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04

머리말

06

01. ‘녹색혁명’ 종자 개량으로 굶주림 퇴치

08

02. 황금쌀의 등장! 밥만 먹어도 비타민이?

10

HOT ISSUE(1) 바이오 산업

12

03. 글로벌 제초제 기업 ‘몬산토’의 대박 비결

14

HOT ISSUE(2) 유전자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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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기술과 농업의 만남 ‘스마트팜’

18

05. 우주에서 진짜 감자를 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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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3) 후성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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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수박 + 수박 = 씨 없는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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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종이 다른 동식물의 교배 : 배무채와 노새

28

닫으며…

머리말

허진회 교수는

농생명공학자이자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 후생유전학을 적용해 농업적 기여도가 큰 작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주로 한다. 청소년들에게 첨단 생명공학을 소개하는데도 관심이 크다. 청소년들이 직접 생명과학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녹색과학 실험교실’이나 중·고등학교 진로·진학 특강을 통해 미래 생명과학과 조우하도록 힘쓰고 있다.

현 인류는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서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수명의 증가와 함께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의 조기 진단과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졌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신약 개발 및 사전 질병 예측과 예방 기법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농업 분야에서는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미래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품종 육성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나는 현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식물생산과학부에 재직하고 있다. 과거 막연하게나마 최고의 농생명 과학자가 되고픈 꿈을 안고 서울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록음악과 밴드 할동에 심취해 막상 학업은 뒷전인 학창 시절

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후 직접 식물들을 재배하고 관찰하며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기도 하고, 이를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과정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쾌감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당시 고추에서 다양한 형질의 유전 양상을 연구하던 중 익은 고추의 색깔이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라 분리되는 것을 관찰하고, 유전자 염기서열 하나의 차이가 우성과 열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내 손으로 직접 확인했던 순간의 희열과 성취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식물은 씨앗, 즉 종자를 통해 번식한다. 식물이 작은 씨앗으로부터 하나의 커다란 개체로 발달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빠져든다. 자연스레 발달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유학을 고민하던 중 당시 접했던 종자 발달에 관한 논문 하나가 이러한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절히 원하던 학교·학과에 박사 과정으로 입학했고, 함께 연구하기를 갈망하던 지도교수와의 조우는 새로운 길 앞에 놓인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이었다.

현재는 식물생장발달학, 분자유전학, 후성유전학 등을 강의하며 식물에서의 다양한 후성유전학적 현상에 대해 연

구하고 있다. 특히 식물의 종자 발달 연구와 더불어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식물 간의 교배를 통해 형성된 잡종 식물의 유전체 안정성과 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증가한 평균 수명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의약학 분야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생명공학의 기본 지식과 원리, 이의 적용 사례를 다뤄보고자 한다. 끝으로 생명과학의 최종 종착지 중 하나가 의약학 분야만이 아닌 농생명 분야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관련 분야로의 진학이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01 ‘녹색혁명’ 종자 개량으로 굶주림 퇴치

식량 증산의 열쇠, 종자 개량

인류가 농경 사회를 형성한지는 오래됐다. 농업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는 문제는 인류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농업 기술 개발의 핵심은 보다 많은 수확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종자 개량’ 이 큰 주목을 받았다. 수확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해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종자는 인간의 에너지원으로서 상당히 중요하다. 사람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약 50%는 벼, 밀, 보리, 옥수수, 콩 등의 종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를 사료로 사용해 기른 가축의 육류 섭취까지 감안하면 인간 에너지원의 약 70%가 종자와 관련이 있다.

병충해에 강한 밀

20세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더욱 대두됐다. 기존의 식량 수급 방식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작물의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필요로 하게 됐다. 이를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비료, 농약, 그리고 관수시설과 농기계의 사용이 급증했다. 특히 밀과 벼 등 주요 식량작물들을 중심으로 수확량을 늘리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한 노력들 가운데 품종 교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낸 인물이 있었다. 바로 노먼 볼로그라는 미국의 농학자였다. 그는 멕시코에서 병해에 강하고 키가 작은 난쟁이(dwarf) 밀 품종을 개발했다. 단위 면적당 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품종이었다. 난쟁이 밀은 Rht(Reduced height) 유전자가 변이한

결과였다. 식물에서 생산되는 호르몬, ‘지베렐린’은 식물 줄기의 키를 크게 만든다. 밀은 줄기가 과도하게 자라면 수확 시기가 다가올 때 이삭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쓰러지게 된다. 반면 난쟁이 밀은 지베렐린의 반응에 관여하는 Rht 유전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따라서 줄기가 지나치게 자라는 것을 방지한다. 대신 튼튼한 줄기를 형성하게 돼 보다 많은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많이 재배되는 다수확 벼 품종 역시 지베렐린 합성을 억제하는 유전자 변이를 거쳤다.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는 1960년대 후반 밀 생산량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녹색혁명’으로 불렸다. 이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녹색혁명의 수혜로 기아와 배고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볼로그는 식량을 증산해 세계 식량난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먼 볼로그

출처 위키백과

자급자족 이룩한 통일벼

우리나라도 주식인 쌀이 턱없이 모자라 배를 곯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라고 불리던 시절이 존재했다. 가을 벼 수확이 충분하지 못해 이듬해 늦봄 보리가 생산되기 전까지 굶주림을 겪어야만 했던 시기였다.

당시 서울대 농과대학의 허문회 교수는 열대 지역에서 재배되는 인디카(indica) 품종과 일본 등 온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자포니카(japonica) 품종을 교배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통일벼’다. 통일벼는 기존의 벼 품종보다 높은 수확량을 자랑했다. 통일벼가 전국의 농가에 보급되자 1976년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쌀을 자급자족하게 됐다. 이후 통일벼에 대한 연구를 확장해 가면서 신품종이 지속적으로 개발됐다. 덕분에 1965년에 350만t이던 국내 쌀 생산량은 1977년 600만t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허문회 교수

출처 과학기술유공자센터

난쟁이 밀과 통일벼는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드는 GMO 작물과는 다르다. GMO 작물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전자를 넣어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된다. 반면 난쟁이 밀과 통일벼는 교배 과정에 개입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으로 2차 녹색혁명

의 중심에는 GMO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가 모아지는 가운데, 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점에서 1차 녹색혁명이라 할 수 있는 품종 교배 방식은 농업기술 발전 역사에 있어 상당히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주요 작물에서 수확량을 비롯한 주요 농업 형질과 연관된 유전 현상을 이해하고, 해당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짐에 따라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기존 품종 육성(혹은 육종)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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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공학이란?

1990년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시작됐다. 게놈은 DNA를 갖고 있는 염색체 세트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는 이 게놈을 통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현재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각종 질병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지도 : DNA 내에서 유전자의 숫자와 위치를 나타낸 것.

02 황금쌀의 등장! 밥만 먹어도 비타민이?

GMO의 의미와 황금쌀의 탄생

우수한 특성을 갖춘 품종 개발은 다양한 교배 조합과 여러 단계의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생물) 작물 개발일 것이다.

GMO는 살아 있는 변형 생물(living modified organism, LMO)이라고도 불린다. GMO의 정의에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자연적 교배나 정상적 유전자 재조합(recombination)에 의해 만들어진 변이를 제외한 모든 변형은 GMO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1973년 허버트 보이어와 스탠리 코헨에 의해 세계 최초로 항생제 저항성 세균이 제작된 이후 1974년 형질전환 쥐, 1983년 형질전환 담배가 탄생한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미생물과 동식물 모두 GMO가 광범위하게 만들어져 왔다. 세균과

같은 미생물의 유전자 변형은 손쉽게 이루어지며, 의약, 식품, 산업용 소재 생산을 위해 매우 유용하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는 비타민A 결핍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 비타민A 부족은 시력 감퇴, 면역력 감소, 유아 사망률 증가 등으로 이어져 매년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 식물과 학연구소의 식물유전학자 포트리쿠스(I. Potrykus)와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의 베이어(P. Beyer)는 벼에서 비타민A의 전구물질 인 베타카로틴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전자 변형을 시도했다. 이렇게 개발된 쌀은 노란색을 띠어 황‘ 금쌀’로 불린다.

전구물질

어떤 화합이 합성되기 전에 선행하는 물질.

황금쌀

연구개발 과정

The Golden Rice Solution

β-Carotene Pathway Genes Added

IPP

Geranylgeranyl diphosphate

Phytoene

Lycopene

ß-carotene

(vitamin A precursor)

Vitamin A

Pathway is complete

and functional

(isopentenyl-diphosphate)

Daffodil gene

Single bacterial gene

Daffodil gene

Phytoene synthase

Phytoene desaturase

Lycopene-beta-cyclase

Golden

Rice

상업화까지 20년이 걸린 황금쌀

하지만 황금쌀은 바로 상업화될 수 없었다. GMO 작물에 대한 환경 안전성 우려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소비자들은 GMO 작물을 소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01년 필리핀 국제쌀연구소(IRRI)는 황금쌀이 위해성이 어느 정도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에드 레지스(Ed Regis)는 자신 쓴 ‘골든 라이스 : GMO 슈퍼푸드의 위태로운 탄생(Golden rice: the imperiled birth of GMO superfood)’이라는 책에서 황금쌀 재배 금지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명 피해를 입었고 아동들의 실명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황금쌀이 만들어진지 약 20년 후인 2021년 7월. 황금쌀은 필리핀 정부의 승인을 받아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재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황금쌀과 일반쌀.

출처 Bio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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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보란?

식량 안보는 한 국가의 주권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공급하는 종자 산업은 농업 생산의 근간이다.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쟁력의 척도이기도 하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많은 국가에 수급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에 곡물 수출 제한을 통한 식량 무기화 전략이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여전히 낮은 식량 자급률을 나타내는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종자 산업 육성은 시급한 현안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IMF 직후 유수 종자 회사들이 글로벌 기업들에 흡수돼 추진 동력마저 잃어버린 실정이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품종 개발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 안타까움이 크다. 세계 인구 증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급격한 기후변화는 전 인류가 맞닥뜨릴 위기를 예견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업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미래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를 다시금 농업이 쥐고 있는 것이다.

HOT ISSUE

01

의약부터 에너지, 원재료 4차 산업 중심, 바이오 산업

다양한 바이오 산업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 기반 산업을 바이오 산업이라고도 부른다. 바이오 산업은 크게 레드바이오, 화이트바이오, 그린바이오로 구분할 수 있다. 레드바이오는 의약품, 보건 등 의료 분야, 화이트바이오는 재생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및 소재 분야, 그린바이오는 농수산, 축산, 식품 분야를 의미한다.

레드바이오는 혈액의 붉은색을 본뜬 명칭으로 진단, 질병 예방, 신약 개발, 진단시약, 줄기세포 산업 등을 포함한다. 암과 같은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개발과 더불어 유전자 재조합, 표적항암제, 항체 기술, 세포치료 기술 등이 핵심이다. 사람의 유전체 정보 해독 후 난치 질병의 발병 요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수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필두로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신약 개발을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바이오 산업은 의료 분야를 넘어 농업과 화학, 에너지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급작스러운 기후변화, 화석연료 고갈 등으로 인해 친환경 바이오 기술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화이트

바이오는 콩, 옥수수 등의 생물 자원을 원료로 활용해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 생산 기술을 포함한다. 이러한 바이오에너지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가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고정된 바이오매스를 활용하며, 제조 과정에서도 CO₂ 배출량이 적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환경오염 및 온실가스 배출의 해결책이자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로 각광받는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기존 석유화학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 개발 역시 화이트바이오의 핵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린바이오는 인류의 먹을거리 생산을 담당하는 농축산, 수산업, 식품 분야를 포괄하며, 풀이나 나뭇잎이 연상되는 녹색으로 표현된다. 이는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난 해소뿐만 아니라 식물을 이용해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는 기술도 포함한다. 그린바이오는 전통적인 식량 생산 방법에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해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고, 다양한 기능성 소재 및 고부가가치 천연 화합물을 생산하며 제품을 개발하는 분야다. 인구 고령화와 건강 수요 증가로 인해 기능성 식품과 첨가물에 대한 관심

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 바이오연료 및 친환경 소재로 활용되는 원재료의 생산을 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바이오는 화이트바이오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주요 소재를 생산, 공급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생체모방, 생명체 구조·기능 접목

연잎으로부터 얻은 방수 코팅 기술

출처 이미지투데이

공학 분야에서도 첨단 기술 개발에 있어 생명체의 자연스럽고도 효율적인 구조와 기능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생체모방(biomimetic)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나 생물체의 특성을 연구하고 모방하는 기술이다. 도꼬마리의 가시가 옷에 달라붙는 원리를 이용해 개발한 벨크로(찍찍이) 테이프, 상어의 비늘을 응용한 전신 수영복, 연잎 표면의 무수한 초소형 돌기를 적용한 방수 코팅 기술, 나방의 눈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한 반사 방지 필름과 태양전지 등 수많은 생체 모방 사례가 존재한다.

바이오메카닉스(biomechanics)는 생체의 기능을 공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 작동 메커니즘을 기술 혁신에 적용하는 분야로 주로 동물의 움직임을 연구해 로봇 개발에 적용한다.

또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AI)과 그 핵심 기술인 기계학습, 딥러닝 등의 개념을 보면 사람의 뇌가 주관하는 학습과 지식 습득 시스템을 모방해 창안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공신경망 역시 사람 두뇌의 뉴런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서 착안해 구현된 컴퓨터 시스템으로 기계학습의 세부 방법론 중 하나를 의미한다.

현재 사람의 경이로운 사고 구조를 모방해 탄생한 AI 기술이 역설적으로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복잡한 생명 현상 규칙을 이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또 방대한 데이터 기반의 시뮬레이션과 모델링은 진단의학, 생태계 변화, 작물의 생육 예측에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첨단 기술은 스마트팜, 수직농장 등 농작물의 자동화 및 규모화 생산뿐만 아니라 미래 우주농업 기술 개발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03 글로벌 제초제 기업 ‘몬산토’의 대박 비결

몬산토 : 제초제-종자 세트 판매

GMO의 파급 효과는 아마도 식량 작물에서 가장 극대화되지 않을까 싶다. 대규모 작물 생산을 위해서는 기계화와 생력화(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무인화를 촉진하는 것)가 필수적이다. 작물 재배 시 가장 많은 노동력과 비용이 필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 과정이다.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 사용이 가장 효율적이다. 상당수의 제초제는 흔히 식물의 필수 대사 과정을 교란하는 약품을 사용해 잡초를 고사시킨다. 그러나 경작지에서 제초제를 광범위로 살포하면 잡초뿐만 아니라 해당 작물에까지 해를 입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거대 농약·종자 기업인 몬산토(Monsanto)는 1970년대에 개발한 ‘라운드업(Roundup)’ 이라는 제초제를 생산·공급해왔다. 그러나 강력한 제초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초제 살포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몬산토는 제초제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라운드업 저항성 작물 개발에 착수했다.

라운드업은 아미노산 생합성 경로에 작용하는 특정 효소의 기능을 차단하는 글리포세이트를 주성분으로 사용한다.

몬산토 연구진은 글리포세이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해당 효소의 유전자를 세균으로부터 분리하고, 형질전환 기법을 사용해 라운드업 저항성 작물을 개발했다. 라운드업 저항성 GMO 작물이 탄생한 계기다. 새로 개발된 작물은 라운드업 살포 시 생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작물 주변의 잡초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기업형 농가의 생산 시스템에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몬산토는 이 라운드업 제초제 저항성 작물을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 라는 품명으로 생산·보급했다. 1996년 시판된 콩을 시작으로 이후 옥수수, 유채, 목화 등으로 확대됐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단위 면적에서 라운드업 레디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몬산토가 개발한 제초제 라운드업(왼쪽)과 라운드업 저항성을 가진 라운드업 콩 경작지.

출처 roundup.com, edible-chemistry.com

GMO의 원리

GMO는 이전에 소개한 형질전환 기법에 기반해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도입하려는 유전자 선정이다. 다른 종, 심지어 다른 계(kingdom)의 도입 유전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외부 유전자는 유전공학적 조작 과정을 거쳐 플라스미드와 같은 운반체(벡터, vector)에 탑재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숙주 개체의 세포 내로 전달된다. 이후 외부 유전자는 핵 내의 DNA에 삽입·발현되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전적 특성을 개체에 부여한다. 이때 함께 탑재된 (흔히 항생제 저항성을 갖고 있는) 마커 유전자를 활용해 형질전환 여부를 판별하고, 최종적으로 GMO 개체를 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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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 유해성 논란

GM 작물 개발 과정에 사용되는 마커 유전자의 인체·환경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때문에 사람이 직접 섭취하는 식량 작물에는 아직 GM 작물이 적극 활용되고 있지 않다. 또 유럽을 비롯한 다수의 지역에서는 GM 작물의 범위를 규정하고 이의 재배와 생산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GM 작물 보급의 확대는 소수 품종의 독점적 재배를 더욱 가속화한다. 이는 결국 전체 생태계에 서식종 분포의 불균형을 초래해 종의 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충해 저항

성 작물의 재배 면적 확대는 해당 미생물과 곤충의 서식지를 급격히 감소하게 만들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 문제와 식량난, 지구 온난화에 따른 미래기후변화는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난제다. 가장 효율적인 해결 방안으로 GMO가 거론되고 있다. GMO의 개발과 보급의 역사는 기껏 반세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GMO의 파급 효과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 세계가 지혜를 모아 GMO의 활용과 발전 방향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시기다.

HOT ISSUE

02

유전자가위, 유전 정보 편집해 질병 극복

유전자 가위란

사람의 유전체는 상호 99 .9 % 이상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0.1%의 차이에 의해 피부색, 체형 등 개인 간의 특성 및 유전병 여부 등이 결정된다. 일례로 ‘겸상 적혈구 빈혈(sickle cell anemia)’은 헤모글로빈 분자 구조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존재하는 유전병의 일종이다.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의 오직 1개 염기서열(그리고 하나의 아미노산)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이는 유전병이 단백질과 같은 분자의 비정상적 기능에 기인할 수 있음이 밝혀진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껏 DNA에 내재된 유전 정보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장 난 유전자를 가위로 도려내고 이를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신할 수 있다면? 모든 유전 질환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의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

유전자 교정에 쓰이는 단백질 모듈을 ‘유전자 가위(genetic scissors 혹은 molecular scissors)’라고도 부른다. 편집 시 DNA를 절단하는 활성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DNA 손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DNA 가닥의 절단일 것이다. 일부 화학 물질이나 감마선과 같은 고에너지 방사선은 DNA 가닥의 절단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진핵 생물 은 DNA가 절단되면 이를 복구할 수 있다. 원형 그대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여의치 않을 경우 절단된 DNA 가닥에 존재하는 손상을 떠안은 채 절단면을 이어 붙이게 된다. 이를 비상동말단접합(nonhomologous end-joining, NHEJ)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 유전자 가위로 절단된 특정 유전자의 단면은 뉴클레오타이드 소실과 같은 일부 손상을 유지한 채 다시 접합·복구된다. 이는 마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처럼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유전자 가위는 기본적으로 DNA를 자르고 붙이는 과정 중 특정 유전자의 기능 손실을 유도해 세포의 특성을 변화시킨다.

유전자 가위는 1990년대부터 개발됐다. 다수의 DNA 결합 단백질 중 아연집게 단백질은 특정 염기 서열을 인지해 결합하는 특성을 지녔다. 여기에 DNA 절단 효소 활성을 추가하면 특정 서열의 DNA 가닥을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가 탄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연집게 핵산분해효소(zinc finger nuclease, ZFN)는 제1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린다. 이후 제2세대 유전자 가위, 탈렌(TALEN,

진핵 생물

유전물질을 포함하는 핵(nucleus)를 가진 세포들로 구성된 생물)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도 등장한다. 그러나 초기 유전자 가위는 원하는 위치를 자르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복잡한 공정을 거쳐 단백질을 가공해야만 했다. 따라서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2012년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세균의 바이러스 방어 시스템을 빌려 새로운 유전체 편집 기술을 발표했다.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pyogenes)에서 분리한 CRISPR-Cas9 (크리스퍼-카스9) RNA·단백질 복합체는 RNA 가닥과 상보적으로 일치하는 염기서열을 갖는 DNA와 결합해 목표 유전자를 절단한다. 이때 적절한 가

이드 RNA(guide RNA, gRNA) 사용만으로도 원하는 유전자를 간편하고도 정확하게 절단할 수 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기존의 유전자 가위를 대체했다. 다우드너와 샤르팡티에는 유전공학 분야의 혁명 중 하나라고도 여겨지는 차세대 유전자 가위 개발의 업적을 인정받아 2020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개발해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병리학 교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왼쪽)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출처 노벨재단

유전자 가위는 DNA 절단과 복구 과정 중 발생하는 손상을 통해 유전자의 기능을 불활성화

하기도 하지만 절단면에 특정 DNA 절편을 삽입하거나 특정 염기를 다른 염기로 변형하는 염기편집(base editing)에도 활용될 수 있다. 유전체 곳곳을 원하는 방식으로 교정할 수 있는 본격적인 유전체 편집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전체 편집이 주는 이로움

유전체 편집은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유전 질환 및 난치병의 유전자 치료, 가축 및 작물의 품종 개량, 대사공학 등에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혈우병, 간염, 후천성 면역결핍증 등의 질병이나 비만, 당뇨 등의 대사 질환, 그리고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에도 유전체 편집을 활용한 치료가 적극 고려되고 있다.

또한 말라리아, 황열, 뎅기열 등의 숙주인 모기의 불임을 유도해 군집 감소와 함께 감염병을 원천 차단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소나 돼지의 근육 생성이나 연어의 성장을 억제·조절하는 유전자를 제거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도 있다. 콩, 감자, 토마토 등 주요 농작물의 유전체 편집과 품종 개량은 이미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원하는 유전자들을 임의로 집적하여 새로운 생명 시스템을 구축하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분야에도 활용 가능하다.

04 기술과 농업의 만남, 스마트팜

누구나 고생산·고품질이 가능하다?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원격·자동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관찰하고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과학 기반의 농업 방식을 말한다. 스마트팜은 크게 온실 내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의 양 등 생육 조건을 설정하는유 ‘지 관리 소프트웨어’, 온도와 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의 양을 자동으로 수집하는 ‘환경 정보 모니터링’, 냉난방기 가동, 창문 개폐, 이산화탄소·영양분 공급 등 ‘자동·원격 환경 관리’로 구성된다. 이 중 일부 시설만 구축하기도 한다.

스마트팜은 최근 센서·자동화 설비와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까지 이루어지면서 BT와 IT 가 결합한 차세대 농업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팜은 노동력뿐만 아니라 물, 에너지, 비료 등의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고, 폐기물과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운용된다. 정교하게 컨트롤되는 환경하에 균일한 품질로 청정하게 재배할 수 있고, 넓은 경작지가 없더라도 공장형 설비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BT(Bio Technology)

생명공학기술. 생명체의 시스템을 변형·응용해 산업·의학·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기술.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주로 컴퓨팅을 통해 데이터를 개발·처리·관리하는 기술.

1차 산업에서 첨단 융합 산업으로 농업의 변신 이끄는 ‘스마트팜’

스마트팜의 시초는 비닐하우스와 같은 소규모 온실 설비에서 시작됐다. 추위와 강우, 해충 등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소극적인 기능을 벗어나 점차 보광, 차광, 냉난방 등 적극적인 환경 변화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 고품질 작물의 생산 시기를 확대했다. 또한 토양 없이 흐르는 물 위로 뿌리내린 식물을 키우는 수경재배(hydroponics)는 기존 재배 관행을 바꿔놓았다. 순환식 양액 공급과 모니터링 시

스템을 통해 비료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빛, 온도, 습도 등의 환경을 자동제어하게 됐다. 설비는 점차 규모화되고 마치 공장에서처럼 균일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스마트팜의 확대와 더불어 도심에서의 작물 재배 역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고층 타워 안에 수십 층으로 구성된 재배 공간을 만들어 모든 환경을 자동 제어하며 작물을 재배하는 광경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도심 수직형 농장은 스마트팜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하면 작물의 생산량은 증가하고, 노동력과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는 미래 농촌과 농부의 모습도 획기적으로 변모시킬 전망이다. 미래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에서 벗어나 생물학, 기계공학, 건축·설비, 정보·통신,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까지 아우르는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첨단 융합 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례

첨단 기술로 식탁 바꾼다

미래 여는 똑똑한 농부

취재·사진 김민정 리포터 mjkim@naeil.com

피지컬베리 김수행 대표는

연암대 스마트팜원예 계열을 졸업했다.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작물의 생육을 관리했다. 2021년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됐으며, 강원도 양양에서 피지컬베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Q. 어떤 일을 하는지?

양양에서 딸기, 옥수수를 생산·판매하고 있습니다. 주작목으로 딸기를 재배하는데 9월에 정식(모종을 길러서 재배할 곳에 제대로 심는 것)해서 11월 하순부터 5월 하순까지 딸기를 출하하고 있어요. 부품목으로는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고요. 2021년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돼 창업했습니다. 장소를 고민하다가 양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기후였어요. 태백산맥이 북서풍을 막아주는 데다, 동쪽으로 바다가 있는 양양은 겨울엔 온난하고 초여름까지 시원하더라고요. 온·습도도 일정한 편이고요. 딸기는 온·습도가 중요한 작물인 만큼 최근 3년간의 양양 지역 날씨를 기상청 자료로 확인했죠. 꼼꼼하게 확인한 덕분에 2월 말부터 출하가 끝나는 6월 초까지는 냉난방 없이 자연 상태로 재배할 수 있습니다. 빛이 강하거나 바람이 심할 때는 개폐 장치를 통해 문을 조절하지만, 자연환경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전기료 절감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체험형 농장도 고려했기 때문에 관광지인 양양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Q. 이 일을 선택한 계기는?

연암대에서 스마트원예 계열 중 스마트팜을 전공했어요. 스마트원예 계열 학과는 기존의 원예 환경조경 등에 더해 2018년 스마트팜 전공을 신설했는데요. 1기로 입학했습니다. 많은 교과 과정 중 <재배학> <시설원예> <원예학> 등이 생각납니다. 생물·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재배학> <원예학>은 이론과 실제 작물이 바로 연결되는 과목인 만큼 특히 도움이 됐습니다.

스마트팜 관련 학과에 진학한 건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 않겠네요. 경기 여주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논밭에서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많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농사 일을 거들게 되는 경우도 흔했고요. 농사일이 자연스럽게 와닿은 것 같아요. 농업은 스마트 기술과의 융복합, 농촌 고령화, 농업 인구 감소와 맞물려 차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판단해 스마트원예 계열에 진학했습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과라고 생각해요.

Q. 스마트팜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창업 초기, 창업 관련 실무 지식이 부족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학에서 농업 이론·실습에 대해서는 잘 배웠지만, 정부 시책, 농지 거래, 창업 과정 등 실제 영농 창업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은 없었거든요. 대부분의 청년 창업농은 주변에 도움받을 사람이 별로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요. 저는 다행히 양양군청과 양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많이 지원해줘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만큼 저 역시 새로 유입되는 청년 창업농을 돕고 싶어요.

딸기는 보통 9월 초~중순에 정식하는데 하우스 완공이 늦어져 10월 초순에 정식했어요. 한 달 정도 늦어진 셈이죠.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면 될 일도 안 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늦더라도 차근차근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딸기를 돌봤습니다. 창업하기 전 지난 3년간, 딸기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 시행착오 없이 첫해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고요. 정식이 늦어 다른 농가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출하했지만 다행히 고품질 딸기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아 인접 지역 농가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Q. 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스마트팜 창업에 필요한 역량은 꼼꼼한 기획력과 추진력이라고 생각해요. 끈기와 열정도 중요하고요. 농업 역시 사업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면 쉽게 망한다’ 는 마음으로, 시작하기 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준비해야 합니다. 저 역시 대학 졸업 후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 동안 작물의 생육을 관리하면서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작물이 잘 자라는지 관찰했죠. 농사를 짓는 게 사업성이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창업을 결심했어요.

딸기로 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는 전국 100여 곳의 딸기 농장을 방문했어요. 어떤 양액(작물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물에 녹인 것)을 쓰는지, 딸기 맛이 어떤지, 어떤 환경에서 재배하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살폈죠.

또 농작물 재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균과의 싸움입니다. 예방적 방제를 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만큼 농작물의 상태가 어떤지 구석구석 살펴야 하죠. 또한 수확해야만 하는 데드라인이 있고, 납품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정시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보통 새벽 5시에는 농장으로 출근하는데요. 끈기와 열정이 필요해요.

05 우주에서 진짜 감자를 키울 수 있을까?

우주로 뻗어나간 스마트팜 기술

우주농업은 우주에서 정밀하게 컨트롤된 환경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서 우주선이나 우주기지 혹은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 우주농업 기술의 개발은 인류가 지구 밖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과제다. 우주에서의 식물 재배는 무엇보다도 신선한 음식, 그리고 더불어 산소를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 환경은 지구와는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무중력, 방사선, 극단적인 온도 환경 등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매우 부적합하다. 따라서 우주농업의 기초 연구로서 우주기지 등에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구축해 식물을 재배하는 시도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경작지가 없는 우주 환경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현재 스마트팜 기술 중 토양 없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수경재배와 공중재배, 수직농법 등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제안되고 있다.

밀폐된 순환 시스템의 구축 역시 중요하다. 지구는 하나의 밀폐형 순환 시스템으로서 대기와 물, 그리고 모든 유기물은 합성과 분해의 순환고리를 통해 끊임없이

수경재배(Hydroponics)

영양분이 풍부한 수용액에서 식물을 기르는 농법. 토양보다 물을 절약할 수 있고, 일부 품종의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살충제와 제초제가 쓰이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공중재배(Aeroponics)

토양과 담수 없이 영양분이 풍부한 물질을 뿌려 식물을 기르는 농법. 물 낭비가 거의 없고 비료 사용량도 적다. 전문적 시설과 기술이 필요하다.

수직농법(Vertical farming)

높이로 층을 나눠 인공 빛과 물을 통해 식물을 기르는 농법.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재사용된다. 따라서 격리된 공간에서의 우주농업 역시 사람의 배설물을 포함한 모든 성분을 재투입할 수 있는 순환 시스템을 개발해야 비로소 그 지속성을 획득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수행된 ‘바이오스피어 2 프로젝트(Biosphere 2 project)’는 다양한 식생이 구축된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이 장시간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해낸 의미 있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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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스피어 2 프로젝트

‘바이오스피어 2’는 제2의 생태계라는 뜻이다. 4000여 평의 밀폐된 공간에 지구를 본떠 만든 인공적인 생태계를 구현했다. 열대우림, 사막, 사바나, 바다, 습지 등의 구획을 나누고 3800여 종의 동식물을 들였다. 8명의 참가자가 2년간 생존할 수 있었다.

출처 영화<지구우주선 1991>

우주농업 난제 풀 열쇠, ‘지구 환경 모방 시스템’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얻는다. 광합성은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과 같은 유기화합물로 합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광합성의 부산물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산소를 공급하게 된다. 따라서 식물이 광합성을 수행하려면 적절한 온도와 빛, 물, 토양의 무기질 공급이 요구된다. 우주에서 작물을 키우려면 이러한 지구 환경을 대체할 수 있는, 아니 최소한의 모방 환경 구축이 필수적이다. 광합성을 수행할 수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광합성 시스템은 놀랍도록 유사하며 보존이 잘되어 있다. 달리 얘기하자면 식물은 지구 환경하에서 광합성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화된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으며, 이는 오랜 시간의 진화 과정 동안에도 거의 변화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태양광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고도화된 태양전지에도 필적하는 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자란 식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우선 중력이 없기 때문에 가늘고 긴 줄기를 예상해볼 수 있으며, 중력을 향해 뻗는 뿌리는 짧고 빈약할 것으로 여겨진다. 식물의 형태 형성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환경 역시 지구와는 매우 다르므로 최대 잎과 줄기 등의 형태도 바뀔 것이다. 또한 대기압의 부재로 인해 식물이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리는 증산작용 역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환경에 최적화된 광합성 효율 역시 동일할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주 환경에서 재배하기 적합한 작물의 선택도 중요하다. 첫째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 효율이 뛰어나고, 둘째로 영양소가 풍부하며, 셋째로 재배와 관리가 용이하고, 넷째로 환경 적

지구를 모방해 개발한 달·화성 온실

NASA는 우주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온실의 시제품을 개발했다.

수경재배 방식을 사용하는 이 온실은 우주비행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로 식물을 키운다. 이를 통해 음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공기를 재생산하고, 물과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도 있다.

출처 아리조나대

응력이 강한 작물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이러한 작물로는 밀, 콩, 상추, 토마토 등이 고려되고 있다.

고대 인류 문명의 태동은 농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래 우주에서 인류의 새로운 서식지 개척 역시 우주농업 없이는 불가할 것이다. 우주에서 재배하기 적합한 식물은 우리가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특성을 갖춘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기존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합성생물학에 기반해) 재구성하고 조립한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 산업에서 스마트농업과 생명공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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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 (2015)

감독 리들리 스콧 / 주연 맷 데이먼

영화의 주인공은 화성에 홀로 고립된 우주인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식량 자급 수단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화성의 토양에 감자 조각을 묻고, 식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본인의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한다. 또한 로켓의 추진 원료를 연소해 얻은 물로 비로소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HOT ISSUE

03

유전학 경계를 넘어선 생명체 진화의 비밀, 후성유전학

사람을 비롯한 다세포 진핵생물의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의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는 그 형태나 기능이 매우 상이하다. 이는 특정 세포의 기능에 필수적인 유전자들만 발현되고 필요 없는 유전자들은 발현이 억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십조 개의 세포들은 어떻게 서로 다른 유전자 발현 양상을 나타낼까? 생식 세포가 만나 형성된 수정란은 하나의 세포이며, 수정 직후 연속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동일한 세포 덩어리에 불과한 초기 배아는 특정한 시점에서 새로운 특징을 나타내는 세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어 특이적 기능을 갖춘 조직도 발달한다. 즉 초기 배아 형성 과정에서는 세포 분열 직후 모세포와는 다른 특성을 갖춘 세포가 분화됨을 의미하며,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포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유전체는 모든 유전 정보들이 특정한 발달 시점과 장소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도록 조절하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포는 어떻게 성체로 발달·성장하는가?

매우 단순한 세포 덩어리에서 복잡한 성체가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과정들은 이를 연구하는 발달생물학자들에게는 큰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중세 시대까지도 사람들이 믿었던 (모든 형태를 갖춘 작은 알로부터 성체가 유래한다는) 전성설(preformation theory)과는 달리 성체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들은 수정란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미분화 상태의 초기 배아가 발달 과정 중 순차적으로 분화해 형성된다는 후성설e(pigenesis)이 점차 설득력을 얻게 된다. 진핵생물의 염색체는 DNA와 히스톤(histone) 단백질의 복합체인 뉴클레오솜(nucleosome)을 단위로 구성된 염색질(chromatin)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참조). 뉴클레오솜은 약 146개 뉴클레오티드 길이의 쌍 가닥 DNA가 8개의 히스톤 단백질로 형성된 코어를 약 두 바퀴 감싸고도는 형태로 구성된다. 마치 실에 꿴 구슬b(eads-on-a-string)과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다. 이러한 뉴클레오솜의 간격이 느슨하게 유지될 경우 해당 부위에서의 DNA 복제나 전사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촘촘한 간격의 뉴클레오솜은 염색질의 응축을 유도하고, 유전자 발현을 위해 필요한 RNA 중합효소 및 전사인자 단백질의 접근과 작용이 제한된다. 따라서 유전자 발현 수준이 낮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치 실타래가 꼬인 경우 쉽게 풀기 어려운 상황과도 유사하다.

동일한 DNA 서열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근 염색질의 형태에 따라 유전자 발현 수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염색질 응축에 의해 유전자의 발현이 완전히 억제된다면? 이는 마치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능을 상실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포의 발달과 분화 과정 중 발현되는 유전자의 그룹이 각기 다르게 조절되는 것을 염색질 구조의 차이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염색질 구조에 주목한 후성유전학

이렇듯 염색질 구조에 의해 유전자 발현 양상이 결정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고 칭하며, 결국 분자 수준에서의 후성유전학 연구는 곧 염색질 구조와 유전자 발현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진핵생물의 염색질 구조를 조절하는 주요요인으로는 DNA 메틸화(methylation)와 히스톤 단백질 변형(histone modification)이 존재한다.

DNA 염기 중 하나인 시토신(cytosine)의 5번 탄소에 메틸(CH3-)기가 결합하면 5-메틸시토신(5-methylcytosine)으로 변환된다. 히스톤 단백질의 일부는 뉴클레오솜의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히스톤 꼬리(histone tail)라

고 불리는 이 부위에 다양한 화학적 변형이 일어난다. 메틸화, 아세틸화, 인산화 등이 히스톤 꼬리의 특정 아미노산에 형성되며, 이에 따라 염색질의 응축 혹은 이완이 일어난다.

풀어진 염색질은 DNA 메틸화 수준이 낮은 반면 높은 히스톤 아세틸화 수준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유전자 발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염색질

을 진정염색질(euchromatin)이라 부른다. 반대로 응축된 염색질에는 DNA 메틸화 및 특정 히스톤 변형이 높은 수준으로 존재하며, 유전자의 발현은 억제되는 양상을 나타내며, 이질염색질(heterochromatin)이라고 구분한다.

가역적 변화 가능한 후성유전학적 변이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의 대상은 개체가 아닌 유전자임을 제시했다. 생명체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는 형태 및 기능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으로 유전자 기능의 변화에 근거한다.

DNA 유전 정보의 변화는 한 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결과를 초래한다. 돌연

변이는 개체의 자연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원상태로의 복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 혹은 강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유전자를 발현 수준에서 조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후성유전학적 변이는 비정상적 유전자 발현을 통해 개체의 특성을 바꿀 수 있으며, 때로는 (마치 돌연변이와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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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유전학의 대표 예시 : 꿀벌 이야기

일벌과 여왕벌은 모두 암컷이다. 꿀벌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생후 3일째 되는 날부터다. 로열젤리를 먹던 애벌레들은 대부분 3일째부터 꽃가루와 꿀을 먹고 생식능력이 없는 일벌로 자란다. 한편 선택받은 극소수의 애벌레는 로열젤리를 계속 먹게 된다. 이들은 평생 약 200만 개 알을 낳을 수 있는 여왕벌로 성장한다. 일벌은 평균 4주 가량을 살고 죽는 반면 여왕별은 1년 이상을 살 수 있다. 두 벌 간의 유전학적 차이는 거의 없다. 로얄젤리에 담긴 영양 성분이 DNA의 메틸화 현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가지로)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후성유전학적 변이는 주변 환경, 스트레스, 그리고 영양 상태 등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특성을 변화무쌍하게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후성유전학적 변이를 선택하여 생존 효율을 극대화하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후성유전학적 변형은 고정적 돌연변이와는 달리 그 변화가 가역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후성유전학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변이는 흔히 불안정한 표현형을 나타내기도 한다.

DNA 메틸화는 가장 안정적인 후성유전학적 변형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다세포 진핵생물들은 염색질 구조의 조절을 위해 DNA 메

틸화를 적극 활용한다. DNA 메틸화는 일반적으로 염색질의 응축과 함께 유전자의 발현 억제를 유도하기 때문에 염색질의 DNA 메틸화 패턴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다르게 조절된다. DNA 메틸화는 세포 분열 직후에도 거의 온전한 패턴을 유지하며, 따라서 마치 유전자 발현 양상을 기억하는 메모리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 효과는 심지어 여러 세대를 거쳐 유지되기도 하며, 이를 세대 간 후성유전(transgeneration epigenetic inheritance) 현상이라고 부른다.

작물 개량부터 신소재 개발까지, 무궁무진한 후성유전학의 가능성

흔히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자식의 유전적

특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일란성 쌍둥이는 어떨까?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차이점이 나타난다. 이는 서로 다른 환경과 식습관에 노출되어 차등 형성되는 후성유전학적 차이의 결과다. 생쥐도 DNA 메틸화가 비정상적으로 일어나면 동일한 유전 조성의 개체 사이에도 확연한 표현형의 차이를 관찰할 수 있다. 예를들어 특정 유전자의 DNA 메틸화 수준이 줄면 유전자 발현의 증가와 함께 털 색깔의 변화나 비만이 함께 관찰된다. 이 비정상적 DNA 메틸화는 엽산이나 비타민 B12 등의 결핍으로 발생한다.

후성유전학적 변형과 염색질의 구조는 발달 신호뿐 아니라 주변 환경 및 생활 습관에 따라

서 다르게 변화할 수 있으며,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2차 세계대전 때 기아에 시달리며 임신한 여성들의 자손에게서는 비만과 당뇨, 심혈관 질환 등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게 관찰된다. 사람의 유전체에 내재된 암 발생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발병하거나 과도한 DNA 메틸화에 의해 암 억제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면 유방암, 대장암, 폐암, 전립선암 등의 발생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작물의 품종 개량에도 새로운 후성유전 변이의 발굴, 혹은 인위적 유도를 통한 신형질 창출은 제한적인 유전적 변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이며, 나아가 새로운 소재의 제공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유전체 편집’ 기법을 적용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후성유전학적으로 조절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06 수박 + 수박 = 씨 없는 수박?

어느 날 씨앗이 사라졌다

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산들바람에 꽃가루가 흩날리고 벌과 나비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바쁘게 옮겨 다닌다. 곤충이나 바람이 옮긴 꽃가루는 다른 꽃에 내려앉아 자손 번식을 위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식물의 주된 번식 수단은 씨앗이다.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씨앗과 이를 감싸고 있는 씨방은 과일로 발달한다. 과일은 씨앗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단맛과 새콤함 그리고 향긋한 냄새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성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과일은 매력적인 맛과 향을 발산해 동물을 유인하고, 이를 섭취한 동물은 과일 안의 씨앗을 배설함으로써 먼 거리를 이동하여 새싹을 틔울 수 있게끔 돕는다.

식물의 꽃은 종에 따라 크기나 형태가 매우 다양하나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꽃잎과 꽃받침, 그리고 수술과 암술이 이에 해당하며, 특히 수술과 암술은 짝짓기를 통한 유성생식을 위한 필수 기관이다. 수술에서 형성된 꽃가루, 그리고 암술 내의 밑씨에서 만들어지는 배낭은 감수분열을 통해 형성된 생식세포를 포함하고 있다. 꽃을 피우는 개화 식물들은 모두 열매를 맺고 그 안에 씨앗을 형성하는 특성으로 인해 속씨식물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정상적인 생식 과정을 거쳐 형성된 모든 과일 (혹은 열매) 안에는 응당 씨앗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박, 포도, 감귤, 오렌지, 바나나 등 씨 없는 과일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샤인머스캣’과 같은 씨 없는 포도의 재배 면적은 기존 포도 품종의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급

세계적인 농생명과학자 우장춘 박사(왼쪽). 씨없는 수박은 일본 동료학자의 연구를 적용해 선보였다.

출처 연합뉴스, 위키백과

격히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그렇다면 씨 없는 과일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일까?

이배체와 사배체를 교배한 ‘삼배체’ 수박

우선 씨 없는 과일의 대표주자인 수박의 생산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씨 없는 수박 생산의 비밀은 염색체 수의 인위적 변화에 기인한다. 일반적인 수박 품종은 11쌍 총 22개의 염색체(2n=22)를 갖는 이배체 식물에 해당한다. 이배체 수박은 감수분열을 통해 11개의 염색체를 갖는 생식세포를 만들어낸다. 교배 시에는 절반의 염색체 수를 갖는 암수 생식세포가 수정돼 또다시 22개의 염색체 수를 갖는 종자를 형성한다.

그러나 콜히친과 같은 화학물질을 처리하면 염색체

의 수가 두 배로 증가해 총 44개 염색체(4n=44 )를 갖는 사배체 수박을 만들 수 있다. 이배체와 사배체 수박을 교배하면 총 33개 염색체(3n=33)를 갖는 삼배체 수박 종자를 얻을 수 있다. 삼배체 수박은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할뿐더러 정상적인 과일을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삼배체 수박은 감수분열의 이상으로 인해 염색체 수에 문제가 있는 비정상 생식세포들만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삼배체 수박은 정상적 생식이 불가능하기에 씨앗을 만들지 못하는 씨 없는 수박을 생산하게 된다.

모든 체세포에는 염색체별로 한 쌍씩의 염색체가 존재한다. 둘 중 하나는 엄마에게서, 나머지 하나는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며, 이렇게 쌍을 이루는 염색체들을 상동염색체라 부른다. 상동염색체는 수없이 반복되는 복제와 분열 과정을 통해 개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에 동일한 수와 조성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생식세포 생산 시에는 상동염색체가 더 이상 쌍을 이루지 않고 서로 분리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를 통해 생식세포 형성 과정 동안 염색체의 수가 정확히 절반으로 감소하며, 이러한 독특한 세포분열 양상을 감수분열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감수분열 전기에 상동염색체가 서로 접합, 교차돼 유전정보를 교환하는 재조합이 발생하기에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It takes two to tango’라는 격언이 있다. 탱고 춤을 추기 위해서는 둘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라고도 해석된다. 감수분열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감수분열을 위해서는 모든 상동염색체 간의 정확한 쌍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세 벌의 상동염색체를 갖는 삼배체 수박은 모든 염색체 간의 정상적인 짝짓기가 불가능하다.

감수분열의 예.

출처 위키백과

07 종이 다른 동식물의 교배 : 배무채와 노새

진화론 보완한 우장춘 박사의 ‘우의 삼각형 모델’ ‘종의 합성’ 이론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 다른 학문적 업적으로 학계에 큰 공헌을 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농학자이다. 우장춘 박사는 193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다른 종 간의 교배로 탄생한 잡종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종의 합성’ 이론을 제시했다.

우 박사의 이론에 의하면 다른 종인 배추와 양배추가 자연적으로 교배되어 탄생한 종간교잡 식물이 유채로 진화했으며, 실제 유채(n=19 )가 갖는 염색체는 배추(n=10)와 양배추(n=9)의 염색체가 온전히 합쳐져 보존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는 흑겨자(n=8)가 배추 혹은 양배추와 교배돼 갓(n=18 )과 에티오피아겨자(n=17)로 합성 진화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뒷받침한다. 이러한 우 박사의 연구는우 ‘ 의 삼각형’ 모델로 요약된다.

‘우의 삼각형’ 모델은 종을 벗어나 다른 속에 해당하는 식물들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다른 속의 배추와 무를 교배해 새로운 속(屬) 간 잡종 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잎이 풍성한 배추와 뿌리가 비대한 무를 교배하면 어떠한 잡종이 탄생할까? 아마도 위에는 배추, 아래에는 무의 특성을 갖춘 새로운 잡종 식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배추와 무의 교배를 통해 합성된 ‘배무채’라는 속간 교잡 식물은 오히려 정반대로 무의 빈약한 지상부와 배추의 볼품없는 뿌리를 만들어낸다. 놀랍게도 배무채는 (비록 상품적 가치는 떨어질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한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에 바탕해 배추와 무의 속 간 교배로 합성한 배무채. 우 박사의 종간 합성 이론은 현재도 다양한 동식물 품종 개량에 활용된다

출처 서울대

지라도) 유전적 안정성, 우수한 임성 등으로 인해 마치 하나의 독립적인 종처럼 지속적인 번식과 유지가 가능하다.

동물은 어떨까? 수컷 당나귀와 암컷 말의 교배를 통해 태어난 노새는 강인한 힘과 지구력을 갖고 있어 험한 지역에서 물건을 나르는 용도로도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노새 역시 염색체 수 이상에 따른 감수분열의 문제점으로 인해 불임의 특성을 나타낸다(참고로 말은 64개, 당나귀는 62개, 그리고 노새

는 63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은 개체 간 번식이 가능한 유전적으로 유사한 집단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종 사이에는 교배가 허용되지 않는다. 드물게 다른 종 사이의 교배를 통해 태어난 잡종은 흔히 생육 불량이나 유전적 불안정성의 문제점을 갖고 있으며, 후대 번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종 간 번식 억제 현상을 ‘생식장벽’ 혹은 ‘교배장벽’이라고 부른다. 우 박사는 배추과 작물의 사례로 교배장벽을 극복하고 탄생한 합성종이 새로운 종으로 확립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는 식물의 진화가 다윈의 진화론과 달리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행돼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획일화된 품종 개량, 경계해야

그렇다면 씨를 맺지 못하는 식물들은 어떻게 번식

할까? 꺾꽂이나 조직배양 같은 영양번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래 야생의 바나나는 다수의 씨를 포함하나 품종 개량과 선호도에 따라 염색체 수 변이를 갖는 바나나가 급속도로 확산 재배됐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삼배체 바나나는 씨가 없으며 영양번식을 통해 증식한다. 또 거의 동일한 유전자 조성을 갖고 있어 균일한 품질의 바나나를 손쉽게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양번식은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해 바이러스 감염 등에 매우 취약해 한순간 바나나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인류의 목적에만 부합하는 획일화된 품종 개량은 순식간에 종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와도 같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 알아보기

종의 합성 VS 다윈의 진화론

1935년 우장춘 박사는 ‘종의 합성’ 이론을 제기했다. 서로 다른 종이 교배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다윈의 진화론에 위배되는 내용으로 과학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진화론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종은 ‘자연 선택’을 거친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합하면 살아남고 부적합한 종은 도태된다는 것이다. ‘우의 삼각형 모델’은 종의 합성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 결과로서 삼각형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된다.

출처 농촌진흥청

닫으며

무궁무진한 바이오 진로에 도전하길

구체적인 바이오 관련 직업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어떤 지식과 기술들이 요구되는지 이해한다면 그와 연관된 직종들을 추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직접적인 바이오 기술의 적용이 아닌 생명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들도 많이 존재한다. 의학적 지식 혹은 임상 경험을 살려 갖은 의료 분쟁을 해결하는 의학 전문 변호사, 첨단 바이오 기술의 특허를 담당하는 변리사 등 전문직이 대표적이다. 또한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산하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농촌진흥청 산림청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보건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에서 바이오 관련 행정 업무나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다.

예전에 즐겨 읽던 소설의 작가로 미국의 로빈 쿡이 있다. 쿡은 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 스릴러라는 장르를 창조했고,

<아웃브레이크> <돌연변이> <바이탈 사인>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영화나 게임 산업에서도 역시 생물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결합된 현실감 있는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이오아트는 세포나 조직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구조를 생명공학적 기법을 활용해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한다. 일부 아티스트는 심지어 살아 있는 생명체를 (비록 사회적, 윤리적 논란은 있으나) 미적인 관점에서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명 현상의 시각화는 추상적인 현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대중들의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바이오 분야에의 관심을 높이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인체와 다양한 생명체의 구조와 비율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순수미술가의 창작 활동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 밖에 의학 및 과학 전문 기자, 평론가, 번역가, 그리고 국립생태원, 생물자원관, 과학관 등에서 전시를 기획·주관하는 큐레

이터 역시 생명과학 전문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바이오헬스, 스포츠 클리닉 전문가 등 생명공학 및 의약학 지식에 기초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들도 유망 직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오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 산업으로 인식되며 관련 직업들도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생명과학 지식과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바이오 감성이라 칭하고 싶은) 창의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그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한 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