학관(현 지선관)이 별관으로 각각명칭이 바뀌어 사용되었다.
3.2.4 시설 확충 및 대학원 신설1) 제11회 학위수여식제11회 학위수여식이 1987년 2월 21일 오후 1시 강당에서 학장 및 많은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번 학사학위 수여자는 11학과 총 419명이며, 경제학과 김봉학 군이 평균평점 4.08 점으로 수석을 차지하였다.2) 우촌관 준공1987년 8월 25일 우촌관이 준공되었다. 연면적 6401.62㎡, 건축면적 1170.27㎡ 규모의 우촌관 완공은 우리 대학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둘 수있다 우촌관은 1986년 8월 12일 기공식을 가져 1년여 만에 완공 되었다. 총 공사비는 2,239,684,000원(설계 감리비 58,604,000원+공사비 2,181,080,000만 원)이 투입되었다.
3) 보직개펀, 졸업시험제 실시이 해 8월 20일자로 보직개편이 있었다 이번 개편은 학생처장 이우범 교수의 일신상의 사유로 인한 것으로, 후임에 이종수 교수(행정학과)가 임명되었다.한편 취업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자는 목적 아래 각 학과별로 기존의 졸엽논문을 졸업종합시험으로 전환하여 이를 시행하기 시작했다10월 19일에는 산업공학과, 전산통계학과, 의류직물학과, 산엽디자인학과 등 4개 학과 신설로 입학정원이 15개 학과 720명으로 증원되었다. 또한 도서관학과는 문헌정보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이어서 11월 9일 문교부로부터 경영·행정대학원의 설치인기를 받게 됨으로써 학부와 대학원의 공존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문교부로부터 확정 발표된 대학원 설치인가의 내용을 보면, 경영학과와 행정학과 2개 전공에 각 40명씩의 정원이 책정되었다.
대학원의 신설로 12월 16일자로 보직개편이 이루어져 홍순태 학장이 대학원장을 겸직하고 대학원 교학과장에 강병식 교수(사학과), 대학원 경영학과주임교수에 김용정 교수(무역학과), 대학원 행정학과 주임교수에 황진수 교수(행정학과)를 임명하였다.3.2.5 홍순태 학장 퇴임1) 제12회 학위수여식제12회 학위수여식이 1988년 2월 20일 오후 2시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11개 학과 총 512명의 학사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전년의 419명보다 100 여 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학위수여식은 학장, 이사장, 동창회장 등 많은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홍순태 학장은 격려사에서 “시련의 민족적 격동기에 사회에 진출함에 있어서 자유정신 구현과 신뢰성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당부하였다. 이 날 학위수여식에서는 4.5 점 만점에 평균 평점 4.09를 취득한 수석졸업자 임동혁(도서관학과)군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 제규정심의위원회 발족과 보직개편제규정심의위원회가 이 해 3월 16일 발족되어 학칙개정 및 학내 전반에 관한 제반규정과 준칙 등을 심의하게 되었다. 이번에 구성된 제규정심의위원회는 각 대학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학칙 개정작업을 우선적으로 착수하였다.6월 22일 열린 교수회의에서 대대적인 보직개편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지난 1 학기 일련의 학사사태와홍순태 학장의 임기만료에 따른 것으로, 교무처장 김용정 교수(무역학과), 학생처장 이석주 교수(국어국문학과), 사무처장 박양구 교수(영문학과), 학보사 및 교지편집설 주간 김용석 교수(영문학과), 방송국장 조점환 교수(교양과), 민족문화연구소장 윤경로 교수(사학과), 학생생활연구소장 겸 취업대책위원장 지배선 교수(사학과), 체육부장 김계욱 교수(교양과)가 임명되었다.3.3 신영기 학장 시기
3.3.1 제6대 신영기 학장 취임 및 과학관 준공1) 신영기 학장의 취임홍순태 학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신임학장 선출에 관한 문제에 학내외를 통하여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당시 전국 상당수 대학들은 그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 중에서 총·학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수협의회에서는 재직 교수 중에서 학장을 추대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당시 재단에서도 이러한 여론을 과감히 수렴하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재단 이사회에서 학장 초빙을 맡게 되었고 외부인사인 신영기 학장을 초빙하게 되었다. 신임학장이 내정되자 교수협의회에서 인준 동의 절차를 거쳐 1988년 8월 22일 오전 10시 소강당에서 신·구 학장이·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신임학장 선임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교수협의회에서는 신임학장 선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7월 14일 회의를 열고 두 가지 사항을 결의하여 재단이사회와 협의를 하였다. 첫째 후임 학장을 이사회에서 선임하되 반드시 학내 교수로 한다는 것과, 둘째 부득이한 경우에 학외 인사를 선임하되 그 즉시 교수협의회 총회의 인준을 거친 뒤 취임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첫 번째 사항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두 번째 사항으로 귀결되었다. 재단이사회는 8월 11일 회의를 열어 신영기 박사를 내정하고 19일 오전 11시 교수협의회의 동의를 구하였다. 이날 교수협의회 총회에서는 전체 44명의 회원 중 31명이 참석하여 찬성 23 표, 반대 8표로 가결되었다.신영기 학장은 1921년 2월 22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1944년 일본 동경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엽하고, 1975년에 동경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신학장은 약 30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6년 2월 정년퇴임을 하였고 학술원 회원으로있었다.
신영기 학장은 취임사를 통해 ‘뜨거웠던 정열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화합과 단결로써 나라와 학교의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자기 자신들의 계발과 성찰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하며 한성가족 모두 하나가 되자고 역설하였다.2) 과학관 준공신영기 학장은 취임하자마자 곧 여러 가지 구상을 하였다. 이 구상 내용은 학보사에서 마련한 인터뷰를 통하여 공개되었다.우리 대학의 교육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인식하고 공간확보 방안을 생각하여 곧바로 1971년도에 준공한 교내 수영장 자리에 과학관 건축을 추진하여, 1989년 1월 19일 서울시청의 사업승인, 4월 7일 성북구청의 건립 허가에 따라 4월 18일 과학관 기공식을 갖게 되었고, 107fl월에 걸친 공사 끝에 1990년 2월 27일 준공하게 되었다. 이 날 준공식은 그 통안 교내 건설 본부장을 맡아오던 검길평 교수의 경과보고에 이어공로패 수여(김길평 교수 수상)와 감사패 증정(성북구청장, 성북경찰서장 수상), 테이프 절단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지상 5층의 A동, 지상 4층 지하 1층의 B동으로 된 과학관은 총 면적 1,626평에 건축 면적이 366평이다. 또한 부수적인 공사로서 노천극장, 테니스장, 주위 환경 조성이 과학관 준공식 전인 2월 23일 시작해서 4월 말에 일단락 되었다. 과학관은 강의실 용도로 6개실, 산업디자인학과, 의류직물학과, 전산통계학과가 각각 4개실을 학과 실습실로 사용하게 되었고, 교수연구실 107H 실, 전자계산소 1개실, 학과사무실 3개 등 총 35개실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로써 1988년도에 신설된 자연계열학과가 명실공이 실험실습실을 전용으로 소유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3.3.2 교내 연구분위기 조성 및 신영기 학장 사임1) 전자계산소 설립1988학년도부터 전산통계학과를 비롯한 산업공학과, 의류직물학과 산업디자인학과 등의 자연계 학과가 신설되어 전산을 필요로 히는 요청이 쇄도하였고 이에 따라, 1989년도부터는 이 학과의 전공과목 강의가 시작되자, 전자계산소의 설립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전자계산소 설립에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은 컴퓨터를 비롯한 기본설비 도입을 위한 재원조달과 앞으로 대학 규모의 확대 및 발전에 상응하여 어떤 기종과 시스뱀을 도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우선 1990년 1월 6일 ‘MV/15000 System' 을 도입하였고, 2월 28일 과학관 2층에 전자계산소 개설하였다. 초대 소장으로는 경제학과 권혁제 교수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초창기에 PC 실습실 1개소를 개설하였고, 이 해 9월에는 제2 PC 실습실을 개설하였다.
전자계산소의 터미널 실습실에서는 중형기종인 ‘MV/15000 System’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Programing Language와 Software Package 를 사용할 수 있다. PC 실습실에서는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하여 각종 Language 실습 Software Package 와 Word Processor 등을 시용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자계산소에서는 급증하는 컴퓨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수시로 컴퓨터 기본과정, Database, Spread Sheet, Word processor 등의 특강을실시하였으며 새로운 요구가 발생할 경우 이에 적절히 대응해 나갔다.
2) 북방문제연구소 설립1989년 4월 1일 설립된 북방문제연구소는 한국의 북방정책과 관련이 있는 중국과 소련 및 기타 지역의 공산국가들에 관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인류평화와 동서 화해 무드에 따른 강대국 관계의 재편, 한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 북한에 대한 한국의 통일 및 대화정책, 한국의 국가이익 증진에 기여할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초대 소장으로는 1989년 4월 1일 유영옥 교수가 임명되었으며, 이 해 9월 7일에 문교부 인가들 받았다 1990년 5월 25일 북방정책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같은 달 논문집 『북방연구』를 발행하였으며, 그 후 유영옥 교수의 사퇴로 2대 소장으로 무역학과 강석중 교수가 임명되었다.3) 출판부 설립
출판부는 대학교육의 목적이 전문지식의 연구와 지성인으로서의 성실한 인격도야에 있으므로 이를 뒷받침하는 이상적인 교과내용을 담은 우수한 교재개발과 학술연구물 출판에 관한 교수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9년에 설립되었다. (초대 출판부장 원형갑 교수) 1990년 2월 『言語와 生活세계』, 『文章과 表現』, 『INTERACT and SENSIBILITY』를 발간하였으며, 1990년 9월 2대 출판부장으로 부임한 이석주 교수는 1991년 2월에 『현대사회와 생활체육』을 발간하였다. 이 책들은 주로 교양국어, 교양영어, 교양체육 과목에 활용되었다.4) 대학원 신설, 경영 행정 대학원 분리 증원우리 대학에서는 연구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원 교육의 내실회를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학문을 연구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양성을 위해 대학원 신설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학부의 발전과 연계하여 교내 교수진을 비롯한 외부의우수 교수를 초빙하여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보다 폭넓고 갚은 학문에 접할 기회를 마련하도록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89년 11월에 문교부로부터 국어국문학과·사학과·무역학과에 36명을 인가 받아 1990학년도부터 석사과정이 설치되었다.
1987년에 신설한 경영·행정대학원은 1988년 11월 문교부로부터 분리인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은 1990년도부터 독자적인 행정체제를 갖고 교육에 임하게 되었으며 각각 60명의 정원을 확보하였다. 또한 1989년 11월에는 문교부로부터 행정대학원 내에 정원 15명의 교육행정학과 설치를 인가 받았다.5) 연구분위기 조성제5대 홍순태 학장이 취임하면서 한성여중·고등학교와 대학 건물을 바꾸는 동시에 대학 본관인 우촌관 신축을 시작했다 우촌관은 지하를 포함한 6층 건물로서 상당한 건축비가 소요되었고, 교내의 모든 예산은 건축비를 위해서 집중 투자 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의 활동이 위축되었고, 당분간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해마다발행하던 논문집도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
1987년 8월 우촌관이 준공되자, 각 연구소에 예산을 지원하는 동시에 과학관 준공과 아울러 전자계산소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대학은 각 연구소가 논문집을 발간하는 등 제 기능을 되찾게 되었다.6) 신영기 학장 사임1990년 10월 1990학년도 입시에서 신입생 720명을 선발하면서 이 중 수십 명을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면서 학교 관계자 7명이 구속되는 등 입시부정사태로 학교가 큰 흔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선영기 학장이 사입하게 된다.3.4 제7대 원형갑 학장 시기
3.4.1 원형갑 학장 취임1991년 4월 1일 최초로 우리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 출신으로 원형갑 학장이 취임하였다 1990년 10월 신영기 학장이 사입함으로써 원형갑 교무처장이 학장 직무대리를 맡아오던 중, 신입 학장은 우리 대학 교수 중에서 선출한다는 원칙 아래 1991년 2월 8일 동계교수연수회를 이천군 소재 설봉호댈에서 가졌으며, 여기서 제7대 학장후보 선출을 위한 회의를 가지고 원형갑 교무처장을 학장 후보로 선출한 후 재단 이사회의 인준을 얻어 취임하게 된 것이다.원형갑 학장은 취임시를 통해 우리 대학이 5,6천 명 정도의 알차고 이상적인 대학으로 발전하여, 한성인이라면 교양 있고 실력 있으며 믿을 수 었다는 평판을 받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였다.이와 비슷한 시기 안호상 이사장 입기가 만료됨에 따라 신임 이사장으로 서정희 박사가 재단 이사회의 동의를 거쳐 취임하였다. 서정희 이사장은 1991년 3월부터 학교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이 해 9월 우랴 대학의 발전 계획을 「한성대 소식」제10호에서 밝혔다. 그 내용은 첫째, 연구히는 대학에 적합하도록 환경개선에 힘쓰고 둘째, 강의 내용의 개선을 위해 강사 수를 줄이고 전임교수를 증원하며 셋째,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학 전반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3.4.2 교수 확충1) 대폭적인 교수 충원우리 대학은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우수한 교수률 최대한 확보하여 교수 대학생 비율을 가능한 한 낮추고자 하였다. 1991년 9월부터 1992년 8월말까지 1년간 충원한 교수는 23명으로서, 종전 전체 교수 수의 절반 가량이나 되었다. 특히 전임교수 초빙은 종래의 교수채용절치를 과감히 개선하여 공개채용제도를 정착시킨 결과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우수교수를 많이 충원하였다.
공개채용을 위한 교수 임용후보자 선정절차와 1년간 초빙한 교수들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1) 전임교수 충원가. 전임교수 임용후보자 선정 절차
교수 충원 계획서 제출의뢰 각 학과
나. 신규 교원 임용 심사절차 및 평가기준 마련
1차 심사 : 서류심사 8배수 선정2차 심사 : 전공심사 3 배수 선정3차 심사 : 공개강좌심사면접대상자 면접 일정 통보 - 등기 속달 및 전화 통지면접 실시 (총장, 이사장)교원인사위원회 심의 후 이사회 제청다. 신규교수 채용 현황 (1991.8. 15. -1992.8. 15.)
학과 성 명 최종출신교 학위 부임일자
(2) 객원교수 초빙
우리 대학은 강의실에서의 이론 교육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객원교수로 초빙하여 실무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으로 교육의 내실에 박치를 가하였다. 객원교수들은 각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현장에서의 경힘을 토대로 특강을 담당하였다.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실시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이론 연구에 뒷받침하도록 보완적인 방법을 채택하였다.
2) 대학발전 연구위원회 발족우리 대학은 1991 학년도부터 대학발전을 위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각 위원회 설립의 배경과 그 내용을 살펴보면 디음과 같다.(1) 한성대학발전기금 조성·운영위원회발전기금조성·운영위원회는 1991년 2월 27일 첫 번째 준비 모임에서는 재정난 문제 해결을 위한 이 위원회의 설립취지를 설정하고, 위원장 및 위원을 위촉하였다. 학장이 위원장을 맡고, 위원에는 교무처장, 기획실장, 대학원장을 당연직으로 하고 이석주 교수, 이종수 교수, 정후수 교수(간사)를 임명직 위원으로 위촉하였다. 몇 차례에 걸친 회의 결과 4월 24일 최종안이 마련되었고 본 위원회의 설립취지를 알리는 동시에 기금 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안내문과 기탁 약정서를 학부모를 비롯한 독지가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2) 대학발전 과제연구위원회기획실에서는 대학의 제반 행정을 보다 합리적이고 전문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대학발전에 관한 주요과제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과제에 따라 이의 연구를 위해 전임교수를 위촉하여 연구비를 지원하고, 도출된 연구결괴를 대학행정에 참고하여 수행해 나갈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선정된 연구과제 분야와 연구책임지들은 다음과 같다.가 한성대학 건학이념 및 교육목표 정립에 관한 연구연구목표한성대학의 교육이념 확립- 한성대학의 교육목적 정립- 한성대학의 교육목표 정립연구 책임자 : 윤경로 교수
나. 대학시설 공간 사용의 효율성 극대화에 관한 연구연구목표- 연구설·강의실·실습실 공간 이용의 효율성 극대화- 대학의 한계 시설면적에 적합한 공간 재배치 연구연구 책임자 : 이석주 교수다. 대학 환경미화 개선에 관한 연구연구목표캠퍼스 조경미화에 관한 연구- 캠퍼스 환경개선에 관한 연구- 대학 고유 이미지 부각- 대학 휴식공간 조성연구 책임자 : 정종해 교수
라. 대학 행정 및 부속기관 발전에 관한 연구연구목표각 부서별 사무직원의 소요 판단행정조직 발전 연구- 행정 전산화 연구- 각 부속기관 및 연구소 발전 모넬 모색연구 책임자 : 강석중 교수마. 대학 이미지 형상화에 관한 연구연구목표대학고유 로고 제정- 대학교표 제정에 관한 연구
- 교색 개정에 관한 연구연구 책임자 : 조 열 교수바. 학부·대학원 교과과정 개정에 관한 연구연구목표- 신커리률럼이론 적용,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교과과정편성- 각 분야의 학문발전을 교과과정에 반영- 전임교수 위주의 교과과정편성지양- 동일과목 및 유사과목의 전공간 학과간 통폐합강의시간의 합리적편성연구 책임자 : 조점환 교수1992년 2월 14일 동계 교수연수회에서는 각 연구 단위별로 중간보고를 가졌으며 2개월뒤 연구결과를 묶어 「한성대학교 발전과제 연구종합보고서」제 1 집을 발간하였다. 총 282페이지 4x6배판으로 엮어진 이 보고서는 각 연구단위별로 연구목적을 비롯하여 연구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였다
기획실에서는 이 1차 연구결과를 토대로 미전한 부분은 계속적인 연구를 진행하도록 하고, 새로 필요한 부문에 대해서는 새로운 과제를 선정하여 2차 연구과제들 선정하였으며 연구과제와 책임연구자는 다음과 같다.(3) 제2차 대학발전과제연구가. 대학업무개선에 관한 연구(II) 강석중 교수(대학행정편람 발간)나. 대학장기발전 계획에 관한 연구 : 박헌영 교수(대학백서 발간)- 대학자체평가 및 대학특성화 방안을 중심으로 -다. 한성대학 20년사 연구, 연정열(한성대학 20년사 발간)라. 대학이미지 형상화에 관한 연구(II) : 조열 교수마. 대학시설공간의 효율적 사용에 관한 연구(II) : 김대홍 교수바. 대학· 대학원 교과과정발전에 관한 연구(II) : 조점환 교수(총괄책임자)
① 대학 교과과정 분야 김경배② 대학원 교과과정 분야 황진수③ 교양과정 분야 김종섭(4) 특별위원회가. 우촌 김의형 박사 추모집 간행위원회고문: 안호상위원장 : 윤경로위원 : 김창룡, 강월도, 김진걸, 정후수 교수나. 한성대학 개교 2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위원장 : 이석주위원 : 정진식, 권오, 조대병 교수다. 대학홍보 자문위원회
위원장 : 김원중위원 : 이상원, 이상한, 문 범, 조덕현, 김응화, 정병용 교수3) 부속기관 활성화(1) 중앙도서관1973년 개관한 한성여자대학도서관은 1978년 3월 한성대학으로 변경됨에 따라 한성대학중앙도서관으로 개칭하였고, 1981년 10월 종합관 준공과 함께 이전하였으며, 1984년 8월 학생회관 선축 이전과 더불어 지속적인 성장을 하였다. 특히 1988년 3월부터는 완전개가식 체제로 운영해왔다.그간 도서관은 장서의 확보 및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 왔으며,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대비하여 도서관 내의 전산망 구축을 통해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고자, 이를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하여 1995년도까지 수서부터 대출· 반납에 이르기까지 연차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전 직원이 총력을 기울였다
(2) 전자계산소전자계산소는 우리 대학 교육이념의 수행과 정보화 시대의 도래에 따른 교직원, 학생들의 연구활동지원 및 실습지원과 행정업무 전산화를 목적으로 1990년 2월 28일 개소하여 초대 소장에 권혁제 교수를 임명하였다. 전자계산소는 미국 Data General 사의 최신형 Computer 언 ‘MV!15000’ System에 30대의 터미널을 연결하고 각종 Programming 언어와 Software package 를 설치하여 학교행정의 전산회를 진행하였고,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실습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개인용 PC 시용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제1PC 실습실(과학관 302호)과 제2PC 실습실(과학관 301호)에 각각 %대의 PC를 설치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전자계산소에서는 1991년 1 학기까지 교무, 학사 관련 업무를 완전 전산화하였고, 1차로 학적과에 On-line 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제증명서를 신청하면 즉시 발급이 되도록 하였다.2차로 교무, 관리, 기획, 경리업무 등을 전산화하여, 교무과에서는 학생 신상이나 성적, 수강신청 등의 자료를 On-line 으로 조회할 수 있게 되었으며, 관리과에서는 비품의 이동상황이나 신규 배치 등을 On싸1e으로 관리하여 효율적인 비품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전산교육전자계산소에서는 급증하는 컴퓨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수시로 컴퓨터 기본 과정, Database, Spread-Sheet, Word Processor 등의 특강을 학생 및 직원들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1992년도 1학기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컴퓨터 기본과정과 Word Processor 과정의 특강을 실시하였다.부서별 행정전산화각 부서별로 부분적인 On-line화가 추진됨에 따라 행정전산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따라서 각 부서의 업무처리가 신속, 정확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1992년 당시까지의 전자계산소 연혁>
1990년 1월 6일 MV/15000 System 도입2월 28일 전자계산소 개소3월 제1 PC 설습실 개설4월 초대 소장 권혁제 교수 임명9월 2대 소장 최병수 교수 임명제2 PC 실습실 개설1991년 5월 제2 PC 실습실 확장1993년 11월 학적과 On-line 기동1992년 9월 1일 제3대 소장 김대홍 교수 임명(3) 민족문화연구소우리 대학 부설 민족문화연구소(소장 윤경로 교수)는 선조들의 농경 생활 기구를 수집하여 1991년 6월 11일 전시관을 개설하였다. ‘농경생활사전시관’은 우리 농촌의 어제와오늘의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각종 농기구와 민속자료로 꾸며졌으며, 그 소장품은 5 백여 점, 품목으로는 2 백여 점에 이른다. 주로 경기도 일원에서 최근까지 사용되던 농기구들을 수집하였으며, 시대적으로는 고대부터 쓰여 오던 단순 농기구류로부터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농기구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4) 홍보활동 강화와 대학 이미지 제고(1) I한성대 소식」지 발간1991년 3월 4일자 제1호를 낸 「한성대 소식」은 8페이지 4x6 배판으로 제작되었다. 교직원 및 전국 주요 고등학교는 물론 서울 시내에 있는 중소, 대기업에도 배포함으로 각종 홍보효과를 창출하고자 하였다.「한성대 소식」은 1992년 8월까지 24호가 나왔으며 기사의 취재에서 기사 작성,편집의 모든 과정은 국문학과 정후수 교수가 담당했다. 아래에 첫 호부터 24호까지 주요 내용은 〈표 4> 와 같다.〈표 4> 한성대 소식지 (1호~24호)
호수 발간일 주요내용 연수
13호 11.18 축구부→대학축구 전국우승 4
(2) 홍보자문위원회 구성 운영과 대학 기념품 제작 판매
기획실에서는 1992년 캘린더를 비롯하여 브로셔 등을 제작하고 주요대학 관계 기관과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 배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교수·직원 및 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각종 생활 필수 기념품을 제작하여 염가로 판매함으로써 학교 사랑하기 운동도 함께 펼치고 있다.5) 교육환경개선(1) 우촌전시실 개관 및 옥상 휴게실 개장우촌관 1 층에 자리 잡은 ‘우촌전시실’은 1층의 본 전시관 65평과, 2층 소전시관 22평으로 총 87평을 갖게 되었다., 전정은 절재 H 빔으로 현대적인 공법으로 설계하였으며, 2층 현관문 옆에는 따로 야외 휴게실을 마련하였다. 1992년 4월 15일 새롭게 마련된 ‘우촌전시설’ 개관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술학과 교·강사, 졸엽생 재학생들이 마련한 ‘제3의 장’이란 주제의 전시회를 가졌다.우촌관 옥상에는 스카이라운지 형태를 지닌 휴게실 ‘녹다원’이 개장되었다. 50 여 평의 규모로 64석을 확보하고 있는 ‘녹다원’은 양식을 주로 하고 차와 와인 종류를 준비하고 있는 고급 휴게실이다
(2) 교내 복지흘 빛 이용실 개설, 소강당 보수학생회관 1 층에 여학생들을 위한 학생 ‘복지홀’이 자리 잡았다 기존에 있던 서점이 우촌관 1층으로 옮겨지고, 이 자리에 들어선 복지홀은 미용실과 화장품 코너가 마련되었으며, 여학생들을 위한 휴게실을 겸하고 있어서 여학생만의 전용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학생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한편 지하 1 충 이용실이 새롭게 단장되어 남학생들이 이발할 수 있게 되었고, 학생식당 옆에는 안경점이 설치되었다. 학생회관 소강당 무대를 확장하고 천장 텍스 교체 및 환풍시설 설치가 이루어졌으며, 출입문을 방음처리하고 조명시설을 새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에어컨을 설치하여 냉·난방 장치를 갖추었다.(3) 체력단련실 및 샤워실 마련
학생회관 지하에 체력단련실이 정리·보수되었다. 주로 남학생만 이용하였던 체력단련실은 학생들의 인식부족과 관리 소홀로 방치되어 왔으나, 보다 흘륭한 시설과 분위기로 탈바꿈되어 다양한 운동기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여 샤워실을 별도로 만들어 이용에편리하게 만들었다(4) 상정탑 건립정문 입구에 세워진 상정탑은 십장생인 거북이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대형탑, 소형탑과 수위실 3부분을 일제식으로 건립하였는데, 거북이가 지니는 의미(장수, 끈기, 신통성, 영통성)와 함께 한성의 상징으로 한성인과 더불어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5) 낙산야외공원 정비 및 의화정(義化亭) 개축우리 대학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6,000평 정도의 낙산(駱山)은 공원으로서의 연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1991년 봄부터 정비작업을 시작하여 1992년 가을에 마무리 된 이곳은 울창한 숲 속에 잘 다듬어진 산책로와 그 사이 곳곳에 30 여 개의 벤치가 마련되어 학생에게 사랑받는 휴식처가 되었다. 또한 낙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의화정도 말끔히 개축되었다. 원래 의화정은 설립자 우촌 선생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동네 어른들과 담소를 즐기거나 활 쏘는 장소로 활용하던 곳인데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완전히 퇴락되었던 것을 개축한 것이다. 의화정은 원래의 모습과 크기률 그대로 유지하되 지붕의 추녀를 길게 내리고 약간 치켜 올리는 모습을 한다. ‘뚫化亨’이라는 현판은 옛날 것에 다시 색을 입혀 걸었으며 뒤편에는 등파고라 시설을 하였다.
낙산 정상에는 육각형의 아담한 정자가 마련되었다. 붉은 인조석으로 기둥과 지붕을 얽어매고 그 위에 대나무 차양막을 얹어서 등파고라를 만든 이 정자는 낙산 언덕 바위 위에 설치된 휴식처로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6) 과학관 진입로 개설 및 대규모 화단 조경 시설학생회관에서 과학관까지 도로가 마련되면서 포장공시들 끝냈다. 이 공사는 기존의 운동장 스탠드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조경시설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과학관 진입로를개설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로써 종전에는 운동장을 가로질러야만 과학관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 이 진입로가 완성됨으로써 운동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과학관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선관 앞의 스탠드가 화단 조경공사를 실시함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번에 꾸며진 조경은 학생들에게 스탠드라는 딱딱한 분위기에서 화단이라는 신선한 모습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한편, 지선관 앞 분수대가 있는 마당도 새로이 화단으로 모습이 바뀌게 되어 초록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7) 의화장 정비경기도 팔당 강변에 위치한 의화장은 설립자 김의형 박사가 한성학원에 기증한 건물로서 한성대학 및 한성여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양관으로 이용된다. 2층으로 된 건물 전체에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고, 새로 문을 제작 및 설치하였다.6) 체육을 통한 대외적 이미지 향상
(1) 탁구부1976년에 창설된 탁구부는 전국 최고의 수준임을 유감없이 발휘하어 왔다 탁구부 출신으로서 세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국가대표선수만 해도 김기택, 김완을 비롯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홍차옥이 있다.디음은 탁구부의 주요 연혁이다.1976. 3 3월 여자탁구부 창설, 감독 이상국1981. 3 여자탁구부 해제 남자탁구부 창단1982. 국무총리기 쟁탈대회 남자대학부 우승종별선수권 대회 남자대학부 우승전국체육대회 대학부 우승1983. 제1회 대학선수권대회 남자부 단체, 개인, 복식우승1985. 1 일본체육대학 방문 합동훈련 및 상호교류 협정서 작성,
(l ~15일) 대만방문 친선경기1985. 7. 전국 종별 선수권 대회 우승1986. 10. 전국체육대회 준우승1989. 10. 제 22 회 체육부장관기 여대부탁구 단체우승1992. 5. 제 10 회 전국춘계대학연맹 3위1992. 6. 전국종별선수권대회 3위졸업생 현황김 완(제일합섬 코치), 김기택(제일모직 코치), 권오택(삼성라이온즈),윤지훈(대우증권 대리), 박용민(대우증권 여자 코치), 노윤관(충북투자금융 감독)유시흥(강원대 코치), 황남숙(탁구클럽 운영), 홍차옥(한국화장품 소속)(2) 축구부축구부는 1991년도 추계 대학축구 연맹전에서 전국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축구부 연혁은 다음과 같다.1986. 3. 4 체육특기생 9명, 재학생 5명으로 창단, 감독 정은식1989. 11 전국축구선수권대회 8강1991. 4 춘계전국대학축구연맹전 8강1991. 11 추계전국대학축구연맹전 우승1992. 4. 춘계전국대학축구연맹전 8강졸업생 현황국가대표진출 : 우동명(사학과 4년)4. 발전기
4. 발전기
4.1 종합대학교로 승격, 초대 원형갑 총장 시기4.1.1 성년을 맞게 된 한성대학교1) 개교 20주년 기념행사성년의 나이로 성장하게 된 우리 대학은 ‘연구하는 대학’, ‘푸른 미래의 대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대내외적으로 명실공이 발전하고 있는 대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렇게 뜻 깊은 개교 20주년을 맞이하여, 1992년 10월 4일 소강당에서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이 날 기념식에는 원형갑 학장과 한성학원 서정희 이사장을 비롯하여, 전 이사장 안호상 박사 등 300여 명의 내외 귀빈들이 참석하였다. 행사에서는 이희순 설립자에 대한 공로패 증정과 장기근속자에 대한 표창이 있었다. 장기근속 10년 표창을 받은 교직원은 이정숙(국문학과)교수, 조효진(영문학과)교수, 윤석효(사학과)교수, 강병식(사학과)교수, 이동섭(사학과)교수, 이용남(문헌정보학과)교수, 최해주(의상학과)교수, 공대원(교무과)과장, 정대홍(기획과)과장, 이정봉(경리과)과장, 정철환(학적과)과장, 유재국(교학과)과장, 이성민(도서관)주임, 엄재용(관리과), 김순매(관리과), 백남한(관리과) 등 총 16명이였다.
이어서 개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한성대학교 20년사』와 『한성대학교 백서』봉정식과 우리 대학의 발전상을 소개히는 홍보슬라이드 「한성은 미래를 향해 뛰고 있습니다」를 방영하여 내외귀빈들과 함께 시사회를 가졌다 또한 개교 20주년 기념사진전 및 교직원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전시회가 우촌전시실에서 열렸으며, 2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 대학 객원교수의 기념식수도 거행되었다.원형갑 학장은 20주년 기념사를 통하여 새로 단장된 캠퍼스의 모습과 시설들에 대해설명하였고, 20돌의 기념행사 후 4개 단과대학을 모아 종합대학으로 개편하고 학제 간의 커리쿨럼 수용 및 교수 확보에 대해 의지들 표명하였으며, 끝으로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어 서정희 이사장과 김정례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기념축사가 있었다
2)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 추모집 『낙산의 삼학송』, 『한성대학교 20년사』및 『한성대학백서』발간한성학원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 추모 10주기를 맞이하여 그분의 건학이념과 학교 사랑의 정신을 기리는 뭇으로 추모집 『낙산의 삼학송』 (1992) 을 발간하였다. 추모집은 화보를 포함하여 총 300 여 페이지로 구성되었으며 ‘우촌 김의형 박사의 꿈과 의지’라는 부제를 붙였다.1945년 한성여자중·고등학교로 시작했던 한성학원은 1972년 한성여자대학을 설립함으로써 중등 및 고등교육기관을 모두 갖춘 한성학원으로 발전하였으며 설립자 우촌김의형 박사는 재단이사장과 한성여자 중·고등학교 교장, 한성여자대학 학장직을 맡아 학교발전에 진력하다가 1983년 3월 1일 별세하였다.
건학 20주년을 맞이하여 그 동안 대학운영에 관련된 사료 및 자료들을 수집하여 『한성대학교 20년사』(1992)를 발간하였다. 경영학과 연정열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하여 발간된 20년사는 한성여자대학의 인가를 시작으로 한 요람기(1972년~1982년), 도약기(1982년~1984년), 확장기(1984년~1988년) 및 성장기(1988년~1992년)로 구분하여 편년제로 기술하였으며 연표, 약사, 졸업생 현황, 재직교수 및 교직원 명단, 퇴직교수 및 교직원 명단, 역대 학장명단, 역대 동창회장 명단, 10년 근속 표창자 명단 등을 부록에 수록하였다.또한 우리 대학의 운영 현황과 각종 관련 자료들을 계량화하고 평가할 수 있는 『한성대학백서』(1992)를 발간하였다. 이는 대학운영 전반에 걸친 현황과 교육과정 및 학생활동 등에 관한 통계자료들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앞으로의 대학발전계획 수립 등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3) 대학발전기금 조성사업 추진
우리 대학은 교수, 교직원, 학부모 및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대학발전기금을 조성하고자 ‘학교발전기금 조성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사업에 설립자, 서정희 이사장, 이현순 이사, 황문길 국민은행 돈암동 지점장 등을 비롯하여 교수들과 교직원, 학부모, 동문들이 대학발전기금 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4) 사회교육원 설립 신청서 제출기획과에서는 1992년 9월 23일 교육부에 사회교육원 설립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사회교육원 설립은 사회교육원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종수 교수)의 심의를 거쳐 5개 교육과정 (25개 전공과정, 총 정원 1,370명)을 개설하였다.사회교육원의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1) 독학에 의한 학위 취득과정 (3년 과정)(2) 전자계산 교육과정(1년 과정, 2년 과정)
(3) 미술·디자인 교육과정(1년 과정)(4) 문학과 언어 및 역사연구과정 (6개월 과정)(5) 생활경제 특별과정 (6개월 과정)4.1.2 종합대학교 승격 초대총장 원형갑 박사 취임1) 종합대학교 승격우리 대학이 1973년 3월 한성여자대학으로 신설된 이래 20 여년 만인 1993년 3월 1일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였다. 이에 따라 1993년 3월 1일자로 학칙이 개정되었는데, 학칙개정 주요 내용은 명칭변경(교명, 기관장명, 단과대학명)과 1992년도에 변경된 교과과정 등이었다 명칭변경의 내용은 교명이 ‘한성대학’에서 ‘한성대학교’로 변경되었고, 기관장이 학장에서 총장이 되었다. 단과대학명이 각 학부에서 대학으로 변경됨에 따라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예술대학, 이공대학의 4개 단과대학으로 바뀌었다.
개정된 교과과정의 학칙은 매 학기별 최대 학점 기준이 21 학점에서 20학점으로 변경되었으며, 수강신청자가 10 인 미만일 때 폐강되는 규정을 일정 인원(전공 10인, 교양 20인) 미만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교육부로부터 전산통계학과와 산업공학과 야간에 각각 40명씩 증과· 증원을 받아 1993학년도부터 입학정원 800명을 확보하게 되었다.2) 초대총장 원형갑 박사 취임종합대학교로 승격됨과 동시에 초대 총장으로 원형갑 박사가 취입하였다. 원형갑 총장은 1991년 4월 1일 제7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2년 동안 학장직을 봉직해오다가, 1993년 3월 1일자로 우리 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승격됨으로써 초대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4.1.3 신임교수 초빙 및 강의평가제 정착
1) 신임교수 초빙대학 발전의 질적 성장을 위한 우수한 교수자원 확보계획이 1991년 9월부터 학교발전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왔다 이러한 계획 아래 초빙된 신규임용 교수가 1991년 9월부터 1992년까지 30여 명을 넘어섰으며 1993년에 10명, 1994년에 18명, 1995년에 16명 등 총 44명의 우수한 교수진이 원형갑 총장의 재임기간 동안 임용되었다.2) 강의평가제 정착강의평가제란 한 학기가 끝난 후 각 교수에 대한 교육내용의 질을 학생들이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어느 정도의 수준 높은 교육을 진행하였는지 학생들이 직접 평가함으로써 보다 나은 교육의 질적 성장을 가져오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것이다.우리 대학에서는 1991년 6월 국내 최초로 한 학기 동안 대학에서 개설한 모든 교과목을 대상으로 강의평가들 실시하였다. 실시방법은 1991년은 대학 당국의 평가(안)으로 시도하였고, 1992년에는 교수협의회의(안)으로 실시되었으며 1993년에는 다시 강의평가준비위원회에서 마련한 평가(안)으로 방학 동안에 전 재학생을 상대로 실시되었다. 1994년에는 강의실이 아닌 가정통신을 통해서년 2 회에 걸쳐 실시되었다. 강의평가는 1994년 7월까지 총 5 회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평가의 결과가 교수들에게 환류(feedback) 됨으로써 강의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강의평가에서 조사한 항목은 ①학습량,②강의의 질,③교수의 강의준비 정도,④교수강의의 전달정도,⑤학생들의 출석률 등 5가지 분야이다3) 객원교수제도 활성화우리 대학에서는 사회 현장의 실무경험이 많은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에게 산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객원교수제도를 활성화하여 운영하였다.객원교수제도에 초빙된 인사로는 박찬종(신정당 대표 및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이종찬, 유인태 국회의원, 강경식 전 재무장관, 정연춘 방송교육원 원장, 황교선 한일약품 부회장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였다.
4.1 .4 교육과정 개편 및 입시제도 개선1) 교과과정 개편1993 학년도 1학기부터 시행될 교과과정 개정원칙과편성원칙을 정하였다. 당시 교과과정 개편은 ‘학문발전에 맞는 새로운 경향의 교과과목과 정보화 및 개방화 사회에서 미래지향적 교과과정 개편을 원칙으로 한다 ’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교양과목의 과목 수를 대폭 늘리고, 교양 선택과목을 5개의 학문영역과 소영역별 과목으로 나누어 학부별 특수성을 감안하여 운영할 방침을 세웠다 그 동안 운영해 온 교양필수과목을 축소하고 대부분을 교양 선택과목으로 교체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교양 필수과목에 전자계산개론을 포함시켜 컴퓨터 분야를 폭넓게 다루고자 하였다.
전공과목 역시 시대에 맞지 않는 과목은 폐지하고 새로운 교과목으로 대체하며, 전공선택 과목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었다.〈교과과정편성원칙〉구체적인 교과과정편성원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그 동안 18학점에서 21 학점까지의 학기 당 이수학점을 20학점으로 조정한다.(2) 교양과목에 포함되었던 기초전공을 전공기초로 변경하여 전공과목에 포함한다.(3) 교양과목을 인문, 사회, 자연, 과학, 예·제능 계열 및 기타 교양에 속하는 과목을 균형 있게편성하고, 교양 필수과목으로는 한국어의 이해, 영어, 영어실습(LAB), 체육, 전자계산개론으로 조정한다(4) 교양 필수과목이었던 국사, 현대사회와 윤리, 제2외국어를 교양선택으로 조정한다(5) 교양필수 요구학점인 21학점을 16학점으로 축소한다.(6) 현행 교과과정에서의 전공분야 이수요구학점(기초전공 9,전공필수 30,전공선택 27) 66학점을 전공기초 12학점(1과목 증가), 전공필수 24학점 (2과목 축소), 전공선택 30학점(1과목 증가)으로 조정한다(7) 4학년의 전공펼수과목 개설을 없앤다(8) 인접학문 학과간의 상호 교과목을 개방하여 전공선택 인정학점으로 인정한다.〈표 5> 교앙선택과 학부별 이수학점
영역 학부 인문과학부 사회과학부 예술학부 자연과학부
영역 학부인문과학부 사회과학부 예술학부 자연과학부
〈표 6> 영역별 교양선택 교과목
외국어영역 학점 인문과학영역 학점 사회과학 영역 학점 자연과학 영역 학점 교양자유 선택영역 학점
〈표 7> 신·구 교과과정 학점 수 대비표
구분 이수학점 개설학점
2) 컴퓨터 및 외국어 교육
현대 교육의 특정이라고 하면 외국어 교육과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 대학에서는 컴퓨터 과목을 교양될수로 지정하였다. 이률 위하여 컴퓨터실에는 국내 최첨단 기종을 갖추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대폭 확충하였다.외국어 교육은 사회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용분야이다. 현장감 있는 외국어교육을 실시하여 언제든지 현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시킬 계획이며, 전학과에 걸쳐 토플이나 토익 점수를 필수적으로 얻도록 하고 이를 취득하지 못하였을 경우 졸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을 개정하였다.1994학년도부터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재학생 및 신입생을 대상으로 각각 외국어 교육 특강이 개설되며, 신입생의 경우에는 졸업 전까지 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어자격시험에 통과하여야 졸업할 수 있는 등 교과과정이 대폭 개정되었다. 1994학년도 신입생부터 토익과 토플시험 실시로 일관된 졸업 영어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매학기마다 전학과의 희망지를 대상으로 토익과 토플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4학년 졸업 시까지 학교가 제시한 일정점수를 념어야 하며, 외부에서 실시하는 TOEFL 이나 TOEIC접수로도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였다. 합격기준은 총점수의 60%를 취득해야 하며, 예술대학은 50%를 취득하도록 결정하였다.3) 증원 및 학과 신설
(1) 1993학년도 신입생 80명 증원1993 학년도 신입생 모집에는 전년도에 비하여 80명이 증원되어 입학정원 총 800명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증원이 허가된 학과는 전산통계학과 야간 40명과 산업공학과 야간 40명이며 후기전형으로 확정되었다.한편, 전년도까지는 후기전형이었던 미술학과가 1993학년도부터는 전기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었으며, 전기전형에서는 320명 (40%), 후기전형에서는 480명 (60%)을 모집하게 되었다.(2) 1994학년도 이공계 4개 학과 신설1994학년도 학과의 신설이 인가되어 컴퓨터공학과{주: 40,야: 40명), 정보공학과(야40명), 산업안전공학과(야 40명), 산업디자인학과(야 30명) 등 190명의 입학정원이 늘어났다. 이는 그간 계속적인 교수채용과 시설확보 등을 통해 미래지향의 대학발전에힘써온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대학은 대학 및 대학원 정원조정을 위하여 각 분야별 연구팀을 구성, 교내외의 여건과 미래의 산업사회에 걸맞은 학교발전 방형F을 면밀히 분석, 신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의 학과 신설로 입학정원이 총 800명에서 990명으로 늘어나 종합대학으로의 발판을 확고하게 굳히게 되었다. 미술학과는 회화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일반대학원의 석사과정에는 산업공학과, 의류직물학과, 경제학과가 신설되었으며, 경영대학원의 무역학과는 학문적인 전문성을 심화하기 위하여 국제경영학과로 변경되었다4) 본고사 실시, 우리 대학 위상 높여(1) 1993학년도 전기입시 전국 최고 경쟁률1993 학년도 신입생 전기 입학원서 접수 결과 전기 총 320명 모집에 6,544명이 지원하여 전체 평균 20.5 : 1 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전국의 전기모집 대학에서 최고였다. 이는전년도 경쟁률 14.8 : 1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서 개교 이후 최고의 경쟁률을 나타낸 것이다. 그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문헌정보학과는 40.6: 1로서 매스컴에 보도되기도하였다.
(2) 1994학년도 최초로 본고사 실시개교 이래 최고의 경쟁률을 보인 1994학년도 입시는 본고사를 치르게 되는 전국 9개 대학 중 우리 대흐L이 포함되어 교육계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4학년도부터 달라진 입시제도는 고교내신제도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학의 특성화와 자율성을 위하여 본고사를 실시하고 이울러 전·후기 분할모집에서 전기모집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내신 성적과 수학능력시험의 합산이 상위 10% 이내에 드는 학생을 대상으로 모집정원의 30%까지 특차전형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특차전형은 면접을 거쳐 선발하게 되며, 예술대는 특차전형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본고사를 위한 시험문제 출제는 경찰관의 경호 아래 진행되었으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입시관리를 위하여 입시공정관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특차와 본고사로 구분하여실시한 1994학년도 입시는 예년보다 우수한 전국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지원하여 합격함에 따라 우리 대학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학교발전을 위한 한 단계 도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고사 시행을 앞두고 1993년 8월에는 예시문제를 각 고교와 입시 전문지에 공개하였고 이률 통하여 출제방향과 형식을 널리 홍보한 바 있다.
예술대학에서는 실기고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출제부터 채점과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무용학과에서는 실기시험에 학부모들을 참관시켰으며, 실기고사장에 채점 전산시스템을 갖추어 실기고사 성적을 공개하고 부전공 실기, 전공기초 실기시험은 2일 전에 공개 리허설을 통해 출제하는 등 타 대학에서 실시하지 않는 제도를 국내 최초로 단행함으로써 학부모와 수험생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매스컴에도 소개되었다.미술계열 회화과와 산업디자인학과의 실기고사는 입시안내 홍보를 통해 각 종목별로 미리 예시한 실기문제 내에서 출제하였다. 이는 기존의 비밀 출제방식에서 크게 탈피한 것으로써 수험생들이 사전에 충분한 연습을 거쳐 실기시험에 응시하게 되어 수험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3) 1995년도 입학시험, 영어 200점으로 비중 높여
1995년도 입학시험에서 특차모집의 지원자격과 전형요소별 반영비율, 대학별 고사과목 등이 변경되었다. 특차모집의 지원자격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계열별 성적 상위 10%이내여야 하며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은 인문계와 자연계가 내신성적 40%, 수학능력시험이 30%, 대학별 고사가 30%이며 예·체능계는 내신성적 40%, 수학능력시험 30%, 실기고사 30%로 예년에 비해 실기고사 40%에서 30%로 축소된 것이다.본고사 비율이 전년에 비하여 20%에서 30%로 상향 조정되었는데, 이는 대학입시의 획일적 국가관리에 따른 기능적 문제점들을 보완,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신입생 선발을 비롯한 대학운영의 전반적 자율성을 제고하고자 출발한 것이다.특히 전년도의 본고사 시행은 우수 신입생 선발과 우리 대학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학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도 지율적인 신입생 선발고사를 시행함으로써 교육 개방화에 대비함은 물론 학교 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1995학년도 신입생 선발 고사는 아래와 같이 시행되었다.〈표 8> 1995 학년도 신입생 선발고사 요강
과목 수준 분랑 시간 배점
가. 출제 기본방향
본고사 출제의 기본 방향은 단순 암기에 의한 지식 평가보다는 해당 영역의 기본 개념을이해하고 문제 해결 과정을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범교과적으로 출제됨으로써 현실적으로 고교교육의 정상적 운영에 오히려 장애를 초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논술과 주관식 문제 위주로 출제하려는 것이다.
전반적인 출제 수준은 고교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면 대부분 풀 수 있는 평이한 수준으로 별도의 본고사 준비가 없어도 가능하도록 배려하였다. 우리 대학의 본고사 특정은 국제화 시대 대비의 일환으로 영어 과목을 공통으로 실시하고 그 배점도 2배로 강화하였다는 것이다.나. 본고사 관리 철저우리 대학은 성공적인 입시를 치루기 위하여 본고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였다. 첫째, 철저한 사전 준비를 위하여 출제실무 워크숍, 모의고사 출제, 모의고사 실시 결과의 분석, 문제은행의 구성 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입시관리 능력을 기르고, 출제 및 채점의 엄정한 관리를 통해 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하였다.둘째, 엄격한 출제 관리를 위하여 각 과목별로 30세트 이상의 문제 은행을 구성, 무작위 방법으로 출제 문제를 선정함으로써 출제 위원 개개인의 영향력을 축소히는 동시에 예·체능계의 시험문제는 사전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셋째, 공정한 채점 관리를 위하여 주관식 답안지의 채점은 5 인의 위원이 채점하여,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나머지 중간 점수들을 합산, 평균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채점위원 상호간의편차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였다. 객관식 답안지는 주전산기를 통해 채점한 결과를 PC를 이용하여 재점검함으로써 오차의 가능성을 줄였다.(4) 1995년도 입시, 전국 최고의 경쟁률1995학년도 본고사는 설립 이래 최고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치러졌다. 특차를 제외한 980명 모집 정원에 24,120여 명이 지원한 본고사는 평균 24.6: 1을 나타냈고 최고의 경쟁률은 정보전산계열 42 : 1 이었다. 모두 13개 학교에 분산하여 영어, 논술, 수학 3과목 중 2개 과목을 시행하였다.5) 예술대학원 신설
1994년 10월 21일 예술대학원 신설이 인가되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단일 대학원으로 인가된 예술대학원은 석사학위과정 5학기제를 원칙으로 무용, 산업디자인, 회화전공으로 구성되었으며, 입학정원은 60명이었다 예술대학원 신입생 모집은 1994학년도 12월부터 실시하였다.4.1.5대학환경개선 및 공간 확보1) 대학 환경 조형물 제작 및 공간 확보 계획(1) 교육환경 개선작업대학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1991년부터 교육환경 개선작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1993년 봄철을 맞이하여 학교주변에 나무심기에 주력을 하였으며, 낙산 환경조성, 낙산교 완공, 오솔길 계단 설치, 진달래와 넝쿨장미 식재, 정문 진입로 고압전주이설, 우촌관 6층 복도 테라스 창문 및 어학실습실 이중창 설치, 각 건물 옥상 및 지하물탱크 청소 등을 실시하였다.(2) 지선관 앞 분수대 설치 및 우촌관 광장 이념 탑 건립
지선관 앞 분수대가 1992년 10월 3일 설치되었고 주변 조경공사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회화과 정종해 교수의 설계로 건설된 새로운 분수대는 발전히는 대학을 상정하고 있으며 높이 10 ~13m 의 스텐파이프(지름 20 인치) 6개와 1.5~2.3m 높이의 스텐파이프 24개로 구성되었으며 주변에 지름 7m, 원형둘레 20m의 인조바위도 동시에 설치되었다.한편 우촌관 계단광장에 회화과 문범 교수가 제작한 새로운 조형물이 설치되었다.‘세계 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조형물은 하늘이 투영 반사되는 아메바 형상 위에 세계를 상정하는 지구의를 올려놓았다. 아울러 이 조형물을 떠받치는 여섯 개의 기둥은우리 대학 상징물인 거북의 등을 상징하고 죽 뻗어 오른 기둥은 나무와 그를 둘러싼 수풀을 나타낸다.(3) 새로운 한성의 상정, 낙산에 ‘남문’ 건립
닥산 정상에 새로운 조형물을 겸한 문을 건립하였다. 높이 12m, 폭 15m의 웅장한 규모의 이 문은 우리 대학의 상정물인 거북이 형상에 새로운 조형미를 가미하여 제작된 상정물로서 스테인리스 재질을 시용하였다. 산엽디자인학과 고영란 교수의 디자인으로 중앙에서 양쪽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여닫이 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문을 열었을 경우에는 그 형태가 기존의 우리 대학 상정탑과 같은 모양을 지니게 되어 있다. ‘남문’ 디자인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동양적인 발상에 의해 구상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문’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담장과 함께, 시원하고 산뭇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담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경계선을 이루는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률 갖게 하였다. 이 조형물은 담장 안이 들여다보이면서 담장 역할을 하는 ‘문-상징탑’이다.(4) 대학 ‘이미지 마크’ 제작이미지 마크는 ‘모든 행사와 각종 인쇄물에 활용, 대학의 이미지를 세계화 속에 부각,대학 구성원의 의식개혁과 일체감 조성’을 목적으로 산업디자인학과 이상원 교수가 제작하였다. 제작된 이미지 마크는 대학의 심벌마크(교표)와 함께 모든 행사와 각종 인쇄물에 공식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제작 과정으로는, 먼저 각 기업이 최근에 도입한 이미지 마크 사례들을 조사 분석한 후, 우리 대학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요소들을 정리하였다. 결국 대학은 인간, 교육, 미래사회를 위한 장으로 귀결되어 이를 디자인 컨셉으로 설정 제작하게 되었고 여러 안중에서 최종안으로 A, B 타입이 선정되었는데 두 안의 성격이 서로 탈라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기로 하였다.이미지 마크의 의미는 A 타입의 경우, 학사모(대학 상징)를 단순화한 마름모형을 바탕으로, 지구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조형요소로 접목시켜 세계회를 향해 웅벼하는 모습을 이미지화 하였고, 3개의 선형은 대학의 과거, 현재, 미래의 점진적인 발전상을 시각화하였다. B 타입의 경우, 대학의 이니셜인 ‘U’ 자를 기본으로 반복 활용하였으며 두 개의 점은 교수, 학생, 또는 남녀들 상정하며, 마크 전체 분위기는 상호보완작용 협동을 나타내는 형으로 국제화를 향해 끊임없이 창조하려는 대학의 정신을 형상화하였다.색상 활용에 있어서는 A, B 타입 모두 우주와 미래를 나타내는 청색과 한성인의 기상을 상정하는 적색을 기본색으로 하여, 상황에 따라 각기 3종류의 보조색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A, B 타입 모두 대학의 각종 인쇄물인 신문, 잡지광고, 홍보물, 선물용품 등에 활용되며, A 타엽은 주로 대학의 공식적인 행사, B 타입은 주로 대학축제, 스포츠 행사, 학생들의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자 히는 이벤트성 마크로 활용하였다.(5) 학생회관, 과학관 증축1994년 5월에 공간확보 계획에 따라서 학생회관과 과학관 증축에 관한 건축허기를 관할구청에 신청한 후 계획에 따라 학생회관 4층을 6층으로, 과학관 5층을 6층으로 증축하여 총 3천여 평방미터가 늘어나게 되었다. 공간사용 용도는 학생회관 5층은 첨단시스템을 갖춘 도서관 공간으로, 6층은 문헌정보학과 교수연구실로, 과학관은 전산통계학과, 산엽공학과 증원에 따른 실험실습실 및 강의설, 교수연구실로 배치하였으며 1995년 3월말에 완공하였다.2) 도서관 공간확보 및 정보검색실 신설
중앙도서관은 1개 학년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열람공간을 비롯하여,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을 초과한 110% 에 달하는 장서율을 확보하였다. 또한 포항공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 기관과 정보협조 체계를 맺음으로써 정보사회에 선도하는 대학이 되기 위하여 발돋웅하고 있다1993년 10월 19일 정보검색실을 신설하여 각종 기자재를 갖추고 국내외 도서관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각종 자료를 온라인으로 검색,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검색실은 정보화 사회로 나가는데 필요한 시설로 활용이 될 것이며 대학의 학문연구에 많은 공현을 하게 되었다.4.1.6 대학발전과제 수행 및 학사협의회 개최
1) 1994년도 대학발전과제 및 연구책임자 선정대학발전과제 연구 제4차년도를 맞이하여 1994년도에는 6개 과제를 선정하여 연구를 진행토록 하였다. 과제별로 연구책임자가 5인 이상의 공동 연구원을 선임하여 기획과에 신청하도록 하였다.〈표 9> 1994년도 선정 과제 연구
과제영 연구목적 및 취지 연구책임자
2) 대학 특별위원회 구성
우리 대학의 현안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1994년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장에는 중진 교수들을 위촉하고, 위원에는 주임급 이상의 직원 1명을 포함시켜 위원회 운영 및 연구에 효율성을 기하도록 하였다.〈표 10> 대학 특별위원회 현황
위원회명 설치 목적 및 취지 위원장 위 원
3) 학사협의회 개최, 제2대 총장 후보자 선출
1995 학년도 학사협의회가 2월 16~18일까지 제주도 서귀포시의 프린스호벨에서 서정희 이사장, 원형갑 총장을 비롯한 전임교수, 1995 학년도 1학기 신임교수, 과장급 이상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학사협의회에서는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재충전을 위한 기회와 대학발전과제 연구결과 보고 및 제 2대 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다.(1) 총장후보자선출18일 전체 교수회의에서는 제 2대 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가 진행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황진수 교수)의 주관 아래 열린 이 날 선거에서는 원형갑 당시 총장과 문헌정보학과 이용남 교수가 총장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후보자의 소견 발표에 이어 곧바로 무기명 비밀투표에 들어갔으며 이용남 후보가 원형갑 후보보다 다수표를 얻어 제2대 총장후보자로 선출되었다.(2) 대학발전과제 연구결과 보고
학사협의회의 중점 사항으로 마련된 ‘대학발전과제 연구결과 보고’ 에서는 21세기들 향한 우리 대학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구성된 여러 연구위원회별로 그간 진행된 연구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번 보고회에서는 ‘대학장기발전계획연구’, ‘대학시설공간 사용의 효율성제고연구’, 대학행정 전산화 발전 연구’, 대학 교과과정 발전 연구’, ‘대학교양 교과과정 발전 연구’, ‘대학원 교과과정 발전 연구’ 등 여섯 분야에 걸쳐 밀도 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3) 강의평가 결과보고대학 강의평가위원회(연구위원 김경배 교수)가 분석해서 보고한 1994학년도 2학기 강의평가 결과에 따르면 167fl 평가항목 모두 평점 3 이상(5 점 만점)으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양호한 평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별 주· 야간, 성별, 학년별로 다소편차를 보이기는 했지만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항목은 ‘강의가 계획대로 진행된 정도’로서 3.69 의 평점을 받았다. 강의평가의 핵심 항목이라 할 수 있는 ‘강의에 대한 전반적만족도’에서는 전체적으로 3.25 의 평점을 받았는데, 학생들이 생각하는 강의에 대한 만족도는 ‘강의내용의 전달정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되어 주목을꿀였다
4) 학위수여식 및 입학식(1) 1992학년도 학위수여식1992학년도 학위수여식이 1993년 2월 20일 오전 11시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총 616명의 학사학위 수여자를 배출한 수여식에서 원형갑 총장은 “언제나 자신감과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회에서 열심히 생활해주기 바란다”는 격려사를 하였으며 서정희 이사장은 “교육을 통한 지식의 축적이 이 세상을 이끄는 힘이다”라고 언급하고 앞으로 사회발전을 위하여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 날 학위수여식에서 황은경(미술학과)이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였다.(2) 1993학년도 입학식
1993 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이 이 해 3월 2일 오후 2시 노천극장에서 거행되었다. 총 800명이 입학하게 된 이번 신입생 중 전체 수석입학자는 무역학과를 지원한 미승립으로 우촌장학급을 수혜하였다.(3) 1993학년도 학위수여식1993학년도 학위수여식이 1994년 2월 19일 오전 11시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날 학위수여식에서는 총 631명이 학사학위를, 9명이 석사학위를 각각 취득하였으며 최고관리자과정을 수료한 14명의 수료자를 배출하였다. 한편 전체 수석 졸업은 경영학과의 정미영이 차지하였다.(4) 1994학년도 입학식1994학년도 신학기 개강과 더불어 신입생 입학식이 이 해 3월 2일 오후 2시 학과교수, 재학생 및 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노천극장에서 거행되었다. 전체 수석은 정보전산계열 정진호가 차지하였다. 이 날 입학식에는 본고사와 수학능력고사를 치르고 합격한 990명이 입학하였으며 전년도에 비하여 입학정원수가 190명이 늘어난 것이다.
(5) 1994학년도 학위수여식1994학년도 학위수여식이 1995년 2월 20일 오후 2시 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학위수여식에는 630명의 학사학위수여와 14명의 석사학위수여가 있었다 전체 수석졸업자에게 수여하는 우촌상은 전산통계학과 이명희가 수상하였다.(6) 1995학년도 입학식1995 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이 개강과 함께 3월 2일 오후 2시 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 총 990여 명의 신입생과 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입학식에서 원형갑 총장은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학부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신입생들이 대학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자유롭고 활력적인 대학생활을 보내기 바란다”는 축사가 있었다.4) 대학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한성회화제’ 개최
대학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작품전 ‘한성회화제’가 1994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대학 교수와 동문들이 주체가 되어 작품을 출품하였고,월간 『산학연저널』에서 주관하여 여러 기업체에 알선하고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우리 대학의 대학발전기금 조성으로 시용하게 된다. 이 날 출품된 작품은 30호 내외의 작품 100 여 점이며, 전시회 관람객 수는 약 1,000여 명이 넘었으며 내외 관람인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4.2 도약하는 푸른 대학, 제2대 이용납 총장 시기4.2.1 도약을 위한 새로운 체제와 교육이념의 정립1) 이용남 총장 취임
1996년도 학사협의회 총장후보 선거에서 이용남 교수가 제 2대 총장후보자로 선출되어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용남 총장의 취임식은 5월 15일 소강당에서 거행되었고, 신임 총장은취임사를통하여 ‘조화와협력의 구조속에 대학발전 이룩해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첫째, 우리 대학 교육의 근본을 갖추어 내실을 튼튼히 하는데 힘쓰고, 둘째, 대학교의 자율능력을 신장시킴으로써 체질을 강화시켜 나가며, 셋째, 변화와 개혁의 시대에 대비해 국제경쟁력을 커워나갈 것을 약속하였다.한편 제 13대 한성학원 이사장에 서정희 박시를 이어 김옥자 이사장이 4월 1일자로 취임하였다. 3월말 재단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진 가운데 취임한 김옥자 이사장은 지난 몇년간 학교에 상주하면서 학원의 제반 업무를 수행하였다. 서정희 전 이사장은 명예이사장으로서 계속하여 학원발전에 헌신할 것을 약속하였다.2) 교육이념과 교육목표 재정립
우리 대학은 1991년 「한성대학교 건학이념과 교육목표 정립에 관한 연구」 (위원장 사학과 윤경로 교수)를 통하여 우리 대학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의 창학 정신에 입각한 교육 이념과 교육목표를 새롭게 해석하고 정립하였다. 이후 1994년에는 21세기 개방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반영하여 교육목표들 수정 보완하였다. 이 교육이념과 목표는 이용남 총장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구성원들이 나아갈 지표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재정립된 교육이념과 목표는 다음과 같다.
교육이념
[그림 1] 교육이념, 목적 및 목표
4.2.2 교육제도의 변화
1) 교과과정 개편 및 학부제 확대 실시1997년 교과과정이 전면 개편되었다. ‘최소인정 학점제’라는 전제를 받아들여 대학의 새로운 교과과정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이 개편에 따르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총 140학점을 유지하되, 한 학과에 필요한 전공학점은 45학점으로 줄어드는 대신, 기타 학점은 나머지 학점으로 보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종래에는 복수전공이 4년 내에 이수하기가 불가능하였지만, 이를 실시함으로써 실제적인 복수 전공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선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들도 적용을 받게 되었다.1998년 10월에는 학부제 확대개편으로 모집단위 통폐합을 시행했다 모집단위 통폐합으로 어문계열, 인문계열, 사회계열로 분류하는 한편, 의상학과 및 의류직물학과들 의생활학부로 통합하고 명칭을 의상디자인전공, 의류패션산업전공으로 정하였다. 정보전산학부에는 정보시스템공학전공을 신설하고 전산통계학과, 정보공학전공을 멀티미디어정보처리전공, 정보통신공학전공으로, 산업시스템공학부 산업안전공학전공을 기계시스템공학전공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야간학과 모집 정원의 30%를 주간으로 전환하여 1999학년도 입학정원이 주간 960명 야간 660명이 되었다.
2) 특성화된 대학원1996년 10월 18일 대학원에 ‘국제통상정보대학원’이 신설 인가되었다. 지난해 국내 유일하게 ‘예술대학원’이 단일 대학원으로 독립 신설된 이래 ‘국제통상정보대학원’ 역시 국내 최초의 단일 대학원인 것이다.신설된 국제통상정보과는 5학기 과정에 총 정원 60여 명이다. 이로써 우리 대학에는 대학원,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예술대학원을 포함하여 5개의 대학원에 20개 학과가 설치되었다. 행정대학원에 신설된 부동산학과는 전공에서 독립학과로 승격되었고, 복지행정학과는 사회복지 전문가 양성, 복지행정 전문 관료 재교육의 취지로 신설되었으며, 이수 시 사회복지사 1 급을 획득할 수 있는 이점이 부여되었다. 또한 1997년에는 예술대학원에 패션예술학과를 신설하였다.
각 대학원에서는 다OJ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이률 더욱 확대하여 국내 학계는 물론 국제적인 학습 기회를 가지며 그 스케일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원의 행정적 지원도 확대되고 있으며, 학생을 위한 서비스 행정 지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3) 입시제도의 꾸준한 개선(1) 1996학년도 입시1994학년도부터 대학별 본고시를 치러온 우리 대학은 1996학년도 입시요강을 확정하면서 역시 본고시를 치르기로 하였다. 1996학년도 입시는 전형요소를 다변화하여 균형 있는 입시를 도모하고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인재를 선발, 육성하기 위한 방향을 설정하였다. 전형일자는 1996년 1월 18일이며, 전기모집 중 ‘다’ 그룹에 속했다 예·체능 계열을 제외한 전 학과에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두었다.〈표 11> 1996 학년도 본고사 출제의 기본 방향
구분 출제 기본 방항 배점
구분
본고사 관리의 주안점은 첫째, 철저한 사전준비, 둘째, 엄격한 출제 관랴, 셋째, 공정한 채점 관리 세 가지였다.
① 철저한 사전 준비출제 실무 워크숍, 최근 2년간 본고사 실시 결과 분석, 새로운 문제은행 구성 등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입시관리능력을 기르고, 출제 및 채점의 엄정한 관리를 통해 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한다② 엄격한출제 관리본고사 출제는 각 과목별로 30~40세트 이상의 문제은행을 구성, 무작위 방법으로 출제 문제를 선정함으로써 출제 위원 개개인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예·체능계의 시험 문제는 사전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③공정한채점 관리주관식 답안지는 3인의 위원이 채점하여 점수들을 합산, 평균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채점위원 상호간의편차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한다. 객관식 답안지는 주전산기를 통해 채점한 결과를 PC를 이용하여 재점검함으로써 오차의 가능성을 줄인다〈표 12> 1996학년도 본고사 과목
계열 공통과목 계열별 선택과목
〈표 13) 1996학년도 전형요소별 반영 비율
계열 내신성적 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 실기고사
1995년 10월 27일 오후 3시 소강당에서 위와 같이 확정된 입시 요강의 내용으로 1996학년도를 대비한 입시설명회를 가졌다. 입시설명회에는 수도권 고등학교 입시 담당교사 약 100여 명이 참석하였으며, 입시 요강 설명과, 본고사 과목별 출제 방향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1996학년도 입학정원은 1,180명으로 확정되었다. 경제학과와 행정학과에 야간이 신설되고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정보전산학부 등이 증원되었다. 1996년도 본고사는 1996년 1월 18일 시행되었는데, 당시 경쟁률은 6.2 : 1 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었다.(2) 1997학년도 입시1997학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은 새로이 시행되는 종합생활기록부에 의거 전체 성적의 30%를 반영하며 이 중에 영어 과목에 한해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반영 비율은 다음과같다.① 인문, 자연계열 : 종합생활기록부 30% 수학능력시험성적 60%, 논술고사 10%
② 예·체능계열 : 종합생활기록부 30%, 수학능력시험성적 35%, 실기고사 35%세부적 반영 비율은 아래와 같다.〈표 14> 1996학년도 종합생활기록부 반영 비율
학년별 반영 비율 영역별 반영 비율
〈표 15> 1996학년도 종합생활기록부가 없는 자의 반영 방법
1995학년도 이전 고교졸업자 공업계 고교 2+1 해당자 고교 졸업 후 5년 이상 경과자 검정고시 출신자 다음의 해당자는 옆에 검정고시 출신자와 같다
종합생활기록부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지성과 인성의 균형을 이룬 전인으로 성장하도록 마련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교육개혁위원회의 이러한 교육의지를 적극 수용하고 또한 고교교육의 정상회를 위하여 종합생활기록부를 1997 학년도 입시에 적극 반영, 우리 대학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입시체계률 갖추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특히 종합생활기록부 반영 교과목을 영어로 단일 선택함으로써, 수험생들의 학업부담을 완화시키는 한편 객관적인 학업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통일된 지표를 갖추어 보다 공정성 있는 입시 체계로 마련하였다.
또한 전국 주요 도시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춘천, 제주도에 원서 접수 창구를 개설하여, 지방에서도 손쉽게 우리 대학 입시원서를 접수할 수 있게 하였다. 수도권 소재 대학교들이 대 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실시하는 지역별 공동 접수 운영은 종전의 지방 지원생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덜어주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3) 교육부 1998학년도 야간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1997년 10월 13일 우리 대학의 교수 확보율 등이 교육부 기준율을 초과 달성함에 따라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이 날 교육부는 전국 150개 대학 중 우리 대학을 비롯하여 수도권 32개교, 지방 41개교를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하였다.우리 대학은 앞으로 정원 조정의 지율권 확대에 따라 교육여건 지표 범위 내에서 정원 규모와 학과의 신설과 증설 등을 지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어 1998학년도에 신입생390명을 증원하였다.
정부가 제시한 적용지표와 이에 따른 우리 대학의 교육 여건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적용지표- 교수 확보율 50% 이상- 교사 확보율 50% 이상- 학생 1 인당 교육비 : 250만 원 이상교육여건 현황- 교수 확보율 73.4%- 교사 확보율 63.5%- 학생 1인당 교육비 : 291만 4천 원4.2.3대학 정보화와 세계화 추진
1) 대학 정보화(1) 전자정보관 개관 및 운영가 전자정보관 개관1996년 5월 10일 중앙도서관에 국내 대학 최초로 전자정보관을 개관하였다. 삼성전자와 산학협동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전자정보관 설치의 목적은 첨단 정보통신기기름 이용한 신속한 정보의 제공과 정보화 사회에 대비한 구성원들의 정보체계 적응능력 제고 및 첨단 설비를 통해 구성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있다. 또한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한 학술 정보의 선속한 제공 및 정보화 사회에 대비한 교육프로그램의 제공과 ‘다기능 교육공간’ 확보를 통한 학생들의 자율학습 유도 및 첨단기능을 갖춘 오락, 휴식공간의 제공과 기획행사 등 각종 유인장치를 통한 이용 극대회을 운영방침으로 수립하였다국내 대학 최초로 전자정보관을 갖기까지는 그 펼요성에 대해 대학구성원간의 공통된 인식과 그 설립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먼저 1995년 5월 4일 중앙도서관 주관으로 전자정보시스템(전자정보관) 구축을 위한 연구발표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증축된 학생회관 5층에 전자정보관(전자정보시스뱀)을 설립할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었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게 될 전자정보관 설립은 총면적 274평 학생회관 5층 공간에 방학 중에 공시를 시작, 11월에 완료하였다.
특징-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의 정보화 도서관 모형 제시- 칠판 없는 강의실, 원격화상 강의 및 미래지향적 시설- 세계 유명 전자도서관의 첨단시설 응용- 소요예산 : 약 20억 원국내 전자도서관과 대비
구분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한성대학교
구성과 기능
실별 구성 기능
도서관 시스템
[그림 2] 전자도서관 기술구성
전자정보관 개관 기념식은 이종수 도서관장의 경과보고로 시작되어 이용남 총장의 전자정보관 개관 기념사와 김옥자 이사장의 축사, 감사패 전달 등이 1 부로 진행되었다.
2부에서는 개관 테이프 컷팅과 전자정보관 시스템 시연으로 인터넷, 위성통신실, CD-NET 도서관리시스템, V.O.D 시스템, 이미지 시스템 구현이 있었다 이울러 3부에서는 개관을 축하하는 리셉션을 도서관 6층과 7층 로비에서 가졌다.
나. 설립 목적 및 운영그 설립 목적과 운영계획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설립 목적① 정보 인프라 강회를 통한 신속한 정보의 제공- 국내외 학술정보망의 구축 강회를 통한 실시간 정보(Real Time Information) 제공 체제를 지향② 미래형의 ‘칠판 없는 강의실’ 모형의 실험적 구축③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구성원들의 적응 능력 제고운영 계획
① 전문 데이터베이스 구축② 우리 대흐L에서 소장한 주요 외국 학술지를 광파일로 스캐닝하여 데이터베이스화③ 현재 우리 대학 논문집, 연구소 논문집, 한성 50년사, 요람, 낙산의 삼학송 등이 CD-ROM 데이터베이스로 제작④ 인터넷 웹사이트 유지 관랴, 인터넷 검색 및 교육- 인터넷 웹사이트 유지 및 관리- 한성대학교 인터넷 교육 실시⑤ VOD(Video On Demand)-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비디오를 통한 교육 실시- 우리 대학 자체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VOD는 VOD전용 S!W와 H/W 등의 장비만 준비되면, 축적할 자료를 디지털로 저장해 두고 이용자와 접속된 PC에서 원하는 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구성 VOD를 위해서 영상 화면의 키워드를 추출하여 색인화하고 키워드 검색으로자료를 검색기능
전자정보관 세부 기구① 전자정보검색실전자정보관 시설 중 학생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전자정보검색설은 인터넷 국내 통신망을 통해 국내외 학술정보를 펀리하게 검색할 수 있다. 특히 DIALOG, KINITI-IR, CD-NET을 통해 학술데이터베이스를 자유롭게 검색 및 원문검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예술, 언어, 멀티미디어 등 다OJ한 주제의 CD-ROM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어 학생들의 이용도가 높은 곳이다② 위성통신수신실세계 유수의 국제위성 방송인 CNN, NBC, NHK 1· 2, V-Channel, STAR PLUS, STAR SPORTS, 러시아 방송, 북경방송 등의 채널을 원하는 대로 선택 시청할 수 있다. 위성방송뿐 아니라 국내외 비디오자료를 구비, 각종 주제의 영상자료 감상까지 기능하여 생생한시청각 교육효괴를 올리고 있다.
③ VOD어학, 영화, 스포츠, 명강의 등 동영상자료률 디지털화하여 저장해놓은 곳이다. 각종 수업에서 다수의 수업 참가자가 동시에 영상을 보거나 혹은 원하는 시간에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는 첨단 교육용 시스템이다④ 교육매체제작실교육매체제작실은 영상합성편집시스템, 문자인식시스템, 가상현실 제작시스템, 주파수 변환 VCR 등을 갖추고 있다.이 장비들을 이용하여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경제적,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고, 멀티미디어 교재 또한 효과적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⑤ 종합영상음향실학술비디오, 슬라이드 OHP, 레이저디스크, 빔 프로젝트를 통해 다각적인 교육방법을실행하는 곳이다
또한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인근 중·고등학생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실시하였고, 사회교육원생들은 인터넷 전자상거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재학생 및 교직원들에게도 인터넷 및 홈페이지 제작과정 등을 교육하고 있다.다. 한성 미래를 향한 침병 역할을 위한 노력전자정보관이 개관된 이후 1997년 5월 구축된 SLIMA 시스템과 TRS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SLIMA는 기존의 도서 관리 시스뱀인 LINNET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용자 중심의 시스템이다. 연속간행물 관리시스빔이 보강되었고, 비디오자료 등의 특수 자료도 검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래픽 요소가 많아져서 학생들이 더욱 편리하게 도서 검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또한 기존의 광 이미지 시스템을 개선한 TRS 시스템은 문자로만 입력이 기능했던 단행본, 논문자료 등을 이미지로 전체 입력하여 마치 책을 보는 것처럼 자료를 화면에서 검색할수 있다(2) 실습용 컴퓨터 및 PC시설의 확충
1995년도에는 과학관 5층에 컴퓨터 관련 통합 실습실 6개를 더 마련한 바 있다 이후 1997년도에는 전자계산소 내에 있는 486 PC 140대가 최신형 컴퓨터인 펜티엄급(166MHz)으로 완전 교체되었다. 이 실습용 컴퓨터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전교생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이 가능하며 수업시간에도 활용되었다. 이로써 실습환경은 첨단 기자재를 확보하게 되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능통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한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설습실은 강의동 2층의 강의전용실과 컴퓨터 실습 전용실로 분리해서 운영되고, 실습 전용실은 학생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항상 개방하고 있다.또한 전자계산소에서는 매 학기 방학 지역주민들을 위해 주부 및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그 동안 전자계산소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던 실습실이 진리관과 우촌관에 각각 1개소씩 설치됨으로써 훨씬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었다.(3) 학생종합서비스센터
학생종합서비스센터는 수요자 중심의 행정 서비스를 위하여 1998년 6월 15일 학생회관 1층에 설치되었다. 학생종합서비스센터에서는 취업정보망을 구축하여 취업 상담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복사기와 팩시밀리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학생종합서비스센터에서는 교내에 무선 랜이 가능해짐에 따라 재학생을 대상으로 노트북 및 노트북용 무선 랜 카드를 대여해 주고 있다2) 국내외 대학과 학술교류를 통한 세계화(1) 국내 대학간 학점교류 조인1997년 7월 21일 올림피아 호댈에서 열린 ‘대학 간 상호 교류에 관한 협정서 조인식에서 우리 대학을 비롯한 광운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상명대학교, 서경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9개 대학 관계자들은 학점교류협정을 조인하였다. 이로써 이들 대학 간에 학점 교류가 가능하게 되어, 1997학년도2학기부터 재학생들은 대학 간의 교환과목을 협정 대학에서 이수하여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교류범위학점교류(대학, 대학원), 교수 공동연구, 교직원 상호교류, 도서관 사용 및 자료 교류, 전산시스템 공동활용교류내용학기 중 일부 과목 수강, 방학 중 계절학기 강좌 수강자격1학년 이상 수료자, 평균 성적 B학점 이상인 자, 징계가 없는 자수강 및 의무
수강학점은 소속 대학 졸업 학점의 20%들 초과할 수 없다등록금은 소속 대학에 등록(단, 계절학기 수강료는 수강대학에 납부) 교류에 따른 비용은 본인이 부담관리교류 학생은 소속대학 학생과 통일한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2) 국외 대학과 학술 교류 협정우리 대학은 국외 6개 대학과 학술교류 협정을 맺었다 협정을 맺은 외국 대학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University of Idaho(미국)Virginia Common Wealth(미국)University of Evansville(미국)
The University of Tennessee at Mal1in(미국)款學園(일본)블라디보스톡 주립 경제대학(러시아)이를 기회로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우리 대학을 세계화, 국제화된 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교직원 및 학생의 교환, 연수, 방문, 공동의 연구 등의 구체적인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되었다. 상호 이해와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이 교류의 내용은 시설 및 학술 정보 교류, 인적 자원 교류(교수 및 행정 직원), 유학생 교류, 국제회의 조직, 학점 교류 등이다4.2.4대학발전을 위한 연구제도
1) 대학발전과제 연구제도(1) 1995학년도 대학발전과제 연구 보고1996년 2월에 열린 1995학년도 학사협의회에서는 21세기를 향한 우리 대학의 발전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구성된 여러 연구위원회별로 ‘대학발전과제 연구결과 보고’를 진행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표 16> 각 위원회별 연구 현황
연번 과제명 연구 기본방향 및 범위 연구책임자
(2) 1996학년도 대학발전과제 연구 보고
1997 학년도를 맞이하면서 학사협의회가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전라남도 광주 신양파크호텔에서 있었다. 이 협의회에서 1996학년도 대학발전과제 연구 결과 보고가 있었으며, 대학발전과제와 연구책임자를 응모제로 채택하였다. 응모에서는산업안전공학과 이남식 교수가 응모한 ‘대학 종합정보화 발전 전략’이 자유 과제로 선정되었고, 지정 과제에서는 4명의 교수가 응모하여 연구책임자들 맡았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표 17> 1996 학년도 대학발전과제 및 연구책임자
과제명
2) 교육개혁 추진 실적
우리 대학에서는 그 동안 의욕적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해온 바 있으며, 그간의 진행과 실적을 종합하여 「한성대 소식 J 1996년 제 51 호에 게재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성괴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또 한 변의 도약을 위한 자료로 삼았다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교육개혁 추진 방향
교육개혁 조기 추진 및 정착
교육개혁 중점 사항
교수엽적, 강의평가제 및 인센티브제 실시전임교수의 연구업적 평가에 따르는 합리적인 승진제도를 정착시킴으로써 연구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1990학년도부터는 강의평가제를 실시하여 학생의 학엽 성취도 향상 및 교수 강의의 질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교수연구활동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정착시켜 나가고 었다.- 우수교수 대폭 충원 및 연구활동 강화우수한 전임교원을 다수 충원하여 교수 확보율을 높였다 1996년 4월 1일 기준 전임교수는 134명으로, 교수 1인당 재학생 수는 29.3명이였다. 또한 사회 저명인사, 연구소 및 산업체 우수 인력을 객원교수로 다수 초빙하여 현장성 있는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특수한 분야에 대해서는 대우교수 제도를 마련하여 교육의 질을 강화하였다유사 학과의 학부 운영 활성화
기존의 14개 학과를 통합하여 7개의 학부로 재구성하여 학부 운영을 확대하였다. 학부제 운영은 유사한 전공에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여 학생들의 교육 수요 충족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과목의 성격도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으로 전환하여 개편하였다.교육과정 혁신세계화와 정보화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학부제 운영으로 폭넓은 교육을 설시하고, 시대의 주역으로서 활동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교육과정을 혁신적으로 개편하여 1인 3기 교육, 인성 교육강화 및 전공교육의 질적 향상에 노력하였다.- 첨단 정보시설의 집중 투자효율적 도서관 이용 및 도서 관리를 위해 전자정보도서관을 구축하였다. 삼성전자가 10억원을 출연하고 우리 대학이 10억원을 출자하여 국내 최초의 전자정보관을 1996년 5월에 개관하였다. 또한 전교생에게 ID 카드를 배부함으로써 전국 유일의 정보전산화구축에 기여하였다. 그밖에도 대학 교육· 행정 전산망을 구축하고 인터넷의 활발한 활용을 도모하고 있다
실험실습 및 시설 확충강의설, 실습설, 도서관 등 교육에 직접 관련된 시설의 제반 보조 시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13억여 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첨단 산업 관련 학과에 필요한 각종 실험 및 실습기자재를 확보하였다. 특히 문헌정보학과, 의상학과, 무용학과 등에 실험·실습기자재를 완비하였다.3) 학사협의회 제도학사협의회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에 각각 1회씩 개최되며, 전교수가 참여하여 학사에 관한 제반 업무보고와 평가가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학사협의회는 학사 전반에 관한 주요한 사항들에 대하여, 전교수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대학 발전이 고무적으로 추진되도록 몹는 제도이다.1995 학년도 동계 학사협의회는 1996년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도 서귀포시 프린스호벨에서 서정희 이사장, 원형갑 총장을 비롯한 전임교수, 1995 학년도 1학기 신임교수,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전체 교수회의에서는 제2대 총장 후보 선거들 진행하여 이용남 후보(문헌정보학과)를 차기 총장으로 선출하였다. 당시 학사협의회의 중점 사항이었던 대학발전과제 연구결과 보고에서는 21세기를 향한 우리 대학의 발전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구성된 여러 연구 위원회별로 그간 진행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1996년도 학사협의회는 1997학년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전라남도 광주에서 있었다. 1부에서는 각 부서의 업무 보고와 이울러 신입교수 인사 소개와 대학발전 연구 보고가 진행되었다. 둘째 날은 광주 일원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친목의 시간을 가져 서로간의 우의를 다짐하였다.4.2.5 신임교수 확충과 교수 연구활동
1) 신임교수 확충과 대학 위상 제고우리 대학은 1995학년도 1학기에 우수한 전임교원 16명을 새로 충원하였다. 신입생 입학 정원은 최근 6년 동안 37% 증가에 그쳤으나, 전임교수는 매년 충원되어 같은 기간 중 140%를 보강하였다. 이는 사립대학 평균을 훨씬 초과하는 교수 확보율로서 교육부 기준 정원 90% 에 달한다 이 기간 중 초빙한 전임교수는 국내외 명문대학 박사학위 취득자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완전한 공개 초빙제도와 함께 공정한 심사제도를 적용하였다1996학년도 1학기에는 우수 전임 교원 16명과 특임교수 1명을 증원하여, 전임교수 충원은 같은 기간 중 112%들 보강한 것이며, 사립대학 평균을 훨씬 초과하는 교수 확보율로서 교육부 기준 정원 83.7%를 달성한 것이다. 이 같은 교수 충원을 위한 노력은 교육부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교육부에서는 1997년 10월 13일 우리 대학의 교수 확보율 등이 교육부 기준율에 초과 탈성하였음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야간정원 지율화 대학으로 선정하였다. 이 날 교육부는 전국 150개 대학 중 우리 대학을 비롯하여 수도권 32개교, 지방 41개교를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하였다. 따라서 우리 대학은 정원 조정의 자율권 확대에 따라 교육 여건 지표 범위 내에서 정원 규모와 학과의 신설과 증설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2) 교수 연구활동 활발1995년 외부 각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구 중인 과제는 모두 18 건이다. 이 중 8건이 외부 기 업체로부터 연구과제를 따낸 것이고, 10 건이 학술진흥재단 연구과제 응모에 선정된 것으로, 전체 교수 숫자 대비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최근 학술진흥재단이 펴낸 「학술연구지원 통계연보」에 따르면 1995년도 ‘신진교수 연구선정 과제 수’는 우리 대학이 8건으로서 신진교수 상위 지원 10개 대학에 속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연세대와 인천대, 고려대, 전남대, 서울대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숫지를 기록한 것으로, 대학의 전체 교수 숫자 대비로 볼 때는 사실상 가장 많은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유공모 과제와는 달리 선진교수 연구과제를 충분히 확보한 결과의 하나로, 우랴 대학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여실히 보여 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학 연구진흥과에서는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96년 3월 23일에는 무용과 박인숙 교수가 이사도라 무용 예술상을 수상했다 이상은 한국현대무용진흥회가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한 무용가에게 주는 것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상 가운데 하나이다.우리 대학은 이상과 같은 교수들의 고무적이고 능동적인 연구 수행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1996년 새로이 연구처를 신설하였다. 이 기구는 교수 연구를 비롯한 모든 연구 영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교무처에서 관장하던 연구 기능이 보다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연구처는 ‘연구 진흥과’와 ‘국제 교류과’를 두고 있다.1998년 9월부터 교수 연구년제가 시행되었다. 연구 기간은 1년으로, 첫 해 연구년을 갖게 된 교수는 모두 16명이었다. 1998년 9월에는 5명이었고, 1999년 3월부터 11명이었다. 그 외 해외 파견교수도 2명이 신청했다. 연구년제의 시행으로 우리 대학은 명실상부하게 교수들의 연구를 위한 제도를 완비하게 되었다.
4.2.6 학생 복지와 학생들의 대외활동1) 학생 후생복지 향상(1) 과학관 증축공간에 들어선 면의시설1995년 5월말 과학관을 증축하고 공간을 확보하여 1 층에 새로 설치한 교직원식당, 학생식당, 매점 등은 교수 및 이공대 학생, 특히 야간학생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과학관에도 식당이 개설됨에 따라 1층 휴게실과 함께 학생들의 휴식공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과학관 옥상에는 야외 무대가 설치되는 등 휴식공간이 새롭게 단장되었다.(2) 학생회관 지하층 인테리어 공사1998년 7월 23일부터 학생회관 지하층에 있는 교직원 식당과 학생 식당, 휴게실, 체육단련실 등을 재배치하고, 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개수, 보수 공사가 9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공사가 완료되어 학생들의 쾌적한 공간으로 사랑 받게 되었다.
(3) 후생관 신축1997년 2월 우촌관 입구에 후생관이 신축되었다. 6개월 공사 끝에 완성된 후생관은 총면적 287㎡ 의 4층 규모로 지하에는 25평 규모의 사이벼카페가 들어섰으며, 1층에는 23평 규모의 국민은행, 2층은 21평의 컴퓨터 관련 점과 안경점이, 3층에는 사진관이 들어섰다. 우촌관 l층에 였던 국민은행이 후생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전의 국민은행 자리에 구내서점이 들어서게 되었다.(4) 학사 E동 완공 7개 동아리 입주학사 E동의 동아리방이 완공되어 야구반, 바둑사랑회, 해랑사리우, 피닉스, UBF, 낙산극단, 트리플 이상 7개 동아리가 1997년 3월 3일자로 입주하였다.2) 학생들의 대외활동 활발
(1) 환정보전협회 주최 현상논문 공모 우수작 당선1994년 12월부터 1995년 3월 10일까지 환경에 관한 자유주제 논문 및 수필 공모에 무역학과 서재호, 최은석 군이 공동 작성한 「환경과 지방화시대, 그리고 국가경쟁력」이라는 논문이 우수작으로 당선되어 환경보전협회 회장상을 수상하였다.(2) 국내 최초로 연산군 금표비 발견사학과 대학원생 정통일 씨에 의해 1994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연산군 금표비가 발견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금천군 묘역에서 발견된 금표비는 한국 사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발견 사실은 각 일간지마다 일변 기사로 다루어졌다. 이 금표비는 국문학과 정후수 교수의 고증을 거쳐 연산군대의 금표비임이 입증되었다.(3) 산업디자인학과, 한글디자인 공모전 휩쓸어
1995년도에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일깨우고 이들 디자인 차원에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목적에서 문화체육부, 한국방송공사,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제2회 한글디자인 공모전에서 산업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대거 입상하였다. 금상에 이기범(산디 4), 특선에 박윤정, 김옥희, 김주훈(이상 산디 4) 윤창옥, 김범식, 구선정(이상 산디 3), 입선은 염삼민, 서현인(이상 산디 4), 정재윤, 구효정(이상 산디 3) 이다 또한 1996년도에 열린 꺼132 회 전국 산미 공모전’에서 김수진, 구선정(산디 4/ 주 : CIP) 학생이 은상을, ‘제1회 서울 비엔날레디자인 공모전’에서 안주현, 정웅태(산디 4/ 주 : CIP)학생이 특선에 입상하였으며, ‘제31회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등에서 산업디자인학과 학생 19명이 대거 입상하였다.(4) 전국 대학 졸업작품디자인 경연대회 금상 수상1997년 제1회 전국대학 졸엽작품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의류직물학과의 김호정 학생이 ‘색다른 바다(조개)’라는 작품으로 영예의 금상을 수상하였다. 국제 패션디자인 연구원이주관하고 패션 전문지 ‘WWD KOREA’가 개최한 대회에는 총 97개 대학에서 185 점이 교수의 추천으로만 출품되었다.
(5) 제1회 삼성화재 논문 현상공모, 한국정보학회 공모전 수상제1회 삼성화재 사고 예방 논문 현상공모에서 산업안전공학 전공 학생 4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손해보험 업계에서 최초로 실시한 이번 현상 공모에, 총 세편의 논문을 응모한 산업시스템공학부는 장려상 1편, 입선 1편을 수상하였다.한편 제1회 한국정보학회 주최 ‘세계는 한글로’라는 논문 공모에서 하유경(국문 4)은 「한글과 정보화 사회」, 최혜숙(국문 3)은 「한글의 독창성 및 과학성」이라는 주제로 각각 격려상과 입션을 수상하였다.(6) 동아리 ‘영화특솜’ 제1회 대학영화축제에 출품영화 동아리 ‘영화다솜’이 제작한 영화 「마지막 낙윈 「ET를 기다라며」, 「그물 벗기」가 3월 25일 ~29일까지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에서 열리는 제1회 대학 영화축제에 출품되었다. 총 50여편 가운데 기술적 완성도와 대학영화로서의 독창성, 전지한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작품 15편이 본선에 출품된 것이다.
(7) 1997년 학군단, 최우수 표창학군단이 1996년도 부대평가 최우수 학군단으로 선정되었다. 12월 21일 전국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수상한 이 표창은 전국 학군단 중 가장 높은 훈격에 해당되는 펑가이다 이번 평가에서 학군단은 부대관리, 군수, 시설관리, 후보생 군사학 교육실기, 후보생 군사학 교육필기 측정을 통해 최고 수준을 인정받았다.3) 장학생 추천서 제도 신설1998년 7월 30일 총장실에서 장학위원회를 개최하고 1998학년도 2학기 성적장학생과 특별장학생, 그리고 근로봉사장학 신청서를 교부하였다. 당시 회의에서는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한 장학생 추천서 제도를 임시로 신설하기로 결정하여 IMP 및 가사 어려움으로 학업을 계속하기 힘든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 혜택이 돌아가게 되었다.
4) 탁구부, 축구부 활동(1)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 종합 준우승탁구부가 1995년도 대통령기 전국탁구대회에서 영예의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서울시 대표로 본선에 진출하여 잠실 체육관에서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린 본선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5월 춘계 대학탁구연맹전에도 영예의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서울대 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한남대학을 4: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개인단식에서도 준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으며, 제43회 전국종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전년도에 이어 3연패를 이루었다.1997년 제30 회 장관기 전국학생탁구대회에서 남자팀이 창단 1년 만에 개인단식 우승과 단제전 준우승을 차지하였다.(2) 축구부, 1997년 추계연맹전에서 4강 진출
축구부가 1997년 9월에 열린 추계 전국대학 축구연맹전에서 4강에 진출했다 이번 4강 진출은 1997년 들어 가장 좋은 성적이었으며, 지난 1991년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있다.4.2.7 교내 환경 개선1) 건물의 신축 및 시설 개선우리 대학은 늘어나는 정원과 학생들의편의시설을 위해 지속적으로 건물을 신축하고 시설을 개선해 왔다. 신축 건물과 개선된 시설은 다음과 같다.(1) 과학관, 학생회관 증축 완료1994년 8월에 시작된 과학관, 학생회관의 중축은 1995년 5월말 준공 되어 학생회관이500 여 펑, 과학관이 500 여 평이 확장되었다. 학생회관 5층에는 총 274평 규모의 ‘전자정보관’이 국내 대학 최초로 개설되고, 6층에는 교수연구실이 들어섰다.
과학관 5층에는 컴퓨터 관련 통합실습실 6개, 교수연구실이 들어서게 되어 교육공간 확충에 기여하게 되었고 1층에는 교직원식탕, 학생식당, 매점 등을 설치하였다. 옥상에는 야외무대가 설치되는 등 휴식공간이 새롭게 단장되었다.(2) 1997년 2월 학군단 건물 준공진리관 1층에 자리 잡고 있던 학군단 관련 시설이 단독 건물로 이전하여 1997년 2월 28일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에는 한성학원 설립자 이희순 여사를 비롯하여 김옥자 이사장, 서정희 명예이사장, 이용남 총장, 학군단 교장 노연웅 소장과 129학군단장 원종관 대령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 날의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광운대, 고려대, 성균관대, 시립대의 학군단장도 참석했다신축 학군단 건물은 총 681㎡ 면적에 지상 2층의 철골 구조물로 축조되였다 새로 준공된 건물에는 학군단장실 외 학군단 관련 시설 일체가 들어섰다(3) 1997년 2월 후생관 준공 입주
우촌관 중문 앞에 후생관이 완공되었다. 6개월 끝에 완성된 후생관은 총면적 287㎡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서, 지하에는 25평의 사이벼 카페가 들어섰으며, 1층에는 국민은행, 2층은 컴퓨터 관련 점과 안경점이, 3층은 사진관이 들어서게 되었다.(4) 1997년 5월 새로운 명울 지하 주차장 완공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된 운동장 지하의 주차장 건축이 완공되어 1997년 5월 17일 준공식을 가졌다 한성여고 교정에 지하 2층으로 시공된 이 주차장은 1,700평의 규모로서 약 150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으며 차량의 출입이 전자동으로 관리된다. 주차장 1층 내부에는 70평 규모의 휴게실이 들어서 있어 휴식처로서의 역할 외에도 회의용이나 전시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 지하 2층에는 80여 평 규모의 탁구부 전용 연습실을 두어 탁구부가 사용하고 있다.(5) 학사 E통 개축. 7개 동아리 입주학사 E동의 동아리방이 완공되어 야구반, 바둑 사랑회, 해랑사리우, 피닉스, UBF, 낙산극단, 트리플의 7개 동아리가 1997년 3월 3일자로 입주하였다.
(6) 지하 2층, 지상 5층의 현대식 강의동 착공식1998년 강당 자리에 지하 2층, 지상 5층의 현대식 강의동을 신축하기로 하였다. 1998년 5월 29일 강의동 산축을 위한 착공식을 가졌고. 1999년 2월말에 준공하였다. 대지면적이 1,440평의 건물에 모두 35 억 원의 예산을 투여했다2) 교내조경과 상징물(1) 또 하나의 상정탑 ‘깃발’우촌관 광장에 새로운 조형물 ‘깃발’이 설치되었다. ‘영원한 깃발’이라는 이 조형물은 우리 대학 산업디자인학과 조태병 교수가 제작하였으며, 탑 자체가 웅직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지름 4.5m, 높이 12m의 조형물은 4각의 스테인리스 스틸을 용접하여 나선형으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형태로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새로운 시각적 공간을 창조하는 웅직이는 조형물이다. 한 단위가 40cm인 방으로 구분되어 그 안에서 회전하는 바람개비는 미풍에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쉬지 않고 웅직이며 변모를 갈망하는 한성인의 염원을 깃발에 담아 형상화한 이 조형물은 우리 대학의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2) 닥산에 초대형 벽화의 길 조성낙산 남문 맞은편 길에 회화과 허은영 교수가 제작한 「낙산의 아침」이란 제목의 벽화가 제작되었다. 총 길이 150m, 높이 1~6m의 낙산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배경으로 구도와 색채를 결정한 한 폭의 산수화이다.(3) 중문확장 소공원 조성우촌관 앞 중문이 1995년 11월 10일부터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2개월만에 완공되었다. 담과 기존의 문을 헐고 인근 민가를 구입하여 공간을 확보하여, 산업디자인학과고영란 교수의 설계로 길이 27m 높이 2m의 슬라이딩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중문 주변 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차량 및 학생들의 통행이편리해졌다.
(4) 본관에 이미지 마크를 이용한 옥외 상정물 건립1995년 겨울방학 동안 우촌관 상단에 새로운 이미지 마크를 제작한 상정물이 등장하였다 폭 13m, 높이 12m 패널 구조물 형태의 이미지 마크와 교명 ‘한성대학교’가 설치되어 멸리서 보더라도 금방 눈에 띄게 드러난다(5)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 흉상 제막한성학원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의 흉상이 1996년 우촌관 3층 현관 로비에 세워졌다. 원래 이 흉상은 조각가 김경회(공주사대 교수) 씨가 1972년에 제작했던 것이다. 흉상의 크기는 높이 60cm로서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120cm의 검정 마천석 기단으로 되어있다(6) 1997년 조경공사로 새로워진 낙산공원
6년에 걸친 낙산 조경 사업은 1996년도의 대규모 성토작업 및 자연석 쌓기 공사로 마무리 되었다. 원형탁자 등 휴식시설이 확충되고 교육공간의 연장으로서 야외 강의실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운 공원으로 가꾸기 위해 공원 정상 부근에 열린 마당을 조성하여 소공연장으로 활용하게 하였다. 또한 교정에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를확장하였다.(7) 1997년 식목일 닥산 곳곳에 꽃나무 심어1997년 봄 남문 근처에 철쭉 300그루를 심고, 낙산 진입로에는 회양목 1,000 여 그루를 심였다 해마다 많은 종류의 꽃나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여 이곳을 찾는 이에게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게 되었다.(8) 쓰레기 소각로 설치로 쓰레기 없는 대학 실현우리 대학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쓰레기 소각로가설치되었다. 시간 당 50킬로그램을 소각할 수 있는 이 소각로를 통해 교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치러왔던 상당 액수의 겸비를 약 1/3 정도로 해결할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이익을 가져오게 되었다. 소각로는 환경관리공단의 품질 검사를 통과하고 성북구청에 신고률 마치고 가동에 들어갔다
4.2.8 화합과 조화를 위한 노력1) 한성가족의 밤한성가족의 화합을 위한 ‘한성가족의 밤’ 행사는 한성가족들이 학교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1) 1995년 한성가족 축제의 밤1995년 5월 27일 오후 5시, 학생회관과 과학관 증축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성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아는 ‘한성기족 축제의 밤’ 행시를 진행하였다. 이희순 한성학원 설립자, 서정희 명예 이사장, 김옥자 이사장 가족과 이용남 총장 가족을 비롯한 총 400여 명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 1997년 21세기를 향한 큰 잔치 ‘한성가족의 밤’한성가족의 밤이 1997년 5월 17일 낙산야외공원과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500여 명의 교수와 직원이 가족 동반으로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 행사는 특별히 대단위 한성주차장이 준공된 것을 함께 기념하여 더욱 큰 의의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단장된 낙산야외 공원의 화사한 경관 속에서 만찬을 즐겼다 또한 노천극장에서 유명 가수와 인기 개그맨 엄용수 씨가 진행하는 음악회와 즐거운 단합의 시간을 가졌다2) 지역민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우리 대학은 매년 지역주민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은해가 거듭될수록 지역주민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강좌 수름 대폭 늘여가고 있다.
(1) 1996년 지역주민을 위한 방학 특강1996년 지역주민을 위한 방학 특강으로, 어린이 축구교실과 컴퓨터 강좌가 개설되었다. 어린이 축구 교실은 전 국가대표 선수인 박종원 우리 대학 감독이 직접 지도를 맡게 되어 한층 열기를 더했다. 이 두 강좌는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다.(2) 1997년 더욱 다양해진 지역주민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지역 주민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개설되었다. 1997년도에는 특히 재테크 교실, 생활경제 교실, 무역통신문 교실 등 경제 분야가 개설되었다. 당시 운영된 프로그램은 컴퓨터 교실, PC통신 및 인터넷 교실, 재테크 교실, 생활경제 교실, 무역통신문 교실, 탁구교실, 어린이 축구교실이다.4.2.9 변화를 위한 진통과 임시 이사체제
1) 총장대행 체제와 임시이사 체제(1) 1997년 12월 재단 내분으로 임시이사 체제로1997년 재단 분규로 김옥자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사 전원이 퇴진하고 12월 23일 교육부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이용남 총장은 12월 30일 사임했다. 학교법인 이사로 있던 서정희 이사 등 11명의 이사진이 1997년 12월 22일 사임함에 따라 교육부로부터 파견된 임시 이사진 11명으로 임시이사 체제가 구성되었다. 1998년 첫 소집된 이사회에서 박병호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한 후 학원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당시 이사진은 다음과 같다.박병호 이사장(전 서울대 법대 학장)이영수(경기대, 교수신문 발행인) 교수차인석(서울대,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교수길희성(서강대) 교수
박은정(이화여대) 교수김호댁(변호사, 전 서울변호사협회 회장)류해돈(전 서울시 부교육감)전영운(중앙대) 교수권영빈(중앙일보 논설위원,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정종섭(변호사, 건국대) 교수임시이사회는 교육부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이전의 재단이사회가 절차에 따라 운영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우선적인 시정을 단행하여 직위해제한 두 명에 대하여 원인무효화하고 정기승진에 누락된 교수들에 대하여 소급적용하여 승진토록 하였다. 재단 내분은 사실상 1997년 11월부터 시작되었는데, 학생, 교수, 교직원들이 학교 주제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새로운 기능성을 고민하는 중요한 시간을 갖게 했다.(2) 윤경로 총장 대행체제
이용남 총장을 비롯한 관련 보직교수들도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1998년 1월 28일자로 윤경로(사학과) 교수가 총장 직무대행 및 교무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2월 2일 보직개편이 단행되어, 윤경로 총장대행 체제가 가동되었다. 보직개편으로 학생처장 박병환(산업공학과) 교수, 사무처장 이상한(경제학과) 교수, 기획실장 유병호(무역학과) 교수, 도서관장 이정숙(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학원장 이석주(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임명되었다.2) 행정조직 개편과 총장추천위원회 구성(1) 1998년 1월 행정조직 개면, 사무처 부활우리 대학의 행정조직은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로 시작하였으나 그 중 사무처는 1990년 학내사태 이후 법인에서 사무처의 엽무를 일부분 관장하다가 1991년에 한시적으로 폐지되었고, 총무과 및 경리과는 총장직속 기구로 하였다. 1998년 임시이사체제가되면서 다시 부활되어 기획실에 있던 시설과, 관리과도 그 소속으로 하였다.
(2) 교내연구비 신설 및 교원연구년제 확대1998년 2월 교원의 학문연구를 장려하고 대학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교내연구비를 신설하였다. 당초 1998년 예산 수립 시 교직원 인건비 인상율을 5%로 책정하였으나, 3%만 반영하고 2%에 해당하는 2 억6 천3백여만 원을 연구비 명목으로 전환하여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지급하였다.이 해 4월에는 행정학과 이창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학발전위원회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토대로 교원연구년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였다. 주요 내용은 6년 이상 재직한 교원을 대상으로 매년 전임교원 총수의 10% 이내로 하되 학과별 1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구년제를 허용키로 하였다.(3) 우리 대학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추천위 구성1998년 1월 제 14대 박병호 이사장 그리고 7월 제 15대 차인석 이사장이 연이어 취임하면서 새로운 대학 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개 모집키로 했다
총장 선출을 위한 추천위원회의 결성과 관련한 오랜 논의 끝에 법인 이사회에서는 우리 대학 최초로 공개채용을 통한 총장 선출방안을 제시하였고, 이에 따라 교수대표(인문대학, 사회대학, 이공대학, 예술대학) 8 인, 직원대표 2 인, 학생대표 2 인, 사회 저명 인사 2 인, 동문회대표 1 인 등 15 인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총장 선출은 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한 뒤 법인 이사회에서 최종 선출하기로 했다총장 추천위원회의 첫 활동으로 6월 20일 후보자를 공모커로 하고, 추천위원장에 정하경(회화과) 교수를 선출했다 당시 추천위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교 수 : 고창수(국어국문학과), 이병은(영어영문학과), 박헌영(경제학 전공)정하경(회화과), 최해주(의상학과), 김대홍(산업공학 전공)이재문(전산통계학 전공)교직원 : 조현호(노동조합위원장, 전자정보과 주임), 엄재용(시설관리과)학생 : 박광식(학생복지위원장, 안공 2), 현낙철(행정 4)
사회저명인사 임혁재(중앙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종심(동아일본 논설실장)동문 : 하등룡(우리 대학 동문회장)(4) 황진수 총장대행과 총장추천위원회의 활동총장 후보자 공모에 당시 총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윤경로 교수가 입후보함에 따라 총장직무대행을 사퇴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총장직무대행 겸 교무처장에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가 임명되었다. 추천위원회는 일련의 활동 결과 외부인사 1 인을 포함한 3인(이성근 전 배재대 총장, 윤경로 사학과 교수, 강병식 사학과 교수)을 총장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함으로 활동을 일단락 하였다.4.3 변화하는 한성대학교, 제3대 이성근 총장 시기
4.3.1 이성근 총장 취임과 보직개편1) 이성근 총장 취임1997년 말에 발생한 학내 분규 사태로 어수선했던 대학의 분위기는 임시 이사진의 파견과 더불어 1998년 10월 이성근 박사가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함으로써 수습되었다. 총장선출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이사회는 10월 14일 이성근 박사를 제3대 총장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10월 23일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교직원을 비롯한 많은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총장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이성근 신임 총장은 취임사에서 “대학은 내일의 문회를 창조하여 가는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 대학이 “새로운 시대가 대학에 요구하고 있는 열린 대학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총장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대학의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각오를 표명하였다.2) 보직개편
신임 총장이 취임함에 따라 보직개편이 단행되었다.교무처장에 사학과 윤석효 교수, 연구기획처장에 산업시스멈공학부 홍윤기 교수, 학생처장에 경상학부 권오 교수, 사무처장에 경상학부 홍용식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도서관장에는 문헌정보학과 이우범 교수가 임명되었으며, 대학원장은 이성근 총장이 겸직하게 되었다.한편 2000년 11월 기존 보직교수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이성근 총장의 후반 임기동안 대학의 업무를 책임질 새로운 보직교수들이 임명되었다. 교무처장에 영어영문학부 김용석 교수, 학생처장에 미디어디자인학부 조열 교수, 기획연구처장(기존 연구기획처장의 명칭변경)에 경영학부 최명규 교수, 총무처장(기존 사무처장의 명칭변경)에 경영학부 김길평 교수, 도서관장에 영어영문학부 고정자 교수가 임명되었다. 이성근 총장이 겸직해왔던 대학원장에는 경영학부 연정열 교수가 임명되었으나 연정열 교수는 2002년 2월 정년퇴임하였고, 공석으로 남아 있던 대학원장직은 2002년 8월 이성근 총장이 재겸직하게 되었다. 한편 김용석 교무처장은 총장 후보로 출마하기 위하여 2002년 8월 2일 사퇴하였고, 그 후임으로 교직과 김경배 교수가 임명되었다.
4.3.2대학편제의 변화1) 학장제 신설우리 대학은 1993년 3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면서 4개 단과대학으로 개편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대학 단위로 운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3대 이성근 총장이 취임하고 모집단위가 4개 단과대학으로 통폐합되면서 1998년 11월 26일 각 4개 단과대학의 업무를분장관할하기 위한 학장제가 신설되고 이 날 4명의 학장들이 임명되었다. 인문대학장에는 영어영문학과 검용석 교수, 사회과학대학장에는 경상학부 김평광 교수, 이공대학장에는 정보전산학부 치운옥 교수, 예술대학장에는 무용학과 김숙자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2000년 11월 보직교수개편이 단행되면서 2년 임기의 4개 단과대학의 학장들도 교체되었다. 인문대학장에 사학과 윤석효 교수, 사회과학대학장에 정경학부 정성택 교수, 예술대학장에 회화과 정하경 교수, 공과대학장에 정보공학부 이두성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2) 모집단위 통폐합과 학부제 실시1998년 10월 우리 대학은 기존의 모집단위를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이공대학, 예술대학의 4개 단과대학, 107R 모집단위로 통폐합하였다. 인문대학에는 어문계열(주·야)에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인문계열(주· 야)에 사학과, 문헌정보학과가편성되었고, 사회과학대학에는 경상학부(주·야)에 경영학 전공, 무역학 전공, 경제학 전공, 사회계열(주·야)에 행정학과, 부동산학과가편성되었다. 한편 이공대학은 정보전산학부(주 야)에 컴퓨터공학 전공, 멀티미디어정보처리 전공(전산통계학 명칭변경), 정보통신공학 전공(정보공학 명칭변경), 정보시스템공학 전공(신설), 산업시스템공학부(주·야)에 산업공학 전공, 기계시스템공학 전공(산업안전공학 명칭변경)으로 재편되었다. 마지막으로 예술대학은 의생활학부(주·야)에 의상디자인 전공(의상학과 명칭변경), 의류패션산업 전공(의류직물학과 명칭변경), 예능계열에 무용학과(주), 회화과(주), 산업디자인학과(주·야)으로 새로이 구성되었다. 총 입학정원 1,620명으로 전년과 동일하나 야간 정원 940명 가운데 280명을 주간으로 대체하여 주간 960명, 야간 660명으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은 국가 교육정책에 부응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의 폭을 확대하기 위하여 1999년 10월 14일 본격적인 학부제를 채택하였다. 기존 학과 중심의 체제를 한뉴국어문학부,영어영문학부,역사문화학부,지식정보학부,사회과학부,경영학부,미디어디자인학부 개편하였고, 이로써 무용학과와 회화과만이 학과체제로 존속하고 나머지 학과는 모두 학부로 통폐합되었다. 이에 따라 대학편제는 4개 단과대학, 10개 학부에 28개 전공, 2개 학과로 구성되어 명실상부한 학부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한편 2001년 6월에는 모집단위 변경으로 기존 사회과학부를 경상학부(무역학 전공, 부동산학 전공)와 정경학부(지식경제학 전공, 행정학 전공)로, 정보전산학부를 컴퓨터공학부(멀티미디어정보처리 전공, 컴퓨터시스뱀 전공)와 정보공학부(정보시스템공학전공, 정보통신공학 전공)로 분리하였다. 1973년 3월 150명 정원의 한성여자대학으로 출범한 우리 대학의편제는 이제 4개 단과대학, 12개 학부에 28개 전공, 2개 학과, 입학정원1,620명이 되었다.
3) 대학원 증과 증원이성근 총장 재임 기간 동안 현저한 변화를 맞게 된 분야 가운데 하나는 대학원의 증과·증원이었다. 1999년 11월 2일 교육부의 인가를 통해 대학원 석사과정 15명, 박사과정 5명이 증원되었고, 국제통상정보대학원에서 명칭을 변경한 국제대학원에 15명, 예술대학원에 20명이 각각 증원되었다. 또한, 각각 30명과 20명을 입학정원으로 하는 컴퓨터신기술대학원과 안전보건경영대학원이 신설되었다. 2000년 7월에는 부동산대학원(20명 정원)이 신설되었고, 국제대학원에 국제마약범죄학과가, 경영대학원에 e-business 학과가 새로이 증과 되었다.이와 더불어 이 해 10월에는 교육대학원(40명 입학정원)이 신설됨에 따라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8개 특수대학원 등 총 9개 대학원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2001년 10월에는 경영대학원에 서비스 경영학과, 행정대학원에 지방정부경영학과와 경찰행정학과가 신설되었고, 교육대학원의 입학정원은 기존 40명에서 34명으로 감축되었다. 대학원 체제의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냐는 교육대학원을 제외한 7개 특수대학원이 2001년 3월 기존 5학기제에서 4학기제로 학기를 단축하였다는 것이다. 1987년 11월 9일 경영행정대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아 출발한 우리 대학의 대학원은 이제 규모와 위상에 있어 현저한 발전을 이루어 고급인력의 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4.3.3 교육공간의 확대1) 공간 확충 계획수립1999년 3월 6일 준공된 강의동은 그 동안 부족했던 교육 공간 문제를 해소하는 데큰 도움이 되었다. 강의동이 준공되기 이전인 1998년 말부터 기존 건물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고 대학평가를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통해 교수회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별관을 신축하고 대학로에 건물을 구입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1998년 12월 29일 차인석 이사장과 총장 및 처 관장이 배석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중앙도서관 안전문제에 관한 논의 끝에 도서관 신축이라는 원칙에 인식을 같이하게 되었고, 이사장은 이를 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하였으며, 1999년 1월 4일 이사회는 사전조치로서 한성학원 공문(학법 99-1 호)을 통하여 대학 내 모든 건물에 대하여 안전진단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이 해 2월 1일 이사회는 도서관 건축규모를 2,600평으로 의결하였고, 2월 9일 중앙도서관 건축을 위하여 이사회에서 3명, 대학에서 3명의 위원을 천거하여 건축위원회를 구성하였다.이사회의 지시에 따라 2월부터 한 달 동안 전문용역회사가 대학의 각 건물들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학생회관에 위치한 도서관은 앞으로 추가적인 하중부과는 무리라는 진단이 나왔다 또한 우촌관 지하, 과학관, 진리관의 안전문제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학 딩국은 교내 건물에 대한 종합적 계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첫째, 붕괴가우려되는 우촌관 지하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앙도서관 건물을 신축한다 둘째, 지선관 앞에 교수연구실과 무용실기실 그라고 전시실 용도의 교수회관을 건립한다 셋째, 도심형 특성화 대학이라는 취지로 시내 중심지에 적당한 건물을 매입하여 대학의 일부 기능을 이전한다 넷째, 학생들의 활동공간을 증대한다는 차원에서 학생회관 뒤편에 노전무대를 건립한다. 다섯째, 과학관과 진리관은 보강공사를 실시하여 안전도를 제고한다 이사회는 이 해 5월 31일 이 계획을 최종 승인하였으며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수의 경우 135명 가운데 97명 (72.2%), 직원의 경우 69명 가운데 51명 (73.9%)가 대학당국이 제시한 계획안에 찬성하였다.
또한 2000년 7월 25일 이사회는 기존의 건축계획에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관 별관 건축을 추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비록 신축건물의 구체적 용도를 둘러싸고 대학당국, 교수협의회, 그리고 일부 학과의 갈등이 이후로도 상당 기간 지속되고 또한 학생들이 형사 기소되는 불행한 사태까지 발생하였지만, 교육공간 확대라는 목표는 전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오랜 기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우리 대학은 공간확보에 있어서 현저한 진보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2) 외부 건물 매입
대학로에 위치한(종로구 명륜동 2가 41-4) 동원빌딩을 80억 원에 매입하였다. 이는 낙산 캠퍼스의 협소한 부지에 계속적으로 건물을 신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한계에 이르게 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또한 대학의 다양화 특성화에 걸맞는 도심형 캠퍼스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50m 거리에 위치한 동원빌딩은 지상 8층, 지하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서 대지 1,420㎡(427평), 건축면적 637㎡(193평), 연면적 6,525m’(1,974평)의 규모이며 차량 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다. 연면적 1,974평은 우리 대학 강의동의 면적(1,430평)을 훨씬 상회하는 규모로서 공간부족의 문제가 크게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한성대학교 대학로캠퍼스’라 명명한 이 건물의 일부 공간은 도심형 예술대학을 구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미디어디자인학부가 사용하였으며, 예술대학 공연장 및 대형 강의실을 비롯한 다OJ한 용도로 시용되었다. 대학로캠퍼스는 특성에 맞는 학과를 도심에 적절히 분산하여 부족한 공간문제들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되었고, 또한 문화예술의 메카인 대학로에 위치함으로써 학교 이미지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다.
3) 교수회관, 도서관, 학생회관 별관 착공2001년 9월 22일 오전 10시 교수회관, 도서관, 학생회관 별관(동아리동) 신축을 위한 기공식이 거행되었다.2000년 7월 현상설계 공모방식으로 설계업체들 선정하고, 7월 28일 엄격한 심사에 의해 주식회사 공간종합건축사무소가 설계업체로 최종 선정되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공간종합건축사무소의 설계 작품은 이 해 7월 29일 건축소위원회의 보고를 거쳐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대학 당국은 8월 9일에 공간종합건축사무소 측과 교수회관, 도서관에 대한 설계 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설계업체 선정 후 교수회관 도서관과 별개로 진행되어 온 학생회관 별관의 설계를공간종합건축사무소와 협의한 결과, 교수회관, 연구동 설계에 학생회관 별관의 설계를 무료로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시공업체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2001년 9월 1일 최종적으로 주식회사 삼성건설이 낙찰되었다. 총 공사비 150 억원이 투입되는 이 공사를 통하여 총 22,807.75㎡(6,889평)의 교육공간을 새로 확보하게 되었다.
2001년 9월에 착공된 교수회관과 학생회관 별관은 각각 연건축면적 6,902.26㎡(2,088평)과 1,838.88㎡(556평)으로 건립되었으며, 2002년 3월에 착공된 도서관은 연건축면적 14,066.61㎡(4,255평)의 공간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선관 앞에 건렴된 교수회관은 지하1층, 지상 7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서 거의 모든 교수들의 연구실을 수용하게 되었다. 낙산 자락을 ~아 건설될 학생회관 별관은 지상 5층으로 각 층마다 5~9평 규모의 동아리실과 소규모 공연장으로 구성되었다.민주광장 자리에 건립된 도서관은 지하 2층, 지상 6층의 건물로 지하에는 대형 강의실, 박물관 등이 들어서고, 1층은 연속간행물실, 2층은 정보자료과, 도서관장실, 갤러리(Gallery), 3층은 인문과학 열람실, 4층은 사회과학 열람실, 5층은 자연과학 열람실, 6층은 예술 열람실, 음향자료설, 시청각실 등으로 시용되고, 3층부터 5층의 일부는 일반열람실로 사용된다.
교수회관과 학생회관 별관, 도서관의 건립으로 우리 대학의 구성원은 이제 보다 나은 교육환경에서 교육과 연구, 수업과 학생활동, 그리고 행정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4.3.4 최우수 대학으로 거듭난 한성대학2000년 2월 2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발표한 1999년도 대학종합평가에서 우리대학은 학부기준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교육, 연구, 사회봉사, 교수, 시설·설비, 재정·경영 등 6개 영역에서 실시된 평가에서 우리 대학은 학생 수 l 만명 미만의 18개 일반대와 107~ 산업대 등 총 28개 대학 가운데 교수 영역을 제외한 5개 영역에서 우수판정을 받아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우수 대학의 인정기준은 평가 영역별 총점의 90% 이상으로, 우리 대학의 평가점수를 구체적으로 보면, 교육영역에서 120점 만점에 117.1 점(100 점 환산 점수로 97.58 점), 연구 영역에서 65점 만점에 60.37(100점 만점에 92.88점), 사회봉사 영역에서 35점 만점에 35점(100점 만점에 100점), 시설설비영역에서 100점 만점에 95.01점, 재정경영 영역에서 100점 만점에 91.2점으로 우수대학으로 인정을 받았고, 교수 영역에서는 80점 만점에 71점(100점 만점에 88.75점)을 얻어 대부분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하면 우리 대학은 총 500점 만점에 469.68점(100점 만점에 93.94점)을 기록해 18개 일반 대학교 가운데 상위 3개 대학교 안에 포함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오랜 기간 동안 자체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매년 자체평가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교육목적과 교육과정 개선, 우수 교원 확보 및 교육시설의 확충, 행정업무의 전산화 등 외형적 평가지표 관리와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추진해 왔다. 특히 대학종합평가에 앞서 우리 대학은 기숙사를 신설하였고, 도서관 공간확대, 장서구입 예산확보, 교수엽적 평가제 도입, 학술연구기금 조성, 교내 연구비 지원, 사회교육원의 활성화, 학과 흠페이지 제작 등을 추진하여 내실을 기해왔다더욱이 우리 대학은 1990년부터 우수 교수 확보를 대학발전의 최대 과제로 삼아 평가가 있었던 1999년까지 매년 10명 이상의 우수한 신임교수들 초빙했고, 전자정보관 개관, 학생서비스센터 설치, 전산망 구축 등 교육환경 개혁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왔다 나아가 우리 대학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선도해 나갈 창의적 사고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인재를 양성히는 미래형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1999년 수렴한 중장기 발전 계획안은 우리 대학의 발전성에 대한 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교육시설 분야에서 교수회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별관의 건립계획과 예술대학을 최고 수준의 도심형 예술대학으로 특성화하기 위한 청사진의 준비 등은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학사개헥위원회를 구성하여 교과과정 개선작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은 21세기가 요구하는 대학교육 혁명을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뛰어난 추진과제로 평가 받았다.
1999년도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것은 대내외적으로 우리 대학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카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한성의 구성원들에게 ‘작지만 얄잔 대학’이라는 긍지를 심어 놓았으며, 나아가 21세기를 선도할 명문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더욱 분발히는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4.3.5 이사회 구성의 변동1997년 말에 발생한 학내 분규 사태로 학교법인 한성학원의 서정희 이사를 비롯한 11명의 이사진이 1997년 12월 22일 사임하면서 교육부에서 파견된 입시이사체제로 들어갔다이성근 총장이 부임하기 전 제 14대 박병호 이사장(1998년 1월 15일 취임), 제15대 차인석 이사장(1998년 7월 6일 취임) 체제로 존속해 온 임시이사회는 1999년 8월 개정 공포된 사립 학교법에 명시된 임시이사의 임기는 2년에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고 기존 임시이사의 임기는 12월 31일자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1999년 12월 31일 자로 차인석 이사장 등 6명의 이사가 교체되었고, 김민하 이사 등이 새로 파견되었다. 2000년 1월 22일 이사회는 제16대 이사장으로 김채윤 이사를 선임하였으며, 2001년 8월 김채윤이사장이 사엄함에 따라 전 상지학원 이사장 이상희 이시를 새로 영 입하여 8월 22일 제17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한편 2001년 12월 31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이영수 이사를 비롯한 6명이 퇴임하고 손봉호 이사 등 6명이 새로운 임시이사로 파견되었다.
2002년 8월의 이사진과 감사진은 다음과 같다.이사장 이상희(서울대 명예교수, 전 상지학원 이사장)이사 강무섭(직업능력개발원 원장)이사 서동구(전 한국언론재단 부이사장)이사 이태형(전 호남대 총장, 국제교과서 연구소장)이사 장회익(서울대 교수)이사 손봉호(서울대 교수)이사 김삼웅(대한매일신문 주필)이사 박재권(변호사)이사 박은정(이화여대 교수)이사 윤지희(참교육학부모회 회장)
이사 한상진(서울대 교수, 전 한국정신문화원장)감사 정상용(변호사)감사 홍기택(공인회계사)4.3.6 변화하는 한성대학1) 우수교수 확보종합대학으로 승격된 후 학교의 규모가 커지게 된 90년대에 우리 대학은 거의 매년 우수 교수들을 대대적으로 임용하여 왔다 1998년 입학정원이 1,230명에서 1,620명으로 390명이나 파격적으로 증원되면서 교수 충원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하였고, 이에 따라 이성근 총장 재임기간 동안 외국인 교수를 제외하고 29명의 신임교수가 임용되어 한성의 새 식구가 되었다.연도별로 보면, 1999년 9월 1일 정보전산학부 이항찬 교수를 포함하여 3명, 2000년 3월 2일 부동산학과 안정근 교수를 포함하여 8명, 2001년 3월 1일 경상학부 노재확 교수를 포함하여 7명, 그리고 2002년 3월 1일 경영학부 오경주 교수를 포함하여 11명이 각각 신규 임용되었다. 단과대학으로 구분하면, 이공대학에 14명, 사회과학대학에 9명, 예술대학 미디어디자인학부에 4명, 교양학부에 2명의 분포를 보인다 이는 이공대학과 사회과학대학에 교수임용이편중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1999년 교수확보율을 증진하기 위해 겸 임교수제도를 채택하였고 2002년 8월 59명의 겸임교수를 확보하였다. 겸임교수들은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전공 관련 기관에 근무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실무능력을 겸비하여 다양한 형태의 고급 교육 제콩에 큰 역할을수행하였다.전체 전임교원 수는 외국인 교수를 포함하여 1998년 152명에서 2002년 8월 169명으로 늘어났다. 우수교수 확보는 대학발전의 기본이며 이는 우리 대학이 앞으로도 계속 견지해 나갈 방침이다.2) 벤처창업지원센터 개관
우리 대학은 산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지역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성북구의 벤처창업을 지원하기로 하고, 2000년 5월 31일 ‘성북벤처창업지원센터 및 중소기업제품 전시장’을 개관하였다. 개관식에는 이성근 총장, 진영호 성북구청장을 비롯한 150명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우리 대학이 위탁 관리하게 되는 벤처창업지원센터는 성북구 장위동 65-154 에 위치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 총 연면적 1,376㎡(416평) 규모로 총 19개 엽제, 중소기업제품 전시판매장, 부녀교실 등이 입주하였다.개관인사에서 진영호 성북구청장은 첨단기술의 요람인 창업센터를 건립하게 된 것이 시의적절하고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으며, 이성근 총장은 축사를 통해 창업센터를 통해 훌륭한 기업이 나오도록 꾸준히 지원할 것이라 피력하였다.벤처창업지원센터는 2001년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창업보육기관에 선정되었다. 2001년 중소기업청은 창업촉진을 위한 기본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취지로 창업보육센터34개를 신규 지정하고 총 218억원을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2001년 2월에 지정을 신청한성북구·한성대학교 벤처창업지원센터는 서울지역에서 신청한 6개 기관들 가운데 최우수 성적으로 창업보육센터로 지정 및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성북구·한성대학교 벤처창업지원센터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시설자금으로 총 8,000만 원을 지원 받았고, 이와 별도로 서울시로부터 5,000여만 원에 해당하는 시설자금 등 총 1 억3천여만 원의 시설비 지원을 받았다. 또한 성북구·한성대학교 벤처창엽지원센터가 창업보육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입주업체들에게는 대외적 홍보 및 기술개발 등을 위한 자금신청 시 타 지역의 미 지정 창업보육기관에 입주한 업체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나아가 본 센터는 성북구의 이미지 제고와 지역발전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2001년 7월 27일에 시작된 창업강좌에는 무선인터넷 분야의 기업 및 인력 육성과 지원을 위한 과정에 80명이 참가하여 교육을 받았고 총 712만 원의 강좌지원이 이루어졌다 이 행시을 통하여 교육생들은 첨단 기술 분야인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한 지식 및 인력수급에 큰 도움을 받았고 외부 엽체들과의 엽무협력에 있어서도 많은 효괴를 누리게 되었다.3) IT(lnformation Technology) 의 중심부로 발돋움한 한성대학
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2002년 해외 우수 IT교육기관 파견·교육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었다. 2002~2003년 해외 IT 연수에 선발된 40명은 인도 뱅갈로에 위치한 전문 IT 교육기관 STG(Software Technology Group) 시를 교육 파트너로 하여 1년간 교육받았다. 교육과정은 IT 기본과정과 영어교육, S/W 프로그래밍, 국제공인 자격증 대비 과정 등의 교육을 받게 된다.4)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1) 외국 대학과의 자매결연 체결2000년 3월 9일 일본 상반대학교 국제학부 2학년 학생 20명이 문화탐방과 학생교류를 통해 %댁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우리 대학을 방문했다 이들은 우리 대학 학생들과 함께 ‘한일 협력에 관하여’라는 주제 하에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경제발전에관한 세미나를 열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 해 11월 7일 총장실에서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소재한 코핀 (Coppin) 주립 대학과의 자매결연이 체결되어, 양 교는 교환학생, 교환학점, 교환교수제 등에 합의를 이루었다2001년 2월 27일에는 일본 하기국제대학과의 자매결연이 이루어졌다. 우리 대학에서는 이성근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하기국제대학 측에서는 타시로 타까히데 학장, 무라까미 하야오 도서관장, 권순진 국제학과장이 배석한 이 자리에서 양 교는 학생 및 교직원 교류, 공동연구, 학술·정보물의 교환 등의 학술교류협정에 동의하였다.(2) 외국 저명인사 명예박사학위 수여1999년 10월 17일 소강당에서는 헬무트 슈미트 (Dr. Helmut Schmidt) 전 독일 수상의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슈미트 박사는 학위수여식 이후 ‘ 21세기 세계인의 윤리와 의무’라는 주제로 기념특강을 하였다.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50주년 기념 한국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한한 슈미트 박사는 이성근 총장의 초청을 흔쾌히 수락하였고, 명예박사 학위수여는 EC 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그의 공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2001년 5월 8일 소강당에서 전 네덜란드 수상 Andreas Van Agt의 명예 행정학 박사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네덜란드 법무부 장관, 부수상, 국가의회 의원, 수상 등 화려한 정치경력과 주일본 및 주미 EC 대사, 도쿄 UN 대학 국제통치학부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협력에 큰 역할을 수행한 공로를 인정하기 위한 학위수여식에서 그는 ‘The Successes and Failures of Europe's Efforts at Integration, in Particular the European Union's External Relations’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하였다.5) 3,700명의 인재배출1999년 전기부터 2002년 전기까지 총 3,712명의 학부학생들이 우리 대학을 졸업하였다. 연도별로 보면, 1999년 (23회 졸업)에 792명, 2000년 (24회)에 888명, 2001년 (25회)에 999명, 그리고 2002년(26회) 전기에 1,033명으로 해가 거듭할수록 입학정원이 늘어나면서졸업생의 수도 함께 증가하였다.
졸업생들은 비교적 높은 취업률을 보여 왔다 2001년도 2월 졸업생의 경우, 대학원 진학자와 군입대를 제외한 취업대상자 889명 중 502명이 취업하여 순수취업률 56%를 기록하였다. 이는 2001년 3월 7일 교육인적자원부와 취업전문기관에서 밝힌 2001년 전국 170여 개 4년제 대학교 졸업생의 평균 순수취업률 53% 보다 3% 높은 수치였다. 각 단과 대학별 취업률을 보자면, 예술대학이 159명 가운데 107명 (67%) 로 가장 높은 취업률을 나타냈고, 이공대학이 297명 중 180명 (61%), 사회과학대흐H부동산 전공 제외)이 236명 중 127명 (54%), 그리고 인문대학이 197명 중 88명(45%) 의 수치를 보였다.6) 내실을 다진 중앙도서관2003년 신축 건물로의 이전을 앞두고 있는 도서관은 다%댄f 경로를 통하여 내실을 기해 왔고 또한 이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1999년부터 매년 독서의 탈을 맞이하여 정보검색대회, 다독왕 선발대회, 저자와의 만남, 외국학술도서 전시회 등 다채로운 도서관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지식 제공의 공간인 도서관 이용확대를 적극 권장해 왔다.
2000년 11월 13일에는 국회도서관과 정보공유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교수와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정보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정보의 민주화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성사된 이 협약에 따라 우리 대학의 모든 구성원은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내 석·박사 학위논문, 학술지, 정부간행물에 대한 디지럴 원문검색과 출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국회도서관과 협약을 체결한 다른 모든 도서관과의 정보 공유도 가능해 졌다.이와 같이 적극적 변신을 모색해 온 도서관은 2001년 3월 30일 제 33 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국내도서관 발전에 노력하고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사립대학교 도서관협회의 추천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도서관은 1996년 5월 10일 국내대학으로는 최초로 미래형 전자도서관인 전자정보관을 개관했고, 그 후 많은 대학 및 공공 전문도서관의 관계자들이 방문하여 시설운영 및 서비스 현황 등을 견학할 정도로 첨단 도서관의 모델로 인정받아 왔다 전자정보관은 전자정보검색실, 교육매체제작실, 종합영상음향실, V.O.D 실, 위성통신 수신실 등으로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7) 학군단 129-1 학군단으로 승격2000년 12월 27일 학군단이 독립적인 위상을 갖춘 129-1 학군단으로 승격되어, 129-1 초대 학군단장으로 김득증 중령이 취임하였다. 각급 부대에서 근무했고 고려대학 학군단 교수부장을 역임한 신임 김득중 학군단장은 정통 학군단 출신으로 “눈빛이 살아 있고 기가 넘치며 강인한 체력을 겸비한 조국과 꾼이 필요로 하는 정예 초급 장교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새로 거듭난 학군단 초대단장으로서의 취임 포부를 밝혔다.학교의 규모가작아그동안 인근의 국민대가관장하는학군단으로존속해 왔던 학군단은 이제 모든 업무와 행정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8) 제 증명서 인터넷 발급 및 전송서비스 개시학생들의 모든 민원사항을 한 곳에서 해결하는 One-Stop Service 를 실시해 온 학생종합서비스센터는 2001년 8월 24일 (주)아이디씨텍과 공동으로 인터넷 제증명 발급 및 전송 시스템 개통식을 갖고 온옹라인 서비스들 개시했다. 새로이 시작된 이 서비스를 통하여 각종 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졸업생과 재학생은 인터넷으로 신청하여 개인 프린터를 통하여 증명서를 발급 받을 뿐만 아니라 e-mail을 통하여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지하철역의 유인 PAST, 공공장소에 설치된 KIOSK(무인종합정보안내시스템) 등을 통해서도 모든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의 시간 절약과 편의 증대에 크게 공헌한 이 서비스는 수요자를 위주로 하는 정신의 발현이며, 이러한 정책은 대학 당국에 의해 가속화될 전망이다
5. 변혁기
5. 변혁기
5.1 특성화모색기, 제4대 한완상 총장 시기(2002. 10. 14. ~ 2004. 12. 15.)5.1.1 한완상 총장 취임1) 창의성이 존중받는 대학으로의 전환, 한완상 총장 취임2002년 10월 14일 한완상 박사가 제4대 우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한성학원 이사회(이사장 이상희)는 이사회에 추천된 4명의 후보 중 한완상 전 부총리를 차기 총장으로 선임하였다. 한완상 총장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고 1993년 초대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에 발탁되어 한국방송통신대, 상지대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 초대 교육부총리를 역임하였다.
한완상 총장은 이 해 10월 15일 취임식에서 ‘총점이 아닌, 창의성이 존중받는 대학으로서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우리 학교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고 우수한 산업인력 육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특성화 계획은 한국학 연구의 활성화, 도섬형 예술대학의 육성, 경영 및 정보화 지식에 기반한 전문 인력의 양성이라는 3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작지만 알찬 대학”으로서의 방호t을 제시하였다. 우선, 창조적이며 상상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여 인문학적 통찰력과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산업디자인과 미디어디자인분야를 집중 육성하여 도심형 예술대학으로 자리매김을 강조하였다.한완상 총장이 취임하면서 총장후보자 3인 중 한 명이였던 윤경로 교수를 교무처장에, 또 다른 1인이었던 이종수 교수를 대학원장에 임명하고 기획연구처장 최용식 교수,학생처장에 이재득 교수, 총무처장에는 당시 총무처장이던 김길평 교수를 신축건물이 완공될 때 까지 유임시카고, 대외협력실장에 한정수 교수를 임명하였다.· 2003년 3월 대외협력실은 입학과와 통폐합되어 입학홍보처를 신설함에 따라 대외협력실장이던 한정수 교수를 입학홍보처장에 임명하였다.
2) 제 18대 손봉호 이사장 취임2003년 8월 이상희 이사장이 MBC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가자 제 18대 이사장에 손봉호 박사가 취임하였다. 손봉호 이사장은 우리 대학 학생들의 자기개발과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교육환경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3) 『한성대학교 30년사』발간건학 30주년을 맞이하여 그 동안 대학운영에 관련된 사료 및 자료들을 수집하여 『한성대학교 30년사』를 발간하였다. 『한성대학교 30년사』는 윤석효 교수를편집위원장으로 하여 5명의편집위원이 우리 대학의 역사 자료집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우리 대학의 발전과정과 새 방향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모두 5편으로 구성되었다. 제1편은 한성대학교 설립배경과 교육이념, 제2편은 형성기 (1972년~1981년), 제3편은 성장기(1982년~1992년), 제4편은 발전기 (1993년~2002년), 제5편은 21세기 한성대학교 모색기(진입기 2002년 8월 1일 이후)로 구분하여 총장시대별 주요 사건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이 중 『한성대학교 20년사』이후 우리 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10년간 학과의 증과와 증원, 신규교수 채용, 교사확장 등 대내적인 성장과 함께 대외적으로 학교의 이미지 개선 및 홍보활동 등에 있어 괄목한 성장을 이룬 내용에 가장 역점을 두어 다루였다. 부록에는 연혁, 졸업생 현황, 재직교수 및 교직원 명단, 보직자 명단, 연도별 졸업생 현황 등이 수록되었다.
5.1.2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 위한 기반 마련
1) 안정속의 변화 모색(1) 미디어디자인학부 증원과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로 명칭변경2002년 9월 교육인적자원부에 제출한 ‘2003학년도 정원조정안’ 중 미디어디자인학부 인원 증원계획이 채택됨에 따라, 2002년 10월 25일 열린 교무위원회에서 2003년부터 신입생을 20명 증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교무위원회는 “현 시대적 흐름에 맞게 전공명칭을 새롭게 바꿔달라”는 학과의 요청에 의해 미디어디자인학부와 정보공학부의 전공명칭의 변경을 결정하였다. 그 당시 미디어디자인학부는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출발하여 사회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적극적 수용이라는 컨셉으로 미디어디자인학부로 확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보다 최신의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21세기 문화대국 안에서의 역량있는 전문 디자인너를 배출할 수 있는 디자인교육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미디어디자인컨댄츠학부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는 기존 입학정원이 주간 80명, 야간 40명인데 2002년, 2003년에 각각 주간 정원을 20명씩 증원하게 되어 2003년에는 주간 120명이 됨에 따라 야간 정원 40명은 폐지되었다.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의 증원 및 폐지내용은 아래와 같다.〈표 18>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의 입학정원의 증원 및 폐지
변경전 변경후
학부명칭의 변경에 따라서, 미디어디자인컨텐츠 학부내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 전공은 비쥬얼컨텐츠 디자인 전공으로 인테리어디자인 전공은 스페이스컨텐츠디자인
전공으로, 팬시프로덕트디자인 전공은 프로덕트컨텐츠디자인 전공으로 바뀌었다 교육 과정 또한 캐릭터, 애니메이션, 게입, 출판, 이벤트 및 태마파크 디자인, 온라인 오락, 모바일, 웹 디자인 등을 포함하여 대폭 개편되었다. 정보공학부 정보시스템공학 전공은 소프트웨어시스템 전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창조성과 상상력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학생 선발 기준전문화된 사회에서 학생들의 적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창조적인 끼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 육성하고자 하는 우리 대학의 노력은 입시제도에도 반영되었다 2004학년도 선입생 모집에서 예술대학은 국내 최초 실기 100% 반영이라는 새로운 입시 제도들 도입하였다. 이는 예술 계열 신입생 선발기준에 수능점수는 반영되지 않고 동점자 처리 시에만 적용하는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다.2004학년도 정시 신엽생 모집 원서접수는 2003년 12월 10일부터 15일까지 5일 동안 인터넷 100% 접수로 우리 대학 방문 없이 어느 곳에서나 간편하게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우리 대학은 「가」군과 「다」군으로 모집하며 「다」군에서는 예술계열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만 모집하며 「가」군에서는 나머지 일반전형 및 특별전형을 모집하였다. 모집유형은 일반학생, 취업자, 농어촌학생, 실업계고교 출신자 전형이 있으며, 인문/자연 계열은 수능 60% 학생부 40%를 반영하며, 교차지원도 가능하였다.
(3) 학제 면제2005학년도 우리 대학은 기존의 사회과학대 정경/경상학부, 공과대학 컴퓨터공학/정보공학/산업및기계시스템공합부를 분리하여 학과로 전환하는 학제편제가 있었다. 그동안 운영되어왔던 학부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 명목상의 학부제로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소속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부 분리안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경학부는 행정학과, 경제학과로, 경상학부는 무역학과, 부동산학과로, 컴퓨터공학부는 멀티미디어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공학부는 정보통신학과, 정보시스템공학과, 산업및기계시스템공학부는 산업시스템공학과, 기계시스템공학과로 분리되었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에 있어서 선택권은 기존의 전과제도, 복수전공, 부전공 등을 활성화함으로써 보장토록 하였다. 2005학년도 변경된 학제편제 내용은 〈표 19> 와 같다.〈표 19> 2005년도 학제편제
학과 입학정원(명) 변경 내용
2) 디지털리안을 위한 교육시설, 제도
(1)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 설립한완상 총장의 취임 이후 우리 대학의 학력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대신 ‘주문형 커리큘럼’을 통해 우수인재를 배출한다는 ‘작지만 알찬 대학’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왔다.2003년 우리 대학은 국내 처음으로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을 석사과정 및 전문가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특수대학원으로 설립하였다.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은 국내 최초의 중소기업 특화 대학원으로 대부분의 경영대학원 교육체계가 대기업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중소기엽 혁신을 위한 디지럴경영의 연구 개발과 교육을 통한 우수한 벤처, 중소기업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아래 개설되었다. 초대원장은 엄종석 교수가 맡았으며, 디지럴중소기업대학원의 교수진은 아래와 같다.
〈표 20>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 교수진
교수명 직위 학위 전공분야 연구지도분야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은중소기업체 임직원, 정부투자기관 등 중소기업 지원 유관기관과 중소기업 컨설턴트,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사이버(Cyber) 강의와 주말 강의 위주로 교육 수요자의 시간 관리를 최적화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중소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데 역점을 두고, 실무와 연계된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 및 포럼을 개최하였다.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은디지털중소기업경영학 석사(MBA) 및 디지털응용기술석사 학위과정으로 구성되었으며, 교육과정은 아래와 같다.
<표 21>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 교과내용
공통필수
교과구분 교과목 학점 시간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2003년 이래 5년 연속 ‘중소벤처기업 CEO 경영혁신 아카데미 지정대학’이 되었고, ‘중소벤처창업지원 전국 최고 우수대학원’, 기술창업 대학원 서울 대표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디지털 IT 분야의 중소기업 대학원’으로 대내외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2) 미래 정보화를 위한 학술정보관 신축과 활동
2003년 10월 우리 대학 도서관은 972석의 열람석을 보유한 3,597평 규모의 미래관 건물로 이전하고 학술정보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술정보관은 신축도서관 개관과 함께 RFID 기반의 디지털 장서관리 시스템을 대학 최초로 도입하고 2003년 11월 25일 학술정보관 디지별 장서관리 시스템 개통식을 Digital Learning Center 에서 가졌다 이날 정호영 국회도서관장은 “디지털도서관의 오늘과 미래”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하였으며, RFID 시스램 도입에 공로가 큰 한국 3M 대표이사(Joaquin Delgado) 와 와이즈 네스코 대표이사(백종석)에게 공로패를 수여하는 행사가 이루어졌다.국내 대학 최초로 RFID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학술정보관은 그 동안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어 도서관에 부담을 주어 왔던 장서점검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에 RFID 태그를 부착하여 무선으로 동시에 여러 개의 장서를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어서 장서점점을 용이하게 할 수 있으며, 도서관의 대출과 반납 업무를 개선할 수 있다. 따라서 자료검색, 참고 봉사 등 이용자 서비스에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학술정보관은 지문인식자리배석시스템을 새로이 도입하고, FOL(Friends ofLibraly) 제도를 시행하여 지역사회에 도서관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지역사회 도서관 서비스 개방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었다.
2004년에는 학술정보관에 서고소독제를 설치하여 유해미생물(진드기, 책벌레, 곰팡이)로부터 장서를 보호하고 이용자들의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여 쾌적한 열람환경을 유지토록 하였으며, 열람테이블 및 열람좌석을 추가 설치하였다. 또한 학술정보관은 홈페이지 개편을 비롯하여 원문정보제공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본격적인 디지털 도서관으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기존의 학술정보관 흠페이지를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각종 웹서비스 및 타도서관 열람증 발급, VOD시스템을 추가하여 웹 프로그램으로 재구축하였다. 원문정보 제공시스템은 기존의 TRS시스템에서 제공되었던 Tiff화일 형식의 원문을 PDF 화일로 변환하여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의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3) 국제 경쟁력 강화
(1) English Zone 운영과 Hansung English Fall Festival 개최2004년 영어경쟁력의 획기적인 향상을 위해 캠퍼스 내 24시간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English Zone을 운영하였다. English Zone은 학생들이 24시간 영어환경에 노출되어 영어만을 시용하며, 외국인 강사가 학생들이 영어로 다OJ한 활동을 하면서 영미문화권의 생활을 익히고 영어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2004년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매주 수요일 ‘Hansung English Fall Festival ’을 개최하여 각종 게임을 통해 영어 설력을 향상하도록 하고, 교양학점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등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었다.(2) 대내·외 교류 확대를 통한 대학 정쟁력 강화
우리 대학은 2003년 12월 공군본부와 학군교류 협정식을 갖고 교류합의서를 작성하고, 학군 협동 프로그램 운영(석사과정, 학부과정, 연수과정), 강사 지원 등 인적자원의 상호 교류, 자료, 출판물 및 정보 상호 교환, 기타 양 기관의 발전을 위하여 협력이 펼요한 사항 등에 대해서 협약을 체결하였다. 공군본부와 학군교류 협정은 군위탁생의 우리 대학 특수대학원 입학을 적극 유치하고 대외교류를 보다 활성화하는데 취지가 있었다.이 해 4월과 12월에는 각각 건국대학교와 국방대학교와 학술교류를 통해, 교직원 상호 교류, 학생교류 및 상호 학점 인정, 공동연구 및 학술회의 개최, 학술정보 및 출판물의 교환, 행정정보의 교환, 교육 연구용 기자재 및 시설의 공동 사용 등의 협정을 체결하였다.국내 대학 뿐 아니라, 우리 대학은 이 해 12월 중국 북화대학교와 장춘 세무대학교와 서로 신뢰, 이익을 기초로 하는 교육 교류 협력 강회를 위한 학술 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우리 대학의 학술정보관은 이 해 4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π)와 학술정보 공동활용 협정을 체결하고, 양 기관간이 소장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 데이터베이스 상호 이용을 통해 정보 이용의 효율을 꾀하고 정보 교류와 정보자료의 교환 및 상호협력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다.4) 행정체계의 개선
(1) 종합행정실 설치한완상 총장이 취임하고 나서 행정효율회를 통한 대학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으로 행정서비스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12월에 우촌관 3층에 원스톱 시스템 공사가 완료됨으로써 본격적인 행정 업무의 일원화가 실시되었다. 수업지원과, 교무과, 학생지원과, 입학과, 총무과가 우촌관 3층 종합행정실로 통합됨에 따라 행정의 간소화로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학생은 원 스톱시스템을 통해서 휴 복학, 교과 과정 문의,편입학 관련 엽무 등을 한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행정엽무 또한 종합행정실로 집중하게 되었다.2003년 1월부터 6월까지 5개월간 실시한 행정부문에 대한 ISO 9001 인증 절차 및 직무 분석을 통한 행정서비스의 강화, 대학 환경 변회에 따른 행정체계의 개선으로 팀제 도입, 나아가 행정지원 극대회를 통한 고객만족도 지수의 향상을 가져오도록 하기 위한 행정서비스현장 선포 등이 연달아 이루어졌다. 2003년 2월 고객 만족을 위하여 학생처 산하에 있던 행정서비스센터를 종합행정실로 확대 개편하여 입학에서 졸업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학생들의 각종 행정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우촌관 3층에 마련하였다.(2) ISO 9001 인증
급격히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강화전략 실천계획의 일환으로 품질 경영체계를 도입하기 위하여 ISO 9001 인증 절차를 거쳐 2003년 7월 1일 ISO 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ISO 인증이란 국제표준화기구(ISO) 에서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에 관한 국제규격에 의거하여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나 기업의 품질경영 및 품질 보증 능력을 평가하여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준비기간 5개월의 단기간에 대학 핵심 행정가능에 대한 직무분석, 표준화 업무 시스탱 개선 등을 통하여 ISO 요구 사항을 충족시카고 주요 대학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절차의 표준화가 달성되었음을 의미한다.(3) 팀제 도입한국생산성 센터에 의뢰한 직무분석 결과에 따라 조직설계차원에서 팀제를 도입하여기존의 과 체제를 팀 체제로 전환하는 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하게 되었다. 팀제제도는 경직된 행정조직을 유연한 조직으로 개편하여 급변하는 사회·교육환경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조직으로 변화하기 위함이다. 2003년 8월 12일 이사회가 이러한 취지를 받아들여 대학 행정조직을 팀제로 전환하는 정관 개정을 의결하였다.
팀제는 직급과 직책을 탈리하여 직급은 현행과 같으나 직책은 팀장과 팀원 2단계 구조로 하여 결재단계를 줄여서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빠르게 한다. 팀원의 업무가 상하에서 수평관계로 분화되어 팀원간의 공동책임과 경쟁을 유도 하고 지율적 업무수행을 도모함으로써 직무 만족도를 제고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 품질 향상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팀제 전환에 대하여 직원노조는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졸속적으로 이루어진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이라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학교 측은 오래 전부터 직원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조직개편의 필요성을 지적하였으므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에 노조는 9월 2일 행정권 확립을 위한 투쟁 선포식을 개최하여 대학행정의 지율성과 행정조직 개편 등을 결의했으나 결국 팀제의 전환을 받아들이게 된다.
2004년 l월 19일 이루어진 팀제 개편에 따르면 기존의 17개의 과 체제는 16개의 팀으로 변경되었다. 시설과와 관리과가 시설지원팀으로 통폐합되고 연구지원과를 폐지하고 그 업무를 교수지원팀과 신설된 산학협력단으로 이관하는 등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팀제제도에 따른 행정부서의 변경 내용은 아래와 같다.<표 22> 팀제제도 도입에 따른 행정부서의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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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창의력, 상상력 교육 지원 사업 성과
1) 한성대 외식창업동아리 제 1 호 오픈우리 대학의 경영대학원 호댈관광외식경영학과는 2003년 10월 학생중섬의 창업통아리를 발족하고, 2004년 3월 6일 외식창엽연구소를 창설하여 4월 6일 창업 1 호점인 ‘참벼루 삼겹살을 오픈하게 되었다. ‘참벼루 삼겹살J은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l 가 62 번지(삼선교대로 녹십자약국 길 건너편 30평 규모)에 위치하며, 돼지고기 삼겹살이 주된 메뉴이다. 참벼루 고기구이판은 무쇠가 재질인 벼루모양의 구이판으로써, Scm 두께로 되어 가열된 온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았으며,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기름이 튀는 위험을 없앨 수 있게 하는 것이 특정이다. 창업동아리는 변하고 있는 창업시장에서 우리 대학만의 노하우, 열정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청년창업자를 육성하고자 하는 학교의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 대학만의 특성화된 학생들의 창업지원 제도로 정착되었다.2) 산학연 사업 추진
(1) 산학연 공동기술 연구 프로젝트와 산학협력단 설립우리 대학은 2002년부터 ‘산학연(산업체, 대학, 연구기관) 공동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여러 산업체들과 함께 12개의 기술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의 우리 대학의 산학관련실적과 사업추진의지 등 심사기준을 통과하여 산학연 19개 학교 중 하나로 선정되게 된 것이다. 산학연사업은 참여하게 된 교수들과 학생들의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향후 2006년 대학평가 때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산학연 프로젝트를 담당하기 위해 산학연 컨소시엄센터가 설립되었으며, 2002년 4억 원의 지원금으로 총 12개 업체와 공동 연구과제를 이끌었던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프로젝트 당 3천만 원씩 총 3억 원의 자금으로 10개 업체와 연구개발을 수행히는 쾌거를 이루였다. 2003년에 우리 대학은 중소기업청에서 주최하고 중소기업 정보화 경영원에서 주관한 ‘중소기업 정보화 리더스 아카데미’의 교육 기관으로 산학연 참여 19개대학교 중 고려대학교와 함께 선정되었다. 정보화 교육기관으로의 선정은 우리 대학이 산학연 프로젝트를 적극 운영하여 실용연구에 앞장서는 젊은 학교로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였다.
2004년 3월에는 본격적으로 연구의욕 고취 및 분위기를 확산하며 산학연관의 통합 산학협력 네트워크 구축하기 위해 산학협력단이 설립되었다. 산학협력단이 설립된 이후, 이 해 3월 청년채용패키지사업(중소기업청)에 선정되고 연속으로 6월 중소기업청 산학연 공동기술 개발 컨소시엄사업(중소기업청)에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2) 산학교류협정 체결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2002년 11월 다산 E&E와 산학교류협정을 제결하였다. 산학교류협정은 우리 대학과 다산 E&E가 상호 협력하여, 국가 인적 자원관리의 한 영역인 대학생들의 올바른 사회진출을 연구, 실천함으로써 상호 발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산 E앓는 우리 대학의 취업업무와 관련하여 2001년 12월부터 취업 및 창업 학교운영과 개개인에 대한 상담, 취업정보망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산학교류협정을 맺음으로써 취업 등 사회 진출을 위한 교과목의 운영, 학생들의 개인 경력개발을 위한 상담활동, 전산망 내용 제공 및 업그레이드, 학생들의 사회 진출 서비스 기능 강화를 위한 제안 및 상담, 사회진출을 위한 특별 행사 기획 및 운영, 기타 상호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 등 유용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다.
3) 한성대학교 기반 확장(1) 해외어학 연수단 파견학생들의 국제적 역량을 강화시키고 경험을 넓히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해외어학 연수단 파견은 한완상 총장 재임기간 동안 보다 활성화되었다. 2004년 1월에 2003학년도 동계 학생 해외어학 연수단이 파견되었으며, 그해 6월에는 2004학년도 하계 학생 해외어학연수단으로 그 참여인원이 대폭 확대되어 미국, 뉴질랜드,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파견대학과 참여 내용은 아래와 같다.<표 23> 2003~2004학년도 해외어학 연수단 파견
구분 기간 파견대학 참여인원 지원내용
(2) 한성엠버서더 “유학생 제1회 한국문화탐방” 개최와 홍보활동
‘한성엠버서더’는 우리 대학으로 오는 해외 유학생들의 학교생활 및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돕고 더 나아가 해외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한 우리 대학의 유학생 도우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4년에 처음 도입한 사업으로 외국인 및 재외국민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우리 대학에 입학한 외국인 및 재외국민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많은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홍보하기 위하여 중국 유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한성엠버서더는 우리 대학에 입학한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이탈을 방지하고 학업을 보조하여 외국 유학생들의 우리 대학 만족도를 높입으로써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활성회를 목적으로 그 사업이 확대되었다.2004년 3월 처음 계획하여 5월 최종 3명의 1기 한성엠버서더를 선발하여 운영하고, 2 기는 학부 유학생, 교환학생을 도움 대상으로, 3 기부터는 한국어과정 외국인 학생을 도움 대상으로 하여 그 활동 범위를 점차 확대하였다. 학부과정 유학생 위주로 한성엠버서더(외국인유학생 도우미)를 선발 운영한 결과 도우미 운영이 필수적이고 한국어과정 유학생 수가 많아짐에 따라 3 기는 인원을 확대 선발 운영하게 되었다.한성엠버서더는 2004년 5월 15일 중국유학생과 함께 제1회 한국문화탐방 행사를 개최하였다. 한국문화탐방 행사는 우리 대학 재학 유학생의 한국문화 이해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마련되었으며,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매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한성엠버서더의 한국문화탐방행사는 장기적으로는 우수한 해외 유학생 모집과 국제교류를 통한 재학생의 국제적인 마인드 함양을 목적으로 하였다.
행사일시 ‘ 2004. 5. 15. (토) 9:00~19:00탐방장소·한국민속촌(경기 용인)참여자 중국유학생 (3), 한성엠버서더 (3), 홍보교류팀(1)주요탐방코스 각지방민가, 관아, 전통혼례식장, 도깨비집, 박물관, 민속관, 장터2004년 5월 17일 국제교육진흥원에서 한국어교육과정을 수학하고 있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 학생’ 18명이 대동제 기간에 우리 대학을 방문하였다. 일본, 멕시코, 우즈벡, 아르헨티나, 러시아, 브라질 출신의 학생들은 우리 대학 입시설명회 및 홍보 프레젠테이션 참가에 이어 우리 대학 홍보도우미 및 유학생 도우미(엠버서더)와 함께 대동제에 참여하였다. 홍보도우미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 학생들에게 각자 준비해 옹 언어로 인사 또는 학교 소개와 홍보를 함으로써 한걸음 더 친근하게 다가갔으며, 중국인 유학생은 학교적응과정의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었으며, 한성엠버서더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또한, 학교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어떠한 활동을 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의 하일라이트로 홍보도우미는 그동안 갈고 닦은 장기자랑(노래, 춤, 마술)을 뽕내였으며, 중국인 유학생(엠버서더)은 중국 의상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입혀주며, 손수 만든 양고기와 술을 건네주는 등 외국인 학생들과 하나가 되는 따뭇한 시간을 가졌다
행사일시 : 2004. 5. 17외국인, 재외국민 우리 대학 탐방국제교육진흥원에서 한국어교육과정을 수학하고 있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 학생 18명 대동제 기간에 우리 대학 방문일본,멕시코,우즈벡,아르헨티나,러시아,브라질
우리 대학홍보도우미한성엠버서더는 본교 학생들에게도 외국문화와 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입학한 외국인유학생들이 이탈하지 않고 우수한 학업성괴을 거두어 궁극적으로 외국인 유학생 입학 유치에 도움이 되었다. 이 제도는 현재까지 한국어과정생 도우미로서 멘토링 제도를 이용하여 유학생과 학부생의 1:1 매칭 적응도움을 주고 있는 활동으로 지속되고 있다(3) 지역사회와의 연계우리 대학은 성북경찰서와 문화, 정보, 지역사회 개발 등 각 분야의 긴밀한 교류, 협력을 통하여 지방자치시대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상호 우호 증진과 공동발전을 위하여 2003년 2월 28일 우리 대학 총장실에서 교육, 어학, 문화·예술, 정보화와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지역 주민의 교육 기회 제공, 지역사회 봉사 활동, 지역사회발전 및 국제화, 그라고 양 기관의 발전과 우호 증진에 관한 사항에 대해 협약을 체결하였다.
우리 대학은 또한 2003년 12월 16일 공군본부와 학군교류를 협정 체결하고, 군위탁생의 우리 대학 특수대학원 입학을 적극 유치하고 대외교류를 보다 활성화하였다.(4) 명예박사 수여2004년 1월 16일에 우리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있었다. 미래관 Digital Learning Center 에서 내·외빈 3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이 거행되었다. 남북경협사업의 물꼬를 튼 공로로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이 명예경영학박사학위를 수여하였고, 저명한 타악기 연주자이자 세서각 조각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간문화재 김대환 씨가 종합 예술인으로써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날 명예박사 수여식 행사에는 H. E. Lief Donde 주한댄마크 대사,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도올 김용옥, 장사익, 일본 정통소고 무형문화재 오꾸라 부부 등 각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였다.(5) 2004학년도 여군 사관 선발
우리 대학 졸업 여학생 3명이 17:1 의 경쟁률을 뚫고 ‘2004학년도 여군사관(여군장교)’으로 선발됐다. 병과와 합격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부관 : 김선혜(행정학 전공)정보 : 송선영(영어영문학부)전산 : 임경민(컴퓨터시스템 전공)(6) 대학평가 최우수 대학 선정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2004년 12월에 발표한 2004년도 대학종합평가 및 학문분야평가에서 우리 대학은 ‘교육,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평가대상 학문분야에서 기계시스템공학과가 우수대학으로, 대학원 기계시스템공학과가 ‘교수 영역’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는 성괴를 이루었다.4) 학생중심의 행정서비스 마련
2004년 5월 5일 전 교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Digital Learning Center 에서 대학행정서비스현장 선포식이 열렸다. 이날 선포식에서 모든 행정직원은 수요자 지향 서비스, 고객감동 서비스를 위하여 학생들의 민원사항을 신속, 정확, 친절하게 서버스할 것을 다짐하였다. 행정서비스현장은 수요자지향서비스, 고객감동서비스, 지속적인 시정과 개선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장의 안정적인 시행과 정착을 위해 홈페이지에 ‘고객의 소랴’ 게시판을 별도로 마련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하였다.5.1.4 새로운 캠퍼스 시대1) 미래관, 연구관, 인성관 준공식과 새로운 공간 마련(1) 미래관 준공과 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
미래관은 2003년 8월말 완공되었으며, 총 면적은 4,300 여 평으로 학술정보관을 비롯하여 박물관, 전자계산소, 스튜디오, 첨단강의실 (Digital Learning Center) 등이 입주하였다. 미래관이 완공되어 도서관 공간이 한결 늘어나게 되어 모든 학생들이 더욱편리하고 쾌적하게 도서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관은 지하 2층 지상 6층의 규모이며 학술정보관, 전자계산소, 스튜디오, 첨단강의실 외에도 일반강의실, 실습실, 체력단련실 등의 시설과 각종 홍보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카페테리아로 구성되어 있다.미래관은 「2004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분 본상(건설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1년 동안 우리나라에 건축된 수많은 건축물 중 설계, 시공, 조형미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정하는 상으로서 건축부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시상식은 2004년 11월 24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홀에서 진행되었으며, 우리 대학미래관 수상 현판식은 11월 30일 오전 11시에 이사장, 총장 및 많은 교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2) 연구관과 인성관 준공
연구관은 2002년 9월에 준공되었으며 총 8층 규모로 153 실의 교수 연구실이 입주하여, 보다 수준 높은 강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쾌적한 연구공간을 갖추게 되었다. 연구관 지하1층과 지상1 층은 전시실로 구성하여 졸업작품 전시회 및 교수와 학생들의 작품을 위한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관 옥상에는 우리 대학을 알리는 사인물을 설치하고 야간조명시설을 두어 북악스카이웨이에서도 우리 대학의 위치가 잘 보일 수 있도록 하였다이 해 12월에는 인성관이 준공되어 학생회관 별관에 그동안 흘어져 있던 동아리실들이 입주하여 학생들의 동아리활동을 더욱 활기차게 할 수 있도록 하였다.(3) 닥산관 착공과 창의관 증축2004년 1월 무용학과 실습실, 강당, 체육관, 체력단련실을 갖춘 지하1층/지상4층으로 연면적 1,350 여 평 규모의 체육관(현 낙산관) 신축을 위하여 기존 체육관을 철거하고 착공하였다. 이 해 7월 창의관의 지상 6층(250.8㎡)을 증축하여 기존의 휴게공간이었던테라스옥상에 실습실 공간을 마련하였으며, 개별식 냉난방기기를 GHP 냉난방시스템으로 교체하였다.
5.1.5 논란1) 한성대·인제대 간의 M&A 추진설과 학내구성원 논란2000년대 초반 교육부 주도의 대학 발전을 위한 통폐합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대학은 인제대와 M&A를 추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이를 둘러싼 한완상 총장과 학내 구성원의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의 발단은 한완상 총장이 인제대와 M&A을 통한 정이사 체제로 전환을 적극 추진하려는데 반해 교수들은 의견을 달리한 데 있었다.2004년 2월 24일 동계 학사협의회에서 시행한 한성학원의 정이사 체제에 대한 설문 결과, 교수들의 의견은 다양했으며 M&A가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리 대학과 인제대 간의 M&A와 관련된 진행설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우리 대학 교수협의회는 이사장과 총장에게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타 대학과의 M&A’를 진행해 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수들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사장과 총장은 학교 구성원의 의견수렴 없이 M&A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며, 교협이 중심이 되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정이사 체제 전환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교협은 이사장과 총장과의 면담결과 교수협의회가 요청한 사항들이 받아 들여 졌다고 판단하고, 정이사체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인제대학교와의 M&A’에 국한하여 진행되어서는 안되며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견수렴과정을 통하여 대학구성원이 지향하고 동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교수들에게 공지하였다.이러한 M&A 추진과 관련하여 학내 구성원들 간의 논란은 이 해 10월 한완상 총장이 총장직을 사임함으로써 종식되었다.2) 교비 횡령사건
2004년 2월 16일 당시 우리 대학 경리과장 유제한 씨가 교비자금 29억 원을 횡령하여 임의로 주식에 투자하였다.가, 20 여억 원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학교 측에 자술하였다.유제한은 2003년 8월 1일에 4억 원, 15일에 10억 원, 11월 19일에 15억 원 등 총3회에 걸쳐 29억 원을 교비자금 계좌에서 무단 인출하여 주식 투자에 시용하였다. 당시 교비자금은 경리과 과장인 유제한과 담당직원이 각각 계좌와 인감을 관리하였으나 과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임의적으로 교비를 인출하였다. 이러한 자금관리의 문제점은 2003년도 결산 감사와 교비 운영과정에서 학교당국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고 경리과 직원들의 내부고발도 없었다.2004년 2월 17일 학교 측은 유제한을 바로 경찰에 고발하여 구속시키고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여 파면 조치하였으며, 2월 26일 이 사건의 교비자금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무처장 및 기획정보처장을 경질하였다. 대외적으로는 금융감독원에 굿모닝증권을 상대로 금융사고 조사 의뢰 및 손해배상 청구를 신청하였으나 금융감독원의 감사 결과 학교 측의 과실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유제한은 3월 30일에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교협에서는 교비 횡령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등을 위하여 산업공학과 박명환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한성대학교 자금관리 및 운영에 관한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하도록 하였다. 총학생회에서는 3월 4일 교비 횡령사태에 대해 학생회장단 기자회견을 갖고 3월 12일 새내기 행동의 날을 열어 29 억 횡령 사건을 개인의 비리로만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학교 당국을 규탄하였다. 3월 24일에는 신학기 등록금 동결 이슈와 함께 ‘한성인 행동의 날을 개최하여 총장실을 접거하였다. 29일간의 점거투쟁은 결국 등록금 동결로 대치되었으며 학교 측과 학생 측은 1학기 등록금 인상분인 약 8 억원을 특별기금으로 조성하기로 최종 합의하여 점거를 해제하였다.2004년 4월 29일 이사회에서는 공금횡령과 관련하여 한완상 총장의 사표수리를 논의한 결과, 관리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나 대다수 구성원들이 총장사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여 사퇴서를 반려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 사건은 유제한의 개인적 비리에 대한 조사와 조치로 귀결되었으며, 그 후 ‘지금관리위원회’를 발족하여 교비지금의투자에 관한 심의를 하도록 하였다. 총무처장이 인감을 관리하도록 하고 경리과는 통장을 관리하되, 회계 관리자는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였다.
한완상 총장시대를 종합해 보면, 한완상 총장은 2002년 10월 제4대 우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존중받는 대학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학력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대신 특성화 교육을 통해 우수인재를 배출한다는 ‘작지만 알찬 대학’을 목표로 세우고, 다양한 창의력, 상상력 학생교육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국내 최초로 2004학년도 예능 계열 신입생 모집에서 예술대학은 실기 100% 를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 한편 English zone과 외국유학생 도우미 ‘한성엠버서더’ 프로그램, 해외어학연수단 파견, 학술교류 확대 등을 통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강화하였고 미래정보회를 위한 학술정보관 신축, 행정서비스의 개선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외식창업동아리 1호점을 오픈하였고, 미래관은 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였으며, 행정서비스에서는 ISO 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2004년도 대학종합평가에서 “교육,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 “교수 영역” 우수대학(기계공학과)으로 선정되는성괴들 이루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중소기업 특화 대학원으로 디지털중소기업대학원을 설립하여 다수의 산학연(산업체, 대학, 연구기관) 공동기술 연구 프로젝트들 수행함으로써 실용연구에 앞장서는 젊은 학교로서의 대내외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때 추진되었던 우리 대학의 사업들은 상당부분 현재 우리 대학이 추구하고 있는 ‘도섬형 예술대학’의 특성화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으며, 작지만 잠재력 있는 우리대학의 이미지를 제고히는데 공헌한 바가 크다. 그러나 그 당시 추진되었던 사업들 대부분이 한완상 총장의 갑작스런 퇴임과 함께 계획대로 시행완료된 것이 많지 않으며 후속 연관 사업들로 이어지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것은 크게 아쉬운 부분이라 할 것이다.5.1.6 한완상 총장 퇴임과 이우관 총장직무 대행1) 한완상 총장 퇴임과 이무관 총장직무 대행2004년 12월 15일 법인이사회는 한완상 총장이 대한적십자 총재로 자리를 옮기면서공석이 된 총장 자리에 당시 이우관 교무처장을 총장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이우관 총장 직무대행은 2005년 1월 시무식에서 직무대행체제가 임시체제이기는 하지만, 학교 운영까지 입시로 할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우리 대학의 ‘변화의 전기’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첫째, 서울시와 추진하고 있는 ‘패션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울시 산하의 ‘패션디자인 센터’를 대학로 에듀센터에 입주시키는 것이다. 성북구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의류마을 사업을 이루어 우리대학이 서울시 패션 프로젝트와 함께 동대문을 중심으로 하는 패션산엽 발전의 주축이 되어 이미지 제고 및 우리 대학 ‘패션 및 디자인 분야’의 발전의 모멘텀이 되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둘째, 학교 진입로 확보를 포함한 학교 주변의 지역 여건을 개선히는 것이다. 우리대학이 낙산을 중심으로 삼선동 지역을 교육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개발히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 및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계획을 밝혔다. 강의 공간 확보와 함께 학생들이편안하게 느길 수 있는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건물의 증축 가능성 및 종합관 건설 계획을 상반기에 추진하고, 이와 함께 학교 담장 개방을 검토하여 학교 운동장의 공원화 및 학교 옆의 공원 관리권 확보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셋째, 학생들의
교육환경과 행정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취업정보센터’, ‘교수개발 센터’를 설립하여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및 행정체제를 구축할 것이며, 특성화사업은 복수전공체제로 추진하며 학과별 발전계획에 대해서도 1월 중에 안을 마련하여 공시하고 선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비추었다
한편으로는 총장 선출을 위해, 교수 대표 3인, 직원 대표 1인, 학생 대표 1인, 이사 대표 2인으로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을 구성하였다.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에서는 교내 교수 4인 강병식(역사문화학부) 교수, 윤경로(역사문화학부) 교수, 이종수(행정학전공) 교수, 최송길(경영학부) 교수와 외부인사 3인 등 예비후보자 7 인을 선정하였으며 이 중 강병식 교수, 윤경로 교수, 이종수 교수가 최종후보자 3 인으로 선정되었고 이사회에서 윤경로 교수를 선임하여 2005년 3월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2) 제19대 이사장 장회익 이사장 취임제18대 손봉호 이사장이 2004년 10월 동덕여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이사장직에 물러나고 제 19대 이사장으로 장회익 박사가 취임하였다. 장회익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자연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입하였다. 장회익 이사는 2004년 10월 11일부터 2006년 12월 31일까지 재직하였다.
5.2 학생감동교육의 추구, 제5대 윤경로 총장 시기(2005. 3. 1. ~ 2009. 2. 28.)5.2.1 학생감동교육 시대와 정이사체제 전환1) 윤경로 총장 취임역사문화학부 윤경로 교수가 2005년 3월 1일 제5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3월 21일에 교내 낙산관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윤경로 총장은 ‘학생감동으로 여는 교육의새 시대’라는 제목의 취임시를 통하여 우랴 대학의 발전 비전을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학생감동교육중심대학인데, 이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질 높은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위하여 대학 행정력을 총 집결하여 서울 장안의 ‘색깔 있는 대학’, ‘맛깔 나는 젊고 푸른 대학’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인데, 윤총장은 이에 대해 우리 대학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과 함께, 내연을 보다 착실히 다지면서 외연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즉, 비현실적인 화려한 구호보다 실현가능한 실사구시적인 대학발전 전략을 조용히 실속 있고 알차게 펼쳐나감으로써 ‘머물고 싶은 대학’, ‘다시 찾고 싶은 대학’을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2) 정이사체제 전환(1) 펼요성2006년 1월 1일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법인 한성학원의 정이사체제 개편을 승인·통보하였다. 그동안 임시 이사회가 학원 운영의 투명성 및 안정성 제고에 기여한 바 있으나,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여 동안 총 6명의 이사장이 부임하고, 이사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167B월에 그치는 등 한성학원의 장기 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적극 추진하는데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불완전한 리더십의 복원 및 학원 정상회를 통한 대학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학내 구성원의 합의들 바탕으로 정이사체제로의 개편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한성학원이 정이사체제로 개편됨으로써 안정적 리더십 확보, 의사결정의 효율성 제고, 장기사업 추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2) 경과윤경로 총장 취임 이후 한성학원 정상화 관련 교내 협의가 진행되었다. 2005년 11월에는 교수와 직원이 정이사체제 구성 비율을 교내 추천인사 4인, 교육부 추천인사 3인, 설립자 측 추천인사 2인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12월에는 교내 추천인사 4인을 선출하기 위한 정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가 구성되었다. 추천위는 교수 4 인(박호영 교수(한국어문학부, 추천위 위원장), 최명규 교수(경영학부), 최해주 교수(의상디자인전공),윤재건 교수(산업안전공학전공))과 직원 2 인(전장배 팀장(교수지원팀, 추천위 간사), 조현호 노조지부장 그리고 학생대표 1 인 (21대 총학생회장 송혜련), 한성여중 고춘식 전 교장, 한성여고 구순희 교감 각각 1 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학생대표는 추천인사 선출에 참여하지 않았다.
추천위에서는 정이사 후보 평가 기준표를 작성하여 예비 후보지를 심사하고 추천 후보 45인 중, 1차 심사를 통해 20인, 2차 심사를 통해 7 인을 최종 선출해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였다. 후보자 7인 중 최종 선임된 4인의 정이사는 우리 학교 윤경로 총장을 포함한 김신일 서울대 교수, 이종훈 덕성학원 이사장, 김동균 상지대 대학원장이다. 한편, 교육부 추천 인사 3인은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이경일 언론중재위원, 문동후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이며 설립자 측 추천인사 2 인은 이희순 전 한성학원 이사장과 계경문 국민대 교수이다. 이사회에서는 2005년 12월 21일, 위의 9인을 교육부에 승인 요청했으며 교육부는 이를 승인했다. 정이사체제 전환 후, 2006년 1월 17일 최초로 열린 이사회에서는 신용하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출하였다.<표 24> 한성학원 정상화 추진 경과
일시 내용
3) 신용하 이사장 취임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한양대 석좌교수, 독도학회 회장)가 2006년 1월 17일 한성학원 제20대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2006년 3월 6일 취임식에서 신용하 이사장은 우리 대학은 입지가 탁월하고 무한한 발전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젊은 대학이므로 앞으로 잠재력이 꽃피어 명문대학으로 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신용하 이사장은 우리 대학의 21세기 교육과 연구의 방향을 실사구시(돼事求是)에 두고, 튼튼한 기초교육과 함께 우리시대의 실학적 학문과 예술이 탐구되고 교육되는 우리나라 대표적 실학파 명문대학으로 바약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하여 먼저 현실에 토대를 둔 공동의 ‘꿈’과‘이상’을 정립하고, 발전 목표를 정립하는 일을 해야 하며 , 그 다음에 이를 실천하기 위한 치밀한 설계를 하고, 단기, 중기, 장기의 발전계획을 수립한 후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4) 대학평의원회 구성사립학교 운영의 민주성 투명성 공정성을 제고하여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6년 7월 1일자로 대학평의원회 설치관련 법령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대학은 2007년 2월 6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대학평의원회의 정관을 정식 승인 받았으며 3월 1일부터 학내 교육에 관한 최고 심의기구로서 교수, 직원, 학생, 동문대표 등 총13명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를 구성하였다.
교수 측에서는 홍용식(경영학부) 교협회장, 김용석(영어영문학부) 교수, 이우관(경제학부), 정종해(회화과) 교수, 윤재건(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직원 측에서는 조현호 노조지부장, 조승호(심사평가팀) 팀장, 전장배(교수지원팀) 팀장이, 학생 측에서는 장형규(한국어문학부) 부총학생회장이, 검은혜(인문대학생회장), 황의영(사과대학생회장) 그리고 동문 인사에는 한용수 총동문회 부회장((주)청한이전건설 대표)과 외부 인사로는 권중길((사)한국폐기물협회 회장) 씨가 참석하였다. 학생을 제외한 평의원회 구성원들의 임기는 2년이며, 학생 평의원은 학생회 활동기간인 1년이다.5) 대학 중장기발전계획 수립 (1) 펼요생 1972 년 개교 이래, 36 년 동안 졸업생 약 1 만 8 천명, 재학인원 7 천명의 중규모 대학 으로 성장하였으나, 1990 년대 후반 이후, 내부적인 리더십의 부재와 외적인 환경요인 으로 인해 10 여 년간 대학발전의 침체기를 맞이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과거 2 회 (2001 년, 2003 년)에 걸쳐, 외부 컨설팅을 통해 대학발전계획을 수립한 바 았으나, 학내 구성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우리 대학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2005 년 윤경로 총장 취임 이후, 학내 구성원의 전반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자 체적인연구를 진행한결과기존 학과간의 상호융합과 연계를 통한 문화중심 즉 Culture Technology중 심의 발전방안을 도출하여, 2006 년 9 월 8 일 법인이사회의 원칙적인 동의를 얻은 바 있다. 다만, 이사회에서 개별사업에 대한 실행계획 보완 및 학내 구성원의 최종 합의를 요구함에 따라 2008 년 말 대학본부 차원의수정 ·보 완 작업을 완료하였다. 구체 적인 경과는 아래와 같다.
<표 25> 대학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경과
일시 내용
일시 내용
(2) 내용
건학 50주년인 2023년을 목표로 수립된 발전방안인 ‘드림 2023! 문화지향의 글로벌 CT 대학’은 ‘도심 속 상상력 CT(Culture Technology)대학’이라는 슬로건 한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하였다. 첫째는 건학 %주년인 2018년에 국내 최고의 CT 대학을 달성한다는 것, 둘째는 건학 50주년인 2023년에 글로벌 문화 대학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이 제시되었다. 즉, 주/야간 신입생간 학력수준치를 해소하기 위하여 야간정원을 주간으로 100% 전환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에 의하여 특성화 학과를 적극 발굴 및 신설하며, 공과대학의 공학인증제 도입 등 학생 수준 향상을 위한 교육인증제를 전교 차원에서 확대 실시하며, 해외 유학생 및 지방학생 유치를 확대하고, 특수대학원과 사회교육원 등 평생교육사업을 강화하고, 교원의 승진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성과보상 중심의 행정직원 인사시스랩을 구축하고, 비전사업과 연계한 교육환경 개선 모색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6) 한성학원 ‘창립 60주년 기념식’ 개최
학교법인 한성학원 ‘창립 60주년 기념식’이 2005년 10월1일 낙산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기념식에는 한성학원 장회익 이사장, 이희순 설립자, 우리 대학 윤경로 총장, 한성여자중학교 이광우 교장, 한성여자고등학교의 김통화 교장, 그 외 교직원과 학생들이 참석하였다. 이번 기념식은 학원연혁 보고와 근속 교직원 표창, 장회익 이사장, 이희순 설립자, 윤경로 총장의 기념사와 식사, 한성여자중학교 풍물동아리 ‘덩더콩’의 풍물공연과 무용반의 무용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7) 2007년 한성대 35주년 기념 행사
2007년은 개교 35주년을 맞이히는 뭇 깊은 해로서, 10월 5일 개교기념일을 전후한 9월 18일부터 11월 4일에 걸쳐 화합·단결·변회를 슬로건으로 제2의 건학을 꿈꾸며 다채로운 행시들이 펼쳐졌다 한성대 35주년 기념 행사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표 26> 한성대 35주년 기념 주요 행사
일정 행사명 장소
위의 행사 중 개교기념식이 열린 10월 2일에는 개교 %주년 기념 Ul(University Identity) 선포식이 있었다 대학교의 브랜드라 할 수 있는 UI 선포에 대해 윤경로 총장은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UI는 중요하다껴 UJ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UI를 제작한 인피니트의 관계자는 “새로운 UI는 한성의 이니셜 H를 형상화했으며 역동
적이고 열려 있는 회잘표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다양한 문화, 학문을 열린 사고로 받아들이는 한성인의 지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Dr변경은 기존의 UI가 진부하고 디자인이 세련되지 않다는 여론을 수렴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날 저녁에 마련된 금난새 유라시안 오케스트라 콘서트는 동문 및 지역 주민 등도 초대한 화합의 장으로 기획되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 행사였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우리 대학 35주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학술정보관 l 층에 대학사료실을 신설하여 학교의 역사자료를 비치 전시하였다. 전시품목은 총 10종의 패널 및 207개 사료이며 개인 혹은 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총망라하여 그 중에서 책, 홍보책자, 신문, 기념품, 사진 등 한성대의 역사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자료를 선별 전시하였다. 아울러 ‘한성대의 어제와 오늘’ 사진전도 마련하였으며, ‘한성대 캠퍼스의 변천’, ‘역대 이사장 및 총장’ 등을 주제로 한 각종 이미지 배너도 설치되었다.개교기념일인 10월 5일에는 개교 35주년 기념 윤경로 총장의 메시지가 발표되었다. 가능성 넘치는 젊고 푸른 한성대학교를 주제로 제2 의 도약을 강조하는 내용의 총장 메시지에는 기존의 성장 동력을 발판으로 그 동안 ‘학생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 중심의 대학만들기’, ‘지역사회와 함께 히는 대학 만들기, ‘교육 환경 개선’이란 목표를 향해 한성대의 발전 노력이 경주되어 왔음이 천명되었다.
행사 일정의 마지막인 11월 4일에는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서울 마라톤대회에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해 350명이 참가하였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중앙일보와 일간스포츠, 대한육상연맹이 주최하는 10km 서울마라톤은 윌슨 온사레(케냐 2:06:47), 지영준(한국2:08:43) 등 세계적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도 참여했는데, 한성대 구성원이 단체로 참가함으로써 구성원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고 대외적인 학교 홍보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받았다.개교 35주년 기념행사는 전체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우리 대학이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한성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고양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평가할 수있다.그렇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약간의 아쉬운 대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들어 부서별로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기획해 추진하다보니 종래의 사업들과 기획취지나 아이템이 중복되기도 하고 행사별로 일정이 겹쳐서 진행된 점이나 야외 특설무대까지 만들며 개최한 취업페스티벌은 3일 내내 내린 장대같은 비로 인해 소리 소문 없이 치러져야 했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데려온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화려함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평가 등도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들이다
한편 개교 %주년을 맞이하여 윤경로 총장에 대한 인터뷰가 이루어졌으며 이 자리에서 윤경로 총장은 학교발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이울러 학교 발전의 비전에 대한 포부를 피력하였다. 윤경로 총장은 우리 대학의 비전에 대해 “학생·사회가 원하는 교육을 통해 실사구시를 실현해가는 강소(彈小)대학으로 성장”하는 것을 제시하며 한성대의 장점으로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 중심 대학”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구체적으로 교육중심 대학의 방향성에 대해, 대부분의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고 있지만, 한성대는 철저히 학과전공 중섬을 지향하며 전공과목에 대한 심화교육을 통해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언급하였다. 윤 총장은 이러한 교육 중심의 특성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로서 예능계열과 공과대학의 경우를 들었다. 예능계열은 국내 대학 최초로 실기전형 100%로 신입생을 뽑는데 이것은 기존의 고질적인 학벌주의 경쟁을 없애고 풍부한 끼와 상상력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며 공대의 경우도 이미 2002년 정보통신부의 ‘우수 IT교육기관’으로 선정된 것과 100%에 가까운 높은 취업률에서 그 경쟁력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윤경로 총장은 이러한 한성대의 특성회을 위해 커리쿨럼도 다른 대학과 많이 다르며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 특별교육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커리큘럼은 철저히 학생과 사회가 원하는 이른바 실시구시형 위주로편성하며, 현재 캠퍼스를 일년 내내 가동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365 캠퍼스’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임을 소개하였다.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해외 자매결연 대학에서 전공수업을 받을 수 있는 ‘일반 교환학생 프로그램’, 공인 어학성적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 해외 문화들 접할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한 ‘한성글로벌랴더십 교환학생 프로그램’, 대학 4년 동안 우리 대학 학위와 해외 학위 2개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한 ‘복수학위 프로그램’, 해외봉사 제혐의 기회를 제공하는 ‘해외봉사단’ 운용 등 대표적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특별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사례로서는 ‘아침형 학생’들을 위한 영어강좌인 ‘얼리 벼드 프로그램 (Early Bird Program)’과 특정과목에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학생과 이 과목에 도움을 받길 원하는 학생 2~5명이 팀을 이뤄 매주 1회 2시간 이상 공부하는 학생 주도의 협동학습프로그램인 ‘튜터링 학습 지원 프로그램’을 언급하였다.마지막으로 윤경로 총장은 국제화 시대에 대응하는 우리 대학의 비전의 하나로서 ‘국제개발학부(가칭)’의 신설 계획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동남아 지역을 비롯해 개발도상국에 펼요한 인재를 양성할 때가 됐다는 현실 인식과 저소득 지역 전문가를 기르는 학부가 설치된 대학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 전문기들은 많습니다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자리 잡으려면 개도국을 견인해 낼 수 있는 인재를 카워야 합니다"라는 지적은 향후 우리 대학의 발전 방호t을 생각할 때 마다 많은 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5.2.2 학생감동교육을 위한 준비
1) 365일 열린 캠퍼스365일 열린 캠퍼스는 방학 중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실무교육을 받아 현장에서 펼요한 전문지식을 갖춘 준비된 인재를 키운다는 목표로 운영되었다. 학기 중에 취엽지원팀에서 신청과 접수를 받아 방학 중에 우리 대학 캠퍼스에서 운영하였다. 주로 각종 자격인증프로그램이나 유망 직종에 대한 직엽훈련을 받을 수 있는 강의가 개설되었으며, 외부 유명 강사진을 초빙하여 현장감 있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학생들이 100% 교육훈련지원금 수강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2005년 여름방학에는 약 400 여명의 학생이 수강하여 방학 중 유동인원으로는 최대 규모가 참여하였다. 연도별 개설강좌수와 수강생수 및 사업비는 <표 27> 과 같다.<표 27> 365일 열린 캠퍼스 운영 현황 (2005~2008)
년도 및 학기 2005학년도 2006학년도 2007학년도 2008학년도
2) 한성튜터링
한성튜터링은 특정과목에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학생(튜터)과 그 과목의 학습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학생(튜티) 5명이 팀을 이루어 공부히는 학생 주도 협동학습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6년 1학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저학년들의 전공 기초 학습능력을 카워주고, 선후배 및 같은 학년 학우들 간의 학문적 유대감 및 인간적 친밀감을 높여주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튜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지도교수와 튜터, 튜티의 역할은 아래와 같다.<표 28> 한성튜터링 프로그램 잠여자멸 자격 및 역할
구분 지도교수
튜터링 제도는 튜터에게 등급별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A등급은 70 만원, B등급은 60만원, C등급은 50만원이다. 튜터링에 대한 평가는 튜티의 성적, 튜터링 보고서, 튜티의 튜터평가서를 통하여 각 학장 및 교무처장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에서 하였다. 2006년~2008년간 튜터링에 참여한 학생 수 및 장학금 지급 현황은 아래와 같다.
<표 29> 한성튜터링 프로그램 운영 현황 (2006~2008)
연도 2006학년도 2007학년도 2008학년도
3) 지역인재육성사업
우리 대학이 소재한 성북구 지역의 활성화 및 지역인재 육성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2005 학년도(입시기준 2006 학년도)부터 ‘자매지역고교출신자전형’을 신설하여 성북구 지역의 고등학교대상으로 우수 학생을 선발하였다. 또한 2006학년도 부터는 대학로에 우리 대학의 캠퍼스가 설치됨에 따라 대상 지역을 종로구로 확대하고 전형명칭을 ‘지역인재육성’으로 변경하여 본격적으로 사엽을 추진하였다. 위의 전형으로 우리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대학 4년간 일정 접수를 유지할 경우 다양한 장학금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소재의 우수 학생들이 우리 대학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업은 윤경로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핵심 비전 중 하나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한성대학교’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중 하나였다 연도별 지원자수와 등록률은 <표 30> 과 같다.<표 30> 지역인재육성사업 연도별 지원자 수 및 등록률 (2005~2008)
년도 2005학년도 2006학년도 2007학년도 2008학년도
4) ‘2006 교육과정’ 개편
(l) 필요성 및 기본 방향대학의 교육과정은 대학의 교육목적과 목표 및 교육의 방향이 명확하게 반영되도록 편성되고, 명확한 이수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4년간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이수하도록 학사제도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이 대학 교육과정 운영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대학의 교육과정은 시대적 요구 즉, 취업률 제고 및 산학협동이라는 대학의 사회적 기능 변회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였고, 우리 대학만의 특색이 부족하고, 교양교육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며, 교육과정 이수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2004년 9월 ‘2006년 교육과정개정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2005년 11월 ‘2006 교육과정 개정’이 최종 확정되었다.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기본 지침은 첫째, 교양교육, 전공교육에 관한 명확한편성 방침 수립 및 방침에 의거한 교과과정 구성(교양교육은 기초소양 교육 강화, 쥐엽교육 활성화, 영어 교육 확대), 둘째, 학생들의 기초학력 함양을 위한 졸업인증제도 도입 및 교양필수 과목 변경(대학별 차별화), 셋째, 자격증 취득 활성화를 통한 외부 경쟁력 제고 넷째, 외국어 능력 향상이었다 자세한 경과는 <표 31>과 같다.<표 31> 2006 교육과정 개편 경과
일시 내용
(2) ‘2006 교육과정 개정’ 확정 내용
‘2006 교육과정 개정’ 중 기초교양교육과정은 첫째, 펼수교양의 경우 논리적인 사고, 말하기 및 글쓰기 강화, 외국어 구사능력 강화, 전산능력 강화를 위해 관련 과목을 확대하였고, 수준별 과목의 운영과 인성교육을 강화였다. 둘째, 핵심교양의 경우 각 학과의 전공교육을 연계하고 단과대학별 특성을 반영하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전공 관련 영역 외 타영역의 교육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전공교육과정은 심화전공을 두어 전공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개편하였다. 교양 및 전공 이수체계와 전공교육 개편 지침은 아래와 같다.<표 32> ‘2006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졸업이수학점 체계
학점 졸업이수학점
학점 졸업이수학점
(3) 교육과정 개편 지침
가. 전공교육과정 개편 지침교과구분별로 전공기초 9학점, 전공지정 15학점, 전공선택은 기타학점을 개설하고, 학과별로 전공교육과정을 108학점 이내로편성하여 운영해야한다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전공교육과정 개편 지침의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1) 교과구분별 개설학점가) 전공기초 9학점 개설나) 전공지정 15학점 개설다) 전공선택 기타학점 개설* 전공지정을 운영하지 않는 학과는 전공선택으로 개설2) 학과별 개설학점가) 원칙 디음 ①② 중 선택하며, 1,2학기 동일과목 개설 금지① 전공 교육과정을 108학점 이내로편성하여 운영② 교육과정편성 학점은 제한이 없으나 연간 개설은 108학점 이내로 제한나) 학과별 개설 학점① 108학점 이내로편성인문대학 / 공과대학 전체경영학부를 제외한 사회과학대학 전체
무용, 회화과를 제외한 예술대학 전체② 교육과정편성 학점 제한 없으나 연간개셜은 108학점 이내③ 연계전공 63학점편성(신설 18학점)3) 가타사항가) 학년별 개설 학점1학년에 개설되는 과목은 최대 12학점l 학년에 개설되는 학점 외의 나머지 학점을 각 학년별로 균등 배분나) 복수 부전공 신청인원 제한신청인원을 해당학과의편제정원의 20% 내에서 제한3학기부터 신청을 받되 학과의 재량 하에 quarter 운영(복수·부전공 선발에 대해 학생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공지)신청인원은 재학생 기준으로 산정다) 과목 개설시 고려사항
펼수교양 과정을 연계하는 전공 교육괴옥 개설논리와 사고, 외국어 구사능력, 전산 능력 강화토의,토론학석사 연계과정 과목사회적 수요를 감안한 과목 개설(의학·법학 경영전문대학원 개설에 따른 필요과목)라) 학년별 교육과정 이수가이드 예시필수교양과 핵심교양 A, B는 저학년에 이수하도록 함나. 기초교양교육과정 개펀 지침필수교양과 핵심 및 일반교양 개편 지침이 마련되었다. 펼수교양 개편 지침에는 영어, 사고와 표현, IT 교육, 인성교육 별로 총 대상인원 1,700명에 대한 학기 구분안, 신규강사 채용 수와 방안, 운영주체 등 운영방안과 구체적 교육 프로그램, 학생태스트 방안 등의 교육내용이 제시되었다. 핵심 및 일반교양 개편 지침에는 개설 과목 및 분반수와 운영체계가 제시되었다. 핵심 및 일반교양 개편지침은 <표 33> 과 같다.<표 33> ‘2006 교육과정’의 핵심 및 일반교양 개편 지침
개설 과목 및분반수 운영체계
(4) 효과
2006 교육과정 개편을 통하여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필수교양을 강화하고 전공과 연계된 핵심 교양 교육 및 다양한 일반 교양 교육을 강화하고, 전공심화, 복수전공, 부전공, 연계전공 등 전공 교육과정을 다양화함으로써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경쟁력 있는 우수 인재를 육성할 수 있게 하였다. 둘째, 다양한 교육과정 트랙 중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기초 교양교육과정과 전공교육과정의 연계를 강화하고, 전공과목 이수 및 학습지도를 위한 지도교수제를 강화함으로써 고객인 학생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논리적 사고와 표현, 외국어 구사능력, 전산 능력, 인성 교육 등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함으로써 기초교양교육의 내실회를 도모하였다. 넷째, 심화전공, 복수전공, 연계전공, 부전공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연계전공을 신설함으로써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개방화하였다. 다섯째, 전공교육과정의 적정한 과목 개설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학교 운영의 효율화 및 학과 간 형평성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5) 조직단위실적평가 실시학부(과)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학교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조직단위실적 평가 제도가 2007년도에 처음 시행되었다. 2005년 12월 20일 조직단위실적평가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지표를 개발한 뒤 2006학년도를 대상으로 한 제 l 차 평가가 2007년도에 이루어진 것이다. 2007년, 2008년도의 1·2 차 조직단위실적평가 결과는 아래와 같다.<표 34> 조직단위실적 평가 결과 (2007~2008)
구분 2007학년도 2008학년도 비고
제도 도입 초기에는 일부 불만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평가취지 및 목적에 대한 구성원의 이해 속에 제1차 자체평가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비교적 무난하게 정착되어
갔다 다만 2009학년도부터는 각 대학별로 자체평가가 의무화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조직단위실적평가와의 연계 운영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아울러 다양한 정량·정성적 지표의 개발 및 평가 인센티브의 강화 필요성 등이 제기되었다.
6) 2006년 공학인증제 도입공학인증제는 대학의 공학 및 관련교육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기준과 지침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인증 및 자문을 시행함으로써 공학 교육의 발전을 촉진하고 실력을 갖춘 공학기술 인력을 배출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제도이다. 승인된 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은 공학실무를 담당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증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공학교육 개선을 위하여 2006년 5월 공학인증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제도 도입을 위한 검토를 거친 후 이 해 9월 공학교육인증제 도입을 결정하였다. 다음해인 2007년 신입생에 대하여 공학인증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그동안의 경과는 아래와 같다.<표 35> 공학인증제 도입 경과
일시 내용
7) 글로벌리더십 인재육성
(1) 해외봉사단해외봉사단 파견 사업은 우리 대학 학생을 21세기에 적합한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기 위하여 2006학년도 하계방학부터 시작되었다. 해외봉사활동은 참여 학생들이 봉사정신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자긍심을 거워주고 현지인에게는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대학의 해외봉사활동이 SBS 방송(2008년 1월 2일) 등 각종 언론 매체에 보도되어 대학홍보 및 이미지 향상에 기여한 바 있고, 해외 학생 유치에 일익을 담당한 바도 있다. 파견지역과 기간 및 해당 기간별 참여 학생 수와 학생들을 인솔한 단장 및 부단장은 아래와 같다.<표 36> 해외봉사단 파견 현황 (2006~2008)
기수 파견 기간 파견국가 단 장 부단장 인원 비고
(2) 한성글로별리더십 영어캠프
2006년도부터 지식정보화 시대의 펼수요소중 하나인 영어 의사소통능력 향상과 영어학습에 대한 자신감 배양 및 국제화 감각을 제고하기 위하여년 2 회(하계·동계 방학) 4주 과정으로 영어캠프를 운영하였다. 영어캠프는 학생들에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뿐만 아니라 외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6 ~2008년도의 영어캠프 실시 현황을 소개하면 <표 37> 과 같다.<표 37> 한성글로벌리더십 영어캠프 실시 현황 (2006~2008)
회차 교육인원 교육기간 교육장소(업체) 국내외 비고
8) 장학제도 개선
2006년에는 장학제도가 대폭 개정 및 신설되었다. 그동안 성적장학금은 최우수장학, 수장학, 우장학, 장려장학으로 구분하여 각각 등록금의 45%, 35%, 30%, 25%씩 등수별로 차등 지급하였다. 2006년부터는 성적장학금을 최우수와 우수로 구분하여 각각 등록금의 50%와 35%씩 지급하였다. 우수장학은 기존의 수, 우, 장려장학에게 같은 비율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그동안 문제시 되었던 수, 우, 장려장학간의 등수별 미미한 차이로 인한 아쉬움을 보완한 것이다.한성복지장학의 경우 기존에는 한성복지 60만원, 학과추천 50만원의 장흐L금이 지급되었으나 2006년부터는 A, B, C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120 만원, 80만원, 60만원으로 세분화 및 증액되었다. 한성디지털탤런트 장학제도는 기존의 단대 최우수장학이 폐지되고 신설된 것이다. 신설된 한성디지털댈런트장학은 성적우수자와 사회봉사시간, 어학관련 자격증(TOEIC, TOEFL, TEPS최근 2년 이내), 기타자격증(HSK, JPT, JLPT, 한자능력인증 1급 등)을 제시하면 학년별 배점표에 따른 누적점수를 통해 고득점자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는 제도이다9) 취업률 제고를 위한 노력들
(1) 취업정보센터 개소2005년 3월 7일 취업정보센터가 문을 열었다. 취업정보센터에 취업과 관련된 책자, 비디오 등의 간행물을 비치하였고 상담사와 진로 관련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1학년 위주의 적성검사, 선호도검사 등의 전로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직업 활동을 찾아볼 수 있는 직업카드 프로그램과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작성 클리낙 프로그램도 마련하였다.(2) 교육훈련지원금 제도 변경 운영2005 학년도 신입생들은 기존과는 다르게 의무적으로 1년간 심리상담 등을 거친 후 2학년 때부터 교육훈련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생활연구소에서 심리상담을, 학과 행정사무실을 통해서 지도교수 상담을, 취업정보센터를 통해서 진로상담을 1회 이상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아직 진로를 확정하지 못한 1학년 학생들에게 상담을 통해 졸업 후 진로들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3) 취업 교과목 운영
2008년부터 처음으로 취엽교과목을 개설하여 저학년들의 직업과 진로선택을 돕고, 아울러 여대생들을 위한 특화된 진로교육을 실시하였다. 개설된 과목은 비록 2과목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의 적극적인 직업 계획수립, 개인 경력개발 및 취업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교육이 학기 중 학점이 부여되는 교과목 형태의 취업지도 프로그램으로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참여 학생들의 동기부여(학점 이수) 및 만족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다만 경쟁관계에 있는 타 대학의 유사교과목 개설 현황에 비교해 볼 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뒤처지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교과목의 확충이 절실하다는 분제 제기가 많았다. 개설된 강좌와 수강현 황은 <표 38> 과 같다.<표 38> 취업 교과목 개설 및 수강 현황
강의명 강의일 학점 성적 권장수강대상 수강인원
(4) 취업 커뮤니티 활성화 유도
쥐엽 커뮤니티는졸업 동문을활용하여 재학생에게 업종· 직종별 직업정보를 제공하고 아울러 취업 관련 스터디(커뮤니티)를 통해 학생들이 취업문제에 스스로 대처해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2006년도에 처음 마련되었다. 학교에서는 취업커뮤니티의 활동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는데 그 개요는 아래와 같다.<표 39> 취업커뮤니티 운영 현황
구분 취업커뮤니티 운영 내용
취업커뮤니티 운용은 2006년 처음 실시된 이후 2008학년도 기준 3 기까지 운영되면서 취업커뮤니티 출신 학생들의 ‘높은 정규직 취업률 기록 및 대기업, 공기엽 동 안정적 직군으로의 취업확대’ 등으로 우리 대학의 가장 성공적이며,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취업
지원 사업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7년 271 취업커뮤니티의 정규직 취업률이 70.7% 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이변에 한편으로는 중도 탈락자(본인의 의사에 의해 중도 포기재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5) 한성 취업 Festival 개최한성 취업 Festival은 2005년부터 개최된 우리 대학의 정기 취업행사 중 하나로 이를 통해 우리 대학 학생들의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위한 기업정보수집, 구직기술능력 향상, 공통 취업정보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2일간의 집중 취업지원 행사이다. 2005년 개최 이래로 매년 학생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으며 참가 기업도 예들 들어 2008년의 경우 삼성SDS, LG CNS, 한국 IBM, 한국오라클 등 31개 업체에 달했다. 학생들의 참가 인원을 연도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표 40> 한성 취업 Festival 참여 학생수 (2005~2008)
2005학년도 2006학년도 2007학년도 2008학년도
한성 취업 Festival의 주요 행사 내용을 2008년도의 행사를 기준으로 정리하면 행사는 매년 9월경에 개최되며 행사 프로그램은 크게 ‘기업채용관’, ‘이벤트관’, ‘취업지원 관’으로 구성되어 았다. ‘기업채용관’은 국내 우수기업들을 초청하여 국내외 비즈니스에 필요한 우리 대학 인재와의 면접 및 채용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이벤트관’에서는 무료 이력서용 사진 촬영관, 직업적성 검사관, 해외 인턴십 컨설팅관 등을 운영하며 ‘취엽지원관’에서는 이력서/자기소개서 컨설팅, 면접 컨설팅, 첫인상 컨설팅 등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2008년도의 경우 Festival 참가 학생을 대상으로 만족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를 보면 전반적으로 행사 및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성 취업 Festival의 가장 본질적인 개최목적인 ‘대학 현장 채용의 기회’ 확대가 직금의 경기불안, 고용위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제 현장 채용으로까지 연결되는 사례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다5.2.3 학생감동교육 시기의 성과들1) 2006년도 취업률 70%우리 대학은 학생취업률 향상을 위하여 2005년 이후 해당분야 석사이상의 취업컨설팅 및 진로지도 경력자와 취업전문담당직원을 채용하였다. 또한 2006년부터 노동부 대학취업지원 기능 확충사업에 선정되었고, 이후 한성 취업 Festival, 취업커뮤나티 활성화 사업, 쥐엽교과목 운영, 학생 취업 진로지도 종합프로그램(취업지원시스템) 구축 등의 취업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06년에 처음으로 취업률 70%대를돌파하였고, 2008년 역대 최고 취업률인 72.1%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취업의 질을 판가름 할 수 있는 정규직 취업률의 경우 2007년 42.7%, 2008년 42.9%에 그쳐, 정규직 취업률 제고를 위해서는 학교 차원에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취업지원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 중소기업 직업훈련컨소시엄 사업 선정우리 대학 산학협력단이 2006년 5월 노동부에서 시행하는 ‘중소기업 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에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대학이 보유한 우수 훈련시설 및 장비 등을 활용하여 중소기업의 인력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최장 6년(단계별 평가) 동안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사업이다. 우리 대학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약 34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으며, 이 기간에 3만 2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였고, 약 3 천개의 기업이 참여하였다. 우리 대학은 이 사업에서 2년 연속 최우수 (A등급) 기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사업을 통하여 우리 대학을 관련 기관 및 중소기업에 홍보하여 학교 인지도가높아지고, 타 대학으로부터 ‘중소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학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도별 정부지원금과 참여학생 수는 아래와 같다.
<표 41> 연도별 정부지원금과 참여학생 수
년도 내용 2006 2007 2008* 합계
3) 벤처창업지원센터 최우수 등급 선정
중소기업청 지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 대학 벤처창업지원센터 (2006년 4월 센터장 황기태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2006년 중소기업청 평가 최우수 등급으로 선정되었다. 벤처창업지원센터는 초기 창업자, 예비 창업자들에게 대학의 질 높은 자원을 이용하여 기술, 경영, 마케팅, 법률, 회계, 상품 디자인 등에 관한 교육 및 컨설팅과 외부 컨설팅을 통해 기엽을 성공적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대학은 2001년에 성북구청으로부터 위탁 운영을 맡은 이래로 5차례의 평가에서 4차례에 걸쳐 최우수 등급으로 선정되었다. 평가실시 대상기관은 전국 290 여개, 서울지역 28개 기관이었다4)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 발표우리 대학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2005년 2월 21일 발표한 ‘ 2004학년도 대학종합평가 및 학문분야평가에서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평가대상 학문분야에서 우리 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는 ‘교육여건 및 지원체제영역’ 최우수 대학, 대학원 기계시스템공학과는 ‘교수영역’ 우수대학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총 6개 평가영역 중 ‘교육 및 사회봉사영역’만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될 뿐 타 영역에서는 만족할만한 결괴를 얻지 못하였다. 우리 대학의 종합평가결과는 최우수, 우수, 인정대학 중에서 ‘인정대학’이었다.
5) 2007년 저 14회 ‘훌륭한 대학교상’ 수상2006년 임시 이사에서 정이사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이후 그 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진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학사 운영, 발전적인 시설 확충과 학제 개편 등이 대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전국 5 만여 교수들로 이루어진 한국사립대학교(협의)회 연합회(이하 사교련)로부터 제4회 ‘훌륭한 대학교상’을 수상했다.‘흘륭한 대학교상’은 사교련이 민주적 의사결정, 행정의 투명성·공정성·효율성, 교권확립 등을 기준으로 전국 사립대 가운데 귀감이 되는 대학에 주는 상이며 이번 평가는 전반적인 학교 운영 자료와 실사 그리고 교수협의회, 학교 당국, 직원노조, 총학생회의의견 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되었다.
이번 평가에서는 특히 학내 시설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학술정보관의 현대화와 혁신적 운영 시스템은 한국사립대학 발전에 모범적 사례라는 평을 들었다. 이 ‘훌륭한 대학교상’ 수상은 우리 대학의 안정적 발전이 점차 본궤도에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수상이라고 할 수 있다.6) 2008년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및 R&D 샌터 개설2008년 7월 30일에 컨설팅대학원 및 R&D 센터 개설 협약식이 이루어졌다. 컨설팅대학원은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컨설팅 기업 등을 개발하고, 현장 중심의 컨설팅 능력을 기르기 위해 중소기업청의 지원으로 설립한 것인데, 당초 10개 대학이 신청하여 경합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서강대와 함께 한성대가 선정되었다. 이번 선정의 결과는 작지만 강한 우리 대학만의 강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한성대 나름의 경쟁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한편 컨설팅대학원 및 R&D 센터 개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윤경로 총장은 10월 3일 “곧 컨설팅 연구개발(R&D) 센터의 문을 열고 국내에 적합한 컨설팅 방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간다”며 “현장 중심의 컨설팅 기업 개발을 위해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해 준비작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대학원에서는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 환경에 적합한 컨설팅 기법을 개발해 전수할 예정인데 우리 대학은 2008년 안에 지식컨설팅학회를 별도로 설립하고, 컨설팅혁신대전 등 국제학술세미나를 열어 컨설팅에 관한 한 최고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이를 위해 대학원뿐 아니라 학부 과정에서 컨설팅 관련 강죄를 개설하고 이울러 2011학년도에는 아예 학부에 컨설팅학과를 독립학과로 설치해 한국형 컨설팅 중심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들 세우고 추진하기로 하였다.7) 성북구 도시관리공단과 교류협력 협약2005년 S월 19일 아리랑시네센터 세미나실에서 윤경로 총장과 이상한 교무처장, 조인숙 학술정보관장,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의 조삼섭 이사장, 장부차 기획이사, 하정수운영이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북구도시관리공단과우리 대학 교류협력 협약식이 진행되었다. 이 협약 체결에서 양 기관은 “문화·정보·지역사회개발 등 각 분야의 긴밀한 교류협력을 통하여 지방자치시대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상호 우호증진과 공동발전을 위하여 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협약의 구체적 내용은 1) 지역사회 발전에 관한 사항, 2) 사회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지역주민의 교육기회 제공에 관한 사항, 3) 우리 대학의 공단 스포츠, 문화, 예술, 정보 이용에 관한 사항, 4)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관한 사항, 5) 우리 대학의 공단직원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교육기회 제공에 관한 사항, 6) 기타 양 기관의 발전과 우호증진에 관한사항이었다공단 측은 공단시설이용회원이 우리 대학 사회교육원에 등록할 때 할인 적용과 우리대학 학생이 공단 운영시설물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의 현장실습(성북정보도서관, 아리랑정보도서관)과 ‘아름다운 빨래방’을학생들의 자원봉사 장으로 활용하는 것과 대학원 진학 시 장학혜택과 경영학, 행정학, 전산학 등 단기교육, 기타 직원능력개발을 위한 교육을 제안하였다. 위의 협약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자료의 제공 및 교환, 교육, 자문, 연구 공동참여 등의 방법으로 교류할 것과 구체적 실행방법은 향후 상호협의에 의하여 정할 것을 합의하였다.
8) 2+2 복수학위협정 체결우리 대학이 중국의 북화대학 및 회북전력대학과 ‘2+2 복수학위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은 2년은 소속대학에서, 나머지 2년은 협정을 체결한 타 대학에서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두 대학의 졸업요건이 충족되면 2개의 학위증을 수여받는 제도이다 이 협정은 윤경로 총장, 박명환(산업시스템공학과) 총무처장, 박호영(한국어문학부) 언어교육연구원장, 이상원(애니메이션·제품디자인전공) 예술대학원장, 이치형(홍보교류팀) 직원이 2006년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국제교류 관련 일정으로 북화대학과 화북전력대학, 길림예술대학동화대학, 장춘세무대학 등 중국 4개 대학 초청방문일정 기간에 체결하였다.
북화대학과는 협정체결과 더불어 우리 대학 한국어과정 및 학위과정을 이수하고자 하는 유학생을 모집하여 파견하기로 하였고, 회북전력대학과는 복수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 회북전력대학에 갈 경우 등록금 감변을 받을 수 있도록 협약하였다. 또한 자매결연협정을 맺은 길림예술대학동화대학과는 2007년부터 학부 교환학생 3명 상호교환과 동화대학 학부졸업생 및 교수를 우리 대학 대학원에 파견하는데 합의하였다.9) 학술정보관, 2006 세계도서관정보대회 공식 방문도서관 선정우리 대학 학술정보관이 2006년 세계도서관정보대회 (2006. 8. 20.~24., 서울 삼성동 코엑스) 공식 방문도서관으로 선정되어, 8월 23일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남아프리카 등 23개국의 도서관 사서 38명이 우리 대학 도서관을 방문하였다. 방문객들은 국내 대학 최초로 도입한 장서 지동인식 기술과 ID 발급시스템, 멸티미디어 정보설, 하늘정원등을 시찰하였다. 방문도서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법원도서관, 12개 공공도서관, 9개 대학도서관, 9개 전문도서관, 2개 학교도서관을 선정하여 우리나라 도서관인들은 물론 세계의 도서관인들에게 그 도서관의 특성과 사례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10) 서룰시 산하 패션센터와 업무협약 체결2007년 4월 20일에는 서울시 산하 패션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우리 학교는 서울 중소패션기업마케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약 5억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으며 이로써 우리 한성대는 중소기업 수출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사회와 기업에 공헌할 수 있는 기반이 더욱 확대되었다.11) 5개 대학과 도서 상호대차 협정 체결2007년 8월 22일에 우리 학교와 광운대, 대진대, 동덕여대, 삼육대, 상명대 등 5개 대학과 도서 상호대차 협정을 체결하였다. 모두 사립대도서관협의회 소속인 이 5개 대학은 이 협정의 체결로 9월부터 우리 대학 학술정보관과 서로 도서를 대여할 수 있게 되었다. 5개 대학은 각 도서관마다 전공분야에 따라 특화된 도서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잘 활용하면 많은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 다만 이용 대상 도서는 학술정보관에 없는 자료(대출용 단행본)에 한정하기로 하였다.
12) 국사편찬위원회와 학술연구 교류 협약 체결2007년 11월 14일에는 국사편찬위원회와 학술연구 교류 협약을 제결하였다. 이 협약은 한국사 연구 및 보급의 활성화와 국사 교육,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동학술회의 개최, 흐μ술 자료 및 연구 성괴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향후 한성대의 한국사 및 한국학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13) 서울시 성북교육청 대학생 멘토링 활동
우리 대학과 지역 내 초·중학교 연계 협력망을 구축하고 또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대학생 멘토를 통한 학습 및 인성지도 등을 지원함으로써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2007~2008년도에 걸쳐 서울시 성북교육청 대학생 멘토링 활동을 전개하였다.학부 재학생으로 평균평점 3.0 이상인 자에게 멘토 자격을 부여하여 주로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을 교육 대생멘티)으로 기초학습지도 및 교과지도를 기본으로 하고 아울러 인성지도, 특기, 적성지도, 진로지도, 상담 활동 등을 병행하여 실시하였다. 2007년도에는 멘토링 참여 인원이 55명이었는데 2008년도에는 120명으로 크게 늘어나 멘토링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14) 지역사회 봉사활동
윤경로 총장은 취임 시 대학 발전 비전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을 제시하였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은 교육과 산학영역 뿐만 아니라 봉사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5년 5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초창기에는 격주 금요일, 2007년 4월 이후로는 셋째 주 금요일 아침 7시 ~9 시에 총장을 비롯하여 보직교수 및 직원들이 삼선교 일대와 낙산 등 성북동 지 역 학교 주변을 청소하였다. 한편 2008년 10월 8일에는 성북구청이 주관한 가을맞아 대청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0시부터 2시간 동안 삼선교 일대에 걸쳐 대청소를 하며 깨끗한 거리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또한 2005년 4월 1일부터 학교주변(삼선 1 동)에 거주하는 무의탁 독거노인 10분을 선정하여 학교와 구내식당, 자원봉사 학생들의 협조 하에 주중 5일(공휴일 제외) 점심 도시락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2005년~2008년간 지원한 도시락 개수는 약 7,000 여개를 상회하며, 봉사활동 학생 수는 200여명에 탈한다5.2.4 환경개선
1) 낙산관 증축2004년 1월 10일 착공한 낙산관 증축 사업이 2005년 3월 18일에 준공되었다. 사업금액 총 8,773,000 천원이 소요되었으며,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1,348.81㎡ 의 규모이다.낙산관 증축은 교내에 대규모 강당 및 실내체육관을 확보하고, 그동안 가건물을 사용하던 무용학과 실습실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업결과 지하 l 층 기계실, 지상 1층 무용학과 3개 실습실, 지상 2층 대강당 (650석), 지상 3층 체육관(280 석), 지상 4층 체력단련실이 마련되었다. 닥산관 증축으로 대규모 실내 체육관이 조성되어 우천 시에도 체육 실습이 기능해졌고, 대강당이 마련되어 다%탤 교내 행시들 실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용학과 실습실이 면적도 증가되면서 쾌적함도 확보하여 만족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체력단련실을 마련하여 교내 구성원들의 건강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2) 우촌관 로비, 미래관 스터디라운지 조성
2006년 1월 2일부터 2006년 2월 28일까지 사업비용 372,200 천원을 사용하여 우촌관 로비 인테리어들 새롭게 하고 미래관에 스터디라운지를 조성하였다. 그동안 우촌관 로비는 대학본부 로비로서 외부 인사들의 출입이 빈변함에도 불구하고 노후화 된 시설로 인해 대학교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또한 미래관 스터디라운지를 조성한 공간은 낙산관 신축으로 체력단련실을 이전하고 남은 공간으로 행사준비 외에 용도가 불분명하였다. 이를 학생들의 그룹 스터디실로 조성하였다.이 사업으로 대학 본부의 이미지가 산뭇해져 외부 인사 방문 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으며, 스터디라운지는 학생들의 그룹스터디를 활성화시켰고, 학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라운지의 환경 개선으로 각종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으며, 40명 이상 수용 기능한 대회의실을 조성하여 각종 세미나, 학과장 회의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3) 연구관과 학송관 증축
2006년 4월 1일부터 2006년 8월 31일까지 총 금액 2,780,000 천원을 사용하여 연구관 2개층과 학송관을 증축하였다. 연구관은 기존의 7층에서 2개층을 증축하여 9층 건물이 되었다. 증축된 면적은 총 2,031.59㎡로 연구실 56개를 확보하게 되였다 연구관 증축 사업은 그동안 계속 충원으로 부족하였던 교수의 연구실 공간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사업결과 교사확보율이 증가하였다.학송관은 지상 2층을 증축하여 연면적 1,191.42㎡ 에 실습실, 강의실 및 세미나실 14개를 조성하였다. 그동안 대학원 전용 강의실이 없어 학부 강의실(탐구관)을 일부 시용하였다. 그런데 2006년 2학기부터 학부 교과수의 대폭적인 증가와 교과과정의 세분화로 인해 학부에서도 강의실 수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시설이 노후하여 활용도가 낮았던 구 대강당을 증축하여 대학원 독립 건물로 조성하게 되었다. 이 사업으로 대학원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고, 탐구관 4,5층의 구 대학원 강의실을 학부 강의실로 전환하여 부족한 강의실을 확충할 수 있었다4) 기숙사 확충
2005년 2월부터 2007년 3월까지 학교가 구입한 부동산을 그동안 부족하였던 기숙사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방 학생, 외국인 유학생 및 외국인 교수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확충된 기숙사 건물 및 수용 인원은 아래와 같다.<표 42> 기숙사 확충 현황 (2005~2007)
소재지 구입시기 토지면적(㎡)
소재지 구입시기 토지면적(㎡)
<표 43> 기숙사 수용인원 현황 (2004~2008)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5) 운동장, 탐구관 앞 정원 조성
2006년 11월 28일부터 2007년 3월까지 사엽금액 445,000 천원을 투자하여 운동장에 농구장과 족구장을 설치하고, 탐구관 앞 분수대와 잔디를 조성하였다. 이 사엽은 탐구관 앞이 주차장화 되는 상황을 개선해달라는 학생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진행되었다. 이사업을 통하여 캠퍼스 내 차량 유입의 감소로 대학 구성원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고, 학생들의 운동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캠퍼스 공간을 환경 친화적으로 조성하여 구성원들의 공간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었다6) 동문 개설
2007년 6월 22일에 시작된 동문(여중·여고의 사이길) 신설 공사가 12월 30일에 마무리되었다. 동문의 신설로 인해 우리 학교의 출입로는 정문, 중문, 남문에 이어 동문도 추가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동문은 한성대에서 삼선초등학교, 보문동 방면으로 통한다 동문 입구에는 총 세 개의 기퉁이 세워졌으며 또한 동문으로 나가는 담장 위에는 기와들 연달아 없고 담벼락에는 무늬로 장식하여 고궁 같은 고풍스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7) 교내 무선랜 구축 및 무선인증서비스 도입우리 대학은 2002년 9월 탐구관 강의실에 부분적인 무선랜 구축을 시작으로 최첨단 캠퍼스(차세대 U-Campus)로의 진회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9월에는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교내 전지역 무선랜을 개통하였으며 아울러 난청지역찾기대회들 통해 교내 무선랜난청지역을 모두 해소하였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2008년 3월에는 무선인증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었다.8) 기타 학교시설 확충
2007~2008년도에 이루어진 각종 학교시설의 확충, 정비 사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우촌관 100 호 휴게공간 조성 (2007년 3월), 8층 사회교육원 강의실 조성 (2007년 4월), 공학관 테니스장 조성 (2007년 8월), 탐구관 옥상 조경 (2007년 11월), 탐구관 지하 강의실 조성, 게스트하우스 B동(구 은성장) 리모델링 (2008년 2월), 공학관, 진리관 로비 인테리어, 3층 사회교육원 강의실 조성 (2008년 3월), 창의관 외벽 리모델링, 미래관 지하 B102호 첨단 강의실 조성 (2008년 8월), 공사(2008년 8월), 미래관 전면 휴게공간 조성(2008년 9월), 연구관 옥상 녹화, 연구관 옥상에 한성대 LED 사인물 설치 (2008년 11월)5.2.5 교지 『;漢城』폐간과 동문조직 활성화
1) 교지 『;漢城』폐간, 언론사 ‘한성프레스센터’로 통합 운영2006년 3월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발간하던 교지 『;漢城』을 폐간하고 신문사, 영자신문사, 방송국을 ‘한성프레스샌터’로 통합 운영하는 안을 교무위원회에서 승인하였다. 교지 『;漢城』은 2004년까지 연 2회 발간되었고, 2005년부터는 연 1회 발간되었다. 교지 폐간 배경에 대하여 당시 교지 주간 김진환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는 “과거 학생들이 다양한 매체를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지의 의미가 있었지만, 다양한 매제를 통해 각종 정보와 의견을 쉽게 얻는 현재에는 교지가 계속 출간되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설명하였다.2) 동문조직의 활성화와 연계 강화과거 유명무실하였던 동문회를 재건하고 각종 동문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5년 이후 대학본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이루어졌다. 2005년에는 동문 주소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매년 자료를 업데이트한 결과 동문 l 만 명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총동문회 홈페이지 개설을 지원하였으며 대학 정책결정과정에 동문대표 2명 (학부 동문대표 한용수 총동문회 부회장, 대학원 총동문대표 박진학 총동문회 회장)을 대학평의원회 평의원으로 선임함으로써 동문대표의 참여를 보장하였다.
윤경로 총장 시대를 종합하면, 가장 주목할 사실은 우선 정이사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 학교가 그 동안의 임시이사체제에서 벗어나 정상화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한성학원의 정상화는 불완전한 리더십의 복원 및 학원 정상화를 통한 대학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2007년 개교 35주년을 맞이하여 화합·단결·변회플 슬로건으로 제2의 건학을 꿈꾸며 전례 없이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되었던 것도 학교 발전을 염원하는 당시 이러한 분위기의 소산이었다.윤경로 총장은 취임사에서 한성대의 비전으로서 〈학생감동 교육중심 대학〉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을 제시하였다. 실제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전술한 바와 같이 교육과 연구 방면에 다양한 제도적인 조치들이 도입되었으며 그 성과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 학생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질 높은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365일 열린캠퍼스, 한성튜터링, 지역인재육성산업, 장학제도 개선, 해외봉사단 파견 등의 글로벌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취업률 70%(2006년)를 돌파하기도 하였고, 중소기업 직업훈련 컨소시엄 사업 및 벤처창업지원센터 최우수 등급학교,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7년 제4회 ‘훌륭한 대학교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의 내부 시설 및 주변 환경 정비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 진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학교 정상화를 계기로 학교 발전을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들이 모색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건학 50주년인 2023년을 목표로 수립된 발전방안 ‘드림 2023’은 진학 학생수의 감소 예상과 대학 구조조정의 심화, 신입생 학력 수준 저하와 열악한 캠퍼스 환경, 부정적 학교 이미지 고착화 우려 등을 학내외의 주요 위협요소로 상정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나름의 다양한 발전 전략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중장기 발전 방안이 그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우리 구성원 모두의 선택과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기에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현실의 문제와 그 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기억해두고자 한다. 학교의 발전을위한 다양한 변화의 모색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5.3 학생성공교육, 제6대 정주택 총장 시기(2009. 3. 1. ~ 2013. 2. 28.)5.3.1 정주택 총장과 이희순 이사장 취임1) ‘학생성공교육’의 기치를 내건 정주택 총장 취임2009년 3월 1일 행정학과 정주택 교수가 우리 대학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1991년부터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해왔고 행정대학원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정주택 교수는 155명의 교수들이 참여한 최종투표에서 102표(65.8%) 를 얻어 1 위 후보자가 되었으며, 2월 13일 개최된 법인 이사회는 교수들의 결집된 의견에 따라 그를 신임총장으로 결정하였다.
3월 27일 개최된 총장 이·취임식에서 정 총장은 자신의 슬로건인 ‘학생성공교육’을 재차 강조하였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뭇을 이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도록 교육하는 열”이 총장과 우리 대학이 수행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천명한 정총장은 ‘학생성공교육’을 위해 “교수, 직원, 학생이 삼위일체가 되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취임일성을 내놓았다 한국 대학의 주변여건이 급속히 변하고 있고 특히 대학진학 학령인구가 감소할 젓이라는 진단을 한 정주택 총장은 우리대학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임박한 위기를 타개하고 밝은 미래를 맞이하도록 “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투자할 것”이라며 신임총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한편 교내 구성원들은 정주택 신임 총장에게 기대와 당부의 뭇을 전하였다. 임기를 마친 윤경로 총장은 “앞으로도 교육 중심의 대학,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소문나도록 신임총장께서 힘써주길 기대한다"며 ‘학생성공교육’이라는 정 총장의 목표에 공감을 표하였다. 홍용식 교수협의회 회장은 “정주택 신임 총장이 가진 총장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투표결과가 잘 말해주고 있다”면서 힘을 실어 주었고, 조현호 노조위원장은 “직원들이 학교에 가지는 애교심이 커지고 경쟁을 강조하기 보다는 차별 없는 직원사회”가 될 수 있도록 신임 총장이 노력해 달라는 당부의 의사를 밝혔다. 최은영 총학생회장은 “학우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열린 귀를 가진 총장님이 되었으면 좋겠고, 학생들이 총장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총장상을 제시하였다.
2) 보직 개편새 총장이 취임함에 따라 대학의 실무를 담당할 새로운 보직자들이 임용되었다. 교무처장에 기계시스템공학과 윤재건 교수, 기획협력처장에 경영학부 정승환 교수, 학생지원처장에 의류패션산업 전공 홍성애 교수, 총무처장에 컴퓨터공학과 김영웅 교수, 입학홍보처장에 인테리어디자인 전공 고영란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대학원장에는 행정학과 이종수 교수, 학술정보관장에 영어영문학부 김덕자 교수, 디자인아트평생교육원장에 경영학부 홍용식 교수, 전자계산소장에 컴퓨터공학과 정인환 교수, 그리고 산학협력단장에 컴퓨터공학과 황기태 교수가 임명되었다.
한편 4개 단과대학을 대표하는 학장들도 새로 임명되었다. 인문대학장에 역사문화학부 윤혜영 교수, 사회과학대학장에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 예술대학장에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 애니매이션제품디자인 전공 이상원 교수, 공과대학장에 산업시스템공학과 이재득 교수가 임용되었다.3) 이희순 이사장 취임과 새로운 이사진 구성2010년 1월 제6~7대 이사장을 역임한 이희순 여사가 한성학원의 제 21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고(故) 우촌 김의형 박사와 함께 한성학원의 산 증인이자 33년 만에 한성학원의 이사장으로 복귀한 이희순 여사는 취임과 더불어 ‘제 2개교’를 선언하였다.이희순 이사장은 우리 대학의 미래와 성장전략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건학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실용중심교육의 강화가 바로 ‘제 2개교’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열린 사고와 문화적 소양 그리고 국제적 경쟁력을 겸비한 핵심인재 양성에 주력할 것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성 l등 프로젝트’를 통한 특성화, 교육훈련지원금을 비롯한 장흑L금의 확충, 그리고 ‘창업 1등 대학’을 제시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산학협력, 해외파견, 인턴제의 확대를 통하여 실용적 능력을 갖춘 인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교육과정을 마련하여 첨단산업분야의 전문가를 배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한편 2010년 1월 새롭게 구성된 이시들의 현직 및 주요 경력은 아래와 같다.<표 44> 2010년 1월 구성된 새로운 이사진
직위 성명 임기 현직 및 주요 경력
직위 성명 임기 현직 및 주요 경력
4) 보직임명을 둘러싼 대립
2010년 1월 이희순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보직개편 단행의 의지를 보였고, 그 과정에서 정주택 총장과 적지 않은 갈등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보직개편을 둘러싼 이사장과 총장의 대립은 구성원들의 섬각한 우려를 지-0]-내면서 정주택 총장 재임 후반기까지 이어졌다.2010년 1월 시작된 보직파동의 발단은 이희순 이사장이 10개월 전 정주택 총장이 취임하면서 임명된 주요보직자들을 전면 교체하려는 데 있었다. 보직자 입면권을 갖고 있는 이사장은 자신의 취임과 더불어 보직자들을 새로운 인사들로 구성하려고 하였고, 한편 입기가 시작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보직자들이 별다른 과오가 없었음에도 전면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히는 처사라고 간주한 정주택 총장은 정관에 명시된 보직자 제청권을 근거로 새로운 인시들을 제청하지 않으면서 이사장의 조치에 반대하였다.이후에도 지속된 보직에 대한 의견 차이는 4월 해소되었고, 그 결과 새로이 임명된 보직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교무처장에 경제학과 박영범 교수, 기획협력처장에 행정학과 이창원 교수, 학생지원처장에 역사문화학부 박단 교수, 총무처장에 산업경영공학과 박명환 교수, 입학홍보처장에 정보시스템공학과 방갑산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대학원장에는 경영학부 김원중 교수, 학술정보관장에 한국어문학부 박호영 교수, 디자인아트평생교육원장에 애니메이션제품디자인 전공 이상원 교수, 전자계산소장에 정보통신공학과 호광춘 교수가 임명되었다. 인문대학장에는 지석정보학부 조인숙 교수, 사회과학대학장에 무역학과 유병호 교수, 예술대학장에 의생활학부 패션디자인 전공 최해주 교수, 공과대학장에 산업경영공학과 정병용 교수가 임명되었다. 한편 학생지원처장을 맡고 있던 박단 교수가 이직함에 따라 역사문화학부 박준철 교수가 2010년 8월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보직교수에 대한 총장의 제청권과 이사장의 임면권 간의 불협화음은 2011년 재연되었다 10월 31일자로 휴직을 한 박영범 교무처장의 후임지를 놓고 총장은 이사장이 임명 통보한 새로운 교무처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제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또한 대부분의 보직지들의 임기가 만료된 2012년 초 이사장과 총장은 후임자 임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한편 임기가 만료되면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총장에게 밝혀 온 입학홍보처장과 총무처장이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2년 3월과 4월에 각각 자리를 떠났다 결국 5명의 처장 가운데 2명의 처장 만 남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면서 학교행정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오랜 갈등은 2012년 8월 이사회의 중재로 마침내 종식되었다. 교무처장에 경제학과 강신일 교수, 학생지원처장에 시각영상디자인 전공 명광주 교수, 입학처장에 컴퓨터공학과 이민석 교수가 각각 신규 임명되었고, 이창원 기획협력처장은 유임되었으며, 박준철 학생지원처장은 총무처장으로 전보되었다. 대학원장에는 역사운화학부 황혜성 교수,학술정보관장에 한국어문학부 김창룡 교수, 전자계산소장에 컴퓨터공학과 정인상 교수, 그리고 2011년 8월부터 교무처장이 겸직해왔던 산학협력단장은 이창원 기획협력처장이 겸직 임명되었다. 한편 인문대학장에는 영어영문학부 이병은 교수, 사회대학장에 경영학부 정승환 교수, 예술대학장에 시각영상디자인 전공 김지현 교수, 공과대학장에 정보통신공학과 정영모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2012년 12월 차기총장 선거에 출마들 선언한 강신일 교무처장이, 2013년 1월에는 개인 사정으로 이창원 기획협력처장이 각각 사임하였다. 후임자로는 교무처장에 경영학부 신민철 교수, 기획협력처장에 정보시스템공학과 지준 교수, 산학협력단장에 정보시스템공학과 김남윤 교수가 각각 임명되었다.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거듭된 보직개편을 둘러싼 이사장과 총장의 갈등은 우리 대학에 상처를 남겼다 임면권과 제청권의 순기능적 조회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알력과 대립으로 얼룩진 그 기간은 많은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시행착오는 소중한 교훈으로 승화되어 우리대학 발전의 밑거름으로 거듭날것이다.5.3.2 ‘학생성공교육’을 향한 발걸음
1) 교육환경 및편의시설 개선‘학생성공교육’의 실현을 위한 초석 가운데 하나는 교육환경 개선이다. 우선 수업의 질적 제고와 교수와 학생의편의를 위한 전자교탁 도입이 2009년부터 본격화되었다. 2009년 미래관 2개, 탐구관 33개, 진리관 6개, 우촌관 1개 등 총 42개가 설치되었고, 2010년에는 공학관 11개, 2011년에는 공학관 2개, 진리관 2개, 창의관 7개, 학송관 5개, 지선관 1개 등 총 17개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전자교탁은 마이크와 조명장비, 태블릿 모니터, 컴퓨터, 영상장비, 빔 프로젝터가 장착된 교탁이다. 이전까지 대학전체에 6개에 불과했던 전자교탁이 3년간 무려 70개가 늘어남으로써 대학의 모든 수업은 최첨단화된 교육장비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교육환경 개선은 탐구관, 진리관, 창의관의 리모델령으로 이어졌다. 탐구관의 경우 1차로 2011년 7~8월 1층 7개 강의설 환경개선 공사가 이루어졌다. 벽면 인테리어 필름설치 및 패브릭 마감, 천장 인테리어 우물천장형 마감, 바닥 데코타일 마감공사가 진행되었고, 일반전등을 모두 LED 전등으로 교체하였다. 2차 공사는 2012년 7-8월에 걸쳐 3층 7개 강의실과 5층 7개 강의실을 대상으로 1차 공사와 동일한 내용으로 시행되었다.
진리관은 2012년 6월부터 8월까지 대규모 리모델령이 이루어졌다. 노후화된 기와지붕을 아스팔트 싱글로 전면 교체하였고, 한기와 소음에 취약했던 기존의 단창 창호를 모두 이중 단열시스템 창호로 교체하였으며, 2~3층의 실습실과 4층 일반강의실의 벽면과 천장, 바닥과 전등에 최신 자재와 장비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진리관은 건물 외부와 내부 모두 쾌적하고 청결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2013년 1월부터 2월까지 창의관 5층 실습실의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었다. 기존 경량벽체 (SGP 판넬)을 철거하고 ACL 조적벽을 설치하였으며, 실습실 전체 공간을 용도별로 전면 재구획하였다. 벽면은 인테리어 필름 및 패브릭으로 마감하였고, 천장은 노출 천장으로 바꾸고 흡음텍스로 마감하였으며, 바닥에는 데코타일을 깔았다. 일반전등을 모두 LED 전등으로 교체하였다.한편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창의관 1 층에 위치한 학생식당과 교직원식당 환경개선공사가 진행되었다. 위생과 조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방구조와 조리시스템을 변경하였고, 천장과 벽면 그리고 바닥재를 교체하였으며, 조리설비를 증설하고 조명을 전면 교체하였다.
2) 취업지원 프로그램의 확대2000년대에 들어와 학생들의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부는 취업륨을 대학평가의 주요지표에 포함시켰다. 이와 같은 변화된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정주택 총장 재임 기 우리대학은 학생들의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다%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2002년 시작된 전공별 취업행사에 국한되었던 기존의 취업관련 교내행사는 현저하게 확대되었다. 학부/학과/전공별로 진행되어 온 전공별 취업행사와 더불어 2009년부터 단과대학 취업촉진사업이 시행되었다. 단과대학별로년 2,000만원이 지원된 이 사업은 단과대학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취업교육을 목표로 하여 업종 및 직종 특강, 사전직무 교육, 취업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취업정보센터 설립, 카네기 글로벌 리더십코스 교육,취업역량강화교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한편 2007년 출범한 취업캠프는 정주택 총장 재임 기 교내 취업교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위치로 승격되었다. 취업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외부 업제와 연계하여 실시된 취업캠프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 교육, 이미지 메이킹 컨설팅, 실전모의 면접, 기업의 채용 트렌드 특강 실시 등을 통하여 참가지들에게 전문적 취업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고취시켰다. 또한 일종의 취업 박람회 성격을 띠고 매년 사나홀에 걸쳐 전개된 취업 페스티벌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초청하여 기엽이 요구하는 인재 상 교육, 기업설명회 및 채용특강, 직무심화교육, 자기소개서 클리닉 등을 운영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취업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현장실무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외에도 취업대비 직종별 단기특강과 채용설명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고, TOEIC speaking, SAAT, GTQ, ERP 등 영어 및 특정 실무를 위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취업 지원을 위한 교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요제는 365 캠퍼스 프로그램이다. 방학을 활용하여 운영되는 365 캠퍼스 프로그램은 취업에 필요한 실무습득 및 자격증 취득에 도움이 되는 비교과과정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실적은 <표 45> 와 같다.<표 45> 365 캠퍼스 프로그램 운영 실적 (2009. 3.~2013. 2.)
2009학년도 2010학년도 2011학년도 2012학년도
정주택 총장 재임 기간 취업지원 교내 프로그램은 2009년 4월 15일 잡 카페가 신설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2008년 노동부 대학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엽의 일환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개설된 잡 카페는 기존의 경력개발실의 업무를 계승 확대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진단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데 필요한 지원업무를 수행한다 2009년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진로의식조사를 실시하였고, 재학생들을 위한 진로 가이드북을 발간하였다. 2010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직업심리검사, 진로집단상담, 입사서류 클리닉을 진행 및 운영하면서 우리대학의 취업지원 업무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각종 국가고시 준비생들의 면학과 수험전략 지원을 위해 설치 운영되어 온 고시 반은 2009년 학습의욕을 제고하기 위해 내부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선하였고, 2010년에는 기존의 행정고시 반을 공무원 준비반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기존 20명 내외였던 정원을 2011년에는 50명으로, 2012년에는 60명으로 대폭 증원하였다.
3) 창업지원 프로그램 가동
2000년대에 들어와 취업과 마찬가지로 창업은 대학의 중차대한 관심사로 부상하였다. 학생들이 경험과 자본과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공적 청년창업을 이루려면 많은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대학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창엽지원에 착수하였다. 무엇보다도 창업지원이라는 익숙지 않은 업무를 전담하는 창엽지원관을 채용하였고, 2013년 2월 현재까지 크게 4가지 상설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왔다.첫째, 2010년 1학기에 시작된 창업 강좌는 학생들에게 창업에 펼요한 기본지식을 제공하고 실무능력을 함양시키는 수업이다. 2학점 교양 선택 과목으로 학기당 한 두 개 씩 개설된 창업 강좌의 운영내용은 아래와 같다.
<표 46> 창업 강좌 운영 내용 (2010,3,~2013,2,)
개설학기 강좌명 책임교수 학점 수강인원
둘째, 역시 2010년에 제도화된 창업경진대회는 학생들에게 도전적인 창업의식을 고취시키고 참신한 창업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사업과 연계시킴으로 미래의 청년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한 취지를 갖고 있다 구체적 창업 아이템을 개발하여 실제와 다름없는 창업시뮬레이션을 시도함으로써 시행착오들 줄이고 창업 노하우들 축적케 하는 창업경진대회의 운영실적은 아래와 같다.
<표 47> 창업경진대회 운영 실적 (2010.3.~2013. 2.)
<2010학년도〉
구분 팀명 팀장명 아이템 부상
<2011학년도〉
구분 팀명 팀장명 아이템 부상
<2012 학년도〉
구분 팀명 팀장명 아이템 부상
셋째, 방학기간에 운영되고 있는 창업캠프는 학업수행을 병행해야 하는 학기 중에 쌓기 힘든 전문적 창업지식을 집중적으로 습득하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 12월 20일부터 이틀간 홍천 대명콘도에서 개최되고 32명의 예비 창업가들이 참가한 제1차 창업캠프는 성공창엽가와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 사업계획서 및 프레젠테이션 코칭, 스토리델링 마케팅 특강으로 그 내용이 구성되었다. 한편 2012년 6월 26일부터 이틀 간 용인 에벼랜드에서 열린 제2차 창업캠프에는 49명이 참가함으로써 창업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관심이 점차로 커져가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2012년 창업동향 분석 및 창업전략 수립, YES 리더스 기업가 정신 특강, 모의 기업설립, 창의적 아이멈 개발 훈련기법, 사업성 분석기법 및 사업계획서 작성 및 발표, 마케팅 시뮬레이션, 창업 골든벨 등 행사내용이 보다 다양해 졌다 같은 뭇을 품고 있는 동료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이론과 실무 학습을 공유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성공한 선배 창업기들로부터 살아 있는 지식을 배우는 창업캠프는 청년 창업가 육성을 위한 우리대학의 노력을 장 반영한다,
넷째, 2010년부터 가동된 창업동아리는 우리대학이 역점을 두고 있는 창업지원사업의 또 다른 요제라 할 수 있다. 학교당국에서 별도의 공간을 제공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히는 창업동아리의 활동상은 아래와 같다.<표 48> 창업동아리 운영 내용 (2010. 3.~2013. 2.)
<2010 학년도〉
<2011학년도〉
<2012학년도〉
4) 국내외 인턴십 확대
성공적 취업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재학 중에 기업에서 근무 경험을 쌓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주택 총장 재임 기 우리대학은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국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생들에게 기엽 현장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국내 인턴십 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고용노동부 지원 사업인 ‘청년직장체험 프로그램’은 시행된 첫 해인 2007년 5개 업체에 9명이 파견되었으나, 이후 참여업체와 참가학생 수가 비약적 늘어났다 2009년에는 23개 업체에 61명이, 2010년에는 28개 업체에 58명이, 2011년에는 11개 업체에 41명이, 2012년 15개 업체에 29명이 파견되어 실무지식을 터득하고 기업운영과 기업문회를 제득하는 경험을 쌓았다. 한편 우리 대학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자체 인턴십 프로그램에는 참여 학생이 2007년 첫 해단 1명에 불과하여 중단되었다.가, 재도입된 2011년에는 6명, 2012년에는 11명으로 꾸준한상승세를보였다. ‘중소기업체험학습’ 역시 우리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국내 인턴십 제도의 한 축을 차지한다 첫해인 2008년 39명이 참여하여 대대적인 호응을 유발한 이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2009년에는 13명으로 주춤하였고 2010년 33명으로 다시 상승세를 탔으나 그 해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학생들의 해외 인턴십은 두드러진 확장세를 보였다 2009년 ‘한미 WEST'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우리대학의 해외 인턴십 제도는 2011년 학생지원처에서 자체개발한 ‘ICCE USA'가 추가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2012년에는 ‘무역진흥공사 (KOTRA) 인턴십’ 프로그램까지 도입되면서 다양한 국가에서 우리 학생들이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미국, 뉴질랜드,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등에 소재한 현지기엽과 해외공사에서 6개월에서 1년을 근무하면서 참여 학생들은 해외기업의 문화를 익히고 글로별 마인드를 함양함으로써 폭넓은 시각을 갖추고 자신감을 드높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교당국은 학생들이 근무하는 현장을 방문하여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하면서 근무의욕을 제고시카고 또한 기업관계자들을 만나 제도적 보완과 개선을 논의하였다. 우리대학의 해외 인턴십 제도는 그 기대효과가 큰 만큼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판단된다.
5) 장학금 증가정주택 총장이 취임한 2009년부터 나타난 현저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장학금 지급의 대폭적인 증가다. 2009년을 기점으로 교내장학금의 규모가 처음으로 연 50억 원을 돌파하였고, 그 해 정부의 정책변화로 국가장학금이 증가하면서 교외장학금도 2008년에 비해 4배가 넘는 괄목할 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2012년에 국가장학금 유형이 도입되면서 교외장학금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교내외 장학금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히 장학곰 수혜인원도 늘어났다. 특히 2011년 학교당국은 그해 등록금 인상분 2.5%에해당하는 약 13억 원을 전교생에게 환급해 주는 용단을 내렸고, 이에 따라 장학금 수혜인원은 이례적인 급증을 보였다 2012년에는 국가장학금 1유형이 도입되면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학부 장학금 지급 현황은 아래와 같다.
<표 49> 장학금 지급현황 학부
년도/구분
우리 대학이 지급하는 다양한 장학금 가운데 두 가지는 차별화된 성격을 띠고 있다. 취업준비를 위한 어학 및 컴퓨터 교육 및 자격증 취득에 펼요한 경비를 지원하는 교육장학금(구 교육훈련지원금)은 재학 기간 중 학생 1인당 100 만원이 지원되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리대학만이 운영하는 독특한 제도다. 2002년 도입 첫 해 3,619 건의 신청과 3억 7천만 원에 그쳤던 지원 금액이 정주택 총장 재임 기에 매년 13,000 건 내외의 신청과 지원 금액이 10억 원 내외로 대폭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교육장학금이 학생들의 취업지원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한편 튜터링 장학금은 선후배간의 학문적 교류를 증진시커는 역할을 한다. 튜터링 장학금은 특정 수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선배(튜터)가 그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후배(튜티)들에게 수업내용을 지도하고 효과적인 학습방법을 알려줌으로써 튜티의 학업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튜티의 해당과목 성적이 일정기준을 도달하면 튜터와 튜티 모두에게 장학금 및 문화상품권이 제공된다. 2009학년도 130개 였던 튜터링참가 팀 수는 2010년 157개, 2011년 156개, 2012년 208개 로 꾸준히 증가하였고, 지급된 장학금도 매년 1억 원에 육박하였다.장학금 지급의 증가는 대학원의 경우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일반대학원과 9개 특수대학원이 원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 총액은 2008년 학기당 11억 원 약간 상회하였는데, 2009년 1학기에 13억 원을 넘어섰고, 그 후 2013년 2월 현재까지 학기당 적게는 12억 4천만 원에서 많게는 16억 4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그 구체적 수치는 아래와 같다.
<표 50> 장학금 지급현황 : 대학원
년도/학기
6) 세계로 뻗어 나간 해외봉사 및 학생활동
학생들의 역량강회는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경험축적과 국제적 안목을 넓히기 위한 취지로 2006년부터 시작된 해외봉사는 정주택 총장 재임 기간에 한층 활성화되었다.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각각 1개 팀을 파견해 온 해외봉사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하계봉사단의 경우 2팀으로 증편되었다. 둘째, 주로 동남아시아에 국한되었던 기존의 해외봉사와 달리 봉사대상국가가 확대되었다. 2009년 7 기 (2팀) 해외봉사는 각각 이슬람 문화권인 우즈베카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전개되었고, 2010년 10기와 2012년 12기는 남태평양의 작은섬나라 바누아투에서 이루어졌다· 2012학년도 겨울방학에 진행된 14기 는 아프리카 케냐로까지 해외봉사의 지역을 넓혔다 특히 바누아투의 경우는 우리대학이 한국 최초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국가였다 열악한 환경에 신음하고 있는 자국 어린이들에게 내민 봉사단원들의 도움의 손길과 교실 한 채를 지어준 우리대학에 감동한 바누아투의 신문사와 방송국은 10기 봉사단의 활동을 일제히 보도하였고, 단원들은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정주택 총장 일행은 바누아투 대통령을 만나 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환담을 나누었다 2013년 2월까지 14기(17팀)가 파견된 해외봉사에는 총 385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우리 대학의 해외봉사 활동은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두였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국제적 감각 및 봉사정신을 고취하고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고양할 수 있었다. 또한 현지인들에게 우리대학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성괴를 이루었다. 한편 해외봉사활동이 각종 언론 매체에 보도되어 대학홍보 및 이미지 향상에 기여하였다. 그동안 대상국가와 프로그램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개발해왔고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우리대학의 해외봉사는 현재 국내의 많은 대학들을 선도하고 있다.
학교본부에서 방문국을 결정하고 봉사내용을 기획하는 해외봉사와 달리 ‘한성 석세스프론티어 (Hansung Success Frontier, 이하 HSF)’는 학생들 스스로가 대상국가와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해외경험 프로그램이다. 2010년 도입된 HSF는 프로젝트의 성격을 제한하지 않고 외국의 사례를 현장방문을 통해 직접 조사한 후 타 문화권 탐방에서 발견한 장점과 교훈을 국내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지역에 따라 참여 학생 1인당 200만원까지 지원되는 HSF는 우리학교 만이 시행하고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대대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매년 지원자가 급증히는 추세를 보여 왔다 매년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는 HSF에 참여한 학생은 2010년 7개 팀 (21명), 2011년 8개 팀 (24명), 2012년 11개 팀 (33명)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방문국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7) 잉글리쉬 라운지
잉글리쉬 라운지 (English Lounge) 는 학생들의 전반적 영어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2009년 10월에 미래관 지하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강의실 보다 좀 더편안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영어를 즐겁게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지향한 장소로 제공되었다. 잉글라쉬 라운지는 Group Speaking, Open Activity, English Corner, 그리고 Quiz Show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학생들이 영어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외국인 전임교수 2명이 항상 상주하여 언제든지 학생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으며, 예약제를 운영하여 1:1 만남을 통해서 영어에 대한 세세한 부분에 지도를한다.Group Speaking은 원어민 교수와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학습하는 회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팀별로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외국인 교수와 함께 자유로운 토론을 실시하여 회회능력향상을 꾀하는 수업이다. 매일 오후에진행되는 Open Aαivity 수업은 전반적인 영어 능력 제고를 위해 강좌마다 주제를 변경해가면서 그 주제에 맞는 영어 학습을 수행한다. 출석률이 좋은 학생에게 l학점을 부여하는 이 수업은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English Corner 는 영어에 자신감이 없는 학생들을 위한 1:1 영어 묘칭 프로그램으로 짧은 에세이부터 영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첨삭까지 지도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잉글리쉬 라운지는 2012년도에 총 방문 학생 수가 9 천 명을 념을 정도로 대대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5.3.3 변화하는 한성대학1) 학과신설정주택 총장 재임 시 우리 대학은 2011년에 부동산 경영학과(야간)을 신설하였고, 2013년 2월 현재 공공인재학과(야간) 신설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부동산 경영학과가 신설되면서 모집단위는 기존 22개에서 23개로 늘어났고, 공공인재학과가 신설되면 24개로 확대된다. 2009년 11월 교육부의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운영기준 시행공고’에 따라 기획협력처는 부동산경영학과 선설을 적극 검토하였고, 2010년 5월 사회과학대학의 4개 학부/학과는 야간정원을 1명씩 감축하여 신설되는 부동산경영학과에 충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기획위원회는 5개월에 걸쳐 부동산경영학과 운영빚싼을 수립하였고, 교육부는 정원 내 4명, 정원 외 33명(총 입학정원의 2%)을 모집인원으로 히는 부동산경영학과 신설을 반영한 우리 대학의 2011년 학생정원 조정계획을 승인하였다. 계획이 승인됨에 따라 부동산경영학과 신입생이 모집되었다. 2011년에는 정원 내 4명, 정원 외 6명이 선발되었고, 2012년의 선발인원은 정원 내 4명 정원 외 8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2012년 대학본부는 2013년부터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의 정원 외 모입인원이 기존 2%(33명)에서 4%(66명)로 확대됨에 따라 기존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추가로 학과들 신설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였고, 새로운 학과를 운영할 학부/학과를 모집하였다. 2012년 7월 행정학과는 공공인재학과(야간) 신설 계획서를 제출하였고, 이에 따라 기획위원회와 교무위원회는 해당학과의 설치를 의결하였다. 공공인재학과 신설이 교육부의 승인을 얻게 되면서 기존 부동산경영학과의 정원 내 모집인원 4명 가운데 2명은 공공인재학과로 넘어갔다. 따라서 향후 2013년 이 두 개 신설학과의 모집인원은각각 정원 내 2명, 정원 외 33명으로 도합 70명으로 확정되었다. 66명으로 늘어난 정원 외 모집인원은 학생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대학의 재정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2) 연구 및 강의 장려와 업적 평가 강화대학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교수의 연구 및 강의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정주택 총장 재임 기 우리 대학은 교수들의 연구를 촉진하고 강의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편으로는 연구비 증액과 우수강의 포상 등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승진 및 재임용의 기준을 강화하는 이중적 정책을 펼쳤다. 대학정보공시제의 도입으로 그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고 또한 대학평가의 주요 지표로 자리 잡은 교원업적을 제고하여 대학의 수월성을 향상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정주택 총장은 2009년 취임과 동시에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연구비 증액을 실현하였다. 연구비 연간 총액 한도가 1 인 당 천 5 백만 원으로 늘어나면서 교수들의 연구의욕을고취시켰고, 특히 SCI, SSCI, A&HCI 급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에 대해서는 천만 원의 연구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2010년에는 국제학술지 논문게재들 독려하기 위해 SCI, SSCI, A&HCI 논문의 경우 연간 천만 원 한도의 장려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파격적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학기 당 6학점 이상 학부강의를 한 전임교원 가운데 강의평가점수가 평균 4.5 이상이거나 단과대학별 상위 10%에 해당하는 우수교원에게 학기 말에 100만 원을 지급히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였다. 연구와 봉사 영역의 경우에도 연간업적을 기준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교수들에게 각각 100만 원의 포상을 시행하였다.
교수 역량 제고 정책은 업적평가의 강화로 이어졌다 2010년부터 승진 및 재임용 요건에서 연구영역의 총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평가기준이 대폭 강화되었다. 번역서 및 편저서의 점수가 삭감되었고, 국내우수학술지(학진 등재후보지)와 국내일반학술지 그리고 기타학술지 및 기념논문집에 게재된 논문의 점수도 하향 조정되었다. 서평, 본 대학 및 부설연구소 논문집 게재 논문, 학술회의 발표문(전문 및 초록), 연구결과보고서, 의장 및 상표, 실용신안, 단체전 및 비 상설 전시장의 개인전, 단체공연 등의 평가점수도 축소되었다. 한편 승진요건에서 논문의 학진등재지 게재 비율이 2011년 30%에서2012년 50%로 강화되었다. 교육영역의 경우, 학생면담지도와 외국어 강의의 접수가 상향조정된 반면, 기존에 각각 2 점이 할당되었던 강의계획서 제출, 성적균형평가 및 공시, 홈페이지 평가항목은 전면 폐지되었다.
3) 진입로 확장우리 대학의 숙원사엽 가운데 하나인 진입로 확장공사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5월 착공되고 이 해 12월에 완공되었다. 성북세무서에서 우리 대학으로 올라오는 삼거리부터 대학정문까지 약 300m의 기존 도로는 노폭이 불과 4~6m로 매우 협소하였다. 좁은 진입로는 차량통행의 불편과 접근성 저하 그리고 대학의 이미지를 훼손하여 우리대학으로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2005년 윤경로 총장 재임기간부터 시작된 확장계획이 여러 단계를 거쳐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2008년 3월 ‘도시계획 시설사업 실시계획 인개가 고시되었고,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재정지원과 우리 대학의 분담금 25 억 8천만 원이 투자된 확장공사는 기존도로 약 300m 가운데 재개발이 예정된 150m를 제외한 나머지 구간을 12m(도로 7m/인도 5m)로 확장하였다. 이 사업은 우리대학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 쾌적한 가로환경을 조성하였고 향후 재개발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효괴를 가져왔다.
4) 다양한 국제교류정주택 총장 재임기의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국제교류가 대폭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2009년 3월부터 2012년 8월까지 교류를 체결한 외국대학의 수가 14개국 33개교에 달한다. 이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간 우리대학과 외국대학의 교류체결 수가 53개인 사실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이며, 국제화의 조류에 부응한 긍정적 행보라고 할수 있다외국대학과 체결한 국제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파견학생과 초청학생 수도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우리 대학이 파견한 학생수가 2009년 110명, 2010년 114명, 2011년 136명, 2012년 152명으로 매년 꾸준히 상승하였고, 우리대학에 파견된 외국학생수도 2009년 18명, 2010년 38명, 2011년 41명, 2012년 39명으로 이전과 비교하여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국제교류가 활성화된 것은 집행예산의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래의 표에 나타나듯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제교류에 지출된 전체집행 예산이 지속적으로 상향조정되었다.<표 51> 연도별 국제교류 예산 집행 내역 (2006~2012)
(단위 천원)
5)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 개관
2012년 3월 1일 우리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를 개관하였다. 우촌관에 위치한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의 설립목적은 다음과 같다.(1) 매력적인 유학환경을 조성하여 한국 유학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성공적인 한국유학생활 지원을 통해 우수 지한(知韓)·친한(親韓) 인재를 육성한다(2)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적 신뢰도 및 경쟁력을 제고한다.(3) 유학생 관리의 모범적 기준을 제시하여 대학의 유학생 질 관리를 강화한다.우리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를 설립한 데에는 아픈 계기가 있었다. 2011년에 도입된 교육부의 ‘학사과정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제’에 따라 2011년 11월 16일 우리 대학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제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평가결과 우리 대학은 시증발급 제한대학으로 분류되어 1년간 외국인 유학생 모집이 중지되었고, 교육부에 향후 관리개선 계획을 제출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 유학생 관리 전담조직 및 전담직원을 배치하여 입학에서부터 수강신청, 학과상담, 학사관리, 아르바이트 관리 및 주션, 기숙사 배정, 졸업까지의 일련의 업무를 One-stop으로 처리하는 시스랩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는 입학한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매 학기 초 개별적 면담을 진행한다 한편 미 수강 및 미등록자를 신속히 파악하고 관리하여 중도이탈율을 낮추고 법무부 유학생 정보시스템 등록·신고를 보다 철저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유학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입학원서 접수시점부터 전담직원을 배치하여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 비자신청안내, 학사관리, 시간제취업 신고 안내, 생활지도, 문화체험 등의 각종 활동을 One-stop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탱을 구축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지원 센터의 구체적 지원업무는 다음과 같다.* 외국인 유학생 입학관리 * 외국인 유학생 관련 인쇄물 제작* 중국대학과의 교류협정에 관한 사항 * 학부 외국인 유학생 행사 집행* 중국 국제교류 프로그램 집행 * 한국어과정 운영에 관한 사항
* 초청 파견 교환학생 선발 및 관리 * 한국어과정 유학생 관리* 교육부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제 * 외국인 기숙사 업무* 한국어과정 행사 집행 * 홍보 책자제작 배포* 법무부 유학생 정보시스템 관리 총괄 * 웹 관리* 학부 외국인 유학생 행사 및 활동 * 교환학생 관리* 외국인 학부유학생 관리 총괄 * 수강신청 관리* 외국인 기숙사 관리 * 외국인 유학생 관리* 교내외 유학생 장학금 집행6) 지역사회와 협력정주택 총장 재임 기 우리 대학은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였다. 2010년 시작된 ‘호국보훈의 달 나라사랑 감사행사’는 이희순 이사장의 제안이 계기가 되었다.이희순 이사장은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지난 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 한성학원 설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헌신했던 남편 고(故) 우촌 김의형 박사의 6.25시절 교육자로서의 행보를 회상하게 되었다.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 6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훈대상자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또한 ‘교육자의 정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을 생각하며 특별행사를 대학탕국에 당부하였다.
우리 대학이 주관하고 국가보훈처와 국방부 6.25 사업단이 후원하는 제1회 ‘호국보훈의 달 나라사랑 감사행새가 6월 4일 닥산정원에서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 재학 중인 보훈장학 대상 학생 및 학부모, 성북구청장, 국가보훈처 북부지청장, 국방부 6.25 사엽단 관계자 등 약 100여명이 초청되었고, 이희순 이사장과 정주택 총장은 학교를 대표하여 국가존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였다. 2012년 현재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호국보훈의 달 나라사랑 감사행사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우리 대학의 노력이 잘 표출되는 제도로 정착하였다.2010년 11월부터 전개된 장수마을 벽화그리기 봉사활동 역시 지역사회를 향한 띠뜻한마음의 발로다 우리 대학에 인접한 장수마을은 노인들과 저소득층 주민들로 구성된 낙후된 지역이다. 낡은 주택 외벽과 고지대의 계단에 자원봉사 학생들이 채색한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주민들은 우리 대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각각 2000년과 2005년에 시작된 삼선동 노인정을 위한 등유 제공(매년 1,000리터)과 삼선동 독거노인 도시락 지원 및 직접배탈은 2012년 현재까지 차질 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11년부터 시작된 삼선동 선녀축제에 우리대학은 인적, 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은 선녀와 가마꾼으로 봉사하고, 대학당국은 300 만원 상당의 행사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2010년부터 우리 대학 정문을 드나드는 택시기시들에게는 생수가 제공되고 있고, 2012년부터는 언어교육원 한국어과정 주관으로 성북구 다문화 아동을 위한 멘토령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2008년 시작된 성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화 교육도 순조롭게 지속되고 있다.
7) 학술정보관의 도약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실 있는 도서관으로 정평이 난 우리 대학의 학술정보관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2009년 학생들의편의를 위해 1인당 대출도서수를 기존 5권에서 7권으로 확대하였고, 6층 그룹 스터디 실 예약제를 도입하여 시설의 효율적 운영을 도모하였다. 2010년 12월 학술정보관은 성북구청과 도서관 교류 및 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고, 이로써 우리 대학은 지역사회 도서관서비스 개방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었다. 이 협약에 따라 성북구민은 누구나 우리 대학 흐μ술정보관 자료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고 도서자료 대출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노력은 즉각적인 결실을 보게 된다. 교육과학 기술부 주최 2010년도 대학도서관 평가에서 소규모 대학 제3분야(지역사회연계 및 대외협력 활성화) 1위에 올라 영예로운 수상을 하면서 그 위상을 강화하였다. 대학도서관평가 시상금 4천만 원은 멀티미디어 매체가 증가하는 추세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전자신문 KIOSK와 오디오북 KIOSK 구입에 시용되었다. 한편 2006년 시작된 ‘장서 50만권 소장을 위한 도서기증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2011년에는 장서 50 만권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이 해에 E-book 은 3 만 종을 넘어섰고, 연속간행물은 3천 종을 상회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리 배석기 교체와 교외접속 프로그램 (Library Proxy)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2012년에는 로비와 프레젠테이션 룸 리모벨링 및 산소발생기 설치를 통해 열람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였고 흑L술정보관 모바일 홈페이지를 오픈하였다. 도서관의 전자정보화 추세에 앞장서온 흐낼정보관은 대내외적으로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 대학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8) 학생군사교육단 (ROTC)의 성장과 증원총장 직속기관 가운데 하나인 학생군사교육단 (ROTC) 은 정주택 총장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기구다 2년간의 훈련을 거쳐 초급 장교로 임관되는 학생들은 국가방위라는 중차 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량일 뿐만 아니라 군의 간부로서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장교로 임관된 학생들을 취업자에 포함시키는 교육부의 정책이 마련되면서 취업률 제고가 절실한 우리 대학으로서는 ROTC 의 질적, 양적 성장을 도모하게 되었다. 정주택 총장 재임 기 대학 당국은 학군단 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매년 예산을 큰 폭으로 증액하였고, 대대적인 내부 수리를 통해서 학군단 건물을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하였으며, 다양한 교육 장비를 신규로 구입하거나 교체하였다. 우리 대학의 학군단은 이와 같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2010년과 2011년 국방부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고, 그 결과 학군후보생 배정인원이 증가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8년 31명이었던 정원이 2009년에는 33명, 2010년 34명, 2011년에는 36명, 2012년에는 42명으로 늘어남으로써 학군단의 위상은 높아졌고 취업률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정주택 총장과 학생지원처장은 방학 중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실시되는 입영교육 현장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훈련에 여념이 없는 후보생들을 격려하였다.
5.3.4 공간 확충1) 학생기숙사 신축 및 구입변화하는 우리 대학의 모습은 공간 확충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동안 학생들을 위한기숙사 시설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 대학은 2011월 8월에 여학생 전용 기숙사인 우촌학사를 준공하였다. 2010년 11월 착공하여 9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대학 인근성북구 삼선동 3가 27-10에 건립된 우촌학사는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1,308.7㎡의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총 27개실을 보유하였고 수용인원은 98명이다. 세탁설, 냉장고실, 샤워설, 야외휴게실 등 다양한편의시설을 갖추고 장애인을 위한 기숙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학생지원처에서는 기숙사의 제반 행정과 학생관리 업무를 전담히는 사감을 채용하여 체계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2009년 8월과 9월에 대학 동문(東門) 근처에 위치한 푸르지오 아파트 4채를 외국인 학생 기숙사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였다. 각 아파트는 동일한 면적 (114.65㎡)으로 각 2채씩 남학생과 여학생을 수용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 대학 학생 기숙사의 연 면적은 3,207.12㎡로 2008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였다. 2012년 8월 현재 우리 대학 학생기숙사 현황은 아래와 같다.<표 52> 학생 기숙사 현황 (2013. 2. 기준)
순서 건물명 소재지 취득(건축)시기
순서 건물명 소재지 취득(건축)시기
2) 외국인교수 숙소 신축
우리 대학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과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국제적 감각을 배양을 위해 외국인 교수들을 임용해 왔고, 그 수는 점차적으로 증가해 왔다 외국인 교수들의 처우개선과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히는 차원에서 전용숙소를 확대할 필요가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2010년 12월 성북구 삼선동 5가 63-6번지에 게스트 하우스 C동을 신축하였다.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718.23㎡ 규모의 게스트 하우스 C동은 각 방마다 넓고 쾌적한 공간을 보유하였고 다양한편의시설을 갖추어 외국인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에 전념할 수 있도록 양질의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 C동이 완공됨으로써 외국인 교수 전용숙소는 3개 동으로 늘어났고, 연 면적은 1000㎡를 상회하게 되었다.<표 53> 외국인교수 숙소 현황 (2013. 2. 기준)
순서 건물명 소재지 취득(건축)시기 규모 층수 연면적 (㎡) 현사용자 비고
순서 건물명 소재지 취득(건축)시기 규모 층수 연면적(㎡) 현 사용자 비고
3) 외부건물 매입
2012년 2월 대학본부는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성북구 삼선동 5가 299번지에 소재한 3층 건물(대지 416.6㎡, 연건평 606.54㎡)을 41 억 6천만 원에 매입하였다. 성북경찰서 앞 사거리 대로에 위치한 이 건물은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인근에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입지조건이 매우 뛰어나다. 향후 학생 기숙사 건립 용도로 구입한 이 건물은 2012년 현재의 건폐율과 용적률을 적용하다면, 건평 230.88㎡ 어1 연건평 1,385.28㎡의 규모를 갖춘 6층 기숙사 신축이 가능하다. 학생 기숙사 시설이 부족한 우리 대학으로서는 매우 적절한 결정을 내혔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현재 12개 점포가 입주한 이 건물은 임대보증금을 제외하고도 연 7천 4백만 원의월세수입을 올려 대학의 재정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최신시설을 갖춘 기숙사가 건립되면 학생들의편의와 만족도를 증진시키는 공간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4) 종합관 신축계획 수립
1990년대 말부터 우리 대학은 공간 확보에 섬혈을 기울여왔다 탐구관, 연구관, 미래관, 인성관이 연속적으로 신축되었고, 창의관은 대규모의 리모텔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협소한 공간은 우리 대학의 오래된 문제였다 부족한 교육공간은 교육의 수월성 제고에 걸림돌이 되었고, 협소한 주차장은 구성원들의 불편을 가중시켜 왔다 무엇보다도 각종 평가지표에 포함되어 있는 교사확보율이 100%에 못 미치는 상황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문제에 고심해 온 대학당국은 2012년 8월 정주택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법인의이시들과 감사 그리고 대학의 주요보직자들이 대거 참여한 21세기 발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21세기 발전위원회는 공간 확충 계획 수립을 위해 강신일 교무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에 이경일, 김동균, 황기연 이사, 김용국 감사, 이창원 기획협력처장, 박준철 총무처장, 명광주 학생처장 등 법인과 대학의 주요 보직자들과 건축 분야의 전문가인 이상한, 정호섭, 민태욱, 조자연 교수로 구성된 건축소위원회를 가동시켰다 건축소위원회는 수 차례 심도 있는 회의를 거쳐 마침내 종합관(가칭) 신축 계획을 확립하였다. 2016년 여름 준공예정인 종합관은 지하 2층, 지상 12층 건물로 공간 부족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면적의 주차장을 지히층에 확보함으로써 지상에 차가 없는 쾌적한 캠퍼스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2009년 3월 ‘학생성공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 대학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한 정주택 총장은 2012년 8월 현재까지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취업·창업 프로그램 및 국내외 인턴십 확대, 장학금 지급 증가, 해외봉사와 ‘한성 석세스 프론티어’로 대변되는 학생활동의 질적 성장 등은 ‘학생성공교육’을 체감케 하는 정책들이었다. 다른 성과들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대학의 숙원사업인 진입로 확장이 마침내 결실을 이루었고, 외국대학과의 교류확대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 개관은 국제화의 조류에 부응하는 행보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협력을 증진시켰고, 학술정보관은 그 명성에 걸맞게 지속적으로 내실을 다졌다. 한편 학생 및 외국인 교원 기숙사 확충, 외부건물 매입, 종합관 신축계획 수립은 부족한 공간문제들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약의 이면에는 어두운 음영도 드리워져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보직 임명을 둘러싼 이사장과의 오랜 갈등은 대학의 원활한 행정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고, 난항이 계속되면서 구성원들의 우려는 가중되었고 결속력은 이완되고 말았다 법인이사회와 대학당국의 협력과 조회는 우리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정주택 총장 재임 기 낙산 캠퍼스는 명암이 교차하고 득실이 공존하는 격동의 공간이었다부록
1. 학교법인
1.1 설립목적이 법인은 대한민국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중등교육 및 보통 고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법인 정관 제1조)
1.2 한성학원 조직
학교법인한성학원
1.3 법인 연혁
1945. 9 우촌 김의형 박사가 경성여자기예학교를 인수하여 4년제 한성여자 고급중학교 인가 받고 10월 5일 개교1946. 4. 6년제 한성고등여학교 인가 받아 이 해 7월 한성여자중학교로 교명 변경1952. 3. 학제개편에 따라 3년제 한성여지중학교와 한성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1953. 1. 재단법인 한성학원 인가1955. 2. 충남 당진군 송산면 동곡리 소재 한성염전 10만8천명을 재단법인 한성학원에 희사1958. 12. 고등학교 본관(현 진리관)과 강딩?현 학송관 준공1963. 12. 체육관준공1964. 1. 재단법인을 학교법인으로 개편1967. 10.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팔당리 소재 의화장 매입1971. 7. 수영장(현 테니스장) 준공1969. 8. 대학 본관(현 여고 건물) 착공 1970년 준공1972. 12. 한성여자대학 설립
1978. 3. 한성여자대학을 한성대학으로 교명 변경1981. 12. 종합관(현 여중 건물) 준공1984. 9. 학생복지관(현 창의관) 준공1986. 8. 한성대학과 한성여중·고 교사 이전1987. 8. 대학본관 우촌관(전 한성여중 자리) 준공1990. 2. 과학관(현 공학관) 준공1993. 3. 한성대학을 한성대학교로 교명 변경1999. 3. 강의동(현 탐구관) 준공2001. 9. 연구관준공2002. 4. 한성여자고등학교 정보관 준공2002 11. 인성관준공2003. 9. 미래관(학술정보관) 준공2005. 3. 낙산관(체육관 자리) 준공2007. 8. 한성여지중학교 선관 준공2013. 5. 한성여자중학교 목화관 준공1.4 이사장
· 1945년 10월 초대 이사장으로 설립자 우촌 김의형 박사가 취임하였다.· 1958년 5월 제2대 이사장으로 이희순 여사가 취임하여 제6대 이사장까지 역임하였다.· 1977년 3월 제7대 이사장으로 김의형 설립자가 취임하여 제8대까지 역임하였다.· 1981년 11월 설립자의 오랜 교우이자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가 제9대에서 제 11대까지 역임하였다.· 1991년 4월 서정희 박사가 이사장 직무대리를 거쳐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가 1995년 4월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났다· 1995년 4월 제 13대 김옥자 이사장이 취임하나 1997년 10월 재단 분규로 12월 22일자로 사임하고 이 해 12월 31일 교육부로부터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 1998년 1월 임시이사 체제에서 제 14대 박병호 박사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나 중도 사퇴하고 이 해 7월 제15대 차인석 이사장이 취임하였다.·2000년 1월 제 16대 김채윤 이사장에 이어 2001년 8월 제 17대 이상희 이사장이 취임하였다.·2003년 8월 이상희 이사장이 MBC방송문화진흥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제 18대 이사장으로 손봉호 박사가 취임하였다.
· 2004년 10월 손봉호 이사장이 동덕여대 총장으로 옮기면서 이사장에 물러나고 제 19대 이사장으로 장회익 박사가 취임하였다.· 2006년 1월 임시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여 정이사 9명(구성원 추천 4명, 교육부 추천 3명, 설립자측 추천 2명)을 선임하였고 제 20대 이사장으로 교육부 추천 이사인 신용하 이사장이 취임하였다.·2010년 1월 제 21대 이사장으로 이희순 여사가 취임하였다.〈부록 표 1-1> 역대 이사장 명단
대수 이름 재임기간
대수 이름 재임기간
〈부록 표 1-2> 이사 현황
2. 대학
2.1 대학 연혁1972. 10. 한성여자대학 인가1972. 12. 한성여자대학 설립1973. 3. 초대 학장에 설립자 김의형 박사 취임1977. 3. 제2대 이희순 학장 취임1978. 1. 한성여자대학을 한성대학으로 교명 변경1979. 2. 제3대 김옥형 학장 취임1980. 10. 15개 학과 졸업정원 520명, 모집인원 676명으로 정원 조정하고 주야간 대학으로 전환1982. 2. 제4대 강병규 학장 취임1984. 9. 제5대 홍순태 학장 취임1984. 9. 학생복지관(현 창의관) 준공1985. 12. ROTC 창설 및 축구부 창단1986. 8. 한성대학과 한성여중·고 교사 이전1987. 8. 대학본관 우촌관(전 한성여중 자리) 준공
1987. 10. 전산통계학과, 산업공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의류직물학과 신설, 경영행정대학원신설1988. 8. 제6대 신영기 학장 취임1989. 11. 일반대학원 신설1991. 4. 제7대 원형갑 학장 취임1990. 2. 과학관(현 공학관) 준공, 전자계산소 개소1993. 3. 한성대학을 한성대학교로 교명 변경 원헝갑 학장 초대 총장 취임 4개 단과대학, 26개 학과, 3개 대학원에 입학정원 990명1994. 10. 예술대학원 인가1994. 8. 학생회관 및 과학관증축1995. 5. 학생회관에 전자정보관 개관1995. 4. 제2대 이용남 총장 취임1995. 10. 국제통상정보대학원 신설1996. 5. 전자정보관 개관1967. 5. 한성 주차장준공
1997. 4. 사회교육원 인가1997. 11. 수도권 야간 정원 지율화 대학으로 선정입학정원 1,620명(주간 680명, 야간 940명)1998. 10. 야간학과 정원의 300!o를 주간으로 전환입학정원 1,620명(주간 960명 야간 660명)1998. 10. 제3대 이성근 총장 취임1999. 3. 강의동준공1999. 11. 컴퓨터신기술대학원, 안전보건경영대학원 신설2000 2. 1999년 대학종합평가 결과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2000 7. 부통산대학원 신설2000. 10. 교육대학원 신설2001. 9. 대학로캠퍼스(현 에듀센터) 매입2002. 9. 연구관 및 인성관준공2002. 10. 제4대 한완상 총장 취임2003 9. 미래관 준공, 학술정보관 개관2005 3. 낙산관(체육관) 준공
2005. 3. 제5대 윤경로 총장 취임2006. 6. 노동부 중소기업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 선정2007 3. 서울시 중소패션기업 지원사업 운영기관으로 선정2007. 4.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개최하는 제4회 ‘훌륭한 대학’에 선정2008 9.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신설 및 컨설팅 R&D센터 설립2009. 3. 제6대 정주택 총장 취임2013. 3. 제7대 강신일 총장 취임2.2 대학 약사한성학원이 진리와 지선을 교육목표로 그 초석을 다진 지 반세기가 흘렀다 이 기간에 한성학원은 국가와 민족이 요구하는 인재의 양성과 민족정신의 함양에 전력해 왔음을 자부한다 한성학원은 1945년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광복을 맞은 한국 사회는 새로 태어날 신생국 대한민국과 새 사회 건설을 위한 인재를 필요로 하였다.그러나 30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외래의 그릇된 풍조가 만연되던 당시 상황에서 진정한 ‘한국정신’을 가진 젊은 인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일선 교육에 종사하고 있던 우촌 김의형 박사는 국가와 민족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의 위상과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945년 9월 25일, 우촌 김의형 박사는 당시의 경성여자기예학교를 인수하여 새로운 교육의 터전을 낙산 기숨에서 소중한 꿈나무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1945년 10월 5일, 한 교육가의 선념과 집념 어린 노력에 의해 한성학원이 탄생 되었고 이듬해인 1946년 7월 교육법의 개정에 따라 6년제 한성고등여학교로 개편하여 한국 여성교육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져나갔다.한성학원은 6.25 전쟁 중에도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마련하여 교육을 계속하였고, 서울 수복 후에는 전화의 위험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남아 있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함으로써 교육의 맥을 끊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1953년 1월에는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한성학원 설립을 인가 받고 초대 이사장에 설립자 김의형 박사가 취임하였다.1955년 10월 김의형 박사가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소재의 염전(한성제염사) 18만여평을 재정의 후원을 위해 회사함으로써 한성학원은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염전은 1984년 삽교천 제방공사로 인하여 폐쇄되고 이후 농장으로 개발하여 본 한성학원의 수익용 사업으로 시용되었다. 전쟁, 기아, 빈곤, 정치적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끊임없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노력해 온 한성학원은 새로운 건설과 도약의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 나갔다
1955년 한성여지중학교, 고등학교로 분리된 이래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이룩해 온 한성학원은 한국여성교육의 새로운 명문으로 부상하였다. 1964년 재단법인을 학교법인으로 개편한 한성학원은 1971년 5월 30일에 이희순 여사가 제5대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1972년 12월에 한성여자대학이 출범하였다. 이로써 한성학원은 중등, 고등 교육기관을 갖춘 명실상부한 한국 여성교육의 요람으로 자리하고 더욱 깊이 있는 학문탐구의 장을 많은 인재들에게 제공할수 있게 되었다.1973년 3월 초대학장에 설립자인 김의형 박사가 취임한 한성여자대학은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비서학과, 가정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등 6개학과 150명의 야간대학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1973년 12월과 1976년 12월에 학과 조정을 단행하여 기존의 비서학과를 폐과하고 무용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국사학과 등 4개 학과를 증과함으로써 9개 학과 230명으로편제되었고, 1977년 국사학과를 사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같은 해 3월제2대 학장으로 이희순 여사가 취임하였고 4월에 김의형 박사가 제8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78년 1월 교명을 한성여자대학에서 한성대학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함으로써 학원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1979년 2월 제3대 김옥형 학장이 취임하였다. 1980년 10월 졸업정원제의 시행과 동시에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사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 도서관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무용과 등 15개학과j 졸업정원 520명, 모집인원 676명으로 증과 조정하였고, 전일제 수업실시와 더불어 주, 야간 대학으로 전환함으로써 대학발전은 본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생활미술학과가 1981년 10월 미술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 해 11월 안호상 박사가 제9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1982년 2월에는 제4대 학장 강병규 박사가 취임하였다. 그는 대학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민족사상연구소, 사회사엽연구소, 한국전통예술연구소, 학생생활연구소 등 4개의 부설연구소를 설립하여 독창적이고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추진하였다. 이후 1984년 12월에 민족사상연구소와 한국전통예술연구소를 민족문화연구소로 통합하였고 정보화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보전산연구원을 설립하였다.1983년 10월 학생복지관을 기공하였고 1986년에는 현 위치로 교사를 확장, 이전하여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1987년 8월에 우촌관을 신축하여 대학 본관으로 우리 대학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승냄 곳이 되었다. 한편, 종합대학으로의 승격과 대학의 장기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왔던 과학관이 1990년 2월 27일에 준공되었고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자계산소를 개소하였다. 이로써 학교행정 전산화 및 교수연구 지원, 학생들의 전산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밖에 중앙도서관의 지속적인 확장 및 개수, 장서의 확보 등을 통해 학습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시청각 교육실, 어학실습실, 컴퓨터 실습실, 타자실습실, 트레이닝 센터, 학생수련장 등 후생복지시설의 확충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였다.
1984년 8월 제5대 홍순태 학장이 취임하였고 1985년 12월에는 R야C를 창설함과 더불어 축구부를 창단하여 1976년에 창단한 탁구부와 함께 국내 최강의 한성체육을 이끌어 가는 양대 산맥이 되었다.1987년은 우리 대학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해였다 다양한 정보사회에 신속히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고급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전산통계학과, 산업공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의류직물학과 등 4개의 학과를 신설하였고 도서관학과를 문헌정보학과로 학과명을 변경하였다 학문의 전문화와 산학협동체제를 기하기 위해 경영행정대학원(경영학과, 행정학과 각40명)을 신설하였다.
1988년 8월 22일 제6대 학장으로 신영기 박사가 취임하였다. 이 해 11월 30일 경영행정 대학원은 경영대학원(경영학과, 무역학과 총 60명)과 행정대학원(행정학과 60명)으로 분리, 증과증원을 인가 받음으로써 보다 수준 높은 전문대학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89년 11월 6일에는 일반대학원(모집정원 36명)이 신설되어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무역학과를 두게 됨으로써 명실공히 대학원 체제가 확립되었고 연구하는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울러 행정대학원에는 교육행정학과(15명)가 신설되었다.1991년 4월 1일에 국어국문학과 원형갑 박사가 제7대 학장으로 선출되었다. 1991년 12월 우리 대학은 입시 정책을 전환하여 1992학년도 신입생 전, 후기 분할모집을 실시하였다. 1992학년도 입시부터는 전기에 280명, 후기에 440명을 모집하게 됨으로써 후기대학이라는 인식을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고 우수한 신입생들을 계속해서 유치함으로써 사학의 명문으로 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학생들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대학의 시설 및 교사의 신·개축도 지속적으로 시행하였다. 6월 14일에는 민족문화연구소가 주관하여 ‘농경생활사 전시관’을 개관하였다. 농촌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농기구와 민속자료 등을 소장, 전시함으로써 우리나라 농경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11월 29일은 전 한성인의 염원이었던 상정탑이 건립되었다. 교문을 겸해서 세워진 상징탑은 본 대학의 상정물인 거북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본 대학의 명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2년 2월 15일에는 서정희 박사가 제5대 이사장에 취임하여 재단의 위상을 확립하였고 대학의 내실 있는 발전과 비전을 제시하여 우리 대학이 새롭게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7월 28일에는 일반대학원의 경영학과(12명)와 행정학과(12명) 증과로 모집정원이 60명으로 증원되었다. 경영대학원은 산엽경제학과(30명)의 증과로 모집 정원이 90명으로 늘어났으며, 행정대학원은 90명인데 7월 31일에는 대학에 전산통계학과, 산업공학과 야간 증과로 80명이 증원되었다. 이 해 10월 개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한성대학교 20년사』, 『한성대학교백서』, 발간과 기념사진전 및 작품전시회를 하였다.1993년 3월 1일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4개 단과대학, 26개 학과, 3개 대학원, 9개의 부속기관 및 4개의 연구소를 갖추게 되었다. 9월에는 컴퓨터공학과(주·야) 각 40명, 정보공학과(야), 산업안전공학과(여) 각 40명, 산업디자인학과(야) 30명의 증과로 입학정원이 990명이 되었다.1994학년도 입시부터 전기로 전환하여 본고사를 실시하여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는 성공적인 계기가 되었다.10월 1일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예술대학원 설립을 인가 받아 발전을 거듭하였다.1995년 4월 1일에는 제6대 이사장에 김옥자 여사가 취임하였고 제2대 총장에는 문헌정보학과 이용남 박사가 선출되어 취임하게 되었다. 10월 14일에는 정보전산학부 주간 40명,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야간 각 20명, 행정학과, 경제학과 야간 각 40명, 무역학과, 경영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야간 각 10명이 증과, 증원되어 1996학년도 입학정원이 1,180명에 이르게 되었다. 10월 18일에는 세계경제의 개방화, 국제화 추세에 부응하여 국제경제, 통상 및 외환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국제통상정보대학원이 신설되었으며, 예술대학원은 의상학과가 선설되어 60명이 증원되었다.
1996년 5월 10일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중앙도서관 내에 전자정보관을 개관하여 가상대학의 개념을 현실화하였고 첨단 정보통신망을 통한 교육 및 연구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 해 10월 산업안전공학과 주간 신설을 위해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행정학과 주간에서 각 5명씩, 경상학부 주간에서 15명 도합 30명을 산엽안전공학과 주간으로 자체 조정하였고, 국어국문(야), 영어영문(야), 행정(야), 경상학부(야), 산업시스템공학부(야)에 각 10명씩 증원하여 입학정원 1,230명이 되었다. 이 해 8월에는 160여 대의 주차 시설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성여고 운동장 지하에 1,700여 평 규모의 한성 주차장 기공식을 갖고 1997년 5월 준공식을 가졌다.1997월 11월에는 수도권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되어 부동산학과(40명)를 증과하였고 경상학부 야간 80명, 문헌정보학과 야간 40양 정보전산학부 야간 30명, 산업시스템공학부야간 40명, 의류직물학과 야간 40명, 산업디자인학과 야간 40명, 의상학과 야간 40명 사학과 야간 40명을 증원하여 입학정원이 1,620명에 이르게 되었으며, 예술대학원에는 패션예술학과를 신설하였다. 이 해 10월 시작된 재단 분규로 김옥자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사 전원이 퇴진하였고 교육부 임시이사가 파견되었으며 이용남 총장이 12월 30일자로 사임하였다.
1998년 1월에 제 14대 박병호 이사장에 이어 7월 제 15대 차인석 이사장이 취임하였고 신임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개 모집하였다. 5월에는 강의통 기공식을 갖고 수요자 행정 서비스를 위하여 학생회관에 학생종합서비스센터를 개관하였다.10월 모집단위를 통폐합하여 어문계열, 인문계열, 사회계열로 나누었고, 의상학과와 의류직물학과를 의생활학부로 통합하고 그 세부전공 명칭을 의상디자인전공, 의류패션산업전공으로, 정보전산학부에 정보시스템공학전공을 선설하였으며, 전산통계학과, 정보공학전공을 멀티미디어정보처리전공, 정보통신공학전공으로, 산업시스템공학부 산업안전공학 전공을 기계시스템공학전공으로 각각 세부전공 명칭을 변경하였고, 야간학과 모집 정원의 30%를 주간으로 전환하여 입학정원 주간 960명, 야간 660명이 되었다. 10월 23일 제3대 이성끈 박사가 취임하면서 우리 대학의 지리적 여건을 살려서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도시형 대학을 주창하면서 21세기 신정보화 시대를 대비하는 미래형 대학을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 1999년 3월 강의동 준공식을 갖고 대학원을 이전하는 등 교사 재배치하였고 ‘한성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과 ‘캠퍼스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해 6월 모집단위 학부제 확대로 한국어문학부, 영어영문학부, 역사문화학부, 지식정보학부, 사회과학부, 경영학부, 미디어디자인학부로 개편하여, 대학편제가 4개 단과대학, 10개 학부 28개 전공, 2개 학과에 입학 정원 1,620명이 되었다. 11월에는 컴퓨터신기술대학원 (30명), 안전보건경영대학원(20명)이 신설되었고, 대학원 석사과정 15명, 박사과정 5명 증원, 예술대학원 20명, 국제통상정보대학원을 국제대학원으로 명칭 변경하고 15명을 증원하였다.
2000년 1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한 1999년도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교육, 연구, 사회봉사, 교수, 시설 시설, 재정·경영 등 6개 영역에서 실시된 종합평가에서 우리 대학은 학생 수 1만명 미만의 18개 일반대와 10개 산업대 등 총 28개 대학 가운데 교수 영역을 제외한 6개 영역에서 우수 판정을 받아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7월에는 부동산대학원을, 10월에는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2001년 3월 특수대학원 5학기제를 4학기로 학기를 단축(교육대학원 제외)하였고, 이 해 6월 모집단위를 자체 조정하여 사회과학부를 2개 학부로 분리하여 경상학부에 무역학 전공과 부동산학전공을, 정경학부에 행정학전공과 경제학전공을 지식경제학전공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정보전산학부를 2개 학부로 분리하여 컴퓨터공학부에 컴퓨터시스템전공과 멸티미디어정보처리 전공을, 정보공학부에 정보통신공학전공과 정보시스템공학전공을 두었다. 이 해 8월 제 17대 이상희 이사장이 취임하였고 9월 도심형 예술대학을 구현하기 위하여 대학로 소재 동원빌딩을 매입하여 대학로캠퍼스로 명하고, 교수회관, 도서관, 학생회관 별관 기공식을 가졌다.10월 경영대학원 서비스경영학과를 신설하였고, 행정대학원 지방정부경영학과와 경찰행정학과를 신설하였다.
2002년 9월에 지하1층/지상7층, 연면적 2,100여 평 규모의 연구관을 준공하였고, 11월 지상 5층 연면적 560여 평 규모의 학생회관(현 인성관)을 준공하여 교내 흩어져 있던 교수연구실과 학생동아리실을 각각의 건물로 이주시켜 심도 있는 연구와 자율적인 학생자치생활에 큰 기여를 하였다. 개교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고 『한성대학교 30년사』를 발간한다. 이 해 10월 제4대 총장으로 한완상 박사가 취임하였다. 일반대학원 계열별 입학정원 인문사회계열 15명, 공학계열 10명, 예·체능계열 30명으로 조정하였고 경영대학원 서비스경영학과를 호텔관광외식경영학과로, 국제대학원 국제마약범죄학과를 국제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03년 8월에 제18대 이사장으로 손봉호 박사가 취임하였다. 이 해 9월 지하2층/지상 6층 4,300여 평의 도서관(현 미래관)이 준공되어 2003년 10월 준공식을 가졌고 학생회관(현 창의관)에 었던 도서관 및 전자정보관이 이주하고 학술정보관을 개관하였다.11월 경영대학원 e-busine농학과를 폐지하였고, 예술대학원 의상학과를 패션디자인기획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4년 6월에 사회과학대학 일부 학부(정경학부 경상학부) 공과대학 전체학부를 학과로 전환하였다. 이 해 10월 제 19대 이사장으로 장회익 박사가 취임하였다. 12월 2004년도 대학종합평가 ‘교육 및 사회봉사영역’ 최우수 대학으로 학문분야평가에서 기계시스템공학과가 우수 학과로 선정되었다. 일반대학원 계열별 입학정원을 총정원제로 조정하였다.‘2005년 3월에 제5대 총장으로 윤경로 박사가 취임하였고, 닥산관을 준공하였다.5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에 맞추어 매주 교수 직원 학생들이 동참하여 학교 주변 거리 청소를 실시하고 행정서비스 현장 실천을 위한 전화응대 친절도 평가를 실시하였고, 10월에 동문활성화를 위한 동문 DB구축사업을 실시하였다. 11월 대학원박사과정으로 문헌정보학과, 영어영문학과, 사학과, 경제학과를 신설하였다.2006년 1월에 제20대 이사장으로 신용하 박사가 취임하였다. 2월에 2005학년도 학문분야 평가에 무용학과가 전국 최상위 학과로 선정되었으며, 6월에 ‘노동부 중소기업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에 선정되었다. 9월에 대학원박사과정으로 무역학과, 경제부통산학과를 신설하였고, 국제대학원 국제마의펙과를 폐지하고 행정대학원에 마약학과를 신설하였다. 안전보건대학원은 폐원하였다.
2007년 3월에는 ‘서울시 중소패션기업 지원사업’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이 해 4월 (새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개최하는 제4회 ‘훌륭한 대학’에 선정되었다. 10월 개교35주년 기념행사로 음악회, 교수·동문회화제, 사진전을 개최하였다.11월 대학원박사과정으로 정보컴퓨터공학과, 미디어디자인학과를 신설하였다.2008년 7월 ‘중소기업청 컨설팅대학원 및 컨설팅 R&D센터 개설사업’ 대상교로 선정되었고 9월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컨설팅 R&D센터를 설립하였다.2009년 3월 제6대 총장으로 정주택 박사가 취임하였다. 국제대학원을 국방과학대학원으로 변경하였고 국제안보전략학과를 안보전략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경영대학원에 디지털미디어비즈니스학과를 신설하였고, 행정대학원 마약학과를 중독재활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10년 1월 제21대 이사장으로 설립자 이희순 여사가 취임하였다.2012년 10월 ‘서울의 센터 100년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개교4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여 장기근속상 수여, 난타 및 무용 축하 공연을 가졌다.2.3 대학 기구
총장
[부록 그림 2-1] 2012 학년도 대학 기구도
3. 대학조직
3.1 총(학)장총(학)장은 1973년 개교부터 1993년 3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기 전의 학장과 이후의 총장으로 구분한다· 1973년 3월 초대학장으로 설립자인 우촌 김의형 박사가 취임하였다.· 1977년 3월 취임한 제2대 이희순 학장이 1978년 7월 사임함에 따라 당시 정연길 교무과장이 6개월간 학장직무를 대행하였다.1979년 2월 제3대 학장으로 김옥형 학장이 취임하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981년 12월 사임함으로 당시 교무처장 연정열 교수가 학장직무대행을 하였다.· 1982년 2월 제4대 강병규 학장이 취임하여 대학기구와 학사행정체제의 정비 등을 통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나 1984년 ‘대학발전을 위한 공청회’를 시작으로 학생들의 요구가 거세어지면서 5월 25일부터 11일간 학내소요가 있었으며 그 여파로 강병규 학장이 7월 4일 사임하였다. 김용석 교무처장이 2개월간 학장직무를 대행 하였다.·1984년 9월 제5대 홍순태 학장이 취임하여, 1985년 12월 ROTC 창설과 축구부 창단 등 대학발전에 공현하였으나 1985년과 1986년에 걸친 장기간 학내소요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1988년 8월 홍순태 학장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교내에서 학장을 직선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실행하지 못하였고 법인이사회에서 외부인사인 서울대 명예교수 신영기 박사를 제6대 학장으로 초빙하고 교수협의회의 인준 동의 절차를 거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90년 10월 입시부정사건으로 중도하차하고 당시 원형갑 교무처장이 학장직무대행을 하였다.· 1991년 4월 최초 교수 직선으로 원형갑 교무처장이 선출되어 제7대 학장으로 취임하고 이어 199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학장에서 초대 총장으로 승계하였다.1995년 제2대 총장으로 교수 직선에 의해 선출된 문헌정보학과 이용남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997년 12월 재단분규로 중도 사임하였다.이 해 12월 교육부로부터 파견된 임시이사들로 법인이사회가 구성되었다.· 1998년 1월 총장 직무대행을 해야 하는 최송길 교무처장이 보직 사퇴함으로써 법인이 사회에서 사학과 윤경로 교수를 교무처장 겸 총장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다.총장 선출방법을 놓고 법인이사회에서 공개 채용을 통한 총장 선출 방법을 제시하여 교수대표 8인, 직원대표 2인, 학생대표 2인, 사회저명인사 2인, 동문회대표 1인 등 15인으로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외부 인사 1 인을 포함한 3 인을 후보로 추천하면 법인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키로 하였다. 이 해 7월 윤경로 총장직무대행이 총장 후보로 나오면서 교무처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법인이사회에서는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를 교무처장 겸 총장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다. 8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내부 인사인 윤경로 교수와 강병식 교수, 외부 인사인 배재대 총장을 역임한 이성근 박사 등 3 인을 법인이사회에 추천, 이성근 박사를 최종 결정함으로 10월 제3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 2002년 10월 이성근 총장의 임기완료를 앞두고 법인이사회에서는 신임 총장을 선출하기 위하여 대내외적 공개 초빙을 위한 총장선출규정을 마련하였다. 주요 내용은 이사대표 3 인, 교수대표 5 인, 직원대표 2 인, 학생대표 2 인, 동문회대표 1 인 등 13명으로 구성된 총장서류심사위원회에서 서류심사를 하였고 교수회에서 교내외 총장 후보 2 인씩을 추천하면 이사회에서 결정키로 하였다. 8월 21일 전체 교수의 투표와 8월 23일 이사회를 통해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를 제4대 총장으로 결정하였고 10월 취임하였다.2004년 12월 15일 법인이사회는 한완상 총장이 대한적십자 총재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된 총장 자리에 당시 이우관 교무처장을 총장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고 총장 선출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대표 3 인, 직원대표 1 인, 학생대표 1 인, 이사대표 2 인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에서 교내 교수 4 인 강병식(역사문화학부) 교수, 윤경로(역사문화학부) 교수, 이종수(행정학과) 교수, 최송길(경영학부) 교수와 외부 인사 3 인 등 예비후보자 7 인을 선정하였으며 이 중 강병식 교수, 윤경로 교수, 이종수 교수가 최종 후보자 3 인으로 선정되었고, 이사회에서 윤경로 교수를 선임하여 2005년 3월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08년 12월 윤경로 총장의 임기완료를 앞두고 2004년 총장선출과 통일한 방법으로 총장후보자선정위를 구성하였고 총장 선출 절차에 들어갔다. 총장후보자 추천은 신문 및 인터넷에 공고하며, 추천과 병행하여 총장후보자선정위가 예비후보자를 추천할 수 였다. 총장후보자선정위는 추천된 후보자를 심사하여 예 tl]후보자 7 인을 선정하며 전체교수회는 선정위에서 선정한 예비후보자 중에서 최종후보자 3 인을 선정하여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도록 하였다.2009년 2월 9일 개최된 전체교수회의에서는 총장후보자선정위에서 선정한 예비후보자 7인에 대한 투표 결과 정주택 교수(행정학과), 김원중 교수(경영학과), 정재룡 전 한국자산관리공단사장 등 3 인을 총장 후보자로 이사회에 상정하여 13일 이사회에서 정주택 교수를 선임하여 3월 제6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부록 표 3-1> 역대 총(학)장 명단
대수 이름 재임기간 비고
3.2 보직교수
1973년 대학 설립 당시 행정조직은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 등 3개 부처로 시작하여 1979년 도서관(현 학술정보관1,1982년 기획실(현 기획협력체, 2003년 입학처를 신설하였다. 현재 5개 부처 및 부속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1973년 3월 제1회 신입생을 맞아 교무처장에 영어영문학과 고창식, 학생처장에 국어국문학과 윤태영 교수를 임명하였다.
·1975년 2월 직제개편에 따라 교무처장과 학생처장을 과장으로 변경하고 교무과장 붙어불문학과 정기수, 학생과장 경영학과 연정열 교수를 임명하고, 서무과장에 고등학교 행정실장 김성열 씨를 임명하였다.1980년 9월 다시 처장제로 변경하여 교무처장에 경영학과 최명규, 학생처장에 교양과 신은숙, 사무처장에 국어국문학과 김중열, 도서관장에 가정학과 김복길 교수를 임명하였다· 1982년 2월 강병규 학장이 취임하면서 교무처장에 미술학과 정하경, 학생처장에 교양과 김계욱 교수를 임명하였고, 사무처장에 이승록, 기획실장에 손영일 씨를 외부에서 영입하였고, 도서관장에 경영학과 연정열 교수를 임명하였다.· 1984년 3월 학생처장인 경영학과 최명규 교수를 사무처장으로, 기획실장에 사학과 강병석 교수를, 학생처장에 영어영문학과 김용석 교수를 임명하였다. 이 해 학내소요로 6월 다시 보직개편을 단행하여 교무처장에 영어영문학과 김용석 교수, 학생처장에 교양과 강은석 교수, 사무처장에 무역학과 강석중 교수, 기획실장에 무역학과 김용정 교수를임명하였다. 이후 7월 학내소요의 여파로 강병규 학장이 사임하여 김용석 교무처장이 학장직무대행을 수행하였다.
· 1984년 9월 홍순태 학장이 취임하면서 교무처장에 사학과 윤석효, 사무처장에 경영학과 김길평 교수를 임명하였고, 12월 학생처장에 미술학과 한진만, 도서관장에 무역학과 홍봉춘 교수를 임명하였다.1990년 6월 신영기 학장 재임 시 당시 유무열 총무과장이 사무처장으로 내부 승진하여 행정직으로 처장 역할을 수행하다 4개월 만에 입시부정으로 인하여 중도하차하였다. 이후 사무처장제는 1998년 1월 윤경로 총장직무대행이 들어설 때 폐지되었다.· 1997년 12월 재단 분규로 인한 학내문제로 당시 교무처장 경영학과 최송길, 학생처장 회화과 정종해, 기획실장 의류직물학과 김종섭, 도서관장 행정학과 이종수 교수가 사퇴하여, 사학과 윤경로 교수가 교무처장 및 총장직무대행을, 학생처장에 산업공학과 박명환 교수를, 사무처장제를 부활하여 경제학과 이상한 교수가 사무처장을, 연구기획 처장에 무역학과 유병호 교수를 임명하였다. 연구기획처장은 3월에 경영학과 최명규 교수로 교체한다. 8월에는 총장 후보로 나온 윤경로 교무처장이 사임하고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를 임명하였다.1998년 10월 제3대 이성근 총장이 취임하면서 교무처장에 사학과 윤석효 교수, 연구기획처장에 산업공학과 홍윤기 교수, 학생처장에 경상학부 권오 교수, 사무처장에 경영학과 홍용식 교수, 도서관장에 문헌정보학과 이우범 교수를 임명하였다.
·2000년 11월 교무처장에 영어영문학부 김용석 교수, 학생처장에 미디어디자인학부 조열 교수, 총무처장에 경영학부 김길평 교수, 기획연구처장에 경영학부 최명규 교수, 도서관장에 영어영문학부 고정자 교수를 임명하였다.·2002년 8월 김용석 교무처장이 총장 후보에 출마하기 위하여 사퇴하고 후임으로 교직과 김경배 교수를 임명하였다.·2002년 10월 제4대 한완상 총장이 취임하면서 총장후보자 3 인 중의 한 명이었던 윤경로 교수를 교무처장에, 또 다른 1 인이었던 이종수 교수를 대학원장에 각각 임명하였고 기획연구처장 경영학과 최용식 교수, 학생처장에 산엽시스템공학과 이재득 교수, 총무처장에는 당시 총무처장이던 김길평 교수를 신축건물이 완공될 때 까지 유임시키고, 대외협력실장에 기계시스템공학과 한정수 교수를 임명하였고 2003년 3월 대외협력실을 입학과와 통폐합하여 입학홍보처를 신설하여 대외협력실장이던 한정수 교수를 임명하였다.2004년 3월 전 경리과장의 주식투기로 20 억을 유실한 사건의 책임을 물어 기획정보처장과 총무처장이 물러나고 기획정보처장에 경영학부 정승환 교수, 총무처장에 행정학과 이성우 교수를 임명하였다.
·2005년 3월 윤경로 총장이 취임하면서 교무처장에 경제학과 이상한 교수, 기획정보처장에 행정학과 이창원 교수, 학생처장에 한국어문학부 고창수 교수, 총무처장에 산업시스템공학과 박명환 교수, 입학홍보처장에 정보통신공학과 조혜경 교수를 임명하였다.2009년 3월 정주택 총장이 취임하면서 교무처장에 기계시스템공학과 윤재건 교수, 기획협력처장에 경영학부 정숭환 교수, 학생지원처장에 의류패션산업 전공 홍성애 교수, 총무처장에 컴퓨터공학 전공 김영웅 교수, 입학홍보처장에 인테리어디자인 전공 고영란 교수를 임명하였다.2009년 1월 이희순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총장과의 보직임변에 관한 갈등을 빚기 시작하면서 보직임용피동이 일어났다 대학원장을 바롯한 학장 등 주요 보직지들이 총장에게 사직원을 제출한 상태에서 보직 임면권자인 이사장이 총장에게 3차례에 걸쳐 후임 보직인선에 대한 제청안을 제출하도록 촉구하였으나 총장이 이에 응하지 않자 2월 5일 보직인시를 단행하였다. 이에 총장이 이를 거부하고 소송으로까지 전개하였으나 결국 2월 26일 총장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단락되었다.2011년 11월 또 한 차례의 보직임용피동이 일어났다 당시 박영범 교무처장이 한국직엽능력개발원의 원장으로 가면서 휴직하였고 그 자리에 총장이 경제학과 강신일 교수를 제청하였으나 이사장이 영어영문학부 김먹자 교수를 발령하였으므로 이어진 보직임용 파동은 다음 해 8월 이사회의 중재로 보직교수를 임용하였다.
〈부록 표 3-2> 역대 보직교수 명단
기간 총(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 사무처장(총무처장) 기획처(실)장 도서관장(학술정보) 비고
기간 총(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 사무처장(총무처장) 기획처(실)장 도서관장(학술정보) 비고
기간 총(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 사무처장(총무처장) 기획처(실)장 도서관장(학술정보) 비고
3.2.1 교무처장
1973년 처장으로 시작하여 1975년 2월 직제개편으로 과장으로 낮추었다가 1980년 다시 처로 승격하였다.. 교무처(과)장으로 재임 시 총(학)장 사임 등으로 교무처장이 총(학)장 직무대행을 한 경우가 지금까지 일곱 차례이다,〈부록 표 3-3> 역대 교무처(과)장 명단
대수 이름 재임기간 비고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2.2 기획협력처장
1982년 제4대 강병규 학장이 취임한 후 기획실을 신설하여 외부에서 손영일 실장을 임명하였다.. 1985년 제5대 홍순태 학장 재임 시 기획실을 폐지하여 사무처 산하에 기획과를 운영하다가 제6대 신영기 학장 재임 시 기획실을 재신설 하였다.1998년 2월 연구처와 통합하여 연구기획처로, 1999년 기획연구처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03년 8월 전자계산소를 기획처 산하에 두면서 기획정보처로 개편하였으나 2005년 7월 전자계산소를 독립시키면서 기획협력처로 명칭을 변경하였다.〈부록 표 3-4> 역대 기획협력(기획연구처, 기획실)처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2.3 학생지원처장
2003년 6월 학생처를 학생지원처로 명칭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부록 표 3-5> 역대 학생처장 명단
1 국어국문 윤태영 1973. 3 - 1975. 2 학생처장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2.4 총(사)무처장
1975년 2월 직제개편에 따라 처를 과로 낮추고 서무과를 신설하여 서무과장에 고등학교 행정실장 김성열 선생을 임용하고 1978년 8월 김영기 선생을 후임으로 임용한 후 1987년까지 서무과장을 역임하였다.·1980년 10월 처로 승격하면서 국어국문학과 김중렬 교수를 사무처장에 임명하였다.. 1982년 강병규 학장이 취임하면서 외부 인사인 이승록 씨를 임용하였으나 2년 임기 후 퇴직하였고 경영학과 최명규 교수를 임명하였다.1990년 6월 신영기 학장 재임 시 유무열 총무과장을 처장으로 내부 승진하나 그 해 엽시부정사건으로 4개월 만에 해임되었다. 이후 사무처장제는 1998년 1월 윤경로 총장직무대행이 들어설 때까지 폐지되었다.·2000년 11월 사무처를 총무처로 명칭을 변경하였다.〈부록 표 3-6> 역대 총(사)무처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2.5 입학홍보처장
2001년 이성근 총장 재임 시 총장 부속실업무와 홍보업무 및 국제교류과를 폐지하고 대외협력, 국제교류를 담당하기 위하여 총장직속기구로 대외협력실을 신설하였다.·2003년 2월 대외협력실과 교무처 입학과플 통폐합 입학홍보처로 개편하여 입학과와 홍보교류과를두었다2010년 입학홍보처를 입학처로 확대 개편하여 입학지원팀과 입학기획팀을 두었고 입학홍보처에 있던 홍보전략팀은 기획협력처의 국제교류팀과 통합하여 대외협력팀을 신설하였다.
〈부록 표 3-7> 역대 입학홍보처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3 학장
. 1982년 제4대 강병규 학장이 취임하면서 성격이 유사한 학과들을 분류해 모든 학사행정을 학부중심 운영체제로 전환하였고 12월 10일 사회과학부장 행정학과 이창신, 예술학부장 미술학과 하인두, 교양학부장 행정학과 정연선 교수를 임명하였다.. 1983년 2월 학사개혁조치를 통해 4개학부로 개편하여 학부장을 임명하여 종합대학체제로의 전환에 대비하였다.〈부록 표 3-8> 역대 학부장 학장 명단
설치연도 학 부 소속학과 학부장
1984년 6월 사회학부장 경제학과 한창호, 예술학부장 미술과 정하경, 교양학부장 교직과 신은숙 교수를 임명하였다.
·1989년 이공계열 학과의 신·증설과 1993년 3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면서 4개 학부를 단과대학으로 개편하였으나 학장을 별도 임명하지 않았다.
설치연도 학 소속학과 비고
1998년 제3대 이성근 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각 단과 대학별로 학장을 임명하였다.
2001년 이공대학을 공과대학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대수 구분 소속 이름 재임기간 총장
대수 구분 소속 이름 재임기간 총장
3.4대학원장
1987년 10월 경영행정대학원 설립 인기를 받아 초대 대학원장에 홍순태 학장이 겸직하였고, 대학원 교학과장에 사학과 강병식 교수를 임명하였다.. 1988년 경영행정대학원을 분리하여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을 두었다. 1989년 11월 대학원 신설(국어국문학과, 사학과, 무역학과)하여 경영학과 최명규 교수가 대학원장으로 보직을 맡은 후 특수대학원장까지 겸직하였다.1994년 예술대학원을 설립하고 1995년에 국제통상정보대학원, 1999년에 컴퓨터신기술 대학원과 안전보건경영대학원을 설립하였고, 국제통상정보대학원은 국제대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1998년 11월 이성근 총장 재임 시 총장이 대학원장을 겸직하였고 경영대학원장에 김길평, 행정대학원장에 이태교, 예술대학원장에 정하경 교수를 각각 임명하였다.2000년 11월 부동산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2004년 6월 대학원장에 홍용식 경영대학원장을 겸임 임용하였다.·2006년 11월 안전보건경영대학원을 폐원하였다.〈부록 표 3-9> 역대 대학원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부록 표 3-10> 역대 특수대학원장 명단
특수대학원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특수대학원 대수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경영학과 최명규 1989.11 - 1993. 7
특수대학원 대수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 2009년 12월 국제대학원을 국방과학대학원으로 명칭 변경하였고 초대원장으로 김세환 초빙교수를 임명하였다.
2012년 현재 대학원과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예술대학원, 부동산대학원, 교육대학원,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을 두고 있다
특수대학원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특수대학원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 부속기관장
3. 5.1 학술정보(도서)관장1973년 3월 본관 건물 8층(현 한성여고 건물)에 자리잡은 한성여자대학 도서관은 참고열람실과 일반열람실을 두고 사서 1명으로 운영하였다.1979년 3월 한성대학중앙도서관으로 개칭하고 초대 도서관장에 국문과 정연길 교수를 임명하였다.·2003년 10월 현 미래관 건물로 이전하였고, 명칭을 중앙도서관에서 학술정보관으로 변경하였고 당시 정진식 도서관장을 학술정보관장으로 임명하였다.2012년 8월 한국어문학부 김창룡 교수가 학술정보관장 임명되었다.〈부록 표 3-11> 역대 학술정보(도서)관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2 전자계산소장
. 1990년 2월 우리 대학 교육이념의 수행과 정보화시대 도래에 따른 교수, 학생들이 연구 활동 및 실습지원과 행정업무전산회를 목적으로 전자계산소를 개소하였고 초대 전자계산소장에 권혁제(경제학과) 교수가 임명되었다.·2012년 8월 컴퓨터공학과 정인상 교수가 전자계산소장으로 임명되었다.<부록 표 3-12> 역대 전자계산소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3 디자인아트평생(사회)교육원장
1997년 4월 사회교육원 인기를 받았다.1998년 이성근 총장이 취임한 후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를 사회교육원장에 임명하여 사회교육원을 활성화하였다.·2007년 6월 사회교육원을 디자인아트평생교육원으로 명칭 변경하였다.·2012년 2월 애니메이션 전공 이상원 교수가 디자인아트평생교육원장으로 임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부록 표 3-13> 역대 디자인아트평생(사회)교육원장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4 산학협력단장
2004년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4년 전후로 모든 대학이 설립하였으며 특별법인으로 외부연구비의 협약, 관리를 비롯하여 산학협력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히는 기구로 설치하였다.우리 대학도 이 해 1월 산학협력단을 신설하여 초대 산학협력단장으로 윤경로 교무처장이 겸직하였다.<부록 표 3-14> 역대 산학협력단장 명단
역사문화학부 윤경로 2004. 1. - 2004. 6 교무처장겸직
3.5.5 출판부장
1989년 2월 우수한 교재 개발과 흑낼 연구물을 출판하고, 우리 대학의 특성을 살리며 학문 영역의 확대, 발전에 기여하는 도서들을 발행하고자 교수연수에서 공식적으로 발족이 논의되어 출판부가 신설되었다. 초대 출판부장으로 국어국문학과 원형갑 교수가 임명되었다.<부록 표 3-15> 역대 출판부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6 언어교육원장
2004년 6월 인문대학 산하에 있던 어학연구소를 언어교육원으로 확대 개편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언어교육원은 교양학부 사고와 표현, 교양영어, 한국어과정 교육을 담당한다<부록 표 3-16> 역대 언어교육원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7 한성프레스센터장
2006년 3월 신문사, 영자신문사, 방송국을 통폐합하고 한성프레스센터를신설하여 초대프레스센터장에 신문사와 영자신문사의 주간이었던 영어영문학부 서영윤 교수를 임명하였다.
<부록 표 3-17> 역대 한성프레스센터장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한성프레스센터 통합 이전의 학보사 주간, 영자신문사 주간, 방송국 지도교수 및 교지편집실 지도교수는 디음과 같다.
3.5.7.1 한성대신문사(학보사) 주간1976년 11월 30일 문공부로부터 정기간행물 허가를 받았다. 이 해 12월 15일자로 격월간「漢城女子大學報」를 창간하였다. 김의형 학장을 발행인으로, 학생과장 국어국문학과 이근수 교수를편집인 겸 주간으로 제6호까지 발간하였다.· 1978년 교명 변경과 함께 「漢城大學報」로 개칭하고 4월 7일 제7호부터 주간교수를 별도로 행정학과 이창신 교수를 임명하였고편집인을 학생처장으로 분리하였다. 8호부터 경영학과 연정열 교수가 주간으로 임명되면서 이전의 학생처장 주관 하에서 발행되던 학보를 독립하여 발행하였다.· 1981년 3월 보직개편을 하면서 학보사 주간으로 사학과 윤경로 교수가편집인으로 학생처장 교양과 신은숙 교수로 분리하였고 제21호부터 격월간 4 면에서월간 8·4 면으로 바뀌었다.1982년 국문과 이석주 교수가 주간이 되면서 1982년 4월 9일 제 29호부터는 완전 한글표기를 채택하였고 제호도 한자로 된 「漢城大學報」를 「한성대학보」로 바뀐다. 한글로 된 한갑수 선생의 제호 글씨가 여성적 이미지를 준다며 1985년 3월 4일 제58호부터 글씨체를 바꾸고 다시 1988년 1월 1일 제 101 호부터는 한자로 바뀌었다.· 1984년 3월 19일 제46호부터월간 8면에서 격주 8 면, 4면씩으로 발간하였으며 창간 10주년이 되는 1986년에는 ‘한성문회장’을 제정하여 1986년 12월 1일 제84호에 시, 소설 수상작품을 발표하였고 제2회부터는 ‘한성문화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사회분야, 평론까지 확대되었다.
·1988년 8월 22일 제111 호부터 가로쓰기편집으로 전환하였고 제호도 가로쓰기로 바뀌었다1990년 8월 27일 제 142호부터는 한자 제호 「漢城大學報」를 한글 「한성대학보」로 다시 바뀌었다· 1992년 3월부터 박헌영 주간 재임 시 주간이 학생처장이 맡던편집인을 주간이 겸직하였다이 시기에 학생기자들이편집권과 사설권을 요구하면서 학교 당국과 첨예한 대립을 하다가 1993년 4월 제198호를 끝으로 「한성대학보」가 발간 중지되었다.· 1993년 8월 간사제를 도입하여 신문사편집장 출신인 강호정 씨가 간사로 임명되고 1993년 12월 제199호를 속간하였다.· 1994년 3월 2일 제 200호부터 주간 4 면과 8 면으로 번갈아 발행하던 학보를 격주간 8면으로 발행하다 1997년 3월부터 격주, 12 면으로 발행하였다.2006년 3월 신문사, 영자신문사, 방송국을 통합한 한성프레스센터를 신설하였다.<부록 표 3-18> 역대 신문사(학보사) 주간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7.2 영자신문사 주간
· 대학의 저널리즘과 참다운 대학문화 창달, 그리고 대학 언론으로서의 올바른 위치를 지속하기 위하여 1989년 영문학회 산하에 Minelva Times 창간 이후 1990년 별도 기구로 독립하여 Hansung Times로 제호를 변경하였다.. 1994년 초대 영자신문사 주간으로 당시 조효진 영어영문학과장이 임명되었다.·2006년 3월 신문사, 영자신문사, 방송국을 통합하여 한성프레스센터를 신설하면서 영자신문사 주간 직제를 폐지하였다.<부록 표 3-19> 역대 영자신문사 주간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7.3 방송국 지도교수
1982년 10월 방송국 발족은 학생들의 수차 건의에 의한 것으로 마땅한 공간이 없어 학생처의 일부 공간을 이용하여 설치한 후 개교 9주년 기념 체육대회 시부터 첫 방송을 시작하였다.초대 방송국 지도교수로 김길평 교수가 방송국의 기반을 다졌다 그 후 낙산가요제와 방송제, 방송잔치 등을 개최하였다.2006년 3월 신문사, 영자신문사, 방송국을 통합하여 한성프레스센터를 신설하면서 방송국 지도교수 직제를 폐지하였다.<부록 표 3-20> 역대 방송국 지도교수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3.5.7.4 교지편집실 지도교수
· 교지 「漢施」은 대학생들이 대학의 가치와 삶을 표출해내는 기관지로서 1982년 창간호「漢施」을 연1회 발간하여 2002년 24번째 여름호를 발간하였다.·2004년까지 연2회 발간되던 교지가 2005년에 연1회로 축소 발간하다가 2006년도에 틀어와서 폐간되었다.과거 학생들이 다양한 매제를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교지의 발간이 의미가 있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각종 정보와 의견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지의 출간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어 폐간하면서 교지편집실 지도교수 직제도 폐지하였다.<부록 표 3-21> 역대 교지편집실 지도교수 명단
대수 소속 이름 재임기간 비고
4. 행정부서
1973년 대학설립 당시 행정부서는 교무처, 학생처, 서무과 등 3개 부서로 운영하였다.. 1975년 2월 직제개편으로 교무처와 학생처를 과로 낮추었다가 1980년 2월 다시 처로 바꾸어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로 개편하고 교무처에 교무과와 학적과를 학생처에 학생 지도과와 행정과를 사무처에 서무과와 영선과를 두었다.1982년 3월 강병규 학장 재임 시 기획실을 도입하여 기획과와 예산관리과를 두어 운영하다가 1985년 기획실을 폐지하였고 기획과를 사무처에편입하였다.·1988년 3월 기획실을 재신설하여 3처1실로 운영하였다.교무처에 교무과와 학적과를, 학생처에 학생과와 장학과를, 사무처에 총무과와 경리괴를, 기획실에 기획괴를 두었다1991년 2월 서정희 이사장 직무대행 시절 사무처를 폐지하였고 총무과, 경리괴를 총장 직속기구로 두게 된다. 이는 사무처장제를 없애고 그 역할을 법인사무국장이 관장하게 하는 조치였다.총무과 내 관리업무를 기획실로 옮겨 관리과를 신설하였다.. 1992년에는 기획처 관리과 내 시설업무를 분리하여 시설과를 신설하였다.
1995년 6월 교무처에 연구과를 신설하였다.1995년 11월 연구처를 별도로 신설하여 연구진흥과와 국제교류괴플 두고 교무처 내 학적과를 교무과로 통폐합하고 입시업무를 전담히는 입시관리과를 신설한다 이로써 3처1실로 운영하나 연구처장을 교무처장이 겸직함으로써 기능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였다.1998년 1월 윤경로 총장직무대행 때 총장직속기구로 있던 총무과와 경리과를 사무처로 다시 부활시켜 그 아래 두고 기획실 내에 있던 시설과와 관리괴를 사무처로 이관하였다. 또한 연구처를 기획실과 통폐합하여 연구기획처로 명칭 변경하고 연구진흥과는 연구지원과로 명칭 변경하였고 국제교류과와 기획괴를 그 산하로 두는 등 4개 부처로 운영하게 되었다. 교무처 입시관리과는 입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이로써 교무처에 교무과와 입학과를 학생처에 학생과와 장학과를, 사무처에 총무과, 경리과, 관리과, 시설괴를 연구기획처에 기획과, 연구지원과 국제교류괴플 각각 두게 되었다.1999년 6월 연구기획처를 기획연구처로 사무처를 총무처로 명칭 변경하였다.·2001년 11월 이성근 총장 재임 시절 기획연구처 내에 기획과 업무에서 평가 및 예산심사분석업무를 분리하여 심사평가과를 신설하였고, 총장부속실업무와 홍보업무 및 국제교류과를 폐지하였고 대외협력, 국제교류를 담당하기 위하여 총장직속기구로 대외협력실을 신설하여 4처1실로 운영하였다.
<부록 표 4-1> 행정부서 설치연표
설치년도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총무처) 기획실(처) 비고
설치년도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총무처) 기획실(처) 비고
2003년 3월 한완상 총장 재임 시 대외협력실을 폐지하고 입학홍보처를 설치하여 교무처, 기획연구처, 학생처, 총무처 등 5개 부처로 운영하였다.
. 2004년 1월 행정부서 과 체제를 팀제로 전환하였다.전자계산소를 기획연구처로편입시켜 기획정보처로 명칭 변경하고 전자계산소 내 정보화팀을 두었다.2005년 7월 윤경로 총장 재임 시 교무처 내 교육개발지원팀을 신설하였으나 2009년 폐지하였다. 기획정보처에편입된 전자계산소가 부속기관으로 독렴하였다.·2009년 7월 정주택 총장 재임 시 기획협력처 내 국제교류팀을 신설하였고 교육개발지원팀과 심사평가팀을 폐지하였다.·2010년 9월 입학홍보처를 입학처로 명칭 변경하고 국제교류팀을 대외업무와 통합하여 대외협력팀을 신설하였다.
설치년도 교무처 학생지원처 총무처 기획협력처 입학홍보처 비고
5. 학과(부)
1973년 3월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비서학과, 가정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등 6개 학과 150명의 야간대학으로 개교하였다.. 1973년 12월 비서학과를 폐과하였고 무용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불어불문학과 등 4개 학과를 증과함으로써 9개 학과에 입학정원 230명으로 늘어났다.1976년 10월에는 불어불문학과를 폐과하였고 국사학과를 신설하였으며, 이듬 해 국사학과를 사학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8년 1월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였고 이 해 10월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무용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입학정원을 증원하였고, 행정학과를 신설하고 가정학과를 폐과하여 9개 학과에 입학정원 380명으로 늘어났다.1979년 9월 행정, 무용, 의상, 생활미술, 사학과 등 5개 학과를 60명 증원하여 입학정원이 440명이 되었다.1980년 10월 주간에 경제학과, 도서관학과를 신설하여 전일제 수업 실시와 더불어 주야간대학으로 전환하였다. 당시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사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 도서관학과,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 무용과 등 11개 학과 졸업정원 520명, 모집인원 676명으로 정원 조정하였다. 야간에 졸업정원 국어국문학과 20명, 영어영문학과 20명, 경영학과 40명, 무역학과 40명만 두고, 모든 학과를 주간으로 전환하여 국어국문학과 20명, 영어영문학과 20명, 경영학과 40명, 무역학과 40명, 사학과 40명, 행정과 40명, 무용과 40명, 의상학과 40양 생활미술학과 40명을 두어 야간 4개 학과, 주간 11개 학과가 되었다.
1981년 10월 생활미술학과가 미술학과로 명칭 변경하였다.1986년 졸업정원제 폐지로 입학정원 520명으로 재조정하였다.1987년 10월 이공계열인 전산통계학과, 산업공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의류직물학과 등 4개 학과에 각각 40명씩 증과하고 도서관학과를 문헌정보학과로 명칭 변경하였다. 이로써 15개 학과에 입학정원 720명이 되었다.1992년 7월 전산통계학과, 산업공학과 야간 증과로 80명이 증원하여 입학정원이 800명이 되었다.1993년 3월 1일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4개 단과대학로 개편하였고, 이 해 9월 컴퓨터공학과(주,야) 각 40명, 정보공학과(야), 산업안전공학과(야) 각 40명, 산업디자인학과(야)30명을 증과로 주간 16개 학과, 야간 107R 에 입학정원이 990명이 되었다. 미술학과를 회화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4년 10월에 전산통계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공학과플 정보전산학부로 개편하여 주간 80명, 야간 120명이 되었다.1995년 10월 정보전산학부 주간 40명,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야간 각 20명, 행정학과, 경제학과 야간 각 40명, 무역학과, 경영학과, 산엽디자인학과 야간 각 10명이 증과·증원되어 입학정원이 1,180명이 되었다.· 1996년 10월 산업안전공학과 주간 신설을 위해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행정학과 주간에서 각 5명씩, 경상학부 주간에서 15명을 감원하여 도합 30명을 자체 조정하고 경영학과, 무역학과, 경제학과를 경상학부로, 산업공학과와 산업안전공학과를 산업시스템공학부로 통합하였다. 국어국문학과(야), 영어영문학과(야), 행정학과(야) 각 10명씩, 경상학부(야) 30명, 산업시스템공학부(야)에 10명을 증원하여 입학정원 1,230명이 되었다.· 1997년 11월 수도권 야간 정원 자율화 대학으로 선정되어 부통산학과 야간에 40명을 증과하였고, 경상학부(야 80망 문헌정보학과(야 40명, 정보전산학부(야) 30명, 산업시스템공학부(야) 40명, 의류직물학과(야) 40명, 산업디자인학과(야) 40명, 의상학과(야)40명, 사학과(야) 40명 등 무려 390명을 증원하여 입학정원이 1,620명(주간 680명, 야간 940명)이 되었다.
· 1998년 10월에 모집단위 통폐합으로 어문계열, 인문계열, 사회계열로 나누었고, 의상학과 및 의류직물학과를 의생활학부로 통합하고 명칭을 의상디자인 전공, 의류패션산업 전공으로, 정보전산학부에 정보시스템공학 전공을 신설하였고 전산통계학과 정보공학 전공을 멀티미디어 정보처리 전공, 정보통신공학 전공으로, 산엽시스템공학부 산업안 전공학 전공을 기계시스템공학 전공으로 각각 명칭 변경하였고, 야간학과 모집 정원의 30%를 주간으로 전환하여 이전 주간 680명, 야간 940명이 주간 960명, 야간 660명으로 주·야간 신입생 모집 정원이 역전되었다.1999년 6월 모집단위 학부제 확대로 한국어문학부, 영어영문학부, 역사문화학부, 지식정보학부, 사회과학부, 경영학부, 마디어디자인학부로 개편하여 대학편제를 4개 단과대학, 107R 학부 28개 전공, 2개 학과에 입학정원 1,620명이 되었다.·2000년 6월 산업디자인학과를 미디어디자인학부로 확대하였고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 캐릭터애니메이션 전공, 스페이스디자인 전공, 팬시프로덕트디자인 전공을 주간학부 세부 전공으로 하였고, 공간연출디자인을 야간학부 세부 전공으로 하며, 산업시스템공학부를 산업 및 기계시스템공학부로 명칭 변경하였다.
·2001년 6월 모집단위를 자체 조정하여 사회과학부를 2개 학부로 분리하여 경상학부에 무역학 전공과 부동산학 전공을 정경학부에 행정학 전공과 경제학 전공을 지식경제학 전공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정보전산학부를 2개 학부로 분리하여 컴퓨터공학부에 컴퓨터시스램 전공과 멀티미디어정보처리 전공을, 정보공학부에 정보통신공학 전공과 정보시스템공학 전공으로 분리하였다.. 2002년 미디어디자인학부를 미디어디자인컨벤츠학부로 명칭 변경하였고 주간에 20명 증원하여 입학정원 1,640명으로 4개 단과대학 아래 127H 학부, 2개 학과, 33개 전공의 편제로 이루어졌다,2003년 4월,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야간)4 0명을 폐지하였고 미디어디자인컨벤츠학부(주간)정원을 100명에서 120명으로, 정보공학부(야간)정원을 30명에서 50명으로 증원하였다 이 해 11월 정보공학부(야간)의 정원을 50명에서 30명으로 20명 감원하여, 입학정원 1,620명이 되었다.· 2005년 정경학부가 행정학과, 경제학과로 분리되었고 경상학부가 무역학과, 부동산학과로 컴퓨터공학부가 멀티미디어공학과, 컴퓨터공학과로, 정보공학부가 정보통신학과, 정보시스템공학과로, 산업및기계시스템공학부가 산엽시스템공학과, 기계시스템공학과로 분리되었다.
·2009년 11월, 산업시스템공학과가 산업경영공학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하여 2010학년도 부터 변경된 명칭이 적용되었다.2011년 행정학과(야간), 경제학과(야간), 무역학과(야간), 경영학부(야간) 인원을 각 1명씩 감원하여 부동산경영학과(야간) 4명을 신설하였다.·2012년 현재 우리 대학은 4개 단과대학 아래 7개 학부, 13개 학과, 21개 전공의 편제로 이루어졌다.〈부록 표 5-1> 학과별 설치연표
구분 학과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예술대학 이공대학 입학정원
구분 학과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예술대학 이공대학 입학 정원
구분 학과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예술대학 공과대학 입학 정원
<부록 표 5-2> 설치학과(부) 및 입학정원
설치인가 학과/학부 입학정원 구분 비고
행정(야) 30 신설
설치인가 학과/학부 입학정원 구분 비고
전산통계(야) 40 신설
설치인가 학과/학부 입학정원 구분 비고
부동산(야) 40 신설
설치인가 학과/학부 입학정원 구분 비고
한국어문학부(주) 50
설치인가 학과/학부 입학정원 구분 비고
경상학부(주) 70 자체조정 사회과학부의 무역학, 부동산학
2006 2005년과 동일
<부록 표 5-3> 2012년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계열 모집단위 전공 모집인원
사회과학
계열 모집단위 전공 모집인원
공과
6. 대학원
<부록 표 6-1> 대학원 연혁
1987.10 경영행정대학원 신설(경영학과 40명, 행정학과 40명)
안전보건경영대학원 신설
일반대학원 계열별 입학정원 인문사회계열 15명, 공학계열 10명, 예·체능계열 30영으로 조 정
2004 6일반대학원 계열별 입학정원에서 종정원제로 조정
학과 및 전공 조정
국제대학원 국제마약학과 폐지,행정대학원 마약학과 신설
2008. 12
2010. 2
•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디지털중소기업경영학과 디지털중소기업경영 전공 폐지
2012. 11
<부록 표 6-2> 대학원 학과 현황
대학원구분 학위구분 계열별 학과 및 전공명 입학정원
회화과
대학원구문 학위구분 계열별 학과 및 전공영 입학정원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7. 부속기관
7.1 학술정보관(도서관)1973년 3월 한성여자대학도서관으로 개관하고 본관(현 한성여고 건물) 8층에 위치하였다.· 1978년 3월에 한성대학으로 변경됨에 따라 한성대학중앙도서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82년 종합관(현 한성여중 건물)이 개관함에 따라 종합관 3층으로 확장 이전하였다.이로 인해 일반열람실과 참고열람실 외에도 정기간행물실과 자료정리서고 등이 마련되었고 도서이용방법도 개가제와 폐가제를 겸용하였다.1984년 10월 복지관(현 학생회관) 건립으로 동 건물 3,4층으로 확장이전 하였다.· 1988년부터 완전개가제로 운영하며 총 9만권의 장서와 720석의 열람석을 보유하였다.· 1991년 도서관을 사서과와 열람과로 분리하였다.· 1994년 도서관의 전산화 및 정보화를 위하여 정보검색실을 설치하였으며 도서관 Total system 인 MAE 3.5 를 도입하였다.1995년 4월 전자정보관 개설을 준비하면서 전자정보과를 신설하였고 이 해 11월 사서과를 정보자료과로, 열람과를 정보봉사과로 명칭 변경하였다.
· 1996년 5월 국내 대학 최초 전자정보관을 개관하여 대학사회의 정보화에 기여하였다.1999년 2월 전자정보관 개관 당시 사용하던 LINNET시스템에서 연속간행물관리를 포함한 도서관 토탈시스템 SLIMA S/T를 도입하였다.2003년 10월 972 석의 열람석을 보유한 3,597평 규모의 신축도서관으로 이전하고 학술정보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03년 국내 최초 RPID 시스템, 지문인식자리배석시스멈 도입하였고, FOL(Friends of Library) 제도를 시행하여 지역사회에 도서관의 문호를 개방하였다.2005년 5월 세계도서관정보대회 (WLIC) 공식 방문 도서관에 선정되었다.2006년 1월 도서관 Total system SLIMA-DL(net) 도엽하였다.·2007년 10월 개교 3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대학의 역사자료 수집 및 전시한 대학사료실을 개관하였다.2010년 12월 성북구청과 도서관 교류 및 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여 지역사회 도서관서비스 개방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었다.2010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2010년도 대학도서관 평가에서 소규모 대학 제3분야(지역사회연계 및 대외 협력 활성화) 1위를 수상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히는 학술정보관의위상을 강화하였다.
·2011년 3월 2006년부터 시작된 ‘장서 50만권 소장을 위한 도서 기증 캠페인’ 결과 장서 50만권을 달성하게 되었다.2013년 12월 교육부 주관 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 학술정보관 지역주민 서비스 모범사례로 선정되었다.7.2 전자계산소1990년 2월 개소한 전자계산소는 정보화 시대에 따른 교직원, 학생들이 연구활동 지원 및 실습 지원과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전산화함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를 처리하고 이용의 효율성을 증대하고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MY/15000 SYSTEM ’에 30대의 터미널을 연결하고 각종 Programing Language와 Softvvare Package 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이보다 앞서 1983년 10월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컴퓨터실을 설치하고 1984년 4월 정보전산연구원을 개원하여 초대소장으로 이우범 교수가 임명되어 급여전산화 등을 시행하였다.. 1997년 3월 캠퍼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유닉스시스탱을 도입해 행정업무를 온라인 환경에서 클라이언트 서버 환경으로 전환하였다.8. 부설연구소
1982년 5월 대학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기능의 하나가 전문분야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기능에 었다는 점에 따라 민족사상연구소, 사회산업발전연구소, 한국전동문화예술연구소, 학생생활지도연구소를 개설하며, 연구소의 특정과 성격에 따라 이 분야 전공교수들을 전임연구원으로 위촉하였다.1983년 3월 사회산업발전연구소는 사회산업연구소로 개칭하는 한편 각 전문분야별로 연구책임교수제를 도입 명실상부한 전문적인 연구소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학생생활지도연구소는 명칭을 학생생활연구소로 개칭하고 1995년 3월 학생상담실을 그 아래 두었다.1985년 11월 민족사상연구소는 연구활동의 효율회를 위하여 한국전통예술연구소와 통합하여 민족문화연구소로 새롭게 발족하였으며 1991년 6월 농경생활사 전시관, 1999년 10월 박물관을 설치하여 산하에 두었다.· 1989년 4월 21세기 역동적인 지역으로 발전할 북방지역의 정치사회경제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활동을 위하여 북방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1998년 통아시아연구소로 명칭 변경하였다.
· 1994년 정보화 사회 구현을 위한 정보통신 시스템 개발 및 전문인력 수요에 대응하여 핵심기반 기술 및 응용기술을 연구·개발 하고자 정보통신연구소를 신설하였다.· 1997년 안전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1999년 어학연구소 등 9개의 연구소를 설치하였다· 2003년 3월 단과대학별로 1개 연구원(연구센터)만 남겨두기로 하고 나머지 연구소는 폐지하였다. 인문대학에 인문과학연구원, 사회과학대학에 사회과학연구원, 예술대학에 아트&디자인커뮤니케이션센터, 공과대학에 공학연구센터를 각각 두었다.<부록 표 8-1> 역대 연구소장 명단
연구소명 연구소장 이름 기간 비고
연구소명 연구소장 이름 기간 비고
시회산업연구소
연구소명 연구소장
북방문제연구소 강석중 1989. 4 - 1998. 2
최기흥 199912 - 200111
이민석 2002.12 - 2004.12 2004. 9명칭 변경
9. 대학평의원회
2006년 12월 27일 이사회에서는 사립학교법에 근거하여 대학평의원회 구성을 교수 5인, 직원 3인, 학생 3인, 동문회 1인, 외부인사 1인 등 총 13명을 두도록 하는 정관을 마련하고 2007년 2월 6일 교육인적자원부의 승인을 받았다.·2007년 2월 21일 교수협의회에서는 총회를 통해 당연직으로 교협 회장 홍용식 경영학부 교수, 인문대학 대표로 김용석 교수, 사회과학대학 대표로 경제학과 이우관 교수, 예술대학 대표로 회화과 정종해 교수, 공과대학 대표로 기계시스템공학과 윤재건 교수를 선출하였다. 또한 직원대표는 2월 15일 열린 노조 총회를 통해 당연직으로 조현호 노조지부장, 전장배 교수지원팀장, 조승호 심사평가팀장을 직원 대표 3 인으로 선출하였다.학생은 지난 1월 22일~23일 진행된 확대간부수련회에서 총학생회장 장형규(한국어문 4), 인문대 학생회장 김은혜(한국어문 4), 사회과학대 황의영(무역 3) 학생회장을 학생 대표로 선출하였다.동문 대표로는 한용수 총동문회 부회장[(주)청한이천건설 대표]과 외부 인사로는 권중길 [(사)한국폐기물협회 회장] 씨가 선임되었다.
2007년 4월 3일 대학평의원회 첫 회의를 개최하여 대학평의원회 의장으로 홍용식 교협회장, 부의장으로 전장배 교수지원팀장을 선출하였고, 앞으로 대학의 발전계획에 관한 사항, 대학의 현장 및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에 관한 사항, 대학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 개방이사 및 감사의 추천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였고 대학의 예결산에 관한 사항을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이밖에 총장이 심의에 부의하는 사항을 다루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부록 표 9-1> 역대 대학평의원 위원 명단
기수 구분 소속 이름 기간
기수 구분 소속 이름 기간
· 2009년 3월 제2기 대학평의원회가 구성되어 이우관 교협회장이 대학평의원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 2011년 3월 제3기 대학펑의원회의장으로 최기흥 교협회장을, 부의장으로 정보화팀 유부상 팀장을, 간사로는 기획전략팀 장영우 팀장을 선출하였다.
기수 구분 소속 이름 기간
기수 구분 소속 이름 기간
3 교수
9.1 교수협의회
· 1987년 10월 22일 6월항쟁 후 민주화 과정의 영향으로 교수협의회 창립에 관한 제반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전체 교수회의를 개최하였다. 32명의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회의에서 국문학과 원형갑 교수가 임시의장으로 피선되어 정관 안을 심의, 수정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편 임원선출도 투표를 통해 회장에는 참석교수 32명 가운데 25표를 얻은 국문학과 이석주 교수, 부의장에는 영문학과 김용석, 미술학과정하경, 간사에는 무역학과 김용정, 감사에는 무역학과 강석중, 경영학과 김길평 교수가 각각 선출되었다.
·1989년 3월 13일 오후 4시 30분 교수회의실에서 28명의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교수협의회가 열려 감사보고, 회칙개정, 임원개선, 기타 사항 발표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임원개선에 있어 교양과 김계욱 교수가 찬성 24표로 신임 교수협의회장에 선출되었다.·1991년 12월 14일 정기총회에서 협의회 정관을 개정하여 학장 후보자 선출 규정을 확정하여 직접 선거를 통한 학장 후보자의 추천을 가능하게 하였다.·1992년 3월 18일 당시 회장인 미술학과 강국진 교수의 별세로 부회장인 문헌정보학과 이용남 교수를 회장으로 보선하였다.·1994년 12월 16일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교수협의회 정기총회에서 행정학과 황진수 교수가 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다.·1998년 10월 교수협의회는 총장 선출과 관련하여 교수들의 의견 수렴 및 반영에 미흡했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총 사퇴하였다.·2000년 10월 공청회를 개최하여 건물증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2002년 3월 교수협의회 임시총회에서 지식정보학부 정진식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03년 12월 교수협의회 총회에서 지식경제 전공 이상한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교수협의회가 단순히 대학당국을 비판하는 기구가 아니라 우리 학교를 미래지향적인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기구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부록 표 9-2> 역대 교수협의회 임원 명단
년도 회장 임원
년도 회장 임원
9.2 직원노동조합
· 1997년 12월 6일 오전 11시 소강당에서 교직원 57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성대학교 노동조합 임시총회’가 열린다 이번 임시총회에서 신설되거나 개정된 선거관리 규정과 노동조합 규약은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임원단 선출에서 조현호(전자정보과) 노조위원장과 박철우(기획과) 부위원장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1998년 9월 12일 노조는 노조가 출범할 당시의 목적이었던 학교 측과의 대화와 타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교직원 인사이동으로 인한 직원인사위원회와의 마찰, 단체협약의 결렬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여 소강당에서 비상회의를 갖고 그 자리에서 총 사퇴를 결의하였다. 노조집행부가 총사퇴를 결의함에 따라 직원 노조에서는 공대원 교무과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 1998년 10월 1일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의 총투표를 거쳐 재구성되었다.‘ 총 재적 인원 81명 중 75%인 61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대원 교무과장이 찬성 59표(96%), 반대 2표(4%)를 얻어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었으며 부위원장으로 정영만 시설과장이 탕선되었다. 또한대의원 8명과 회계 2명도 선출되어 총 12명의 집행부가 새로 구성되었다.
· 1998년 11월 노조는 ‘단일노조 가입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놓고 우촌관 218호에서는 노동조합 임시총회를 개회하였다. 이 날 임시총회에서는 재적인원 79명 중 5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이 찬성하여 단일노조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한편 초대 지부장으로 현 노조위원장인 공대원 교무과장, 파견대의원으로 김동근(교무과) 선생이 각각 선출되었다· 2001년 5월 지부장 유부상, 수석부지부장 조현호, 부지부장 장영우 등이 활동하였다.<부록 표 9-3> 역대 직원노동조합 임원명단
설치년월일 지부장(위원장) 내용 비고
9.3 총학생회 (학도호국단)
· 1975년 총력안보가 강조되던 시국적인 요청으로 우리대학에도 학도호국단이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대대장 조인자(국문 3), 부대대장 박옥면(영문 3) 이 임명되었다.· 1980년도 3월 민주화의 봄을 맞은 대학가는 학도호국단과는 별도로 총학생회 선거를 치러 초대학생회장에 안병곤(무역 3)을 선출하나 5월 17일 대학휴교령과 함께 당시 총학생회장인 안병곤은 ‘제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로써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만 선출한 채 구성도 하지 못하고 없어졌다.· 1980년 9월 학도호국단은 문교부 훈령과 학도호국단 준칙에 의하여 군대학 편제를 총학생장, 총부학생장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전년도 2학기말에 남학생을 주축으로 임원을 구성하여 총학생장 호진규(영문 4), 총부학생장 문교승을 임명하였고 여학생부를 별도로 두어 부장에 전광의(의상 4)를 임명하였다.
1981년도부터는 총학생장 빛 총부학생장을 러닝메이트로 학과학생장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하여 총학생장 배기성(영문 3), 총부학생장 고려남(생활미술 3)을 선출하였다.· 1984년 2학기말에 선출된 제10대 최동욱 학도호국단 체제는 1985년 2월 26일 학도호국단령이 폐지됨으로써 1985년 한 학기도 못 채우고 해체되었다. 이 해 5월 새로운 총학생회의 출범과 함께 학도호국단의 역사가 마감되었다. 이는 문교부가 1985년 1월 24일 오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제출한 ‘대학의 학도호국단 개편 및 학생자치기구 신설을 위한 대정부 건의안’을 검토하여 올 신학기부터 현 학도호국단 대신에 ‘총학생회’ 즉 학생자치기구를 신설 운영토록 하였다.· 1985년 3월 19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체육관에서 총학생회장 선거를 실시하여 전체 학생 2,195명 중 1,401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63.8%의 투표율을 나타냈으며, 기호1번 송인수, 정두전 조, 기호 2번 박형만, 한영수 조, 기호 3번 한영준, 차정택 조가 경합을 벌인 결과 제2대 총학생회장에 박형만(국문 3), 총부학생회장에 한용수(경영 3)군이 선출되었다.
· 1985년 11월 21일 제3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실시한다. 입후보는 기호 1번 박성민, 이용 주, 기호 2번 구성명, 김명식, 기호 3번 김원배, 강귀운이며, 전체 학생 2,035명 중 1,256명이 선거에 참가하여 61.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투표 결과 기호 1번 박성민(행정 2), 이용주(사학 2) 군이 당선되었다.· 1986년 11월 19일 제4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기호 1번 차금남, 이장갑, 기호 2번 김원 배, 이정구, 기호 3번 김상복, 신근철이 입후보하며, 전체 학생 2,196명 중 1,367명이 투표하여 62.1%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투표 결과 기호 3번 김상복(행정 3), 신근철(경제 3) 군이 당선되었다.· 1987년 5월 14일 제1회 총여학생회장 선거가 실시되어 김미래(경영 4) 양이 단독 출마하여 투표자 519명 중 465표가 찬성하여 89.6% 의 찬성율로 총여학생회장에 당선되어 총여학생회가 출범 하였다.1988년 6월 8일 ‘발전적 방향모색’이라는 이유로 총학생회 [회장 김승환(의상 3)] 간부들이 총사퇴를 선언하여 학생들로부터 독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17일 집행부 사퇴로 매듭지어지고 새 집행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총학생회와 각 학회장 및 대의원간에 갈등이 있은 후 부총학생회장 이용택(경군영 4) 군이 사퇴하고 마무리 되었다,
1989년 11월 17일 제7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실시하였다. 입후보는 기호 1번 정일용, 임기범, 기호 2번 곽민선, 문경추, 기호 3번 이우창, 마재작, 기호 4번 김형석, 김대중 군이다. 투표 결과 기호 1번 정일용(경영 3), 임기범(무역 3) 군이 당선되었다.· 1990년 11월 12일 학원자주화 투쟁으로 투쟁위원회와 대의원회에서는 총학생회 선거 연기에 대해 대립하였다. 이 해 12월 총학생회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2,604명 중 1,017명이 투표해 총 투표인원이 전체 유권자 수의 과반수를 넘지 못해 1991년 3월로 연기되었다. 다음해 3월 27일 제8대 총학생회 선거를 실시한다고 하였으나 총대의원회의 일방적 결정으로 4월 3일로 변경 공고하였다. 결과 기호 1번 박동화(사학 4), 최종근(경제 4), <기호 2번 김태정(사학 4), 박정기(무역 4) 사퇴>, 기호 3번 백종철(경영 4), 정성철(전통 4) 이 출마하여 기호 1번 박동화, 최종근 군이 당선되었다.1997년 11월 13일 제 15대 총학생회 선거 예정이었으나 후보자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아총여학생회 선거만 치르게 되고 나머지 선거는 1998년 3월로 연기되었다.
· 1998년 4월 2일 두 팀만이 등록한 총학생회 선거가 실시된다. 기호 1번 박경모(정전 4), 김현정(문정 4), 기호 2번 지용현(경제 4), 김영석(무역 4) 이 출마하여, 기호 2번 지용현, 김영석 군이 당선되었다.· 2001년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였다.· 2002년 제18대 총학생회장 김유나(무역 4), 부학생회장 조영훈(산업공 4) 이다.· 2003년 11월 선거에서는 기계시스템공학과 3학년 천웅소, 경영학부 3학년 곽재인 후보가 51.3%의 지지율로 총학생회장과 총부학생회장에 각각 당선되었다.· 2005년 제21대 총학생회장 송혜련(무역), 부총학생회장 손오민(컴공)이었다 2학기(10월 중)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성폭력을 알리는 사건이 제보되었다. 당시 부총학생회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요구사항을 수용해 부총학생회장 사퇴 및 공개 사과문 게시 등을 통해 마무리하였다.· 2006년 11월 총학생회 선거에 정·부회장에 단독 출마한 산업공학과 3학년 손호균, 역사문화학부 3학년 김은정이 81.78%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2007년 11월 총학생회 선거 결과 총 재적인원 6천 29명 중 3천 899명이 참여해 64%의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찬성 3천 394표(87.56%), 반대 422표(10.89%), 무효 60표(1.55%), 오차 59표(1.51%) 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 2007년 제23대 총학생회장 한현우(산공 4), 부총학생회장형규(국문 4) 학교측과 등록금 인상율 7.1% 로 합의하였다. 등록금조정위원회를 앞두고 학교가 제공하는 고액의 해외연수 참석, 과학생회장단틀을 속이고 다른 목적의 해외연수 다녀오는 등에 대한 의혹에 침묵으로 의혹 증폭시카고 무마하려는 등의 비민주적인 모습으로 인한 탄핵투표시행, ‘한성대 총학생회 사태의 진상규명과 올바른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통한 23대 총학생회 탄핵총투표를 3일간(2007.06.18. ~06.20.) 진행한 결과, 총 6,545명의 재학생 중 2594명 참여, 39.63% 의 투표율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탄핵총투표 부결되였다.· 제24대 총학생회 선거는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은 탓에 2008년 3월의 보궐선거로 연기되었다.· 2008년 3월(03.25. ~03.26.) 총학생회 선거에서 총학생회장 최은영(지정 4)/부총학생회장 김광선(무역 3) 이 당선되었으며 야간총학생회 선거도 2년만에 후보 등록이 이루어져 총학생회장 권기웅(기계 3), 부총학생회장 이보람(정통 3) 이 당선되었다.· 2008년 11월 총학생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나 투표율이 30%에 그쳐 선거가 부결되었다
· 2009년 25대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 조성기(컴공 4), 부총학생회장 오예지(영문 3) 로 구성되었다.· 2010년 26대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 장호철(경영 4), 부총학생회장 김정현(산공 3)으로 구성되었다.· 2011년 제27대 총학생회장 김태성(정통 3), 부총학생회장민정(국문 3) 이다. 학생총회 개최(반값등록금 실현) 총 재학인원 10/1 해당인원 1,127명 운동장 집결, 이에 따른 학생 요구안 수용 등록금 인상액 2.5% 환급하였다.· 2012년 28대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 김기홍(정보시스템 3), 부총학생회장 이예정(역사 문화학부 4)으로 구성되었다.<부록 표 9-4> 역대 총학생회장 명단
년도 대수 총학생장 (총학생회장) 층부학생장(총부학생회장) 비고
1986 3 박성민(행정 4) 이용주(사학 4)
년도 대수 총학생장 (총학생회장) 총부학생장(총부학생회장) 비고
10. 교원
10.1 교원· 1973년 개교하면서 국문학과 고창식, 윤태영 교수가 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어 각각 교무처장과 학생처장직을 수행하고 윤태영 교수는 국문학과장을 겸직하였다.· 1974년 선학기에 김복길, 치주환 교수가 신규 임용되어 각각 가정학과 및 의상학과장, 생활미술학과장에 임용되고 연정열 시간강사를 경영학과 및 무역학과장대행으로 임명하였다.· 1975년 초에 경영학과 연정열, 불어불문학과 정기수, 무용과 김형표(예명 김진걸), 교양 신은숙 교수를 신규임용하고 처장제를 과장제로 낮추고 보직개편을 단행하여 교무과장 정기수, 학생과장 연정열, 불문학과장에 정기수, 무용학과장에 김진걸 전임강사대우를 임명하였다.· 1976년 신학기에 국문학과 이근수, 영문학과 이경식, 가정학과 장석향 교수가 신규 임용되고 이 해 6월 보직개편하여 교무과장 이경식, 학생과장 이근수 교수를 임명하였고각각 국문학과장, 영문학과장에 겸직 발령하였다. 6월 9일자로 최초 교수 임용된 윤태영 교수가 최초 퇴직하였다. 또한 4월 1일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최초 승진한 고창식 교수가 8월 31일자로 퇴직하였다.
· 1977년 가정학과장 김복길, 의상학과장에 새로 장석향 교수를 임명하고 신설된 국사학과장에 신은숙 교수를 임명한다 이 해 무용과 김경자 교수가 전임강사로 국문학과 정연길 교수가 정교수로 신규 임용된다.· 1978년 신학기에 생활미술학과 정하경, 행정학과 이창선, 의상학과 이남희, 박명희, 생활미술학과 정하경, 하인두, 교양과 김계욱 교수가, 2학기에 영문학과 허광일 교수가 신규 임용되었다.‘1979년 무용과 김숙자, 국문학과 이석주, 경영학과 최명규, 행정학과 김범주 교수가 신규 임용되었고, 국문학과장 정연길, 영문학과장 허광일, 의상학과장 이남희, 미술학과장에 하인두 교수가 임명되었다.· 1980년 3월 영문학과 고정자, 경영학과 최송길, 국문학과 김중열, 무역학과 김신, 이시환 ,사학과 지배선, 생활미술학과 깅국진 교수가 신규 임용되고 무역학과장 최명규, 무용과장 김숙자, 국문학과장 이석주, 영문학과장 고정자, 사학과장 지배선 교수를 임명하였고,이 해 8월 무역학과장을 김신 교수로 임명하였고 영문학과 박양구, 유명숙 교수가 신규임용되었다.
1981년 3월 신설된 경제학과장에 한창호, 도서관학과장에 조점환 교수가 임명되었다.1990년대 대폭적인 교수충원이 이루어졌다, 대학발전의 질적 성장을 위하여 우수한 교수진의 확보와 학문연구의 장을 조성하고자 우수교수 지원확보 계획을 수립하여 1994년 8월과 1995년 8월에 35명에 이르는 신임교원을 충원하여 전임교원의 수가 121명에 이르게 되었다.2012년 2월 대학구조개혁펑가에 대비하고자 전임교원확보율 최저 기준인 61%에 도달하기 위하여 비전임교원으로 산학협력중점교원 및 강의전담교원을 대폭적으로 충원하여 현원 241명으로 전임교원확보율 63.9%에 이르게 되었다.〈부록 표 10-1> 연도별 교원 현황
(연도말 기준)
구분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부록 표 10-2> 전임교원 임용 현황
임용년월
생활미술 정하경 동양화 재직
임용년월
사학 윤석효 한국고대사
임용년월
의류직물 김종섭 공학 재직
임용년월
1992.2.15. 1992.8.15 1993.2.21산업디자인 김응화 시각디자인
임용년월
무역 장호윤 국제경영학 재직
임용년월
국어국문 이은희 국어학 1996 2.28
임용대상자
정보전산학부 이항찬 영상정보처리 재직
임용대상자
국제대학원마약학과 조성권 마약테러 재직
임용대상자
경영학부 이동주 경영공학 재직
임용대상자
경제학과 김상봉 경제학 재직
임용대상자
지식정보학부 박희진 문헌정보학 재직
임용년월 임용대상자
10.2 연도별 퇴직교원
<부록 표 10-3> 연도별 교원퇴직 현황
퇴직연월
퇴직대상자
1992. 3. 1 미술학과 강국진 재직중사망
퇴직대상자
2003. 7.19 교양학과 조점환 재직중사망
퇴직연월 퇴직대상자
영어영문학과 고정자 정년퇴임
퇴직연월 퇴직대상자
역사문화학부 윤경로 정년퇴임
10.3 객원교수
<부록 표 10-4> 객원교수 현황 (1991. 3.~1997. 2.)
이름 학위 전공 임용당시 전·현직 대표경력
유상현 행정학박사 행정학 법제처 공보관(현)
이름 학위 전공 임용당시 전·현직 대표경력
10.4 명예교수 현황
우리 대학 전임교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교수로서 재직 중 공적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다른 교원의 모범이 되는 자로 교원인사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총장이 추대하였다.<부록 표 1O-5> 명예교수 현황
임용연월 학과(부) 이름 비고
임용연월 학과(부) 이름 비고
11. 직원
11.1 직원 현황〈부록 표 11 -1> 일반 기술직 현황
구분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부록 표 11-2> 직급별 현황
구분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부록 표 11-3> 기능직 현황
구분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11.2 직원인사
1973년 행정조직은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사무처 내 같은 사무실에서 엽무를 시작하였다. 이 해 2월 대학엽무 전담직원으로 최초 박관현 선생이 교학 업무를 담당하고 12월 김영기 선생이 서무로, 1974년 5월 허천옥 선생이 경리로 임용되었다.· 1975년 2월 직제개편으로 교무처, 학생처를 과로 낮추고 서무과장에 당시 고등학교 서무실장인 김성열 선생이 임용되었으나 1978년 8월 퇴직하면서 이후 김영기 서무과장 중심으로 운영하였다.· 1976년 4월 맹형호 선생이 학생과로 1977년 6월 최동운 선생이 교무과로 1978년 4월 김명수 선생이 도서관으로 각각 신규 임용되면서 사무실도 분리하고 업무분장도 나누게 되었다.1980년 과를 다시 처로 바꿔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로 개편하고 교무처에 교무과와 학적과를 학생처에 학생지도과와 행정괴를 사무처에 서무과와 영선과를 두었다
1981년 3월 주임제를 두어 최초로 최동운 교무주입, 장대환 학적주임, 맹형호 학생지도 주입, 박종규 행정주임, 이종수 영선주임, 김명수 사서주임으로 보직 승진하였다.1982년 2월 기획실을 신설하고 이 해 2월 23일 이승록 사무처장, 손영일 기획실장을 외부에서 영입하였다. 기획실에 기획과와 예산관리괴를 두어 기획주임으로 정재문 선생을 신규 임용하였다.· 1985년 2월 서무과를 총무과로 명칭 변경하였고 김영기 서무과장을 중학교 서무과장으로 중학교 유무열 서무과장을 총무과장으로 임용하였다.1985년 6월 기획실을 폐지하고 사무처로 기획괴를편입하고 기획과장에 유무열 총무과장을 겸직 발령하였다.
· 1987년 11월 홍순태 학장 재임 시 총무과장 외 주임제로 운영되던 부서에 주임을 과장으로 보직 승진하였다. 교무과장 최동운, 학적과장 정대홍, 교학과장 맹형호, 학생과장공대원, 장학과장 박종규, 서무과장 유재국, 경리과장 박종욱, 사서과장 김명수를 각각 발령하였다.1990년 5월 유무열 총무과장이 총무처장으로 자체 승진하나 입시부정사건으로 9월 중도 하차하였다.· 1995년 12월에 신입직원 충원을 10명, 1996년 6월에 2명, 8월에 4명 등 대폭 임용하였다.· 1997년 7월 1일 법인과장 강홍빈을 법인사무국장으로, 학생과장 소순무를 학생부처장으로, 정보자료과장 김명수를 도서관 부관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기능직 중 우수 근무자를 기술직으로 직종 변경하였다.· 2002년 7월 유재국 연구지원과장이 2003년 2월 최동운 도서관 부관장이 2005년 6월 김석기 시설지원팀 팀원이 각각 명예퇴직하였다.· 2004년 1월 팀제로 전환하면서 종전 과 명칭을 팀으로 변경하고 부속기관이던 전자계산소를 연구기획처에편입하여 기획정보처로 명칭 변경하는 등 17개 괴를 팀으로 개편하여 교수지원팀에 김태식, 학사지원팀에 노성수, 기획예산팀에 정영만, 심사평가팀에 장영우, 정보화팀에 정영만, 학생지원팀에 조승호, 취업정보팀에 박철우, 총무인사팀에 전장배, 재무회계팀에 정대홍, 시설지원팀에 정철환, 입학정보팀에 이성민, 홍보교류팀에 맹형호, 대학원교학팀에 조윤철, 학술자료팀에 박인호, 학술정보팀에 임동혁, 산학협력팀에 유부상 과장을 각각 팀장으로 발령하였다.
2006년 6월 맹형호 총무처부처장, 2007년 2월 공대원 법인사무국장, 2010년 6월 정대홍 법인사무국장이 각각 정년퇴직하였다.·2007년 7월 정철환 취업정보팀장, 2008년 8월 김태식 학술자료팀장, 2012년 9월 노성수 대학원교학팀장이 각각 명예퇴직하였다.〈부록 표 11-4> 직원 임용, 승진 및 퇴직 현황
신규임용일 기능직 임시직 5급을 5급갑 4급을 4급갑 3급을 3급갑 2급을 2급갑
신규임용일 기능직 임시직
맹형호 정년
신규임용일 기능직 임시직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고석중 해임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김용만 의원면직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이민섭 의원면직
신규임용일 기능직 수습
12.학생
12.1 학생 현황〈부록 표 12-1>학과(부)별 학생정원 현황
구분
1983 520
구분
구분
구분
구분
12.2 졸업생
1977년 2월 25일 제1회 학위수여식을 가지고 %명의 여학사를 배출하였고 국문과 조인자 등 9명이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78년 2월 25일 제2회 학위수여식에 82명의 여학사가 탄생하였고 최우수상은 국문과 신경숙이 수상하였다. 이 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남학생을 선입생으로 맞게 되였다.1979년 2월 24일 제3회 학위수여식에 76명의 여학사에 최우수상은 영문과 이향순이, 1980년 2월 25일 101명의 여학사를, 제5회 학위수여식은 1981년 2월 25일 체육관에서 86명의 여학사와 1명의 남학사를 배출하고 의상학과 박은임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 2월 20일 제6회 학위수여식부터 남녀학사가 균등하게 배출되었다., 이 해 160명의 학사학위자 중 남학생이 77명 여학생이 83명을 차지하였고 최우수상은 생활미술학과 이명아가 수상하였다.· 1992년에는 65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1982년 졸업생 수 160명에 비교해보면 4배 이상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제1회 졸업생이 배출된 1977년 이래 2002학년도 전기학위수여식까지 배출된 졸업생의 수는 총 13,349명이다. 학과별로는 경영학과 졸업생이 1,598명으로 가장 많았고, 무역학과 1,498명, 국어국문학과 1,109명의 순으로 졸업생이 많았다.
〈부록 표 12-2> 졸업생 현황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11회 12회 13회
산디 528
14회 15회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21회 22회 23회 24회 25회 26회
산디 32 22 36 27 32 33 65 65 47 80 89
27 회 28회 29회 30 회 31회 32회 33회 34회 35회 36회
애니제품 24 26 12 17 32 33 20 27 46
12.3 학생활동
〈부록 표 12-3> 대동제 현황
구분 축제명 기간 비고
12회 낙산대동제 1987 5.20. ~ 5.22
구분 축제명 기간 비고
· 1987년 6월 항쟁의 여파로 정부에서 각 대학에 조기 방학을 지시하여 우리대학도 이에 호응하고 6월 17일 조기 방학 조치가 학장 공고문을 통해 단행되었다.
· 1988년 4월 13일 학원자치권쟁취투쟁위원회(위원장 총학생회장 미술과 조남준)가 투쟁전개하여 전면 수업을 거부하고, 시험 연기를 결의하여 12일 동안 학장실, 경리과, 교무처를 점거하여 농성을 벌였다 또한 학교 측과 10개 사항 합의로 4.29 시위 종결 합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신입생장학금은 각 과에서 선지급한 2명 외에 6명에게 30만원을 지급하였다.- 교수는 공개채용 하되 문제된 교수 건은 해당학과에서 처리하였다.등록금 납부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3 회에 걸쳐 분할 납부하였다.- 우촌관 부실공사의 문제는 시공자, 설치자, 감리사가 학생대표 입회하에 해명하였다. 또한 방음장치, 난방장치, 환기시설을 설치하였다.- 1985년 미해결 13개 조항에 있어 선축 건물의 1989년 3월 이전 착공 등 6가지 사항을 시행하였다.- 신설학과에 대한 대책으로 교과과정은 교과과정심의위원회에서 결정 발표하였다. 또한 임시 학회실을 마련하되 2학기부터는 전용강의실을 배정하여 학회실로 사용하였다‘- 구속청년학생협의회 요구사항에 있어서 특별기구를 구성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학장의 공개사과는 특별담화를 통해 유감을 표시하였다.- 언론자유의 보장에 있어 사전자료검열과 지도위원회는 학칙 개정 시 폐지한다. 또한 방송국 예산은 1989년부터 등록금의 0.3%를 배정하였다.
- 보직교수와 학생대표와의 간담회를 구성하여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5월 2일부터 정상수업에 임하였다.·1988년 5월 25일 전방입소에 대한 범한성토론회 및 거부투쟁 촉구대회를 갖고, 학생 14명이 전방입소를 거부하고 전방입소 철폐투쟁하였다. .· 1988년 6월 7일 한성대학교 구속청년학생 협의회가 학교측과 타결점을 찾지 못해 학장실을 점거하였고 6월 24일 한성대학교 구속청년학생 협의회가 학교 측과 5개 사항을 합의하고 농성을 종결하였다.합의 사항은다음과같다.- 부당 징계 등에 대한 학교 측의 공식사과를 학보와 담화문을 통해 게시할 것- 학원의 대리사찰 등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 징계 철회 및 피해보상 측면에서 구속청년학생 협의회에게 사무실 제공 등의 혜택을 부여할것- 구속 학생의 조기 석방과 수배 해제를 위해 노력할 것- 시국 관련 대상자는 집행유예 이상으로 할 것
· 1988년 6월 27일 ~28일 총여학생회 주최로 팔당 의화정에서 여학생 하계수련회가 개최되었고, 11월 2일 ~14일 한성해방제가 개최되었다.· 1989년 1월 10일 등록금 동결투쟁위원회(위원장 김승환 총학생회장)의 학장실 점거가 장기화됨에 따라 일단락하고 한성발전추진위원회 구성으로 전환하여 학교 측에 5개항 공개질의서를 채택하였다.공개질의서 주요 내용은 학생대표의 학사운영 참여 제도적 보장, 재단전입금 확충, 국고보조금 확대를 위한 공동 노력, 신입생 입흐땀을 포함한 신입·재학생 등록금 통결, 1985~1989년 예·결산의 실질적 공개 등이다. 이 해 2월 3일 한성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등록금동결투쟁을 일단락 지였다1988년 3월 10일 총학생회와 인권복지위원회가 학장 및 사무처, 학생처를 대상으로 셔틀버스 승차, 우촌관 간이매점 설치, 구내식당의 직영화 및 서점의 학생 운영, 팔탕수양관(의화장)의 제반 시설 구비, 자치기구 전화의 국선화 및 학과사무실의 송·수신 기능, 대강당 보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고문을 전달하였다.1988년 4월 27일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차례로 제압하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 1988년 4월 28일 학보사, 방송국, 교지편집위원회로 구성된 언론출판협의회 발대식을 갖고 신임회장에 김길호(한성대학보사편집국장/경영학과 3) 군을 선출하였다.· 1988년 5월 2일 ~6일 총대의원회에서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중간감시를 실시하였다. 6월 2일 동아리연합회가 진리관 뒤 가건물로의 입방식을 가졌으며, 9월 29일 민주총학 건설위원회가 총학생회에 사퇴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1988년 10월 9일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축구부가 16강 진출하고, 10월 16일 ~22일에 개최된 체육부장관배 전국학생 종별 탁구대회에서 종합우승을 하였다. 또한 11월 10일 프로팀, 실업팀, 대학팀이 참가하는 한국챔피언컵에서 축구부가 8강에 진출하였다1990년 5월 24일 제15회 닥산가요제가 방송국 주최로 민주광장에서 개최되었고, 27일 제7회 한성대학교 동문회장배 쟁탈 악산농구대회가 한성대학교 아마추어 농구부 주최, 대한농구협회연맹후원으로 개최되었다.· 1991년 4월 8일~10일 제1기 병영학교가 열려 좌담회, 전시회 등이 진행되었고 4월 19일 ‘해방의 불바람으로 다시 서는 4· 19 제2차 국민대회출정결의식’이 민주광장에서 열렸다20일 제8대 총학생회는 발대식을 갖고, 24일 ‘민중승리 91년을 향한 진군식 및 민중운동 탄압 분쇄를 위한 5월 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1991년 5월 3일 1991년도 상반기 대의원 총회가 정족 수 마달로 무산된다.6월 7일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가 발족식을 가졌으며, 위원장에 최종금 부총학생회장(경제 ’88)을 선출하였다.1991년 8월 29일 총학생회장실에서 중앙운영위원회가 열려, 제2차 공개질의서에 대한학교 측의 답변서에 대한 검토 작업이 수행되었고 구체적인 질의서 구성 등이 상정되었고, 9월 3일 중앙운영위원을 비롯한 약 5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처장실과 학생처를 점거했으나 교학간담회 성사와 동시에 해제하였다.1991년 9월 26일 ~30일 ‘진아랑’(경제학과, 문헌정보학과 농활팀)팀이 전남 진도군에서 기을농촌활동을 실시하였고, 10월 1일 ~2일 총학생회 학술부 주최로 제7회 학술제가 열려 백기완 씨가 ‘북방정책의 본질과 한반도 통일운동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1991년 11월 2일 ~14일 전국 남녀 추계 대학 축구 연맹전에서 축구부가 창단 6년 만에 우승하였다.1992년 3월 20일 전체 학생 비상총회에서 등록금 투쟁 논의가 진행되었고, 3월 23일 총학생회가 ‘공개질의서’를 학교 탕국에 제출하였다. 공개질의서 주요 내용은 1) 과학적 등록금 책정을 위한 91 ~92 자금운용 예산서 및 결산서 공개, 2) 1990년도 부정입흐L금 32 억 8천 만원 교비 환수, 3) ‘부정입학금 공동관리위원회’(교수·직원·학생 대표로 구성) 및 ‘등록금조절위원회’(대학본부 2인, 평교수 1인, 직원 1인, 학생대표 4인으로 구성) 및 ‘등록금조절위원회’(대학본부 2인, 평교수 1인, 직원 1인, 학생대표 4인으로 구성) 건설, 4) 3월 18일 한성대학장 명의 학생징계조치 경고 철회, 5) 총학생회로 낸 학생등록금 인정 등이었다. 이 요구에 대하여 학교당국은 거부 입장을 표명하였다. 학교당국은 자금운용 예·결산서는 3월 19일 교학간담회에서 이미 공개하였으며, 부정입학금은 신축 건물비로 사용되어야 하며, 등록금조절위원회는 학생측이 등록금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4월 2일 등록금 투쟁 승리를 위한 한성인 실천대회가 홍성곤(경제 ’89) 부총학생회장의 사회로 민주광장에서 개최되었고, 9일 제9대 총학생회 해오름식에서 김경식(산업공학 ’89) 총학생회장과 이기준(영어영문 ’91) 군의 삭발식이 거행되었다.
4월 22일 등록금 문제는 8개항으로 아래와 같이 합의하였다.합의결과 주요 내용은 1) 1992년 예결산자료는 5월 20일 전후로 교육부에 보고한 뒤내용 공개 범위를 교학간담회에서 결정, 2) 등록금 문제는 교학간담회에서 논의, 3) 총학생회로 납부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4월 20일까지 학교로 납부하고 차액 부분에 대해서는 1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둠, 4) 국고보조금, 한성발전기금조성 등 교육재정확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 5) 각종 연구위원회의 장단기 발전연구 진행 결과는 매년 1학기 내에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여 교내 구성원 모두에게 공개하고 그 요약문을 한성대신문, 한성대 소식에 게재, 6) 학생들의 건설적인 의견은 전폭 수용, 7) 32 억 8천 만원은 건물신·증축 시 충당 단, 신·증축은 서울특별시 도시계획대상규획지에편입 승인이 난 뒤에야 가능 8) 교육 내용의 질적 개선을 위해 학교에서 계속 노력, 9) 교육여건 개선 사업이 계속 진행 중에 있으며, 학생들의 건설적인 건의는 적극 수용한다는 젓이다,
1993년 3월 11일 총학생회 확대운영위원회에서 3월 26일까지 등록금 납부 연기를 결의하였다.· 1993년 12월 7일 내부 진통을 겪었던 신문사 사태가 마무리되어 3월 15일자로 198호가 발행된 지 9개월 만에 199호가 발행되었다.· 1995년 1월 20일 학교공간배치위원회에서 과학관 증축으로 인한 공간배치가 확정됨으로써 의류직물학과 실습실이 축소되는 데 대해 의류직물학과 학생들이 강력히 반발하였다
· 1995년 2월 10일 ~12일 강원도 양양에서 겨울농촌활동이 열리고, 15일 ~21일 신입생 예비학교가 각 과별로 이루어져 신입생들이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1995년 5월 11일 ~13일 총학생회 주최로 강원도 양양에서 봄 농촌활동이 실시되고, 17일~18일 총여학생회 주최로 ‘닥산여성 한마당’이 실시되었다.1995년 5월 31일 ~6월 2일 2학기 등록금 유보와 등록금 조절위원회의 결성 등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9월 23일까지 등록금 납부 유보를 결의하였다.· 1995년 10월 7일 ~13일 제77회 전국체전에서 탁구부가 대학부 우승을 차지하였고, 30일 ‘공안정국타개와 자주적 학생회강화’를 기조로 낙산 대동문화체전을 개최하였다.1997년 6월 S 일 ‘자본의 교육장악 분쇄와 자치학원 건설을 향한 한성인 총궐기 대회’가 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광장에서 개최되었다.· 1997년 9월 13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한총련혁신을 위한 총투표’ 결과 한총련 탈퇴로 결정되었다.· 1997년 11월 20일 ‘한성사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투쟁선포식’이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28일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수업 거부 결의와 교육부감사 결과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가 4백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정문 앞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는 선봉대와의 몸씨움 중 정보전산학부 1학년학생이 전경의 최루탄 총 개머리판에 맞아 얼굴 눈 주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12월 3일 ‘수업·시험 거부 결의를 위한 총투표’를 실시하여 4일부터 수업·시험 거부에 돌입하였다
1997년 12월 6일 ‘한성사태 진상규명과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투쟁대회’가 한성사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종묘공원에서 개최되었다.· 1998년 5월 27일 인문대와 이공대, 문헌정보학과 주최로 ‘민주총장 선출과 교육환경 개선을 횡¥한 한성인 투쟁대회’가 열렸다1998년 5월 27일 낙산배 아마추어 농구 대회가 우리대학 농구 동아리 UP의 주최로 체육관에서 열리고, 6월 2일 소강당에서 중앙노래패 ‘들불’이 제20회 정기공연을 가졌다· 1998년 9월 22일 방송국 HBS 주최로 。pen Studio 가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1999년 4월 14일 ‘대학간·학문간·대학인간 위계서열화 반대, 교육의 공공성 쟁취, 대학운영위원회 건설’을 모토로 ‘교육투쟁 승리를 위한 한성인 행동의 날이 열렸고, 5월10일 ~14일 총여학생회 주최로 ‘닥산 여학우’ 한마당이 열렸다
· 1999년 5월 17일 현대사회연구회 주최로 5' 18 광주 민중항쟁 토론회가 강의동에서 열렸다·2001년 3월 교수회관 설립계획안을 두고 불협회음이 생겨 예술대학 학생회는 세종문화회관 뒤편까지 가두집회를 가졌다2001년 S월 30일 무용학과 학생회와 의상학과 학생회는 수엽 거부를 위한 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과반수이상의 찬성으로 수업 거부에 돌입하였다.·2001년 9월 예술대학 시위에서 재물 손괴로 구속 기소된 이성재(무용 ’97) 예술대 대표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 되었다. 재판부는 또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장동극(의상 3), 심원섭(의상 3), 오승렬(의상 ’99) 등에게도 각각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였다. 학교 측은 9월 11일자 총장 명의의 공고를 통해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 제 12조 1항, 2항에 의거 이성재(무용 ’97), 최재헌(무용 2) 의 정계를 해제하였다.·2004년 3월 24일 총학생회 총장실 및 경리과 점거, 경리과장인 유제한 팀장의 교비 29 억 횡령에 따른 해당 조치와 부당한 등록금 인상 5%를 환불하라는 내용으로 4월 22일까지 총 29일간 총장실을 점거하였다. 이후 2학기 등록금을 단과대학별로 2~3% 인하하는조건으로 점거 농성을 끝냈다
·2005년 9월 13일 총학생회장은 정이사체제 전환 시 구성 및 일정에 대한 3주체 합의와 정이사 구성에 구재단 관계자 취임에 반대하는 비리재단복귀반대’ 투쟁서를 통해 단식진행 단식기간 동안 비리재단복귀반대 서명 2,479명을 전달하였고, 구성원들의 합의 없이는 정이사체제 전환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결괴를 받고 9월 28일 16일간의 단식을 끝냈다. 2007년 제 23대 총학생회장 한현우(산공 4), 부총학생회장 장형규(국문 4)는 학교측과 등록금 인상율 7.1%로 합의하였다. 등록금조정위원회를 앞두고 학교가 제공하는 고액의 해외연수에 참가하고, 학과학생과 회장단들을 속이고 다른 목적의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등의 의혹을 침묵으로 증폭시키고 대응없이 무마하려는 등의 비민주적인 모습으로 인한 탄핵투표를 시행하였다. ‘한성대 총학생회 사태의 진상규명과 올바른 해결을 위한 대책 위원회’를 통한 23대 총학생회 탄핵총투표 3일간(6월 18일~6월 20일) 진행 결과, 총 6,545명의 재학생 중 2,594명 참여하여 39.63%의 투표율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탄핵 총 투표가부결되었다.2008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학생요구안 실현 및 29 억 적립금 환수, 08년 추경예산의합리적편성을 위한 한성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1,568명의 서명지와 학생요구안을 총장에게 전달하며 2009년 등록금 동결을 이루였다
·2010년 2월 12일 총학생회는 재단의 대학보직교수 인사명령과 관련월권행위를 철회하라는 내용으로 총학생회 성명서를 게시하고 보직교수 인사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2011년 9월 22일 김태성(정통 3) 총학생회장 겸 학생총회 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등록금 환급 및 인하, 적립금 공개, 등록금심의위워회 수정, 총회 요구안을 놓고 학생총회 개최한다. 김민정(국문3), 강범석(사과대 학생회장), 한영준(총대의장)을 비롯한 총 1,311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총 재학 인원 10/1 해당 인원 1,127명 운동장에 집결하여 집회를 개최한 결과 이에 따른 학생요구안 수용하여 등록금 인상액 2.5% 전액 환급받았다.2012년 4월 14일 교내 폭력사건이 낙산의 메아리를 통해 신고 되어 사건조사결과 무용학과 4학년 학생들이 MT 및 무용실습간 3,4학년 여학생(1 4명)이 주축이 돼 같은 한국무용 전공 2학년 여학생 (9명)을 대상으로 폭행/상해/단체 열차려를 실시하였음이 밝혀졌다 이후 3차에 걸친 징계위원회 회의결과 직접적인 가해학생인 한송이(한국무용 4년) 무기정학, 장하림(한국무용 3년) 외 가담자 13명이 유기정학의 정계 처분을 내렸다.2012년 6월 15일 케이블TV인 JTBC에서 우리대학 재단과 교수들의 연구비 시용에 관련된 비리 내용이 보도되었다. 이에 총학생회는 학생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하였고, 9월 2일 교비횡령 재단 비리금의 환수를 촉구하는 8 억 7천만원의 재단 비리금의 환수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으며, 학교 각 건물에 대자보를 게시하여 비대위 성명서를 이사들에게 직접 전달해드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후 8억 7천만 원의 환수와 재정 투명을 약속하고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12.4 해외봉사단 활동해외 봉사단 파견은 21세기에 적합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섬화된 리더십 교육을 통해 활발한 상호교류와 네트워크 형성을 돕고 학생들이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위한 자기관리 및 대인관계, 리더십 역량을 쌓아 목표의식 및 미래에 대한 비전설정을 세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2006년 하계방학 때 중국 연길시 조선족 학교와 동계방학 때 베트남 하노이 외국어 대학에 한국어 교육 봉사를 시작하였다.〈부록 표 12-4> 연도별 해외봉사단 파견국가 및 파견인원
명칭 파견기간 파견국가 파견인원
명칭 파견기간 파견국가 파견인원
13. 재정
13.1 재학생 1인당 교육비〈부록 표 13-1> 연도별 재학생 1인당 교육비 현황
2005 6,565 43,393,109 6,610
13.2 세입 중 학생등록금 비율
〈부록 표 13-2> 연도별 세입 중 학생등록금 비율
(단위 : 천원)
13.3 세출 중 인건비 비율
〈부록 표 13-3> 연도별 세출 중 인건비 비율
(단위 : 천원)
14. 위원회
14.1 위원회 운영1982년 4월 강병규 학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학발전협의회를구성하여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재단과의 협조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연구소 설립추친위원회를구성하여 사회과학연구소 설립준비위원으로 행정학과 이창신 교수, 경영학과 김길평 교수, 민족사상연구소 설립준비위원에 국문학과 정연길 교수, 김중열 교수, 전통예술연구소 설립준비위원에 미술학과 하인두 교수, 무용과 김숙자 교수, 학생생활연구소준비위원에 경영학과 최명규 교수, 교직과 조점환 교수를 위촉하여 4개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여 마무리 하였다.한편 교과과정개편추진위원회를구성하여 위원장에 정하경 교무처장이, 위원으로 각 학과장을 위촉하였다. 이 해 9월 대학학사개혁위원회를구성하여 위원장에 정하경 교무처장을 위원에 김계욱 학생처장, 이승록 사무처장, 손영일 기획실장, 연정열 도서관장, 정연선 사회산업연구소장,하인두 전통예술연구소장, 정연길 민족사상연구소장, 최명규 학생생활연구소장을 위촉하였고 대학문화육성심의위원회에 학술분과, 예술분과, 출판분과, 사회교육분과를 두어 각 위원을 위촉하였다.
· 1982년 고시반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도교수에 행정학과장 김범주 교수를, 지도위원으로 정하경 교무처장, 김계욱 학생처장, 이승록 사무처장, 연정열 도서관장을 위촉하여 고시준비를 히는 학생들의 지원을 도모하였다.1983년 4월 학생복지관(현 학생회관) 신축을 위하여 대학건설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미술과 하인두 교수를, 위원으로 손영일 기획실장, 행정학과 정연선, 미술과 정하경, 경영학과 최명규, 행정학과 김범주, 사학과 윤경로, 행정학과 김길평 교수를 위촉하였다. 이 해 11월 학생복지관신축공사 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강병규 학장을 위원에 이창성 법인이사, 이용남 교무처장, 최명규 학생처장, 이승록 사무처장, 손영일 기획실장을 간사에 김영기 서무과장을 위촉하였다.1984년 2월 취업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경제학과 한창호 교수를, 부위원장에 무역학과 강석중 교수를, 위원에 학생처장 최명규, 사무처장 이승록을 위촉하였고, 4월 추가로 이용남 교무처장, 강병식 기획실장, 최송길 경영학과장, 김범주 행정학과장, 조점환 교양과장, 신은숙 교직과장을 위촉하였고, 6월 한창호 위원장의 사임으로 강석중 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하였다. 이 해 9월 신임 강은석 학생처장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취엽엽무가 학생처 엽무로 자리잡게 되었다. 1985년 3월 검우백 선생을 취업담당으로 발령하였다.
· 1984년 3월 복지관건축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최명규 사무처장을 위원으로 기획실장 강병식, 학생처장 김용석, 책임위원으로 경영학과 김길평 교수를 위촉하였다.· 1984년 6월 교사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미술학과 하인두, 위원으로 김용석 교무처장, 강은석 학생처장, 최명규 사무처장j 김용정 기획실장, 연정열 도서관장, 이동섭 인문학부장, 한창호 사회과학부장, 정하경 예술학부장 선은숙 교양학부장, 고정자, 김범주, 윤경로, 강병식 교수를 위촉하였다.· 1985년 1월 학보편집지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한진만 학생처장, 위원으로 이종수 학보사주간, 영문학과 김용석, 교직과 김경배, 경영학과 김원중 교수로 위촉하였고 이 해 10월 교지편집지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김경배 학생처장, 영문학과 김용석, 행정학과 이종수, 국문학과 원형갑 교수를 위촉하였다.· 1985년 8월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여 정보전산연구원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장은 이우범 정보전산연구원장을, 위원으로 김길평 총무처장, 최명규 교무처장, 김경배 학생처장, 경영학과 최송길, 김원중 교수를 위촉하였다.· 1985년 10월 고시반지도위원회를 개편하여 지도교수에 행정학과장 황진수, 위원으로 최명규 교무처장, 김경배 학생처장, 김길평 총무처장, 경제학과 허창재, 무역학과 강석중, 경영학과 김원중, 행정학과 이종수, 영문학과 김용석 교수를 위촉하였다.
·1985년 12월 축구부 창단과 함께 체육진흥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홍순태 학장을 부위원장에 김경배 학생처장을, 위원에 최명규 교무처장, 김길펑 사무처장, 강은석 체육부장, 검계욱, 김경자, 강병식 교수를 위촉하였고, 축구부 특기자 전형섬사위원회에 위원장에 김경배 학생처장을, 김계욱, 강은석 체육과 교수, 정은식 축구부 코치, 외부인사로 백금봉 강사가 위원으로 위촉되어 축구부 신입생을 선발하였다.·2002년 4월 개교 30주년을 맞이하여 30년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역사문화학부 윤석효 교수를, 위원에 한국어문학부 정후수 교수, 신경숙 교수, 역사문화학부 박준철 교수, 지식정보학부 조인숙 교수, 전장배 기획과장, 이성민 정보자료과장, 우승식 선생이 참여하여 『한성대학교 30년사』를 발간하였다.·2004년 2월 유제한 경리과장의 공금 횡령으로 3월 지금관리 운영에 대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박명환을 위원에 박영범, 장호윤, 조헤경, 민태욱 교수를 위촉하여 제도 개선을 하였다.·2009년 3월 한성경쟁력강화위원회를 발족하여 우리 대학의 경쟁력강회를 위한 주요 정책에 관한 의견 수렴과 반영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위원장에 행정학과 권해수 교수, 위원에 김정우, 신민철, 노재확, 윤경준, 민태욱, 백성준, 문창, 한혜련, 조세홍, 오종택, 김귀옥 교수로 구성하였다.
·2010년 1월 교육경쟁력선도위원회를 발족하여 우리 대학 교육과정 구성의 내부적 실속을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선도적이며 차별화된 특성화 프로그램의 구축 및 대외적 경쟁력 강화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위원장에 한국어문학부 고창수 교수, 위원에 김정우, 주영혁, 최강화, 노재확, 강상욱 교수, 정영만, 전장배, 조승호, 장영우, 오진형, 유부상 팀장을 위촉하였다.·2012년 8월 21세기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주택 총장을 위원장으로 이종훈, 김인자, 계경문, 최정섭, 문동후 법인이사, 김지학 법인감사, 강신일 교무처장, 이창원 기획협력처장, 박준철 총무처장, 명광주 학생지원처장, 이민석 입학처장, 황혜성 대학원장, 최기흥 교수협의회회장, 조현호 직원노동조합지부장, 전장매 교수지원팀장을 위원으로 위촉하여 우리 대학 중장기 발전방안과 종합관 건축 관련 제반 사항을 검토하였다. 한편 건축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강신일 교무처장을 위원장으로 이경일, 김동균, 황기연 법인이사, 김용국 법인감사, 이창원 기획협력처장, 박준철 총무처장, 명광주 학생지원처장, 이상한, 정호섭, 민태욱, 조자연 교수를 위원으로 위촉하여 종합관 건립을 추진하였다.14.2 특별위원회
〈부록 표 14-1> 특별위원회 현황
연월 위원회명 위원장 비고
연월 위원회명 위원장 비고
2004. 6.
〈부록 표 14-2> 자체평가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비고
〈부록 표 14-3> 대학장기발전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부록 표 14-4> 21세기발전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부록 표 14-5> 교육개혁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부록 표 14-6> 학생정원조정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 원
〈부록 표 14-7> 한성경쟁력강화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부록 표 14-8> 교육경쟁력선도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부록 표 14-9> 미래위원회
연도 위원장 위원
14.3 상설위원회
14.3.1 교무위원회· 교무 전반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무위원회는 위원장 총장, 부위원장 교무처장이 되며 단과대학학장 - 대학원장·각 처장 학술정보관장·전자계산소장 및 총장이 우리 대학 교원 중에서 위촉하는 5 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10> 연도별 쿄무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연도 위원장 위원
14.3.2 교원인시위원회
교원 (총장 제외)의 인사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원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은 교무처장, 위원은 기획협력처장, 대학원장, 단과대학 학장과 교무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2 인의 부교수 이상의 교원으로 조직하였다.〈부록 표 14-11> 연도별 교원인사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년도 위원장 위원 비고
2005
14.3.3 교원업적평가위원회
· 교원업적을 평가관리함에 있어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교원엽적평가위원회를 두며, 교무처장을 위원장으로, 기획협력처장을 부위원장으로 하고, 각 단과대학장을 포함하는15 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부교수 이상의 교원 중에서 각 단과대학별로 적정인원을 교무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였다.
〈부록 표 14-12> 연도별 교원업적평가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 원
14.3.4 교원연구비운영위원회
〈부록 표 14-13> 연도별 교원연구비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 원
14.3.5 교육과정심의위원회
· 교육과정을 편성하기 위해 설치한 교육과정심의위원회의 위원회의 위원장은 교무처장이,위원회의 위원은 단과대학 학장, 각 처장, 교양과정 주임교수, 교직과정 주임교수와 교무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약간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
〈부록 표 14-14> 연도별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 원
14.3.6 강의평기위원회
강의평가 전반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설치한 강의평가위원회의 위원장은 교무처장이 되며 각 단과대학에서 교무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15 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15> 연도별 강의평가연구위원회 위원 명단
14.3.7 규정류심의위원회
〈부록 표 14-16> 연도별 규정류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8 기획위원회
· 우리 대학의 발전을 지향하는 종합적 계획을 다루는 기획위원회는 기획협력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단과대학 학장, 대학원 교학부장을 당연직으로, 위원장의 제청으로 총장이 위촉하는 약간 명의 임명직 위원을 둘 수 있다
〈부록 표 14-17> 연도별 기획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14.3.9 홍보위원회
·대내외 홍보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하여 설치된 홍보위원회는 기획협력처장을 위원장으로, 위원은 우리 대학의 교직원 중에서 기획협력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1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18> 연도별 홍보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14.3.10 연도별 예·결산 자문위원회
·종전 정관에 의하여 설치하게 되어 었던 예·결산 자문위원회는 그 기능이 대학평의원회로 이관함에 따라 2006년도에 위원회가 폐지된다.〈부록 표 14-19> 연도별 예·결산 자문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비고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비고
〈부록 표 14-20> 연도별 국제교류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비고
14.3.12 학생지도위원회
· 학칙에 의거하여 학생지도를 위하여 설치한 학생지도위원회는 총장이 위원장이 되며, 학생지원처장이 부위원장이 되고, 위원으로는 각 처장 단과대 학장, 각 학과(학부)장으로 구성하며, 학생지원처장은 분과위원회 위원장이 되며, 학생지원팀장이 그 실무를 담당하였다.· 분과위원회는 과외활동지도위원회, 상벌분과위원회, 봉사활동 지도위원회를 각각 두었다.〈부록 표 14-21> 연도별 학생지도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연도 위원장 위원
14.3.13 장학위원회
· 장학생 선발 및 지급에 관한 사항을 섬의하기 위해 설치한 장학위원회는 총장이 위원장을 학생지원처장이 부위원장이 되고 위원으로는 각 처장, 단과대학 학장, 각 학부(과)장으로구성하였다.〈부록 표 14-22> 연도별 장학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4 연도별 취업대책(지도)위원회
학생지원처장을 위원장으로 단과대학 학장 및 약간의 임명직 위원으로 위촉하여 취업 대책 또는 취업지도란 명칭으로 운영되던 위원회를 취업기획위원회로 격상하여 총장, 각 처장, 단과대학장, 대학원장, 산학협력단장으로 구성하여, 총장이 위원장이 되며, 학생지원처장이 부위원장이 되어 취업률 제고에 관한 사항을 기획하였다.취업률 제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취업촉진실무위원회를 두어 학생지원처장이 위원장이 되고 각 학부(과)장/ 전공주임교수, 대학원 교학부장, 산학협력단 대표교수, 관련 행정부서 팀장, 학부동문회 대표, 대학원 총동문회 대표, 석·박사 원우회 대표로 구성하였다.
〈부록 표 14-23> 연도별 취업대책(지도)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5 직원인사위원회
· 직원인사를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한 직원인사위원회는 총무처장을 위원장으로 총장이 추천하는 3인, 직원노동조합에서 추천하는 3인 등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24> 연도별 직원인사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6 지금관리위원회
· 교비의 유통자금 및 기금을 운영하는 자금관리위원회는 총무처장, 기획협력처장, 기획전략팀장, 재무회계팀장, 총장이 추천한 3인 이내의 교원을 포함한 7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위원 중에 호선하였다.〈부록 표 14-25> 연도별 자금관리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7 시설공간위원회
· 시설과 공간에 대한 계획·활용 및 배치에 대한 사항을 결정하기 위하여 설치된 시설공간위원회는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처장, 대학원장, 학술정보관장, 전자계산소장과 총장이 임명하는 약간 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 시설공간위원회에 소위원회로 공간조정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하여 공간조정소위원회를 설치하며, 총무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은 펼요에 따라 전임교원, 직원, 학생대표로 총무처장이 위촉하였다.〈부록 표 14-26> 연도별 시설공간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8 산학협력단운영위원회
산학협력단의 운영을 위하여 산학협력단 운영위원회를 두며, 위원장은 산학협력단장이 되고 당연직위원은 교무처장, 기획협력처장, 총무처장, 산학협력부단장, 산학사업추진 본부장으로 하며, 임명직 위원은 교직원 중에서 9인 이내로 총장이 임명하였다.〈부록 표 14-27> 연도별 산학협력단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4.3.19 입학전형관리위원회
입학전형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대학입학전형관리위원회를 두며, 입학처장을 위원장으로, 단과대학장을 당연직 위원으로 하고 입학처장이 제청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4인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28> 연도별 입학전형관리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14.3.20 입학공정관리대책위원회
입학전형공정관리 빛 사전 사후 입시감사를 위해 설치된 대책위원회는 입학처장의 제청으로 총장이 위촉하는 15인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총장이 위촉하였다.〈부록 표 14-29> 연도별 입학공정관리대책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14.3.21 대학원위원회
대학원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대학원위원회를 두며, 위원회 위원은 대학원장과 학장, 특수대학원장, 교학부장, 교무처장, 기획협력처장, 총무처장으로 구성하되, 필요한 경우 부교수 이상의 교수 중에서 대학원장이 제청하고 총장이 임명하는 임명직 위원을 둘 수 있으며, 대학원장을 위원장으로 하였다.〈부록 표 14-30> 연도별 대학원위원회 위원 명단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설치연도 위원장 위원
14.3.22 학술정보관 운영위원회
학술정보관장의 자문기관으로 정책수립, 장서의 발전, 자료의 선택 및 구입, 봉사의 향상, 운영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하여 학술정보관운영위원회 두며, 위원장은 학술정보관장이 하며, 위원은 당연직 위원(각 처장, 부관장) 및 학솔정보관장의 추천에 의하여 총장이 위촉하는 약간 명의 위원으로 하였다.〈부록 표 14-31>연도별 학술정보관(도서관)운영위원회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연도 위원장 위원
2001 고정자
연도 위원장 위원
14.3.23 전산운영위원회
전자계산소의 효율적인 관리운영을 위하여 전자계산소운영위원회를 두며, 위원회는 전자계산소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총장이 임명하는 약간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였다.〈부록 표 14-32> 연도별 전산운영위원회 위원 명단
연도 위원장 위원
15. 시설
15.1 설치 현황1945년 9월 현재 위치에 있는 경성여자기예학교를인수(대지 2,290평, 건평 378평)하여 이 해 10월 5일 한성고등여학교를 개교하였다.· 1958년 12월 교세확장에 힘써 툴산인 낙산에 터를 넓혀 15ρ00 여 평의 대지 위에 750여평의 한성여고 본관(현 진리관)과 200 여 펑의 강당(현 무용과 실기실)을 준공한다. 진리관은 1964년 4층으로 250여 평 증축하고 1987년 대학이 이전하면서 북쪽으로 500 여 평 증축하였다.· 1959년 8월 850여 평의 과학관(현 지선관)을 착공하여 1961년 10월 5일 준공한다 이 건물은 국내 처음으로 물리실, 화학실, 가사실, 재봉실, 미술실, 음악실, 도서실 등을 갖춘 종합과학관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63년 12월 여자고등학교 최초로 400여 평의 체육관을 준공하고 1971년 7월 현 과학관 자리에 국제규격의 수영장을 준공한다·1967년 10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팔당리에 있는 2,200여 평의 ‘의화장’을 구입하여 교직원 휴양 및 학생생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1971년 2월 2,500여 명의 대학본관(현 여고 건물)을 준공하였다.·1981년 12월 1,800 여 평에 지하2 층, 지상 5층 규모의 종합관을 준공하여 1,2층은 교수 연구실로 3,4층은 강의실, 5층은 강탕으로 지하 1,2층은 학생복지시설로 사용하였다.·1983년 10월 개교기념 12주년 기념일에 학생복지시설 및 도서관을 수용하기 위한 학생복지관(현 학생회관) 착공식을 갖고 이 해 12월 5일 기공식을 가졌다. 이 건물은 탕초 지하1층에 지상5층으로 설계하였으나 공사 도중 예산 부족으로 연면적 1,400여 평에 4층으로 변경하여 1984년 9월 5일 준공하였다. 이 건물은 1993년 과학관과 함께 증축하였다·1986년 ‘한성대학발전계획안’에 의하여 추진된 “교사이전5개년계획”으로 여중·고와 대학간의 대대적인 교사 이전 작업이 실시되었다. 부족한 대학시설을 해소하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교사 및 교지와 맞바꿀 수밖에 없다는 법인의 결정으로 당시 대학본관으로 한성여고가, 종합관에 한성여중이 입주하고 대학은 여중·고 모든 건축물과 운동장, 수영장, 체육관을 사용함으로써 대학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1986년 8월 ‘교사이전5개년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겨 구 한성여중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연면적 3ρ00 여 평에 지,)'J6층 규모의 우촌관 기공식을 갖고 1987년 8월 25일 준공하므로 교사 이전의 대역시를 완수하고 대학 본관으로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건설본부장은 경영학과 김길평 교수로 이후 과학관 및 강의동을 거쳐 2002년 교수회관, 학생회관별관, 도서관 신축의 건설본부장까지 역임하였다.
한편, 종합대학으로의 승격과 대학의 장기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왔던 과학관이 1990년 2월 준공되고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자계산소를 개소하였다. 이로써 학교 행정 전산화 및 교수연구 지원, 학생들의 전산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1991년 11월 상징탑이 건립되었다. 교문을 겸해서 세워진 상정탑은 상정물인 거북이를 형상화 한 것으로 명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94년 8월 부족한 교육시설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존 학생회관 4층을 6층으로, 과학관 5층을 6층으로 증축하고 1995년 5월 학생회관 5층을 전자정보관으로 개관하였다.· 1996년 8월 마스터플랜에 의하여 체육관 자리에 한성종합관을 추진키로 하고 160여 대의 주차 시설을 우선 확보하기 위하여 한성여고 운동장 지하에 1,700여 평 규모의 한성 주차장 기공식을 갖고 1997년 5월 17일 준공식을 가진다 이후 한성종합관 신축은 학내 문제로 무산되었다.
· 1997년 2월 독립 학군단 설치를 위한 학군단동이 준공되었고, 이에 앞서 1996년 1월100여 평 규모의 후생관을 준공하여 구내은행, 컴퓨터점, 안경점, 사진관 등이 입주하였다·1998년 5월 강의동 기공식을 갖고 수요자 행정 서비스를 위하여 학생회관에 학생종합서비스센터를 개관하였다.· 1999년 3월 1,500여 평의 강의동 준공식을 갖고 대학원을 이전하는 등 교사 재배치를 하고 ‘캠퍼스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2000년 7월 도서관, 연구동, 학생회관 신축을 위하여 현상설계 당선업체인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와 계약하여 설계를 진행하였고, 삼성물산(건설부문)을 시공사로 선정하여 2001년 9월 착공하였다.· 2001년 9월 지하 1층/지상7층, 연면적 2,100여평 규모의 연구관을 준공하고, 11월 지상 5층 연면적 560 여 평 규모의 학생회관(현 인성관)을 준공하여 교내 흩어져 있던 교수연구실과 학생동아리실을 각 각의 건물로 이주시켜 심도있는 연구와 지율적인 학생자치생활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2001년 9월 13일 도심형 예술대학을 구현하기 위하여 대학로 명륜동에 있는 2,000여 평의 통원빌딩을 매입하여 대학로캠퍼스(현 에듀센터)로 명하였다.·2003년 9월 지하2층/지상6층 4,300여 평의 도서관(현 미래관)이 준공되어 학생회관(현 창의관)에 있던 도서관 및 전자정보관이 이주하였고 2003년 10월 준공식을 갖고 학술정보관을 개관하였다. 이 건물은 2004년 11월 24일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였다.·2004년 1월 무용학과 실습실, 강당, 체육관, 체력단련실을 갖춘 지하 1층/지상4층으로 연면적 1,500여 평 규모의 체육관(현 낙산관) 신축을 위하여 기존 체육관을 철거하고 착공하였다.2005년 3월 체육관(현 낙산관)을 준공하고 2005년 6월 15일 준공식을 가졌다.. 2005년 3월 열악한 진입로 확장을 위하여 「성북구 균형발전추진계획」사업과 연계하여 성북구청에 「대학 진입로 개선 및 문화/교통광장 설치계획 보고서」를 제출하고 성북구청과 서울시에 도시계획사업 승인 및 관련 예산 확보를 요청하였다.2006년 9월 부족한 연구실 확보를 위하여 기존 7층의 연구관을 9층으로 2개층 증축하여620여 평을 추가 확보하고, 대강당(현 학송관)을 1개층을 2개층으로 증축하여 170여 평을 추가 확보 후 대학원의 단독 건물로 사용하였다. 또한 우촌관, 공학관, 지선관, 창의관, 탐구관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장애인이 쉽게 이용 가능한 건물로 구축하였다.
2007년 12월 동쪽의 한성여지중학교, 한성여자고등학교 사이 소방도로(도로 길이 65㎡)를 도로 폭 4m에서 8m로 확장하고 교문을 세워 동문으로 명칭하고 12월 21일 준공식을 가졌다.·2008년 3월 서울시와 성북구는 한성학원 진입로 305m에 대하여 155m 구간은 추 후 재개발 사업 시 확장하고, 150m 구간만 우선 확장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시설(도로)사업실시계획인가를 고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성대, 행정안전부, 서울시, 성북구에서 예산을 확보하였다.·2009년 5월 진입로 305m중 150m를 도로 폭 6m에서 12m로 확장공사를 착공하였다.·2010년 2월 외국인교원 숙소 마련을 위하여 85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2010년 5월 지하 1층/지상3층 연면적 220평 규모의 외국인교원 숙소(현 게스트하우스C동)를 신축하였다.·2010년 2월 외국인교원 숙소 마련을 위하여 85펑의 부지를 매입하고 2010년 5월 지하1층, 지상3층 220평 규모의 외국인교원 숙소(현 게스트하우스C동)를 신축하였다.
·2010년 12월 진입로 150m 구간의 도로 확장이 완공되었다.·2012년 8월 부족한 주차대수와 교사확보율 100% 이상 달성을 위하여 운동장 부지에 종합관 건축을 위한 「21세기 발전위원회」, 「건축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건설사업 시행 계획안을 수립하였다.15.2 교지〈부록 표 15-1> 교지확보율 (2012. 3. 기준)
㎡
구분 필지수 기준면적(A) 보유면적(B) 확보율(B/A) 교지 보유면적 중 학교시설결정면적
〈부록 표 15-2> 캠퍼스 내 교지
㎡
번호 소재지 지 번 지목 면적 취득형태 취득일시 비고
번호 소재지 지번 지목 면적 취득형태 취득일시 비고
〈부록 표 15-3> 캠퍼스 외 교지
㎡
번호 소재지 지번 지목 면적 취득형태 취득일시 비고
번호 소재지 지번 지목 면적 취득형태 취득일시 비고
15.3 교사
〈부록 표 15-4> 교사확보율 (2012. 3 기준)
㎡
구분 동수 기준면적 (A) 교사기준시설(B) 기본시설 지원시설 연구시설 부속/기타 교직원기숙 계 확보율 (B/A)
〈부록 표 15-5> 캠퍼스 내 건물
㎡
12 제1별관 지상3층 1996 275 0 0 0 0 108 84 0 0 0 85 0 0
〈부록 표 15-6> 캠퍼머스 외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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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위원
위원장 강순애위원 박준철·정경희·이재석·박희진전장배 장재혁 정미영·최민이한성대학교 40년사인쇄 2015년 5월 1일발행 2015년 5월 31일발행인 강신일편찬인 한성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